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宴樂)하는데 20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21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26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 저는 지난 한 주 동안 "내게 주어진 새로운 한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글을 읽던 중 세 가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1.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자.
(예)「만족」/ 린다 밀로우 - 만족, 행복의 시작점
엘라는 아이들과 함께 남편을 따라 52년 동안 아프리카의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녀는 친숙했던 모든 것과 고향, 친구들을 떠났다. 아프리카 시골의 타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전기, 에어컨, 현대식 편의 시설들은 그림의 떡에 불과했을 것이다. 어떤 날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무더워서 온도계를 실내로 들여와야 했던 적도 있었다. 섭씨 49도를 넘기면 온도계가 고장이 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생활 여건에 대해 불평한 적이 없었다. 어떻게 엘라는 땀방울이 몸을 타고 흐르며 곰팡내 나는 습한 공기 때문에 잠을 못 이루면서도 불평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엘라의 딸 미미는 최근 어머니의 낡은 일기장에서 이러한 그녀가 만족을 얻었던 방법을 발견했다.
● 나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심지어 날씨조차도-불평하지 않겠다.
● 다른 환경이나 다른 장소에 있는 나의 모습을 그리지 않겠다.
● 나의 몫을 남의 것과 비교하지 않겠다.
● ‘이것 혹은 저것이 지금과 달랐더라면’이라고도 가정하지 않겠다.
● ‘내일’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내게 속한 것이 아님을 기억하자.
비밀은 그녀의 마지막 말에 들어 있다. 그녀의 눈은 영원에 고정돼 있었다. 그녀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인생을 바라봤다. 또한 그녀의 모든 미래는 하나님의 강하신 팔 안에 든든히 놓여 있기 때문에 오늘을 사는 데 있어 자유로웠다. 엘라는 ‘영원’에 집중했고, 이것이 그녀를 내적인 ‘만족’으로 이끌었다.
(빌 4:11,12) 11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내가 비천에 처할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자!
2. 재미있게 살자.
(예) 너무도 재미가 나서
토머스 에디슨은 한평생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열심히 일한 사람입니다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루도 소위 노동이라는 것을 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무슨 일을 하든지 재미가 있어서, 참을 수 없어서 한 일이니까."
이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말입니까?
그는 성공만 했던 게 아닙니다. 전등 하나를 발명하는 데 600번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 성공한 것입니다.
"나는 노동을 한 일이 없다. 너무도 재미가 나서, 미쳐서 한 일이니까---"
(참고 ; 1만 2천 번 실험한 경우도 있었다.)
→ 재미있게 살자!
3. 낙관적으로 살자.
(예) 책 "긍정심리학"에서 - 긍정적인 사람이 19% 오래 산다.
사람의 수명은 얼마이며, 수명을 단축시키거나 연장시키는 조건이 무엇일까?
미국 수녀원에 있는 수녀들을 조사했다. 그들은 대체로 자극이 약한 음식을 먹고,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는다. 또한 미혼이라 아이를 낳은 적도 없다. 성병에 걸릴 가능성도 없고, 사회경제적 지위도 같고, 모두 훌륭한 의료혜택을 누릴 수도 있다.
그런데 세실리아 수녀는 98세로 지금까지 한번도 병치레를 해본 적이 없는데, 마거리트 수녀는 59세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얼마 안되어 사망했다.
그러니까 수녀들의 생활방식, 음식, 진료 여건이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주원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180명의 수녀들의 쓴 글을 꼼꼼히 살펴보다가 인상적이고 놀라운 차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오래 산 세실리아 수녀는 글을 쓸 때 '참으로 행복하다'거나 '크나큰 기쁨'처럼 활기넘치는 긍정적인 표현들을 사용했고, 일찍 죽은 마거리트 수녀에게는 그런 단어가 없다는 것이다.
활기차게 지내는 수녀집단은 90%가 85세까지 살았는데, 무미건조하게 지낸 수녀들은 85세까지 산 사람이 34%밖에 안되었다. 그리고 활기넘치게 지낸 수녀들의 54%가 94세까지 살았고, 무미건조하게 지낸 수녀들 중 94세까지 산 사람은 11%에 불과했다.
긍정적인 심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대학졸업생 141명을 연구했다. 그들의 졸업앨범 사진을 보고 활짝 웃는 사람(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짜 웃음을 웃는 사람)과 가짜 웃음을 가진 사람들을 30년 동안 연구했더니 활짝 웃는 사람이 결혼생활, 건강상태 등 삶의 행복이 더 나았다.
- 웃어보라. 활짝 웃어라. 긍정적인 마음으로 그런 감정을 표현하고 살아라!
* 예수님은 누가복음 15장에서 세리와 죄인들을 포용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세 가지 비유로 말씀해주셨고(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잃은 아들), 이어서 16장에서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통하여, 현재만을 생각하고, 돈을 탐하고, 나눠주기를 싫어하고, 물질을 선하게 사용하지 않는 자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이런 예수님의 말씀에 비웃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살아 있을 때 그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새로운 삶(믿음의 삶)을 살 것을 말씀하고 있다.
* 이 말씀은 두 가지 상황이 나온다. 하나는 이 세상 상황, 또 하나는 저 세상의 상황이다. (오늘은 이 세상 상황만 말씀드리겠다.)
1. 먼저 이 세상 상황이다.
한 부자가 있었다. 이 말씀에서 부자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가리킨다.
이 부자는
1)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다.
자색옷은 자주색으로 염색한 비싼 옷이며, 왕실에 살던 귀족의 겉옷이었다. 자색염료는 섭조개의 피로 왕족이나 부자의 옷을 염색하는데 사용되었다. 옛날에는 고위직 고관만이 자줏빛 관복을 입었다.
에스더 삼촌인 모르드개 같은 경우, 푸르고 흰 관복과 자색의 고운 모시 옷을 입고 큰 금 면류관을 쓰고 황제 앞에서 나왔다(에 8:18).
왕이 입는 것같은 자줏빛 겉옷을 걸치고, 그 안에, 고운 베옷이라는 이집트산 고운 삼베 속옷을 입었다는 것이다.
2)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였다. - 가진 것이 많다보니 날마다 잔치를 할만큼 여유있고 편하며 즐기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는 이웃을 생각지 않는 부를 추구했다.
그의 집밖에 비참한 나사로가 있었는데, 그는 배고파 죽게 되었지만, 이 부자는 그에 대해 물질로 구제하지 않고, 오직 자기 인생의 즐거움만을 추구했다.
나사로는 죄인과 이방인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① 나사로는 헌데를 앓으며 - 궤양으로 괴로움을 당했다. 즉 굶주리며 피부병(부스럼 투성이)로 고통당하며 구걸하며 살았다.
② 또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였다. - 나사로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 조각, 빵 부스러기로 굶주린 배를 채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배는 채워지지 않았다.
③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 개들은 집없이 거리를 돌아 다니는 사나운 개들,(참고 ; 구약에서도 개들은 부정적 이미지로 주로 쓰임)이 피부병으로 고통을 겪으며, 배고파 누워있는 그에게 와서 그 종기를 핥았다. 그것은 고통이 더 해진 것을 말한다.
④ 그는 그의 배고픔과 고통을 돌보아줄 친구나 식구도 없이 힘들고 고독하게 살았다. 그리고 그는 초라하게 죽었고, 그의 죽음에는 조문객도 없었고, 장례식도 없이 땅에 묻혔다.
부자는 그의 집 대문에 누워있는 병든 거지를 대문에서 쫓아내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동정하지 않았고, 그가 죽어가는 것도 몰랐으며, 굶주린 그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그의 집으로 맞아들이지도 않았다. 부자의 죽음에는 많은 장례비가 들어갔고, 화려하게 치러졌으며, 많은 조문객이 찾아왔다.
3) 부자는 저 세상을 준비하며 살지 않았다.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았으며, 세상의 현재적 즐거움에 눈이 멀어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의 이야기를 거부했으며, 그 나라를 준비하며 살지 않았다. 그 나라를 준비하며 사는 삶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에게는 자신만 있었고, 이웃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건강만 생각했지, 이웃의 건강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배고픔을 생각했지, 이웃의 배고픔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화려한 옷안으로 늙어가고 썩어져가는 연약한 몸에 대한 한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 세상의 삶이 영원한 것처럼 살다가 그는 그렇게 죽었다.
* 여기까지가 이 세상 상황이다.
그런데 나사로는 천국에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부자는 지옥에 갔다. 믿음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것 같은데....왜 나사로는 천국에 갔고, 부자는 지옥에 갔을까?
질문해보자. 이 이야기에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안나오는데...나사로는 하나님을 믿었는가? (답 : 믿었다.)
아브라함의 품은 그리스도의 품이며, 하늘 나라에 들어간 것을 말한다.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것은 하늘 나라의 상좌(높은 자리)에 앉은 것을 말한다.
아브라함은 믿는 자들의 조상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상속자로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며, 천국잔치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마 8:11,12)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東西)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것은 그가 비록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며 초라하게 살았지만 믿음으로 산 것을 의미한다.
- 그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믿음은 나의 문제를 그분께 굴려보낸다, 맡긴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참 행복, 참 진리, 참 기쁨, 참 소망을 발견하고, 주님을 의지하면서,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며, 주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기대하며 사는 것이다.
참 믿음이란 물질, 지위, 명예, 권력, 학력, 인간관계, 지적능력, 정서적 능력, 의지, 용기, 의지....모든 것들이 부족하다 해도 주님 안에서 참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보니 믿음으로 사는 것은 만족하며 감사하며 사는 것이 아닌가, 재미있게 사는 것이 아닌가, 낙관적으로 사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나사로가 참 믿음으로 살았다면.... 나사로는 질병으로 고통받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식욕이 채워지지 않고, 질병의 고통도 줄어들지 않았지만,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며 살았다. 그에게는 많은 친구도 없었겠지만 그는 주님을 친구삼아 외롭지 않게 살았다. 그는 날마다 병든 자신의 몸을 걱정하고, 끼니를 걱정하고, 그의 장례를 걱정해야 했지만 소망을 잃지 않고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설적으로 또는 충격적으로 말하면, 나사로는 자기의 헌데를 핥은 개들도 쫓아내지 않았을 수 있다. 그가 자기와 같이 배고픈 거리의 개들을 위해 줄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개들이 핥음으로 자기의 고통이 커지지만, 나사로가 줄 수 있는 것은 자기의 몸뚱아리밖에 없었던 것이다.
→ 새로운 한 해 어떻게 살 것인가?
부자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나사로처럼 살 것인가?
좀 어려워도 믿음으로 사시길 바란다!
좀 넉넉하다면 나누면서 사시길 바란다!
감사와 재미, 낙관적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