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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155강 – 1 – b
(5) 因果의 交徹
佛子야 如來가 成正覺時에 於其身中에
普見一切衆生이 成正覺하며
乃至普見一切衆生이 入涅槃하야 皆同一性이니
所謂無性이라
無何等性고 所謂無相性이며 無盡性이며
無生性이며 無滅性이며 無我性이며 無非我性이며
無衆生性이며 無非衆生性이며 無菩提性이며 無法界性이며
無虛空性이며 亦復無有成正覺性이니
知一切法이 皆無性故로 得一切智하야 大悲相續하야
救度衆生이니라
因果의 交徹(인과교철)
佛子야 如來가
成正覺時에, 바른 깨달음을 이룰 때에, 여래께서 정각을 이룰 때에,
於其身中에, 그 몸에서
普見, 부처님의 법신에서 모두 볼 수 있다. 一切衆生이 成正覺이다.
우리 예불하고 사시마지 올릴 때,
“諸佛坐已成正覺(제불좌이성정각)이라.” 고 하는 대목이 화엄 정신에서,
여기서 찾을 수도 있습니다. 더 구체적인 구절도 있습니다만...
그래서 그 몸에서
普見一切衆生이 成正覺,
일체중생이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것을 두루 본다.
“심봉사가 눈뜬다.” ‘근본 하나가 눈뜨면, 옛날 봉사나 지금 봉사나
온~~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눈뜬다.’ 이런 뜻이지요.
부처님이 눈떴을 때 ‘우리도 이미 그 마음에 대해서 같이 눈떴다.’
이렇게 하는 것이 화엄의 원융사상입니다.
乃至는 普見, 널리 본다. 一切衆生이 入涅槃이라.
일체중생이 정각을 이루고, 일체중생이 열반에 드는 것을 두루 보느니라.
왜 그러냐? 皆同一性이라. 심성은 네 것 없고 내 것 없고,
마음이라고, 1심이라고 하는 것은 전부 다 본래 없는 것이라서 똑같다.
그래서 皆同一性이니. 그 1성은 뭐냐?
所謂無性(소위무성)이라. 모두 같은 성품이니 이른바 성품이 없음이니
라. 배운 것이 있고, 가진 것이 있고, 모양이 있다고 하면 사람이나 누구나
천양지차로 각각이 다 다를 텐데요. 옛날 것 다르고 지금도 다를텐데,
無古無今(무고무금)이라. 옛날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니까 누구든지 똑같
다. 부처님의 탄생을 “無生이라.” 정확하게 무생이기 때문에,
“無滅이라.”
여기도 나옵니다만, “부처님이 탄생하신 것이 없으니까 열반에 드실 일도
없다.” 금강경에도 그 구절이 나오지요.
여기는 더 정확하게 화엄경의 여래 출현 품에, “여래가 출현하셨지만 출현
하신 바가 없다.”고 명확하게 나옵니다.
皆同一性이라. 우리 심성이라고는 한결같이 하나뿐인데,
그럼 사람이 왜 다르냐? 그것은 ‘심성이 아니라 업성이다.’ 이겁니다.
‘심성에 붙어있는 무명으로부터 야기돼서 각각 업식으로, 그 업의 차이를
가지고 사람들이 마음으로 자꾸 착각을 한다.’ 이런 얘기지요.
망상분별을 가지고 마음이라고 착각을 하는데요.
‘진여자성이 아니다.’ 이 겁니다.
“진여 자성은 모두 같을 수밖에 없다. 제바달다 하고 부처님하고 0그램도
차이가 안 난다.” ←이것이 심성을 얘기하는 것이지요.
皆同一性! 줄 꽉~~~ 그어 놔야 되겠습니다.
所謂無性이라. ←이 무성이라는 대목은 10회향 품에 보면, 제 8진여상 회
향에서 “이 진여라고 하는 것은 어떠냐? 무성이다ㆍ무상이다ㆍ무념이다ㆍ
무래다ㆍ무거다. 여래자는 무소 종래며 역무소거라.” ←이런 것들이 동일
법성에 다 해당하는 것입니다.
無何等性고? 어떠한 성품이?
무성이라는데, 왜 무성이냐? 뭐 어떤 성품이 없느냐?
‘보리의 성품이 없다.’ 이겁니다. 보금 전에 “아뇩다라3먁3보리의 성품이
없다.” ‘화엄경은 헷갈리는데요.’ 헷갈리지 않습니다.
금강경에 이래놨습니다.
“수보리야. 여래가 연등 불소에서 유소득법부아? 깨달은 바의 법이 있느
냐?” 이렇게 물으니까 수보리가 뭐라고 했지요?
“불야 니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얻으신바 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딱 잘라서 말해 버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所謂無性 無何等性 ←이 구절입니다.
“보리는 무성이다ㆍ열반 무성이요ㆍ불성 무성이고ㆍ불종자는 무종자다.”
이겁니다. 불종자는 종자가 없기때문에 “진공이다.” 하지요.
그렇지만, 한도 끝도 없이 펼쳐내기 때문에 “묘유”라고 얘기를 합니다.
所謂無相性이며, 소위 모양 없는 성품이며,
無盡性이며, 여기서 “무진”이라고 하는 것은, 법화경에 이렇게 나오지
요. “무생이기때문에, 태어나는 것이 없기때문에 무멸이다. 불생불멸이
다. 멸하는 것이 없기때문에, 멸진하지 않기 때문에 무진이다.” 이렇게
나옵니다. 무생이니까 무멸이요. 무멸이니까 무진이요. 무진하니까 무
량이요. 이렇게 쭉~~~ 나옵니다.
所謂無相性이며, 이른바 모양에 성품이 없고,
無盡性이며, 다하는 성품이 없고,
無生性이며, 나는 성품도 없고, 여기에 나왔네요.
無滅性이며, 멸하는 성품도 없다. 상대적으로 되어있습니다.
모양 없는 것 ↔ 성질 없는 것. 바깥으로 모양과 안으로 성품과.
무상이나 무진이나. 모양 있는 것은 다하기 마련인데 “없다.”고 그랬습
니다. 무생성이며 무멸성이라. 멸하는 성품도 없고,
無我性이며, “내”라고 하는 성품도 없고,
無非我性이며, “내”가 아니”라고 하는 성품도 없고,
無衆生性이며, 중생의 성품도 없고, 無非衆生性이라.
굳이 얘기한다면, 무아상ㆍ무인상ㆍ무중생상ㆍ무수자상. ←이런 것들이
전부 다 ‘아~~ 생각해 보니까 그것이 바로 여래출현이고, 진여자성이고,
무성의 성품이었구나!’ 이렇게 알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無菩提性이라. 보리의 성품도 없고,
無法界性이며, 법계의 성품도 없다. 여기서 “보리”라고 하는 것은
“능정보리인소정이라.” 보리의 인을 인해서 법계를 깨달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것도 상대적으로 하나는 “보리다. 법계다.” 이렇게 해놨지요.
無菩提性. 보리의 성품도 없고, 법계의 성품도 없다.
법계의 성품도 없지만, 양껏 이법계ㆍ사법계ㆍ이사무애법계ㆍ사사무애
법계를 설명을 하지요.
無虛空性이며, 허공의 성품도 없고,
亦復無有成正覺性이라.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정각의 성품도 없나니,
知一切法이 皆無性故라.
줄 그어놓으시면 되겠습니다. 그 부분을 여러분께서 참고 하시려면,
범행품 제일 마지막 말미, 초발심공덕 품 바로 앞의
“知一切法 卽心自性”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 다음 구절이
“成就慧身라면 不由他悟요 초발심시에 변성정각”이라고 하는 대목이
이 구절[知一切法이 皆無性故]하고 똑같이 나옵니다.
그 “변성정각”이라는 분이 여래 출현이잖아요. 여래 출현이고요.
또 다른데 인용을 해서 이해를 하시려면, 수미정상게찬 품에 승혜보살
장에 가면,
“了知一切法 自性이 無所有라. 如是解法性하면 則見盧舍那라. 이와 같이
법의 성품을 알면 바로 비로자나부처님을 친견할 것이다.”
선방 수좌라면 누구든지 화두만큼이나 익숙한 구절이지요?
“了知一切法 自性無所有 如是解法性 則見盧舍那” ←이 구절이 여기에 똑
같이 맞아 떨어지는 구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得一切智하야, 온갖 지혜를 얻고
大悲가 相續(대비상속)하야, 일체 지혜를 얻으면 저절로 자비로워지는 것
이지요. 자비나 일체 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살바야”라고 하는 부처님
같은 “佛智”고요.
“대비” 라고 하는 것은 佛智에서 나오는 중생을 향한 양도 한도 끝도 없이
펼쳐나오는, 허공에서 맛국물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대비심이지요.
無緣大悲(무연대비)!
대비가 상속해서, 삼매에서 넝출 넝출 넘쳐 나오는 것이 “大悲相續”이지
요. 여기서 그래서 대비심으로 救度衆生(구도중생)이라.
이것이 부처님의 본 원력을 救度衆生이라 하지요.
10지 품에 “當念本願度衆生(당념본원도중생)이라.” 10지 품에 이렇게
해놨지요. 當念, 마땅히 생각하라. 本願, 부처님의 근본의 원력은 뭐냐?
度衆生이다.
大悲相續 救度衆生,
크게 가엾이 여기며 서로 계속하여 중생을 제도하느니라.
(6) 正覺體의 譬喩
佛子야 譬如虛空이 一切世界가 若成若壞에
常無增減이니 何以故오
虛空은 無生故ㄴ달하야 諸佛菩提도 亦復如是하야
若成正覺과 不成正覺에 亦無增減이니 何以故오
菩提는 無相無非相이며 無一無種種故니라
正覺體의 譬喩(정각체비유)
佛子야
譬如虛空이, 비유하면 허공은
一切世界가 若成若壞(약성약괴)에 常無增減(상무증감)이니,
허공은 모든 세계가 이루어지거나 무너지거나 간에 늘어나고 줄어듦이
없다. 태풍이 불어도 허공이 부서짐이 없고, 태양이 내리 쬐도 허공이
늘어나거나 뜨거워지는 법도 없고요. 춥다해도 추워지는 법도 없고요.
날씨가 춥고 바람이 춥고, 지나가는 것들이나 그렇지, 허공은 텅 비어 있
지요? 이러한 까닭으로
何以故오? 왜냐하면
虛空은 無生故니라. 허공은 본래 무생이다.
태어나는 난 바가 없는 까닭이다. 본래 없기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화엄경이라든지, 모든 불교 경전에 비유를 한다 하더라도,
지혜가 조금 모자란 사람이 있어서 비유는 하지만, 그 어떤 비유도 마음
에 대해서 비유할 수 없다. 한 가지 허용하는 비유는 허공이다.” 이렇게
해놨습니다.
諸佛菩提도, 모든 부처님의 보리도,
亦復如是하야, 부처님의 그런 아뇩다라3먁3보리도 그와 같아서,
여래 출현도 그와 같아서
若成正覺과, 정각의 깨달음을 이루거나
不成正覺이라.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거나 간에,
亦無增減이니,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이 없다.
‘깨달아도 밥 한 그릇. 못 깨달아도 밥 한 그릇이다.’ 이 겁니다.
何以故오? 어찌한 까닭이냐? 菩提는
無相無非相이며, 모양도 없고 모양 아님도 없고,
無一無種種故니라. 하나도 없고 여러 가지도 없다.
하나도 없고 다양한 것도 없는것이다. 그 다음에
(7) 正覺相의 一相無相
佛子야 假使有人이 能化作恒河沙等心하고
一一心에 復化作恒河沙等佛호대 皆無色無形無相하야
如是盡恒河沙等劫토록 無有休息하면
佛子야 於汝意云何오
彼人의 化心하야 化作如來가 凡有幾何오
如來性起妙德菩薩이 言하사대 如我解於仁所說義컨댄
化與不化가 等無有別이어니 云何問言凡有幾何니잇고
普賢菩薩이 言하사대 善哉善哉라 佛子야 如汝所說하야
設一切衆生이 於一念中에
悉成正覺이라도 與不成正覺으로 等無有異니
何以故오 菩提는 無相故라
若無有相이면 則無增無減이니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應如是知成等正覺이
同於菩提하야 一相無相이니라
正覺相의 一相無相(정각상일상무상)
佛子야
假使有人이 能化作恒河沙等心하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항하사와 같은 마음을 변화해서 만들고,
一一心에, 낱낱ㆍ생각ㆍ생각 마다에,
復化作恒河沙等佛호대,
다시 항하사와 같은 부처님을 변화하여 만들되,
“낱낱 마음” 이라고 하는 것은 인과법으로 볼 때 因이지요.
“다양한 수행을가지고, 다양한 결과를 쫓아낸다.” 도출해내는 것인데요.
그러나 皆無色無形無相하야, 모두 색도 없고 형상도 없고 모양도 없다.
아무리 만들어봐도 빛도ㆍ형상도ㆍ모양도ㆍ빛깔도 아무것도 없다.
如是盡恒河沙等劫토록, 이와 같이 황하의 모래 같은 겁이,
황하사 겁이 다하도록
無有休息하면, 쉬는 일이 없이 계속한다면, 佛子야
於汝意云何오? 네 뜻에 어떠하냐?
彼人의 化心하야, 그 사람의 변화한 마음이,
化作如來가 凡有幾何(범유기하)오?
그 사람이 변화하여 마음을 만들고, 또 부처를 변화하여 만든 것이 무릇
그 얼마나 되겠느냐?
如來性起妙德菩薩이 言하사대. 여래성기묘덕보살이 말씀하였다.
여래성기묘덕보살이라면 문수보살입니다.
性起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화엄경에서는 성기라고 얘기하
지요. “진성연기”를 “性起”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생멸이 일어나는 것을
“연기법”이라고 하지요.
화엄에서는 성기법을 주로 쓰지요. 性起.
“성품이 일어났다.” 그래서 “일체가 유심조다. 마음이 모든 부처를 지었
다.” 性起ㆍ緣起. 연기라고 하는 것을 잎이나 가지나 잔가지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면, 성기라고 하는 것은 뿌리에서 싹이 올라오는 턱이지요.
性起는 근본 지혜를 상징하기 때문에 “性起妙德”이라고 이렇게 표현을
해놨습니다. 2회차 설법에서는 문수보살을 妙首(묘수)라고도 하지요.
如我解於仁所說義컨댄,
제가 이해하는 범위에서는 당신이 말씀하신 뜻을 생각해보건대,
化與不化가, 변화하거나 변화하지 않거나,
等無有別이라.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
허공이 지가 변화해봤자 얼마나 변하고, 또 안 변화해봤자 얼마나 안 변
하겠냐고요.
云何問言凡有幾何(운하문언범유기하)니잇고?
어찌하여, “얼마나 되겠느냐?”하고 저한테 쉿~~ 물어봅니까? 하니까,
普賢菩薩이 言하사대, 보현보살이 말씀하시기를,
7회차 설법에서는 문수보살은 정수리에, 성기묘덕보살은 정수리에 부처
님의 마정수기를 받게 되고, 보현보살은 입에 부처님이 방광을 쏟아부어
서 가피를 받게 되잖아요.
보현보살이 말씀하시기를, 善哉善哉라. 佛子야
如汝所說하야, 그대가 말한 것과 같이
設一切衆生이, 설령 일체중생이
於一念中에, 잠깐 사이에
悉成正覺이라도, 잠깐 반짝 깨달음이라도, 모두 바른 깨달음을 얻을지
라도
與不成正覺으로, 조금 정각했다 하더라도,
等無有異니, 정각을 이루지 못한 것과 평등하고 다르지 않으니,
何以故오? 왜냐하면
菩提는 無相故니라. 보리라고 하는 것은 모양이 없는 연고이니라.
앞에는 無性이라고 나왔습니다. 그렇지요? 여기는 無相이라고 나왔습니
다. 안팎이 없는 것입니다. 텅 빈겁니다. 이 정도로 불교가 발전 되면서
장황하게 설명해 놨지요.
若無有相하면, 만일에 모양이 없으면,
則無增無減이라. 모양이 없다고 할 것 같으면, 모양 없는 것이 어떻게
보태고 빼질 것이 있겠는가? 우리가 늘 하는 반야심경을 이렇게 잘 해석해
놓은 것이, 화엄경을 읽다가 반야심경이 해석되고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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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無生이기 때문에 또한 無滅이다. 일체 중생도 그러하다.
皆同一性 : 일체 중생의 진여자성은 다같다. 그러나 각각의 업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모양으로 나타난다.
了知一切法 自性無所有 如是解法性 則見盧舍那.
고맙습니다. 근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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