오는 30일 퇴임을 앞둔 엄용수 밀양시장이 지난 8년간의 밀양시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밀양연극촌 전경.
엄용수 시장이 밀양나노국가산업단지 예정지를 방문한 홍준표 지사에게 사업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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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용수(50) 밀양시장은 지난 8년 동안 숱한 민원에 따른 고뇌와 힘든 결단,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의 책임감과 스트레스, 그 모든 것을 홀가분하게 내려놓고 떠나면서도 ‘밀양나노피아’에 대한 열정을 감추지 않았다. 미래의 밀양이 먹고살 수 있는 길이 나노피아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흔두 살의 젊은 시장으로 취임해 밀양의 현재와 미래를 짊어지려고 안간힘을 쏟았던 지난 세월 동안 가장 보람이 컸던 일도 나노피아의 뿌리를 밀양 땅에 심어, 이제 곧 국가산업단지 지정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이달 말 퇴임을 앞둔 엄 시장의 소회를 들어보자.
-젊고 유능한 시장이 3선에 도전하지 않고 퇴임하는 것에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불출마를 결심한 이유는?
▲공직 생활이 제 삶에서 하나의 과정이라고 봤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했지 공직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짜놓은 일정대로 제 일생을 가고 있습니다. 4년 전 재선되고, 제가 직접 쓴 취임사에서 앞으로 4년만 더 하고 마무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람들은 잘 안 믿었겠지만, 그 약속을 지키는 일이 저 자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방정부의 수장은 인사와 예산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자리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권력이라고 생각하고 누리려 하면 스스로 비참해집니다. 저는 그 자리를 권력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8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자리를 떠나는 입장에서 별다른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후련하고 편안합니다.
-임기 동안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우리 밀양은 농촌 지역으로 재정기반이 취약한 지역이기 때문에 부채가 많았습니다. 제가 취임한 2006년 말 944억원이었던 자체 부채를 제로화시켰습니다. 기본적으로 재정이 안정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밀양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농업에 의존하는 지역 특성으로 산업기반이 취약해 인구가 줄고 있는 것입니다. 1960년대만 해도 25만이 넘었던 인구가 현재 11만여명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는 산업 용지를 공급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3000㎡ 규모의 공장이 종업원 10명 정도를 고용한다고 볼 때 약 600만㎡의 공단이 들어서면 2만명을 고용할 수 있어 한 가족 3명을 기준으로, 6만명 정도의 인구가 늘어나 장기적으로 밀양 인구 20만 시대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리고 공단 개발의 경우 300만㎡는 전통 제조업으로 하고, 나머지 300만㎡는 미래 먹을거리가 될 수 있는 첨단산업이어야 한다고 판단해 2007년부터 나노기술 집적단지를 계획했습니다. 그동안 정권이 바뀌면서 공단 추진이 순조롭지 않았으나 나노융합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과정을 꾸준히 밀어붙여 만 7년이 되는 올해 3월 밀양나노피아가 국가지원 나노융합특화산업단지로 선정됐습니다. 협의를 거쳐 곧 국가산업단지로지정될 것으로 봅니다. 밀양나노피아의 조성이 마무리되면 국내 최초이자 세계 최초의 나노기술 전문단지로 밀양의 자랑이 될 것입니다.
-시장으로 지낸 8년 동안 가장 아쉬웠던 일은 무엇인가.
▲물론 송전탑 문제입니다. 오래전부터 계획됐던 국책사업이었는데 제가 취임하자마자 시행돼 지난 8년 내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90% 이상 공사가 진행돼 몇 개월 안에 마무리될 것입니다. 사업 시행자인 한전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적극적인 자세였다면 이렇게 문제가 커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국민들의 눈높이는 바뀌었는데 한전은 제대로 보상도 안 하고, 일방통행식 옛날 그대로였던 게 문제의 원인이었다고 봅니다. 오죽하면 시장인 저까지도 송전탑 공사 강행을 반대했겠습니까. 억울한 주민들이 호소할 곳은 밀양시와 시장밖에 없었지요. 한전과 주민들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돼 엄청 욕먹었습니다. 하지만 국책사업이라 지방자치단체의 실제 권한은 없었습니다. 처음엔 저도 반대했지만, 그 후로 한전의 대안과 현실 보상 방안 등이 나오면서 최선을 다해 주민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반대하는 주민들의 불만과 불평을 다 풀어주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이 일로 인해 제도 개선이 이뤄진 것은 불행 중 다행입니다. ‘송·변전설비 주변지역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앞으로는 밀양 송전탑 사태 같은 불상사를 막을 수 있게 됐습니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들 한다. 밀양의 문화정책은 어떻게 이뤄져 왔으며, 앞으로의 진행 방향은.
▲밀양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밀양아리랑을 비롯해 밀양백중놀이 등 무형문화재와 영남루와 같은 유형문화재들로 문화의 역사적 토대는 풍부한데 이를 섬세하게 엮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성장에 치우치다 보니 문화쪽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나름대로 밀양연극촌과 백중놀이보존회 등 문화계를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문화정책은 문화를 잘 아는 전문가를 내세워서 만들고 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차기 시장은 전문가를 많이 활용해 정책적으로 밀양의 문화예술을 지원해 줄 것을 소망합니다. 밀양은 농경시대에는 사람과 물자가 집중됐던 큰 고장으로, 문화자원이 풍부합니다. 지금도 그 위상에 걸맞은 문화를 가져야 합니다. 밀양읍성 복원사업의 경우 옛날 해자(垓字)였던 해천의 복원이 거의 끝나 갑니다. 올해 안에 생태하천의 모습을 시민들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밀양강의 물고기들이 해천에서 놀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동문의 복원은 현재 토지 보상과 기본계획 용역 중이며, 남문은 토지 확보 문제로 복원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봅니다. 밀양관아는 복원을 마쳤고, 영남루 주변 정비사업도 마무리 단계입니다.
-후임 밀양시장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방자치단체장의 임기가 4년입니다. 4년 임기 동안 성과에 집착해 단번에 결과를 내려고 하면 모든 일이 어쭙잖게 됩니다. 제가 8년 동안 시장을 했지만 밀양시를 기본적으로 변화시키기가 힘들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시장의 1기는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 절차를 밟아가고, 2기 때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는 장기적 관점이 필요합니다. 큰 사업은 절차에만 몇 년의 세월이 필요하기 때문에 장기적 안목으로 사업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시장의 1기가 끝나면 선거를 치르게 되고, 시장이 주민들에게 추진해온 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줄 것을 요구하고, 주민들이 공감하면 2기에서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리더의 역할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현존하는 문제 즉 민원 같은 일들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미래 즉 비전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표(주민의 지지)만 의식하면 현존하는 문제에 집착하게 됩니다. 지도자는 호응을 못 받고, 반대에 부딪히고, 표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당장의 민원 해결보다 밀양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주민들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묵묵히 일하다 보면 임기가 끝났을 때 진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
▲저는 밀양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고 떠나지만 그 결실을 거두는 일은 이제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새롭게 선출된 지도자의 몫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대에 많이 미흡했지만 ‘오직 밀양’이라는 대명제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성원해주셨던 밀양시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제가 그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간에 우리 밀양과 또 밀양사람들 잊지 않겠다는 것과 지금까지 도와주셨던 우리 시민 여러분들에게 정말 감사하고 또 고맙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간의 저의 허물과 부족함을 용서하시고 언제 만나더라도 웃는 얼굴로 뵙기를 간청하며 시민 여러분과의 시간이 진정 영광스럽고 감사했
기에 저 또한 행복합니다. 항상 다복하시고 건강히 지내십시오.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울러 경남신문과 응원해주신 경남신문 독자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