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엔진은 두 가지의 상반된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는 차가움이고, 나머지 하나는 뜨거움이다. 이렇게 두 가지의 상반된 속성을 갖는 이유는 금속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증기기관으로부터 시작된 엔진의 역사이래, 인류는 항상 금속으로 엔진을 만들어 왔다. 최근에는 재료역학의 발달로 인해, 금속 외의 다른 합성 재료를 사용하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지구상의 모든 엔진의 주류는 금속이다. 강철과 알루미늄 등의 금속은 엔진이 잠에서 깨어난 시점부터 가동 시간 내내 발생하는 고열과 마찰 등의 모든 부담을 감당할 수 있으며, 대량생산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자동차의 심장, 엔진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본 기사에서 다룰 수많은 자동차의 엔진들 중 그 스물 아홉 번째 이야기는 르노에서 처음 만들어진 소형 디젤 엔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 엔진은 막강한 장거리 연비로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 뻗어 있다. 이 엔진의 이름은 K9K dCi 엔진이다.
연비대장 QM3와 르노 클리오의 심장
르노 K9K dCi 엔진은 프랑스 르노(Renault) 그룹의 K형(K-Type) 엔진의 하위 분류로, 프랑스 르노와 일본 닛산자동차의 공동 개발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 엔진은 2001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엔진으로, 운전의 편안함(Driving Comfort)과 운전의 즐거움(Fun to Drive)을 양립하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한 변화를 거쳐 지금도 사용되고 있으며, 현재 차세대 소형 디젤 엔진인 R형(R-type) 엔진과 공존을 이루고 있다.
르노 K9K dCi 엔진은 1.5리터(1,461cc)의 배기량을 갖는 직렬 4기통 디젤 터보 엔진이다. 엔진명의 dCi는 Diesel Common-rail Injection의 약자다. 실런더 보어(내경)는 76.0mm, 피스톤 스트로크(행정 길이)는 80.5mm의 롱스트로크 형상을 갖는다. 밸브트레인은 타이밍 벨트로 구동되는 실린더 당 2밸브의 SOHC(Single OverHead Cam) 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압축비는 15.2:1에 달한다. 터보차저는 보그워너(Borg-Warner)에서 공급한 제품을 사용하며, 커먼레일 연료 분사 기구는 델파이(Delphi)의 것을 사용 중이다.
이 엔진에는 가변용량 오일펌프와 함께, 저압 및 고압으로 동작하는 EGR(배기가스 재순환장치), 디젤입자상 물질 필터(DPF), 능동형 온도 관리(Active Thermal Management) 개념이 적용되어 있다. 또한 변속기에 따라 정차 시 시동을 끌 수 있는 Stop/Start 기능을 지원하며, 신형의 고정밀 인젝터를 통해 연소 효율을 최적화하도록 만들어졌다.
이 엔진은 동력 성능에 따라 크게 세 가지 버전으로 나뉜다. 유로-III 사양에서는 각각 65마력, 80마력, 100마력 버전이 존재했다. 유로-IV 사양부터는 각각 70마력, 85마력, 106마력으로 출력 증강이 이루어졌으며, 유로-V 이후부터는 75마력, 90마력, 110마력으로 각각 업그레이드되었다.
이들 중 대한민국에 가장 잘 알려진 사양의 엔진은 유로-V 이후의 중간급 버전인 90마력 사양이라 할 수 있다. 이 엔진은 대한민국 소형 SUV 시장의 문을 열기 시작한 르노삼성의 QM3에 탑재되면서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이 엔진을 실은 QM3는 유로-VI 도입 이전이었던 2013년, 도심 17.0km/l, 고속도로 20.6km/l, 복합 18.5km/l라는 ‘끝판왕’급 연비를 선보였다. 당시 국내 양산차 제조사의 이름으로 출시된 차종 중에서 가장 우수한 연비였다. 이 막강한 연비를 등에 업은 QM3는 2013년, 사전 계약 개시 7분 만에 1,000대의 예판 물량을 모두 소진하는 기염을 토했다.
유로-VI 사양이 적용되고 있는 현재, 르노삼성 QM3의 공인연비는 도심 16.3km/l, 고속도로 18.6km/l, 복합 17.3km/l로, 유로-V 시절에 비해 다소 저하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근접한 연비를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5년여의 시간이 지난 2018년, 르노삼성이 르노의 B세그먼트 해치백 ‘르노 클리오(Renault Clio)’를 본격 출시하면서 대한민국에 르노 K9K dCi 엔진을 실은 차종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되었다. 르노삼성이 판매하는 르노 클리오는 K9K dCi 엔진을 실은 사양만 존재하며, 도심 16.8km/l, 고속도로 18.9km/l, 복합 17.7km/l로 그 QM3보다도 우수한 연비와 함께 정통 유러피언 해치백의 테이스트를 무기로 출시 후 10영업일 만에 756대를 판매하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국내에 출시된 차종으로 한정 짓지 않는다면, 르노 K9K dCi 엔진을 사용하는 차종은 상당히 많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차종만 추려도 10종은 넘는다. 르노 클리오와 QM3를 제외하고 현재 90마력 사양의 K9K 엔진을 사용하는 차종으로는 닛산의 소형차 노트(Note)와 마이크라(Micra)를 들 수 있다.
또한 동구권과 제3세계 등의 신흥 시장에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첨병으로 활약하고 있는 ‘다치아(Dacia)’ 브랜드의 로간(Logan)과 산데로(Sandero) 등에 이 엔진이 사용되고 있다. 르노 브랜드 내에서도 신흥 시장용으로 생산되는 르노 플루언스(Renault Fluence, 르노삼성 SM3)에도 사용되고 있다.
110마력 사양의 경우에는 대체로 상기한 차종들보다 한 단계 위의 차급에서 사용된다. 110마력의 K9K dCi 엔진을 사용하는 르노 차종으로는 C세그먼트 해치백인 르노 메간(Mégane), 컴팩트 크로스오버 모델인 르노 카자르(Kadjar), MPV 차종인 르노 세닉(Scénic) 등이 있다. 같은 얼라이언스 내부에서는 닛산 캐시카이(Qashqai) 등이 이 엔진을 사용했다. 또한 2016년에는 르노 세닉을 위한 마일드 하이브리드 버전도 등장했다.
이 사양의 엔진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외부에서도 사용되었다. 현재 메르세데스-벤츠의 컴팩트 모델에 ‘160d’ 내지는 ‘180d’의 등급으로 사용되는 1.5리터 디젤엔진이 이 엔진이다. A클래스와 컴팩트 MPV B클래스, 그리고 컴팩트 4도어 쿠페 모델인 CLA클래스 등에 사용된다. 2018년 현재, 이 엔진을 사용한 메르세데스-벤츠 모델들은 현재 국내에 수입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