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버스 차비로 빵 먹고 3시간 걷기★
나는 초등학교는 금마국민학교를 다녔다. 그 당시 금마국민학교는(현재 금마초등학교는 본인 4학년 때 쯤에 현 외곽부지로 이사했음) 읍내 시장 중심 부근이어서 측백나무 학교 울타리 사이로 보이는 생과자 빵집이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달려가 생과자 집에서 빵을 사먹는 사람들의 입을 나뭇가지 사이로 보는 것이 눈으로 먹는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빵장수가 되겠다고 시작종이 치면 교실로 달려가면서 다짐도 했었다.
우리 마을 4KM 위쪽 용화리라는 마을에는 시골인데도 공교롭게 빵 공장이 있어 어린 나에게는 늘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때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그곳에 가면 빵을 얻어먹을 수 있다는 솔깃한 말을 듣고서도 지금까지 가보지는 못했다.(현재는 수십 년 전에 빵 공장은 폐쇄되었음. 친구들이 먹었던 것은 빵 부스러기였고 그것도 그곳에서 근무하는 우리 동네 아저씨들을 만났을 때의 경우였음)이렇게 어려서부터 줄곧 나는 빵 마니아인 셈이다.
60년대 나는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사람의 성장 곡선이 가장 가파른 것은 청소년기인 고등학교 시절로 생각이 든다. 그래서 누구나 고등학교 때에는 식욕은 일생을 두고 가장 왕성하다고 생각 되어 진다.
나는 전주 시내 외가댁에서 학교를 다녔고 시골집은 익산금마에서 약 2KM 떨어진 고개 넘어 부상천 마을이다.
효자는 아니지만 그 시절에도 토요일이면 어머니가 보고 싶어 으레 고향집을 갔다 와야 직성이 풀렸다. 전주 시외버스터미널(그 당시는 중앙 성당 부근 소방서 뒤쪽으로 추측됨)에서 금마까지는 대략 50분정도 걸린다.(비포장도로에 버스 속력도 좋지 않았음)차비를 조금 아끼는 방법은 전주에서 몇 대 안되어 듬성듬성 오는 시내버스를 겨우 비비고 타면 숨이 막힐 정도로 빽빽하다. 이때 일부러 버스운전기사가 출입문 쪽과 안쪽 승객을 골고루 분산시키기 위해 버스가 멈칫 덜커덩 하면 순식간에 버스 안은 느슨해진다. 조촌동에 있었던 동산 우체국 앞 종점에서 하차하여 금마 경유 논산가는 시외버스로 환승하는 것이 가장 차비절약의 방법이었다.
시내버스 종점에서 하차하면 많은 학생들로 우글거렸고 길 건너편 양지바른 좁은 길목 어귀에는 빵집이 하얀 김을 내품어 대며 지나가는 행인들을 유혹하고 밀가루로 반죽하여 만든 찐빵이 너무 익어 소톱만큼 벌어진 틈새로 흘러나온 앙꼬(팥소)를 보는 순간 별의별 수단을 동원해서 먹고 싶은 충동을 자아내게 한다.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겨우 차비 외엔 여유가 없다. 순간 머릿속에는 빵도 사먹고 시골집도 갈 수 있는 방정식 문제풀이가 시작된다.
해답은 우선 차비로 빵을 사먹고 걸어서 가는 방법이다. 빵 값을 차비로 치르고 게 눈 감추듯 빵을 먹고 걷기 시작했다.
가을걷이를 한 늦가을이라 밤에는 제법 쌀쌀했다. 집에 빨리 갈 욕심으로 논두렁 밭두렁을 가로 질러 가니 신발과 바지 가랑이는 온갖 흙투성이가 되었다.
빵을 먹지 않았으면 벌써 고향집에 도착하여 어머니가 끊여준 토란탕이랑 된장찌개를 먹고 있을 시간이다. 한참을 바삐 걸으니 이마에선 땀이 흐른다. 음력 보름경이라 달은 환하게 비춰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는데 한참 걷다가 달을 보니 달도 나를 따라 걷고 있었고 내가 고랑이나 두렁을 건너뛰면 따라 뛰었고 빨리 뛰면 빨리 뛰고 느리게 뛰면 느리게 뛰고 뛰다가 멈칫하고 바라보면 시침을 떼고 그대로 서있다. 조금 쉬면 달도 쉬는 느낌이어서 좋기도 하고 나를 흉내 내는 것이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그럭저럭 3시간 정도 걸어서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대문 밖에서 서성이시면서 아들을 그때까지 기다리고 계셨다. 순간 아들의 주제를 보니 아랫도리는 흙투성이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땀으로 미역을 감은 아들 모습에 아들의 손을 잡으시고 ‘어쩐 일이냐! 응, 어쩐 일여’를 연거푸 하시면서 어려운 곳을 헤쳐 나온 아들이 너무 반가우신지 나를 쓰다듬으신다. 어머니의 심각하고 걱정스런 모습에 나는 웃으면서 ‘별일 아녀요’를 하면서 방에 들어가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어느새 어머님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히셨다. 뱃속에 들어간 빵은 온데 간데 없고 허기가 들어 평소에 먹던 밥을 3배나 더 먹은 것 같다.
지금도 팥 찐빵이 인이 박혀있는지 가끔 빵집에서 빵을 먹으면서 유리창에 서린 빵 솥이 뿜어 생긴 김을 닦으면서 3시간 동안 나를 따라 다녔던 달님과 후회 반 만족 반으로 들길을 걸어가는 소년을 그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