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큰통이 뽑은 사세구 열두 편
방랑에 병들어
꿈은 시든 들판을
헤매고 돈다
-바쇼가 사망 사흘 전에 쓴 하이쿠-
소칸은 어디 갔는가 하고 누가 찾으면
잠깐 볼일이 있어 저세상에 갔다고 전해 주시오
-소칸의 마지막 시-
꽃도 못 보고 두견새도 못 기다리고 떠나네
이 세상 다음 세상 걱정하는 일 없이
-기간-
무로 돌아가네
서리와 눈
개의치 않는 곳으로
-다카기 도자쿠-
라이잔은 다만 태어난 죄로
죽는 것일 뿐
원통할 게 아무것도 없다
-라이잔-
세상에서의 부끄러운 일 쓰다가 지워 버리는 봄날의 여행
-쇼케이-
알았네
새벽에 울음 우는
저 소쩍새
-료토-
저세상이
나를 받아들일 줄
미처 몰랐네
-하진-
달도 보았으니
나는 세상에 대해
이만 말 줄임
-지요니-
그다음은
저세상에서 들을게
뻐꾸기야
-무명씨-
흰 매화꽃에
밝아져 가는 밤이
되리니
-부손-
태어나서 목욕하고
죽어서 목욕하니
종잡을 수 없음
-잇사-
출처: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류시화
주) 사세구(辭世句): 사세구는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시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