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네르사(Nersas)
축일 11월 20일
페르시아의 사푸르 2세가 일으킨 대박해가
4년째 되던 해에 사제르드의 주교 성 네르사와
10여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체포되었다.
이때 재판관은 그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그대의 희끗희끗한 머리와 그대 제자의 젊음에
나는 호감이 가오. 그러니 그대의 안전을 생각하고
하는 말이니, 태양을 숭배하면 난 그대를 영광스럽게
하겠소.” 이때 성 네르사는
“그런 간계로 우릴 속이지 마시오.
나는 이제 팔순의 나이요.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껏
하느님만 섬겼소. 나는 그분을 찬양하고 흠숭하오.”
이리하여 순교자들은 텐트 밖으로 끌려나와
군중 앞에 섰다. 이때 성 네르사는 잠시 배교했던
제자 요셉을 발견하고는 그를 끌어안고 축복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축복받은 아들 요셉아,
너는 세상의 험한 길을 끝까지 가야 한다.”
그 후 그는 숨을 거두었다. 그는 나르세스(Narses)
또는 네르세스(Nerses)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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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다시오(Dasius)
축일 11월 20일
사투르날리아라고 부르는 겨울 축제 30일 전에
“그릇된 통치자”를 선출하는 관습이 로마(Rome)
군인들에게 있었는데, 이에 뽑힌 사람은 술 취한
지도자가 되어 난폭하고 방탕한 추태를 보여야 하고,
끝으로 크로노스에게 바치는 제사로 마감한다.
303년경에 불가리아의 실리스트라에서 군인들이
성 다시우스(또는 다시오)라는 사람을 그릇된
통치자로 뽑았다. 그는 그리스도인이었으므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슨 짓인지를 잘 알고는
완강히 거부하였다고 한다. 이방신에게 희생제물을
바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선언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집정관 바수스 앞에 끌려갔다.
총독은 그에게 신앙을 포기하라면서 황제의 상 앞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강요하였다.
다시우스는 죽음으로 이를 항거하다가 참수되었다.
그의 유해는 안코나(Ancona)에 안장되어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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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수스(Bassus),
성 디오니시오(Dionysius)
성 아가피투스(Agapitus)
43명의 그리스도인
축일 11월 20일
성 바수스(Bassus),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
성 아가피투스(Agapitus)를 포함한
43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발칸반도 동부
트라키아(Thracia) 지방의 헤라클레아
(Heraclea)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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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막센시아(Maxentia)
축일 11월 20일
프랑스 보베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성녀 막센티아(또는 막센시아) 성녀는
아일랜드의 공주였다. 그녀는 어릴 때에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였으므로 부친이
이교 추장과의 혼인을 명하자 집을 몰래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2명의 하인과 함께
그녀는 바다를 건너 프랑스 지방으로 가서,
지금은 퐁-생-마센스로 알려진 오아즈에
정착하였다. 하루는 그녀의 움막 밖에 일단의
말을 탄 사람들이 당도하였는데, 그들 중의
한명이 그녀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막센티아는 끝내 거부하여 도망치다가
그들의 칼에 숨을 거두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순교자로 공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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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니뇨(Benignus)
축일 11월 20일
성 베니뇨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교로서
주교직에 있는 동안 오도아케르(Odoacer) 왕이
다스리는 헤룰리족(Heruli)이 도시를 점령해
백성과 함께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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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른바르도(Bernward)
축일 11월 20일
성 베른바르두스(Bernwardus, 또는 베른바르도)는
독일 마인츠(Mainz)에서 성 빌리지스
(Willigis, 2월 23일) 대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되어 황제 오토 3세의 전속사제로 봉직하다가,
993년에 힐데스하임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의 주교직은 온통 정치적이고도 교회적인 분쟁으로
7년이나 고생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예술의 옹호자로서 유명하다.
그는 자신이 화가이자 금속 세공인이어서
힐데스하임은 성미술의 학교로서 유명하였다.
성 베른바르두스가 만든 청동문, 십자가, 기둥
그리고 촛대들은 그의 예술성을 증명하는 유물로
지금도 남아 있다. 또한 그는 종교 건축물의
대표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힐데스하임의
성 미카엘(Michael) 수도원 성당 건축 책임자였다.
그는 그 성당의 유해 봉안소에 안장되었으며,
1193년 교황 카일레스티누스 3세(Caelestinus 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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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옥타비우스(Octavius)
성 솔루토르(Solutor)
성 아드벤토르(Adventor)
축일 11월 20일
성 옥타비우스(Octavius)와 성 솔루토르
그리고 아드벤토르(Adventor)는 로마 군인으로
이탈리아 북서부 토리노(Torino)에서 순교하였다.
토리노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는
그들의 원순교록은 전해지지 않고, 후대에
그들의 이야기는 테반 군단 순교자들의 이야기와
연관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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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실베스테르(Silvester)
축일 11월 20일
성 실베스테르는 484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프랑스 샬롱쉬르사온의 주교로 재직하였다.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
(Gregorius, 11월 17일)는 그를
‘증거자들의 영광’이라고 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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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심플리치오(Simplicius)
축일 11월 20일
성 심플리키우스(또는 심플리치오)는
이탈리아 베로나의 주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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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가피오(Agapius)
축일 11월 20일
성 아가피우스(또는 아가피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에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에서
순교하였다. 그는 세 번이나 신앙 때문에
투옥되었다. 에우세비우스(Eusebius)는 그가 어떻게
다시 체포되고 족쇄에 채워져 살인자들에게
넘겨지고 원형경기장의 야수들에게 던져졌는지를
관련시켜 설명하고 있다. 전승에 의하면
성 아가피우스는 그의 동료가 사면되고 그 역시
그리스도를 포기하면 자유를 주겠다는 제의를
거부하고 야수들로부터 거의 죽을 정도로 고통을
받았다. 다시 감옥에 갇힌 그는 다음날 큰 돌을
매달고 바다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에우세비우스는 그가 야수들과 싸운 후 참수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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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우스타키우스(Eustachius)
성 테스페시우스(Thespesius)
성 아나톨리오(Anatolius)
축일 11월 20일
성 에우스타키우스(Eustachius)와
성 테스페시우스(Thespesius) 그리고
성 아나톨리우스(또는 아나톨리오)는
막시미우스 황제 치하 소아시아의
니케아(Nicaea)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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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암브로시오 트라베르사리(Ambrose Traversari)
축일 11월 20일
암브로시우스 트라베르사리
(Ambrosius Traversari, 또는 암브로시오)는
인본주의자이며 수도자로 문예부흥 시대의
다재다능한 인물로 손꼽힌다. 그는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 인근 포르티코(Portico)
태생으로 14세 때에 피렌체의 천사들의 모후
수도원에서 카말돌리 회원이 된 이래
그곳에서만 30년을 살았다. 그동안 그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교사를 역임했고
히브리어를 배웠는데, 그리스어는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그리스 교부들의 저서들을
번역하였는데, 요한 모스코의 “영적인 초원”과
성 요한 클리마르의 “완덕의 계단”이 유명하다.
또 그는 코시모 데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았고,
귀족 자제들에게 신학과 역사를 가르쳤다.
그의 제자 중에는 성 라우렌티우스 주스티아니,
니콜로 니콜리, 포기오 브라치올리니,
마누엘 크리솔로라스 그리고 레오나르두스 브루니
등이 유명하다.
1431년 교황 에우게니우스 4세(Eugenius IV)가
그를 카말돌리회의 총장으로 임명하여 수도회의
개혁을 기원하였다. 그 후 성좌는 그에게
발룸브로사회의 개혁사업 임무를 맡길 정도로
그의 개혁 운동은 성공을 거두었다.
1438년 그는 교황 대리자로서 동방의 황제를 만났고,
그의 유창한 그리스어와 해박한 동방 신학 지식
때문에 동서방 교회 일치 운동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황제가 라틴어권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그리스어를 구사한다고 그를 격찬하여
일이 더욱 순조로워졌기 때문이다.
그는 53세의 일기로 서거했으나 공식적으로
시성된 바는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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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암펠리오(Ampelius)
성 카이우스(Cajus)
축일 11월 20일
성 암펠리우스(또는 암펠리오)와
성 카이우스(Cajus)는 시칠리아(Sicilia) 섬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메시나(Messina)에서 순교하였다.
그 외에 그들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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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드문도(Edmund)
축일 11월 20일
841년 색슨(Saxon)에서 태어나 그리스도교적인
가정환경에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성 에드문두스(Edmundus, 또는 에드문도)는
865년 젊은 나이에 이스트 앵글리아(East Anglia)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869년에 덴마크의 바이킹족이
노퍽(Norfolk)의 테트포드를 공격하자,
에드문두스는 자기의 군대를 데리고 용감하게 맞섰다.
잉글랜드(England)는 패하고 에드문두스 역시
살해되었는데, 아마도 포로생활 중에 죽은 듯하다.
그는 서퍽(Suffolk)의 혹슨(Hoxne)에서 체포되었는데,
그리스도교 왕국을 분할하라는 요구에 대하여 완강히
부인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끝까지 고수하다가
나무에 묶인 채 화살을 맞고 운명하였다고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순교자로서 높은 공경을
받고 있으며, 중세 시대에는 그를 공경하는 지역이
전 유럽으로까지 퍼졌다. 성인의 유해는
헬레스돈(Hellesdon)의 작은 목조 경당 옆에 묻혔다.
915년경 부패되지 않은 채 발견된 에드문두스의
유해는 베드릭스워스(Bedricsworth)로 옮겨졌다.
그 후 이곳은 ‘에드먼드 베리(Edmund Bury)라고 불렀다.
1020년 덴마크의 크누트 2세(Knut II)가
에드먼드 베리에 석조 성당을 건축하고 자기 동족들이
저지른 일을 보상함으로써 덴마크인과
앵글로 색슨인들 간의 화해를 이루려고 하였다.
그 일환으로 왕은 베네딕토회에게 그 인근 지방에 대한
관할권을 위임하고 상당한 토지를 하사하여
베네딕토회는 영국 내에서 가장 중요한 수도회 중의
하나가 되었다. 에드문두스의 문장을 화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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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펠릭스(Felix)
축일 11월 20일
프랑스 세흐포와(Cerfroid)의 은수자이던
성 펠릭스와 그의 제자 마타(Matha)의
성 요한(Joannes, 2월 8일)은 무어인들로부터
포로들을 대속하기 위하여 삼위일체 수도회를 세우고
1198년에 교황청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성 요한은 에스파냐와 바르바리아에서 활동하고,
성 펠릭스는 70세의 고령이었기 때문에
파리(Paris)에 남아 성 마투리누스(Maturinus)
수도원을 세우는 한편 프랑스 지방을 사목하다가
1212년 11월 4일에 세흐포와에서 운명하였다.
1240년경 그의 수도회에는 6백 명의 수도자들이
있었으니 대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회원들은
그와 성 요한이 1262년 교황 우르바누스 4세
(Urbanus IV)에 의하여 시성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1666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7세
(Alexander VII)가 그들의 공경을 승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