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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드디어 엄마의 다이어리를 찾게 되는지와 그 내용이 나오네요! 그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냐는데, 그건 본인이 읽어보시길... 앞의 글 토고는 초록색으로 표시를 해놓았습니다. 굳이 귀찮으시다면 5.애쉬, 엄마의 다이어리 를 찾아서 거기서부터 읽으시믄 됩니다 (프롤로그는 뺄게요) 참고롤 이번 챕터는 좀 길어요. 무려 A4 용지 4장이나 차지를 한답니다 ~~ 댓글 마니마니 부탁드려요~~~;)
1: 애쉬, 3024년
"진 은 2691에 세워진 국가입니다. 혼란스럽고 오염된 지구의 일부만을 살려서 3019년인 지금까지 버틴 강력한 국가를 세웠습니다......"
"진에서는 최고의 교육환경을 자랑합니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견딜 수 있는, 그럼 아이들을 양성하죠. 이 아이들은 자라서 진을 더욱 강하고 아름다운 나라로 키울 것입니다. 저희의 교육 시스템은 크게 6가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스크립트의 마지막 문단을 읽는 나의 목소리는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내가 이 짓을 하고 있게 된 걸까. 더 이상 여기 있을 수가 없었다. 돌아오라고 소리치는 방송부원들을 제치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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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그날처럼, 난 달렸다. 눈을 떠보니 나는 바다를 내려다보는 절벽에 서 있었다. 유난히 큰 파도가 치자 차가운 물방울들이 내 얼굴을 때렸다. 마치 날 끌어당기는 듯 했다. 눈물이 비 오듯 흘렸다. 너무나도 미안했다. 엄마에게, 캐시에게, 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나는 살릴 수 있었지만, 나는 살리지 못했다. 아니, 살리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마치 겁쟁이처럼.
2: 애쉬, 20년 전
이름: 애슐리 버사 클림트
생년월일: 2999년 1월 4일
키: 167
몸무게: 47
‘아니야. 내가 47kg 라니.’ 입력한 몸무게가 너무 거짓말 같아서 숫자 7을 지우고 그 대신에 숫자 9를 입력했다. 내 실제 몸무게인 50이라고 입력하기에는 너무 민망했다.
‘내가 이 사이트에 가입하는데 왜 굳이 몸무게까지 입력을 해야 하지?
순간적으로 확 짜증이 났다. 그래도 이건 정상적인 진의 청소년이면 당연히 가입해야 하는 곳이다. ‘틴즈 크레이지 월드’ 라는 이 사이트는 실시간으로 최근 사건들을 올려준다. 누가 누구랑 사귀거나 헤어졌는지, 누가 어젯밤에 어디서 누구와 함께 파티를 열었고 또 언제 열 것인지, ** 선생님의 모든 비밀 등 정말 다양한 정보가 나와있다. 여기에 있는 것들이 모두 안전하고 건전한 정보들은 아니지만 말이다. 서비스 약관에 모두 동의를 하고, 가입하기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는 ‘안녕하세요, 애쉬님. TCW 에 오신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라는 문구가 떴다. 사이를 전체적으로 슥 둘러보았다. 오늘은 별다른 뉴스가 없는 듯 했다. 딱히 할 일이 없어진 나는 로그아웃 버튼을 누르고, 컴퓨터 전원을 껐다. 그리고는 화장실로 직행을 했다. 물론 화장품이 들어있는 내의 거대한 메이크업 가방을 들고 가는 것 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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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애쉬고, 15살이다. 진의 12개의 학교 중 가장 좋은 이비스에 다니고 있다. 얼굴은 그다지 눈에 띄지는 않지만 머리카락만큼은 자랑할 만 하다. 고운 적갈색인데다가 곱슬 이라서 어깨 위를 파도처럼 흘러내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염색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내 머리카락은 이랬다. 아무튼, 나는 살면서 머리 색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델링 업계를 담당하시는 분이 나를 보았고, 나는 그때부터 모델링을 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이는 7살이었다. 비록 어리지만 예쁜 옷은 물론 마스카라, 립스틱, 하이힐까지 어른들이 하는 걸 난 어린 나이에서부터 접해왔었고, 그래서 그런지 화장을 하지 않으면 아무데도 못나간다. 화장한 내 얼굴을 하도 많이 봐서 생 얼은 너무나도 못생겨 보인다. 물론 지금은 학업에 신경을 쓰느라 더 이상 모델링 관두었지만 말이다.
오늘의 잔소리는 화장 때문이었다. 사실은 일주일 내내 잔소리의 화제가 화장 이었다. 전에는 아무 말도 안 하던 엄마가 갑자기 왜 그러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나는 엄마의 이유 없는 잔소리를 그냥 받아들였다. 잔소리를 듣는 것은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는 것처럼 당연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잔소리는 그냥 일상생활의 일부였다.
나는 평생 잔소리만 듣고 살았다. 태어날 때부터 잔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자란 것 같다. 심지어 2살 때의 잔소리도 기억이 난다. 원래 인간은 5살 이전의 기억은 잘 안 난다고 하는데 그 일의 임팩트가 커서 그런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을 한다:
'가족이 나의 2번째 생일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곧 촛불을 불 시간이 되었다. 너무 설레고 급한 나머지 팔로 케이크를 탁! 치고 말았다. 무슨 케익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케익은 완전히 뭉그러졌고 접시는 산산조각이 났고, 엄마는 폭발하셨다. 그 내용은 가물가물 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생일파티가 선물 없이 끝났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에 잠긴 동안 엄마는 어느새 내 뒤에 서 있었다. 엄마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이제는 모델링 안 하는데 왜 또 화장질 이야? 애슐리, 내가 어른 돼서 하라고 했잖아! 내 말이 말 같지가 않니? 당장 지워!"
평소에는 참는 내 성격이지만 오늘은 폭발을 하고 말았다.
"내가 화장을 하던 말던 엄마가 뭔 상관이야? 내가 1시간이 걸려, 2시간이 걸려? 15분이면 되잖아! 내가 피부관리를 안 하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진짜 왜 그러는 거야?"
내가 소리를 지르자 엄마도 덩달아서 언성을 높였다.
"어머, 이게 어디다 대고 반말이야? 너 이제부터 화장 금지야. 이리 내! 으휴, 내가 너 때문에 못 살겠다 못살아. " 이 말과 함께 엄마는 보물과 같은 내 화장품 가방을 낙아 채셨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화장 금지라니. 어의가 없었다.
"에이 씨, 왜 알지도 못하면서 맨날 나한테 잔소리야! 나 때문에 못살아? 그럼 내가 없으면 되겠네!"
방으로 뛰어가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디서 엄마한테 건방지게 구느냐는 소리가 저 멀리에서 어렴풋이 들렸다. 교복, 티셔츠, 후드티, 간식......모두 캐리어 안으로 쏟아 부었다. 방으로 들어오는 엄마를 힘차게 밀치면서 나는 현관을 나갔다.
3: 애쉬, 가출
주르르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차가운 바람과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나를 맞아주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뛰었다. 여기저기에서 비행중인 볼타루스들이 뒤집히고 사람들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뛰었다. 그냥 뛰었다. 뛰지 않으면 심장이 터질 것 만 같았다. 어떻게 사람들과 장애물들을 피해갔는지는, 미스터리다. 차라리 그때 지나가던 차에 치이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차라리 그랬더라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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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보니 마야의 집 앞이었다. 마야와 나는 어릴 적 절친이다. 하지만 내가 모델링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만남은 점점 뜸해졌고, 이제는 서로 인사도 하지 않는, 남과 다를 게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는 그걸 아주 싫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모델 계에서 만난 애들과 친해지라고 하셨다.
그런 내가 왜 여기로 오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애가 지금 날 본다면 뭐라고 할까? ‘누를까 말까’ 초인종 앞에서 망설이면서 나는 마야의 집 앞에서 한참 동안 서있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마야가
창문으로 나를 보고 나더러 안 춥냐고, 쫄딱 젖었는데 들어오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그리고는 현관문을 열어 들어오라는 듯이 손을 까닥였다. 나는 어떨 결에 마야를 따라 들어갔다.
4: 애쉬, 마야네 집
"잠깐 앉아있어. 내가 핫초코 해줄게."
마야는 날 반가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지도 않았다. 마야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어 보였다. 내가 지금 혼란스러워한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마야는 "나 화 안 났어." 라고 말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야는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을뿐더러, 표현을 하더라도, 화났다, 안 화났다 로 표현을 하곤 했다. 화가 안 났다는 건 좋은 의미였다. 적어도, 우리가 멀어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자, 마셔."
마야가 따뜻한 머그잔을 내주었다. 하얀 김이 솔솔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약간 멈칫하자 마야는 "나 화 안났는데두......" 라고 하면서 입 꼬리를 살짝 올렸다. 나도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핫초코를 한 입 마셨다. 진하면서도 약간 썼다.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몇 년이 지나도 그 애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술이 위로 스윽, 올라갔다. 핫초코를 한 입 더 마셨다.
"가출한 거야?"
마야가 정적을 깼다.
나는 머그잔에 고개를 파묻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맛있는 핫초코를 마시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마야가 다시 물어왔다.
"뭐 때문에?"
"잔소리."
마야의 눈이 커졌다.
"너도 잔소리 들어?"
풋! 하고 웃음이 나오면서 긴장이 완전히 풀렸다.
마야는 삐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뭐가 그렇게 웃긴데?"
"당연히 잔소리 듣지, 그럼 안 듣냐?"
"아니, 너네 엄마 완전 착하시잖아. 들어봤자 얼마나 듣겠어."
"웃기시네. 남 앞에서만 그렇게 하는 거야. 나한테는 얼마나 잔소리하고 소리지르시는데. 착한 건 너희 엄마고. 맨날 너한테 맛있는 거 사주시고, 원하는 옷도 사주시고 하시잖아."
이번엔 마야가 웃었다.
"저기요, 뭔가 착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요, 저희 엄마는 맨날 그런 것 만 사주지, 절~때 저한테 칭찬 같은 건 안 하시거든요?"
언제 멀어졌냐는 듯이 우리는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이 정도로 행복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때, 현관문에서 띠리리리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마야의 엄마가 방으로 들어오셨다.
"마야, 공부 안하고 뭐해. 너 수학숙제는 다 했어?"
이말을 하시면서 마야의 엄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캐리어는 못 본 듯 했다.
"어어, 애쉬니?"
나는 들고 있던 머그잔을 놓고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저, 방해되신다면 지금 갈게요."
"아니야 아니야. 오랜만에 왔는데 좀 더 놀다가."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럼 잘 놀아!"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마야의 엄마는 마야에게 '너 나중에 보자. 죽을 줄 알아.' 라는 눈빛을 보냈다. 순간적으로 나는 데자뷔를 느꼈다.
"마야,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 눈빛. 두 눈을 꼭 감아도 계속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 2살때, 케이크가 망가졌을 때 잔소리한 엄마의 금색 눈빛과 똑같았다. 그냥 비슷한 게 아니라 완전히 똑같았다. 마야 엄마의 눈 색깔은 검은색이고 우리 엄마는 옅은 갈색이다. 하지만 그 순간만 큼에는 마야 엄마와 내 엄마의 눈빛이 같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분명히 둘의 눈은 금색으로 변했었다.
‘아니야, 내가 잘못 본 걸 거야. 그럴 리가 없어. 정신 차려 애쉬! 그저 네가 상상한 것뿐이야!’
심호흡을 하고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거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친하지도 않으면서 초대는 왜 한 거야? 그렇게 할 일이 없어? 놀지만 말고 제발 공부 좀 해라 공부!"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마야가 이번만 봐달라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지 않냐고, 말했다. 내가 이유 없이 찾아 온 건데, 마야는 그런 날 보호해주고 있었다.
"변명하지마! 내가 전에도 수십 번 얘기 했잖아, 계랑 놀지 말라고. 이게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몇 년만 더 있으면 너희는 친했던 안 친했던 경쟁자가 될 거야. 괜히 상처받지 말고 지금 당장 인연을 끊으란 말이야. 지금부터 1시간 줄게. 어떻게든 해결해." 이말 안에는 ‘해결하지 않으면 너는 큰일날 거야.’ 라는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안 들은 척 다시 마야의 방으로 들어갔다. 핫초코는 반도 못 마신 채로 식어버려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가 마야와 아직 친할 때, 엄마가 똑같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떻게 기억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마야엄마가 한 말과 완전히 겹쳤다.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게 말이다. 금색 눈빛, 같은 말. 순간 무서운 생각이 떠올랐지만 곧바로 난 그 생각을 버렸다.
5분 정도가 지나자 마야가 들어왔다. 눈시울이 붉어져있었다.
“저기 애쉬, 내가 할 말이 좀 있어. 우리 있잖아……”
갑자기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마야, 미안해. 정말 정말 미안해. 나 다시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 진짜로 미안해."
나는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전속력으로 집으로 뛰어갔다. 캐리어를 두고 왔다는 건 집에 도착해서야 겨우 생각이 났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캐리어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있었다.
‘있을 거야, 어딘가에는 있을 거야.’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온 나는 엄마가 잠깐 외출한 틈을 타서 엄마 방 안의 모든 서랍들을 뒤지는 중이었다. 내가 찾는 것은 엄마의 다이어리였다.
캐시랑 멀어지기 대략 3주전부터, 엄마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자녀교육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원래는 자녀가 8살이 되면 필수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지만 당시에 내가 해외에서 모델링을 하는 중이라 학교를 잠깐 휴학 중이고, 엄마는 업무 때문에 너무 바빠서 필수로 들어야 하는 이 교육을 1년 연기해 준 것이다. 엄마는 이 교육을 내가 18살, 즉 성인이 되기 직전까지 들어야 한다.
엄마가 자녀교육에서 첫 번째로 배운 것, 아니 지시 받은 것은 ‘내 아이의 일상을 기록하는 다이어리’를 쓰는 것이었다. 다이어리를 쓰면서 ‘아이의 성장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또한 자신의 감정을 성찰할 수 있다’ 라는 이유에서다. 정말 말도 안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다이어리는 엄마라는 CCTV 를 통하여 우리를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
내가 지금 그 다이어리를 찾는 이유는 잔소리 때문이었다. 엄마가 지금까지 제대로, 성실하게 써왔다면, 조금 전의 금색 눈과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은 잔소리의 미스터리를 풀 단서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포기하려는 순간, 부엌에서 전자레인지가 띠 소리를 내면서 울렸다. 엄마가 뭔가를 넣어놓고선 그냥 나가신 모양이다. 난 한숨을 쉬면서 부엌으로 터벅터벅, 걸어나갔다. 레인지 문을 열어보니 소독한 손수건이 있었다. 뜨거워진 손수건을 양손 사이로 주고 받으면서 거실에 있는 빨래대로 가서 손수건을 쫙 펴서 널었다. 식탁에는 조그마한 포스팃 하나가 자주색 노트 위에 부착이 되어 있었다. 포스팃에는 엄마의 협박이 담겨있었다.
‘애슐리, 엄마 잠깐 마트갔어. 네가 이걸 읽을지, 안 읽을지는 모르겠다만, 네가 집에 언제 오건, 들어올 때는 아주 혼날 줄 알아. 네 화장품은 내가 다 갖다 버렸어. 다시 갖고 싶으면 네 돈으로 다시 사던가, 알아서 해. 이미 늦었으니까. 너 집에 들어올 거면 맞을 각오까지 하고 들어와. 넌 아주 죽었어.’
나는 이마를 찌푸렸다.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엄마가 내 화장품을 돌려주지 않을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을 화장품을 통째로 버렸다니! 더 웃긴 거는 나에게 ‘알아서 하라는’ 말이었다. 도대체 알아서 하라는 건 무슨 말이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수라장이 된 엄마의 방은 언제 치우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은 곧바로 ‘체, 어차피 엄마한테 혼나게 생겼는데 뭐.’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나는 다이어리의 페이지들을 떨리는 손으로 넘기기 시작했다.
2984년, 2월 7일
만약 내가 딱 한가지 소원을 빌 수가 있다면, 잔소리를 그만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 것이다. 난 애쉬를 너무나도 사랑한다. 애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진의 모든 엄마들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원하는 만큼 사랑을 줄 수가 없다. 우리는 모두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고 있다.
2984년, 2월 10일
가끔은 모든걸 포기하고 죽고 싶어질 때가 있다. 답답해서, 진실을 밝히고 싶어서. 하지만 나에게는 애쉬라는 진주 같은 존재가 있다. 애쉬를 처음 배정 받았을 때는 걱정이 되었다. 이 아이가 과연 건강하게 클 수 있을까, 혹시 내가 이 아이를 망치는 것은 아닐까? 나의 여러 걱정에도 불구하고, 애쉬는 정말 예쁘게 잘 커주었다. 볼 때마다 너무 행복하고, 어떻게는 사랑을 표현해 주고 싶다. 물론 진의 교육부에서 제한한 정도로만 말이다. 비록 내 딸이지만, 내 마음대로 키울 수가 없다. ‘트리니티’ 가 우리 모두를 구속한다. ‘트리니티’는 우리의 자유를 앗아갔다. 문제는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2984년, 2월 24일
곧 유리디아가 독재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가장 강력하고, 스파이도 많다…… 음, 내가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나는 사형선고를 받을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진’에서 사형이 집행된 적은 없지만 말이다. 나는 ACK 라는 방송국에서 세부정보처리요원으로 일을 한다. 매우 스트레스 받는 직업이다. 손가락 하나만 잘못 움직여도 현실이 왜곡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음, 현실이 왜곡되기보다는 현실이 너무나도 또렷하게 보여지기 때문이라고 표현하는 게 날 것 같다. 진은 너무나도 많은 비밀들을 커튼 뒤에, 연극에 필요한 부품들처럼, 보이지 않게 꽁꽁 숨기고 있다. 나는 정보처리도 하지만 그 비밀들을 수집하기도 한다. ‘베일을 걷으면’ 이라는 파일명으로 크리에이터만 열수 있는 사이버 공간의 구석에 저장해 놓았다. 애쉬가 준비가 되면, 나는 이 파일을 보여줄 것이다. 이 파일이 애쉬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다이어리를 덮었다. 이 다이어리는 자녀교육용 다이어리가 아니었다. 엄마의 개인적인 다이어리였다. 엄마의 몇 장 되지 않는 일기는 나의 의문문들을 풀어주기는커녕 오히려 질문을 더 만들어 냈다. 유리디아와 트리니티가 무엇인지, 자녀교육에서 뭘 가르치는지, 왜 진의 엄마들이 조종을 당하고 있는 건지. 나는 이 모든 것 들을 알아내야만 했다. 그 파일을 찾아야만 했다. ‘어떻게 찾아야 하지’, ‘진짜로 진 에서 엄마가 하는 일을 알아내면 어떡하지’ ‘배정받았다는 건…….아닐 거야’.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혼잡하게 만들었다. 두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엄마와의 일이 좀 풀린 후에 생각해봐야 하나…….
역시 그랬다. 일단은 정상적인 척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척을 해야 했다. 나는 엄마의 다이어리는 처음 상태와 똑같이 돌려놓고, 엄마의 방으로 돌아가서 바닥에 널려있는 물건들을 싹 치웠다. 그런 다음 내 방으로 가서 컴퓨터를 켰다. 마야에게서 쪽지가 여럿 와 있었다.
- 너 도대체 어디간 거야? 캐리어도 두고 가고 말이야.
- 야, 대답 좀 해봐. 네 캐리어 어쩔 건데…… 가지러 올래?
- 애쉬, 왜 대답을 안 해? 무슨 일 있어???
- 야 애쉬! 애쉬!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교복이 든 내 캐리어를 어쩐담. 일단 답장부터 보냈다.
- 아, 아무것도 아니야. 갑자기 뭐가 생각나서. 캐리어는 내일 학교 가면서 찾으러 갈게. 오늘 진짜 고마웠어~^^”
기다리고 있었는지 마야에게서 곧바로 답장이 왔다.
- 에이 뭐야. 괜히 걱정했잖아. 참, 너 TCW 에 올라온 신글 봤어?
- 아니, 잠만.
인터넷 창을 클릭하고 TCW 에 접속했다. 곧바로 커다란 글씨로 제목이 떴다.
[잔소리 듣기 싫어] - 아이샤의 자살사건
훅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아이샤는 우리 학교 아이다. 같은 반도 아니고 아직 학기 초여서 말을 건 적은 없지만 꽤 괜찮은 아이였던 걸로 기억을 한다. 항상 복도에서 친구들로 둘러싸여 재잘대며 수다를 떨던 애다. 그런데 자살을 했다니. 밑으로 스크롤을 해서 댓글을 읽었다. ‘R.I.P 아이샤’ 와 같이 아이샤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이들의 댓글과 ‘누가 잔소리 때문에 자살까지 하냐’ 는 비판적인 댓글이 마구잡이로 섞여있었다. 다시 기사로 눈을 돌렸다.
▶ 이비스 스쿨의 한 학생이던 아이샤는 어제 오후 5시경에 근처 공원에서 자살을 한 체로 발견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손에 휴대폰을 쥐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엄마에게 보낸 문자에 있었습니다. “다 엄마 때문이야.” 아이샤는 평소에……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았다. 다시 마야에게 쪽지를 보냈다.
-방금 읽었어.
-너무 충격적인 것 같아. 아이샤 부모님은 어떡해 bb
-그러게……
순간적으로 마야에게 모든 일을 털어 놓고 싶었다. 금빛 눈, 엄마의 다이어리, 토씨 하나 틀지 않았던 말.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직 마야를 100% 신뢰할 수는 없었다. 지금의 우리는, 그냥 친구다. 예전의 절친이 아니다. ‘다시 절친이 되면 되지.’ 뇌가 속삭였다. ‘아니야. 이젠 너무 늦었어.’ 라고 받아 치면서도 가슴의 한 구석이 저려왔다. 나는 마야가 그리웠다. 내가 언제부터 마야를 이렇게 멀리하게 되었을까?
다시 쪽지가 하나 날아왔다. 이번엔 마야가 아니라 잰더였다.
-애쉬, 지금 접속된 거 맞지? 이번 주말에 레오하고 브리짓이랑 만나서 숙제 하기로 한 거, 기억하지?
잰더는 내가 1년 전부터 짝사랑하던 애다. 마음이 따뜻하고, 항상 주변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잰더가 난 정말 정말 좋았다. 게다가 잘생기기까지도 했다. 음, 잘생기기보단 더 귀여운 편인 것 같다. 금발머리에 녹을 듯 말듯해 보이는, 초콜릿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항상 장난기가 넘치는 눈이다. 웃으면서 나는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당연히 안 잊어버렸지. 내가 그런걸 잊어버릴 애는 아니잖니? ㅎㅎ
-뭐, 그건 그렇지 뭐, 넌 워낙 꼼꼼하니깐.
-^^;;
-참, 너 숙제 끝나고 같이 영화 보러 갈래?
숨이 멎었다. 설마.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
-둘이서? 아님 누구???
-아아, 내 친구 잭슨이 마침 영화 티켓이 4개를 구해서, 데려오고 싶은 사람 한 명 고르라고 했어. 숙제도 같이하게 된 겸, 너랑 같이 가면 좋을 것 같아서.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재빠르게 자판을 두드렸다.
-당연히 저는 YES 죠~~~ ;)
-오케이! 그럼 이번 주말, 숙제 끝나고 바로다! 잊어버리지마~^^
-난 그런거 안 잊어버린가니깐?! ︑︹︑
-앗, 내 실수!
-ㅎㅎㅎ 그럼 내일 학교에서 보자~ ㅃ2
컴퓨터 전원을 끄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두 눈을 감고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난 이번 주말에 잰더랑 영화를 보러간다! 난 이번 주말에 잰더랑 영화를 보러간다! 난 이번 주말에 잰더랑 영화를 보러간다!!!’
옆에 있는 곰 인형을 끌어안고 속삭였다.
“나, 이번 주말에 좋아하는 애랑 영화 보러 간다. 좋겠지?
띠띠띠띠띠띠.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엄마가 돌아온 것이다! 인형을 제자리에 갔다 놓고, 재빨리 옷장에 숨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이글을 끝까지 읽으신 여러분, 축하합니다! 오늘은 이벤트를 준비해 봤는데요, 바로 지금까지의 내용을 제대로 읽었는지에 대한 퀴즈입니다! 정답을 맞추시는 선착순 2분에게는 상품이 나갑니다. 인테넷을 마음껏 사용해도 좋습니다.
QUIZ! 3. 애쉬, 가출 에서는 퇴고된 부분이 조금있는데, 거기서 자동차 대신 볼타루스 가 나와요. 볼타루스가 과연 뭘까요? 제시된 3 단어와 전체 단어의 뜻을 올려주시면 됩니다. (여를 들어, 기어가는 고양이 장남감) 많이 어렵죠? MUAH HA HA HA 그럼, 화이팅!! 힌트는 라틴어 입니다!
1. 날다 (vol + @)
2. 판 (ta +@)
3. 운송수단 (@+ 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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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항공편(flight)
2.판(board)
3.차량(vehicle)
영어철자: voltarus
흥미롭네.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
진나라도 수상하고, 이런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이상하네.
날다 : volo, 날 수 있는 : volitant
판 : tabula
운송수단 : Ophis rus (아니 rus로 끝나는 운송수단이 없어서 걍 아무거나 씁니다. 맞으면 훨씬 좋겠지만..)
voltarus : 판처럼 얇고 날아가는 이동수단?
아... 수고했어 우혁아
호버보드 같은 걸까요?
@문예강 모르겠어요.... 일단 날아가는 것은 확실한데...
@문예강 오! 거의 근접했어요! 시간이 되면 한번 구상 스케치를 해보려고요 ㅎㅎㅎ
@장우혁 사실은 volante 인데 volitant 도 맞다고 칠게요. 뜻은 어차피 같으니까...ㅎㅎ
tabula 는 딩동댕!
opis rus 는 아니에요. 그래도 기회는 한번 더 있습니다. 힌트 하나 더 드릴게요:
사람들이 흔히 이용하는 운송 수단 + rus 입니다. 이 운송수단은 요즘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운송수단입니다.
@하은예나 날다 : volante
판 : tabula
운송수단 : currus(배)
영어철자 : voltarus
Voltarus : 판처럼 얇고 날아가는 배와 비슷한 이동수단(운송수단)?
@장우혁 가장 흔히 볼 수 있다고 해서 자동차인 Autocinetum인 줄;;;
@장우혁 음... 정답은 car rus 인데... 암튼 사탕 드릴께요 열심히 했으니.. 안주기도 그렇고 ㅋㅋㅋㅋㅋㅋ
@하은예나 흑... 결국 틀린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