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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두 권의 책 때문이었다. 겨울 바닷바람이 칼바람일 줄 알면서도 굳이 동해로 길을 떠난 것은, 정확히 말하면 책에서 본 두 개의 문장 때문이었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한 신문배달부가 ‘새벽이 있기에 행복을 느껴요'라 했다. <포구기행>에서 곽재구는 ‘쓰디쓴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한 인간의 삶의 깊이가 결정된다' 했다. 매달 마감을 마치면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사무실을 나선 것이 그리 적지 않건만, 행복하다고까지 느낀 적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독하게 외로웠던 적 없지 않았지만 그 씁쓸함으로 내 인생의 깊이가 더해졌다는 생각도 해본 적 없다. 새벽을 행복하게,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활기차게 맞는 사람들을 보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떠오른 것은 새벽 내내 잡은 물고기를 사고 파는 이들로 분주한 어느 포구의 새벽 풍경. 또 한편으로는 정신 없이 분주한 그네들 사이를 이방인처럼 떠돌아다니며 외로움도 즐겨 볼 요량이었다. 길을 떠난 것은 12월 14일 밤 10시 30분이었다.
AM 02:40 입출항 신고소
강원도 양양군의 작은 항구 남애. 사진기자와 함께 휴대전화 알람 소리에 잠을 깼다. 어젯밤 서울을 출발해 2시가 조금 넘어 이곳에 도착했다. 약속은 2시 반, 시간이 남아 알람을 맞춰 놓고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잠을 깨 정신을 차리고 약속한 남애리 이종남 어촌계장과 통화를 하니 입출항 신고소에 있다 한다. 신고는 속초해양경찰서 남애출장소에서 한다. 출장소에 들어가니 배를 타러 나가는 이들로 좁은 사무실 안이 북적인다. 신고도 신고려니와 차디찬 바람을 피해 따스한 난로를 쬐기 위함이다. 인사를 나누고 신분을 확인해 출항 신고를 마치고 출항을 기다린다. 오는 길에 멀미약을 먹으려 했지만 잠에 취해 멀미약 먹는 것도 잊어버렸다. 전날 늦게까지 마신 술기운이 채 다 빠져나가기도 전에 배를 타게 되었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쓰린 속과 함께 무거워진 눈꺼풀도 걱정이다. 칼바람이 불고 있으니 잠은 잘래야 잘 수가 없겠지만 말이다.
AM 03:05 출항
“도루메기요.” “예?” “도루메기 잡으러 간다고요, 도루메기” 대화는 이런 식이다. 신고를 마치고 출장소에서 나오는 길에 이종남 씨는 갑자기 툭 던지듯 말을 건넸다. 도루묵을 잡으러 간다는 이야기다. 일이 힘들어지면 말은 짧아지게 마련, 말을 한마디라도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길게 말해 봐야 바닷바람이 잘라먹으니 헛일이다. 도루묵은 서민들과 친한 물고기다. ‘도루묵은 겨드랑이에 넣었다 빼도 먹을 수 있다'는 속담처럼 별 요리과정 없이도 급한 대로 약간의 불기운만 가해 금방 먹을 수 있다 한다. 또한 동해안에서는 ‘여름에 명태나 도루묵이 풍어를 이루면 농사는 흉년'이라 하는데, 이는 명태나 도루묵이 차가운 바닷물에서 살기 때문에 한류가 흐르면 농작물도 냉해를 입는 까닭이다. 도루묵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지만 도루묵을 잡으러 새벽 포구를 떠나는 일은 고되다. 이제 포구에 매인 굵은 밧줄을 풀고 뱃고동 울리며 새벽바다로 떠난다.
AM 03:15 새벽바다에서 도루묵을 건지다
동그란 포구의 대문 역할을 하는 두 개의 등대 사이로 배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바다로 나아간다. 떠나온 포구에는 노란 가로등이 배웅하듯 서있고 바다 저 멀리에는 앞서 나간 오징어잡이 배들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빛을 좋아하는 오징어들을 건져 올리고 있다. 차가운 겨울바람도 매섭지만 끊임없이 배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파도 역시 만만치 않다. 그나마 도루묵잡이는 바다 멀리까지 나가지 않아 다행이다. 원래는 200∼300m 정도 깊은 바다까지 나가야 되지만 이 즈음에는 도루묵이 알을 낳기 위해 해초를 찾아 연안으로 온다. 항구를 벗어나 10분 남짓 가 깃발을 단 부표가 나오자 이종남 씨는 배의 시동을 끈다. 전날 쳐놓았던 그물이 있는 자리다. 부표를 건져 올리고 거기에 연결된 끈을 잡아 올리자 그물이 나온다. 그물에 걸린 도루묵을 빼내지 않고 일단 그대로 감는다. 그물에서 고기를 꺼내는 작업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바다에서 꺼낸 그물 그대로 항구로 돌아가면 여러 명이 달라붙어 작업을 해 경매 시장에 내놓는다. 그물 길이가 장난이 아니다. 폭이야 2m 정도지만 감아도 감아도 끝없이 올라오는 그물에는 치어까지는 아니지만 자잘한 도루묵들이 꽤 걸려 있다. 잔챙이들을 잡기 위해 이 새벽에 이 고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물을 다 감자 배를 돌려 다른 곳으로 간다. 드디어 알을 가득 밴 도루묵 성어 를 잡으러 가는 것이다.
AM 03:40 듬성듬성한 도루묵에 깊어지는 한숨
항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바다 어디쯤에 다시 배를 세웠다. 만선(滿船)이나 풍어(豊漁)까진 아니더라도 제법 그물이 묵직해야 바다에 나선 보람이 있지 않겠는가. 헌데 이게 어이된 일인가? 그물코가 보이지 않게 빽빽하게 있어야 할 도루묵은 띄엄띄엄 한 마리씩 있고 시커먼 해초만 무성하다. 그물 감으랴 해초 털어내랴 엉킨 줄 풀랴 바쁜 이종남 씨를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정작 당사자는 표정의 변화가 별로 없다. 표정 달라진다고 도루묵이 스스로 배로 튀어오를 일도 없겠지만, 어느 정도 예상한 듯한 표정. 나중에 들으니 요즘 동해에 고기 자체가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다. 중국 어선이 북한 해역에서 쌍끌이로 싹쓸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재를 섭외하면서 금요일은 배가 안 뜬다 해서 목요일 새벽으로 잡았는데 알고 보니 금요일에는 동해안 어민들이 서울에서 시위를 할 예정이었다 한다. 중국 쌍끌이가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계속 정부에 대책을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날 오후 해양수산부 차관이 강릉에서 어민들과 만나 상경시위는 무기한 연기되었다.
AM 05:56 귀항
춥고 배고프고 졸린 가운데, 멀미 기운까지 느껴진다. 약을 미리 먹지 않았으니 누굴 탓할까. 멀미가 심하지 않을 때는 파도가 오는 것을 보고 파도타기 하는 기분으로 균형을 잡으면 재미도 있다. 하지만 멀미가 조금 심해진다 싶을 땐 흔들림이 없는 원경을 보는 것이 좋다 하여 저 멀리 있는 오징어잡이 배를 바라본다. 사진기자도 말없이 있는 것이 멀미가 심한 모양이다. 도루묵잡이가 시원찮기는 했어도 잡은 녀석들은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하기 때문에 귀항을 서두른다. 경매 시장이 8시 무렵에 서는데 그물에서 고기를 빼는 것도 꽤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남애항에 돌아온 것은 6시가 조금 못된 시간. 이제부터 손놀림이 바빠질 시간이다. 바다에서 어찌나 떨었는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갑판에 똬리를 틀고 있는 그물을 풀어내면서 그물코에 걸린 도루묵들을 빼낸다. 사람의 손은 잠시 고기를 움켜잡는 순간에 크기와 무게를 가늠해 서너 개의 대야에 나누어 고기를 담는다. 오랜 시간에 걸친 익숙함이 배어나는 손놀림. 하지만 거친 손도 추위는 어쩔 수 없는지 장작불에 손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한다. 장갑을 끼고는 있지만 그물과 도루묵에 묻은 바닷물이 손을 얼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하늘이 어스름하게 밝아 오기 시작한다.
AM 07:10 해가 뜨다
사람들은 해가 뜨는 것을 보기 위해 동해를 찾고 해가 지는 것을 보기 위해 서해를 찾는다. 허나 이번 여행에 일출은 그리 중요한 목적이 아니었다. 허나 도루묵을 다듬는 손길 너머로 떠오르는 해를 보는 것은 다른 차원이었다. 목이 뻐근할 정도로 몸을 움츠리던 기자의 어깨도 펴주었고, 뿌연 입김 내뿜을 뿐 표정이 보이지 않던 그네들의 얼굴에 빛을 비추고 있었다. 남애항에 해가 뜨고 있었다.
AM 08:05 경매 싸이렌
도루묵을 다듬는 손길만 바쁜 것이 아니다. 먼길 달려온 오징어잡이 배에선 물 밖으로 머리를 치대는 오징어들을 쏟아내고 있었고 한쪽 바닥에는 흐물한 살점을 출렁거리는 심퉁이가 널부러져 있는가 하면 고무대야 바닥에 엎드린 광어도 눈에 띈다. 지난 밤 어두운 바다 어디선가 붙잡혔을 온갖 고기들이 경매시장으로 모여든다. 경매시장이랄 것도 없다. 매끈하지도 않은 시멘트 포장바닥에 물고기와 경매인,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모이니 그곳이 곧 경매장이다. 경매는 8시 무렵 사이렌이 울리면서 시작된다. 경매사가 물고기를 부르면 살 사람들이 쪽지에 금액을 적어 건넨다. 성어는 15마리가 한 단위고 작은 것은 대야 하나가 한 단위다. 다 냈다 싶으면 경매사가 그 중 높은 금액을 적어낸 이를 정하고 그는 파는 사람에게 돈을 건네고 물건을 가져간다. 시간은 한 번에 1분 남짓. 2, 3명의 경매사가 이곳저곳을 오가며 경매를 진행하는데 대략 10시면 모든 경매가 끝난다. 그렇다고 얕볼 것은 아니다. 지금이야 중국 쌍끌이네 뭐네 해서 그렇지 않지만 한참 많이 잡힐 때는 그 두어 시간에 거래되는 금액(그러니까 도매가)이 3천만 원에 달했다고 한다.
AM 09:30 하루 일과를 마치다(?)
경매가 거의 파할 무렵, 짧고도 긴 취재는 거의 다 끝났다. 해가 뜨니 추운 것은 지나갔고 졸린 것도 우선한데 배고픔은 영 가시질 않는다. 어제 출항 신고를 했던 경찰서를 찾아가 “아침을 먹으려 하는데 남애출장소의 이름을 걸고 맛난 집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어느 집을 일러준다. 회덮밥을 시키고 뜨끈한 온돌에 엉덩이를 녹이고 있자니 회덮밥이 나오는데 회가 없다. 주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회가 없어요. 좀 기다려요” 하고 나가 버린다. 잠시 후 제법 큰 매운탕과 함께 오징어회와 가자미 세꼬시가 한 접시 가득 나온다. 뼈째로 토막낸 가자미와 갈갈이 찢긴 오징어의 마지막 가는 길이나 화사하라고 붉은 고추장 듬뿍 뿌려 뚝딱 다 먹어 치웠다. 든든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동해안 구경에 나섰다. 멀미는 가신지 오래되었고 추위와 배고픔을 얼마간 덜었더니 졸음이 쏟아진다. 눈꺼풀이 무거워 볕이 따스한 어느 방파제 앞에 차를 때문이다. 새벽부터 해가 중천에 올 때까지 한가할 틈이 없는 포구에서 인생의 깊이와 외로움 운운했던 기자 역시 앞서 말한 아가씨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네들이 일년 내내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일상을 하루 아니 반나절 체험한 것 가지고 거창하게 포장할 것도 없다. 비록 잠깐이었지만 고단한 일과가 일깨워 준 것은 단순했다. 추운 만큼 햇볕이 따스하고 졸린 만큼 잠이 달콤하며 배고픈 만큼 밥이 맛난 법이다.
횟집 주인이 밝히는 싱싱 횟감의 비밀 - 싱싱하지 않으면 회가 아니외다
동해안을 찾은 이들이 기대하는 것은 멋진 일출과 맛난 횟감일 것이다. 일출은 하늘의 뜻이니 지난 1년의 자신을 되돌아 보라. 하지만 회는 사람이 뜨는 것이니 방법이 있다. 사실 대단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보기에 싱싱한 것이 진짜 싱싱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제일 중요한 것은 눈.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선 역시 눈은 그 생선의 상태를 말해 준다. 툭 튀어나오고 맑고 투명해야 좋다. 막이 덮인 듯 뿌옇거나 탁하다면 피한다. 횟집에서 횟감을 만져볼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가능하다면 내장이 있는 부분이 탄력이 있어야 한다. 눌렀을 때 팽팽하고 단단한 느낌이 들어야 한다. 역시 물렁물렁하다면 피할 것. 이밖에 아가미는 선홍색일수록 좋고 비린내가 역하면 안 좋은 것이다. 싱싱한 녀석은 비린내마저도 신선하다. 더 중요한 것은 싱싱한 녀석을 골라 그게 ‘도마의 이슬'로 사라지는 모습을 봐야 한다는 점. 미식가가 아니라면 회의 맛만 보고 이 녀석이 아까 고른 녀석인지 맞추기는 어렵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른 다음 주인 양반이 뜰채로 떠 주방으로 가져가는 것까지는 최소한 확인해야 한다. 마지막, 삼겹살 먹듯 갖은 쌈에 쌈장 듬뿍 넣으면 광어인지 우럭인지 알 수 없다. 된장이나 쌈장만 살짝 묻혀 그대로 입에 넣는다.
도루묵에 얽힌 이야기 - 기름기 흐르면서도 담백한 겨울 진미
모처럼 용감하게 겨울바람에 맞서 도루묵을 잡으러 배를 탔으니 도루묵을 알아보자. 도루메기란 도루묵을 일컫는 강원도 사투리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짱 도루묵'에 나오는 그 도루묵이다. 옛날 선조가 임진왜란 중 함경도로 피난 갔을 때 백성들이 ‘묵'을 바쳤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혀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전쟁이 끝나고 그 맛났던 생선이 생각난 선조는 은어를 다시 구해 먹었으나 맛이 형편없어 “도로 묵이라 하라”는 ‘어명'을 내려 ‘도루묵'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한데 정사(正史)에는 선조가 함경도로 피난 갔다는 기록이 없다나. 도루묵은 억울하다. 구중궁궐에서 전국의 산해진미만 맛본 임금이라면 모르되 하루 일과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보통 사람들에게 도루묵의 맛은 제법 괜찮다. 그러니 임금에게 바쳤을 것 아닌가. 산란기의 도루묵은 살이 오를 대로 오르고 기름이 자르르 흐르면서도 생선 특유의 비린내가 거의 없어 한 번 맛본 이는 쉽게 잊지 못한다. 값도 싸서 산지에서는 20마리에 2만 원 정도 한다.
명불허전, 꼭 들를 곳! - 참소리박물관·오죽헌
동해안은 가볼 곳이 참 많다. 정동진, 경포대는 문턱이 닳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았을 터, 좀 색다른 곳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래도 한적한 포구는 빠트릴 수 없어 등대가 있는 포구에서 반나절을 머물렀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오죽헌(사진 아래). 5천 원권 지폐 뒷면에 나와 있는 율곡 이이의 출생지가 오죽헌이다. 입구부터 검은(烏) 대나무(竹)들이 늘어서 있다. 봄이나 가을에 왔다면 꽤 오랜 시간 머물렀을 툇마루가 기억에 남는다. 참소리박물관은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곳. 현재 경포대 옆에 새로운 건물을 지어 올 6월이면 이사를 갈 예정이지만 그때까지 미루고 있기엔 아까운 곳이다. 아직은 공간이 좁아 전시라기보다는 보관에 가깝다 할 정도로 진열이 되어 있다. 옛날 사람으로만 알고 있는 에디슨(1847∼1931)이 만들거나 썼던 발명품과 생활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세계에서도 몇 점 없는 희귀한 물건들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점이 놀랍다. 관장인 손성목 씨가 지난 40여 년 동안 모아온 것이다. 하지만 너무 쉽게 놀라지는 마시라. 2층에 올라가면 음악감상실이 있는데, 김시만 대리가 음악을 틀었다. 플라시도 도밍고의 ‘GRANADA'라는 노래였는데, 도밍고는 음악상식 선에서 알고 있었고 노래는 금시초문의 노래였다. 기자의 키(185cm)보다 더 큰 스피커, 그것도 나팔관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소리는 전율이었다. 차에서 듣는 CD나 이어폰으로 듣는 MP3플레이어 혹은 CDP로는 흉내는커녕 상상도 할 수 없는 소리였다. 직접 듣고 판단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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