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이 웃는다
익숙한 기억과 관습의 앙금 속에서 우리가 떠올리는 장승의 얼굴은 대개 험상궂다. 부리부리하게 부릅뜬 눈, 기괴하게 틀어진 입방아, 그리고 금방이라도 무엇인가를 물어뜯을 듯 툭 튀어나온 송곳니. 마을의 어귀나 길목에 서서 모진 비바람을 맞으며 서 있던 그들은, 외부로부터 침입하는 역병과 악귀를 몰아내기 위해 스스로를 가장 무서운 형상으로 위장해야만 했던 우리의 서글픈 자화상이자 방어막이었다. 장승의 분노한 표정은 역설적이게도 척박한 자연과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떨고 있던 연약한 인간들의 두려움이 투영된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 눈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저 나무 조각들은 전통적인 장승의 문법을 유쾌하게 배반하고 있다. 껍질을 벗고 속살을 드러낸 나무 기둥 위로 새겨진 것은 분노나 위협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터뜨리는 무장해제의 파안대소(破顔大笑)다. 반달처럼 둥글게 휘어진 눈매와 가지런한 치아를 훤히 드러내며 활짝 웃는 입 모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입꼬리를 올라가게 만드는 강렬한 전염성을 지니고 있다. 나는 이 조그만 웃는 장승들 앞에서, 나무에 새겨진 그 해학적인 웃음이 단순한 장식을 넘어 삶과 존재를 관통하는 하나의 철학적 선언으로 다가옴을 느낀다.
과거의 장승이 '너는 이 선을 넘지 마라'고 경고하는 배타적인 경계표였다면, 웃는 장승들은 '누구든 이리 와서 함께 웃자'고 손짓하는 포용의 상징이다. 두려움은 대상을 타자화하고 밀어내지만, 웃음은 대상을 내 안으로 끌어당겨 동화시킨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그의 저서 『웃음』에서, 웃음이란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것이며 인간 사이의 경직성을 깨뜨리고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기제라고 말한 바 있다.
장승이 웃는다는 것은 곧 경계의 허물어짐을 의미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 타인을 위협할 필요가 없다는, 혹은 삶의 고단함과 외부의 위협마저도 유머와 여유로 받아넘길 수 있다는 내면의 단단함이 저 웃음 속에 깃들어 있다. 뾰족하고 날 선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는 현대인들에게, 무방비 상태로 잇몸을 드러내며 웃는 저 장승의 얼굴은 진정한 수호(守護)란 타자에 대한 적대가 아니라 타자를 향한 열린 마음과 긍정에서 비롯된다는 깊은 깨달음을 던져준다.
나무라는 물성(物性)에 주목해 보자. 이 장승들은 매끄럽게 가공된 플라스틱이나 차가운 금속이 아니라, 한때 흙에 뿌리를 박고 사계절의 풍파를 견뎌냈을 나무로 만들어졌다. 생명을 다하고 베어진 나무는 조각가의 칼끝에 자신의 몸을 내어준다. 살갗이 깎여나가고 파이는 고통스러운 과정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환한 웃음을 잉태하는 해산의 고통과 같다.
나무의 옹이와 거친 결, 갈라진 틈새들은 장승의 주름이 되고 자연스러운 표정이 된다. 이는 인간의 삶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 살아가며 겪는 수많은 상처와 시련, 풍화의 흔적들을 억지로 감추거나 분노로 표출하는 대신, 그것을 둥글게 깎아내어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태도. 니체가 말한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 즉 자신의 삶에 주어지는 고통과 상실마저도 긍정하고 사랑하려는 초인적 의지가 저 뭉툭한 나무 조각들의 웃음 속에 조용히 깃들어 있는 것이다.
다섯 개의 크고 작은 장승들이 각기 다른 크기의 입을 벌리고 환희에 차 있다. 어떤 녀석은 눈을 찡긋거리며 장난스럽게 웃고, 어떤 녀석은 하늘을 우러르며 호탕하게 웃는다. 조각된 나무 받침대 위에 굳건히 발을 딛고 선 그들은, 소리 없는 웃음으로 공간을 가득 채운다.
이 웃는 장승들은 바쁘고 불안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언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무엇을 두려워하여 매일 얼굴에 힘을 주고 살아가는가?" "가면을 벗고 이토록 시원하게 웃어본 적이 언제인가?"
과거의 마을 어귀에 서 있던 험악한 장승이 물리적인 공간을 지키는 문지기였다면, 거실 한편에 놓인 이 웃는 장승들은 우리 내면의 평화를 지키는 마음의 문지기다. 세상의 온갖 모순과 삶의 무거움 앞에서도, 결코 웃음이라는 가장 인간적이고도 신성한 권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다짐. 장승이 웃는다.
베어지고 깎인 나무가, 죽음을 넘어 영원히 시들지 않는 웃음을 피워내고 있다. 그 곁에 선 우리의 굳은 얼굴에도, 어느새 작고 따스한 웃음의 파문이 번져간다. 삶은 결국, 함께 웃어넘겨야 할 거대한 농담이자 축제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