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별미 과메기의 본거지 , 포항 죽도시장
포항의 죽도시장은 동해안 최대 규모의 수산물 시장이다.
개복치와 고래 , 상어부터 시작해 해삼과 멍게 , 문어 , 물가자미 , 열기 등 숱한 바닷것들로 눈이 흐벅지다 .
날선 바람에 손이 시려도 , 고인 물에 바짓자락이 젖어도 귓가에 이명 같은 파도소리가 떠날 새 없다 .
날이 유독 차가워 요사이 포항 근해에서는 꽁치가
나지 않는다더니 , 고무 앞치마를 두른 젊은 상인 하나가
나무 궤짝을 열자마자 바닥에 푸른 꽁치들이 쏟아진다 .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금세 오글오글 모여든다 .
아주 드물게 들어온 근해의 꽁치란다 .
투명하게 푸른 꽁치의 등이 날렵하다 .
마음 같아서는 그냥 손에 들고 한입 베어물고 싶다 .
열 마리에 오천 원 . 검은 비닐봉지에 주워담는
상인의 손이 재바르다 .
말 한마디 걸어볼 새가 없다 .
꽁꽁 언 남태평양산 꽁치들은 대번 기가 죽는다 .
원양 꽁치의 가격은 열 마리 사천 원 .
천 원 차이가 나지만 근해의 꽁치가 몇 상자째 동이
나도록 원양 꽁치는 소복이 쌓여만 있다 .
근해 꽁치가 드물어 원양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그래서 조금 아쉽다 .
시장 골목 몇 개를 지나도록 과메기의 행렬은 끝이 없다 . 과메기 손질에 익숙한 포항 토박이들이야 짚으로 엮어
통째 말린 스무 마리짜리 두름을 사지만 타지에서 온
손님들은 상인들이 일일이 손으로 껍질을 벗겨 말끔하게
손질한 과메기를 집는다 .
그래서 가게의 점원들은 저마다 하는 일이 나누어져
있다 .
좌판 한쪽에 앉아 쉼 없이 과메기의 껍질을 벗기는 일과
포장된 과메기를 아이스박스에 넣어 택배 포장을 하는 일
이 그것이다 .
손질이 안 된 스무 마리 한 두름은 칠천 원이지만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완벽하게 손질된 과메기는 열네 마리가
만 원이다 .
열네 마리라고는 해도 반으로 베어져 있으니 스물여덟
쪽이다 . 서너 사람이 먹어도 충분할 양이다 .
서울 , 대구 , 전주 , 제주까지 하루에도 수백 팩이 택배
를 통해 전국으로 나간다 .
희한한 것은 , 죽도시장의
상인들 대부분은 인터넷을 통한 배달 시스템을 전혀
구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
그들의 유일한 홍보 수단은 그저 , 입소문이다 .
한 번 먹어본 사람들이 다시 주문을 하고 ,
친구에게 소개를 해주고 ,
회식 때 단체 주문을 하는 식이란 거다 .
택배 상자 안에는 물미역과 배추 , 쪽파 ,
김 , 마늘 , 초고추장까지 모두 들어간다 .
그저 상자를 열고 먹기만 하면 된다 .
하물며 나무젓가락까지 들어가니 말이다 .
“우리가 인터넷을 우예 아노 ? 묵어보고 맛있으이까
사람들이 전화해서 보내달라 카는기지 . 그라믄 또 우리는
고맙고 .”
하기는 , 맛보다 더 빠른 홍보 수단이 뭐가 있겠는가 .
옆에서는 물미역을 팔던 아주머니 한 분이 이미 돈을
치르고 가는 손님을 다시 불러 세운다 .
손님이 뒤돌아보자 미역 한 무더기를 손에 말아 내민다 .
“서울서 왔지예 ? 그라믄 쪼매 더 가 가소 .”
시장 구경만으로도 애틋하게 배가 부르다 .
죽도시장의 붉은 포장 너머로 너울너울 , 해가 넘어간다 .
겨울이 되면 포항 시내 곳곳의 주점들은 메뉴판이
따로 필요 없다 . 어디서건 과메기로 통한다 .
가격도 어디나 같다 . 한 접시 만삼천 원 .
십 년 전 가격이나 별 차이가 없다 .
처음엔 비릴 것 같아 젓가락을 쉽게 못 내밀던
이들도 물미역에 돌돌 말아 한 점 먹고 나면
이내 손놀림이 빨라진다 .
그 맛에 익숙하지 않은 손님들을 위해 과메기
살을 잘게 찢어 야채와 함께 버무려 놓은 과메기
무침 등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
아무래도 껍질을 잘 벗겨낸 투실한 과메기 회가 단연
일품이다 . 과메기가 사랑받는 건 , 해 바뀌는 겨울이
제철이라는 것도 한몫 한다 .
오랜만에 만난 벗들이 기울이는 술잔에 과메기 집의 밤은 길고도 길다 . 추억과 정담이 과메기 속살과 어우러져 , 입 안에서 바람 스러지는 소리가 들릴 듯하다 .
취재 및 글 김서령| 포항에서 태어나 바다를 벗하며 자랐다. 200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2005년 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상, 올해 첫 소설집을 낼 예정이다.
취재 및 사진 이영균 | 대학에서 사진학을 전공하고 두어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잡지사 사진기자 등을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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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경주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집으로 가는 중에
선장님께서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기가 아쉽다며
포항에 바람쉬러 가자고 한 곳이 죽도시장이었습니다.
우연히 죽도시장에 대한 글이 눈에뛰어 옮겨봅니다.
선장님 그 날 점심 잘 먹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