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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it your way to the Lord, trust also in Him, and He shall bring it to pass (Psalm 37:5). |
■ For now we struggle with our “eyesight.” There’s a tension between enjoying all that God has given us in this life, yet still believing what theologian Jonathan Edwards said about our future: “To go to heaven, fully to enjoy God, is infinitely better than the most pleasant accommodations here.” Seeing Him will bring perfect vision.
지금 우리는 “시력” 문제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삶에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즐기면서도, 신학자 요나단 에드워드가 우리의 미래에 대해 “장래 하나님과 온전히 즐기게 될 하늘나라는 이 세상 최고의 안락시설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 좋다.”고 말한 것을 믿는 것 사이에는 계속 팽팽한 대립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야 완전한 시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 Lord, we know that our life on this earth is but
a moment compared to eternity. Help us to
enjoy the time we’ve been given, and use us
to tell of Your love and goodness until that day
when we see You.
주님,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은 영원과 비교할 때
한 순간일 뿐임을 압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즐거워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주님을
만날 그 날까지 주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전하도록 우리를 사용하여 주소서
■ [안달하고 안절부절못하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긋나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뒤집어지고 혼돈과 고통 속에서 살게 될 때에도 “주 안에 거하고 인내하며 주를 기다려라”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까?] Fretting means getting ourselves “out of joint” mentally or spiritually. It is one thing to say, “don not fret,” but something very different to have such a nature that you find yourself unable to fret. It’s easy to say, “Rest in the Lord, and wait patiently for Him” (37“7) until our own little world is turned upside down and we are forced to live in confusion and agony like so many other people.
■ [이러한 상황에서 “주 안에 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하지 못할 것입니다. 평화로운 때나 환란과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안절부절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항상 주 안에 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하는 것은 어떤 외적 상황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의 맺고 있는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Is it possible to “rest in the Lord” then? If this “Do not” doesn’t work there, then it will not work anywhere. This “Don not” must work during our days of difficulty and uncertainty, as well as our peaceful days, or it will never work for anyone else. Resting in the Lord is not dependent on your external circumstances at all, but on your relationship with God Himself.
■ [염려하는 것은 죄를 낳습니다. 근심 걱정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일을 결정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죄악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뜻을 행하시려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셨으며, 전혀 불안과 조바심이 없었습니다.] Worrying always results in sin. We tend to think that a little anxiety and worry are simply an indication of how wise we really are, yet it is actually a much better indication of just how wicked we are. Fretting rises from our determination to have our own way. Our Lord never worried and was never anxious, because His purpose was never to accomplish His own plans but to fulfill God’s plans. Fretting is wickedness for a child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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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상황은 하나님도 푸실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의 걱정과 의견을 내던지고 하나님의 그늘 아래에 머물며, 의도적으로 당신은 하나님을 믿으며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고 기도하세요. 우리의 조바심이나 근심 걱정은 우리가 하나님 없이 기획할 때 생깁니다.] Have you been propping up that foolish soul of your with the idea that your circumstances are too much for God to handle? Set all your opinions and speculations aside and “abide under the shadow of the Almighty” (Psalm 91:1). Deliberately tell God that you will not fret about whatever concerns you. All our fretting and worrying is caused by planning without God.
(오늘의 idiom)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 the pot calling the kettle black = an expression to remind people who criticize others that they may have the same or more faults. “Carol’s comments about Martha being messy is case of the pot calling the kettle black.”
'have a thing going'은 '애정을 느끼거나(have a romance) 애정 행위를 하다(have a love affair)'는 의미입니다. 'have a thing going (with someone)'의 형태로 주로 사용됩니다. 이 표현과 형태는 비슷하지만 의미는 다른 표현들이 있습니다. 먼저 'have a thing about something'인데, 이 관용 어구는 '(집착할 정도로) 생각이 온통 ~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유니폼을 입은 여성들에게서 묘한 매력을 느낀다면 “He has a thing about ladies in uniforms.(그는 유니폼을 입은 여성들에게 끌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have a good thing going'이라는 관용 어구가 있는데, '일이 잘 풀린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새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데 사업이 잘된다면 “I have a good thing going with this new franchise.(이 새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면서 일이 술술 풀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애정 관계 등이 잘 되고 있을 때에도 이 표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on the contrary' 또는 ‘to the contrary’를 우리말로 해석하면 '반대로'의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I'm not sick. On the contrary, I'm very healthy.”처럼 “나는 아프지 않아요. 그와는 반대로 아주 건강해요.”라는 반대되는 앞뒤 내용을 연결해 줍니다.
'in contrast'는 우리말로 '대조적으로'라는 의미로, 반대의 의미는 가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In Seoul, you don’t need a car. In contrast, you need a car to go anywhere in Los Angeles.”와 같이 서울에서는 차가 필요 없지만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차가 필요하다는 것은 대조적이지만 반대의 의미를 가지지는 않습니다.“
contrary : n)정반대/역, a)반대의/상반되는1) on the contrary : 이에 반하여,그러하기는 커녕2) to the contrary : 그와 반대로3) by contraries : 정반대로
contrast : n)대조/대비1) by contrast : 대조/대비적으로2) in contrast with : ~와 대조를 이루어/~와는 현저하게 다르게
■ ㆍ낮잠, 시에스타 - (daytime) siesta, nap, midday snooze
미국 하버드대 보건 대학원과 그리스 아테네대 의과 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 논문을 보면,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 한 번에 30분 이상 규칙적으로 낮잠을 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장병으로 사망할 위험이 37%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낮잠이 스트레스를 없애 심장 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스트레스를 없애는지는 분명치 않다고 한다. 하지만 낮잠으로 스트레스가 감소하면서 심장병을 유발하는 흡연과 과식 등을 줄이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한다. 여성에게도 이와 비슷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조사 기간 심장병으로 사망한 여성의 수가 적어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고 한다.
이런 연구 결과 없이도, 전통적으로 낮잠을 즐기는 나라들도 있다. 스페인과 남미에서는 보통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에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낮잠을 즐기는데, 이를 시에스타(siesta)라 한다. 1936~1939년 스페인 내전 기간 중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밤낮으로 두 개 이상의 직업을 가졌던 데에서 비롯됐다고 하는데, 40도를 웃도는 무더운 지중해의 여름 날씨도 한 몫을 거들었다고 한다. 원래는 30분 정도의 짧은 휴식 시간이었지만, 남미 각 나라에 정착하면서 차츰 시간이 길어졌다고 한다.
[예문 1] A siesta is a short nap taken in the early afternoon. 시에스타는 이른 오후에 잠시 즐기는 낮잠을 말한다.
[예문 2] She enjoyed living in London, but she missed the languor of a siesta on a hot summer afternoon. 그녀는 런던에 사는 것이 즐거웠지만, 더운 여름 오후 시에스타(낮잠 시간)의 나른함을 그리워했다.
직원들의 복지 차원에서 시에스타를 도입하는 기업들도 생겨났는데, 수면실(nap room)을 만들고 가죽 소파와 알람 시계 등을 두어 잠깐의 낮잠을 즐길 수 있게 했다고 한다. 한 기업에 다니는 심장병 질환자는 회사에서 마련해 준 수면실에서 의사의 충고대로 30분 정도의 시에스타를 통해 스트레스를 없앤다고 한다.
만약, 하버드 의대의 의사가 건강을 염려하는 당신에게 “My advice is if you can nap, do it. If you have a sofa in your office, if you can relax, do it.(제 충고를 말씀 드리면, 낮잠을 잘 수 있으시면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사무실에 소파가 있고 쉴 수 있다면 그렇게 하십시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건강을 위해 낮잠을 잘 것인가, 아니면 건강을 해치면서도 윗사람 눈치를 볼 것인가?
■ Freedom—the very thing we celebrate with fireworks—can also be used for good and evil. As believers in Christ, we are free from the restrictive Mosaic law, but the Bible warns us not to use our spiritual freedom for selfish purposes: “Do not use liberty as an opportunity for the flesh, but through love serve one another” (Gal. 5:13).
우리가 불꽃놀이로 경축하는 바로 이 자유도 좋게 사용될 수도, 나쁘게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제약이 많은 모세의 율법으로부터 자유롭지만, 성경은 우리의 영적 자유를 이기적인 목적으로 남용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갈라디아서 5:13).
■ Not everyone has political and religious freedom, but all believers in Christ have spiritual freedom. We must not use it as a weapon to impose our will on others but to display the glory of God’s will.
모든 사람이 다 정치적, 종교적 자유를 누리지는 못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영적인 자유를 누립니다. 우리는 이 자유를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하지 말고, 영화로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 They can shut down major cities while creating beautiful landscapes of snow-laden trees whose pictures decorate calendars and become the subject of artwork. They provide pleasure on the ski slopes and joy for children as they make snowmen and ammunition for snowball fights. All because they stick together.
눈 덮인 나무들이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달력을 장식하기도 하고 예술사진의 주제가 되기도 하지만, 또한 주요 도시를 마비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스키장에서의 즐거움을 제공해주고,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하는 아이들에게 기쁨을 제공해줍니다. 이 모든 것이 눈이 뭉쳐지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 So it is with those of us who follow Christ. Each of us has been uniquely gifted with the capacity to make a contribution to the work of Christ. We were never intended to live in isolation but to work together to become a great force for God and the advance of His cause. As Paul reminds us, the body of Christ “is not one member but many” (1 Cor. 12:14). All of us are to use our gifts to serve one another so that together we can make a significant difference in our world.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각자는 그리스도의 일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고유하게 갖고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결코 고립해서 살기 보다는, 하나님을 위해 큰 힘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기 위해 함께 일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바울이 상기시켜 주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고린도전서 12: 14)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 세상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도록 우리 모두는 서로를 섬기는 일에 우리의 재능을 사용해야 합니다.
■ Put your giftedness to work, joyfully cooperate with the giftedness of those around you, and let the wind of the Spirit use you for His glory!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을 활용하고, 주위의 재능 있는 사람들과 기꺼이 힘을 합치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바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당신을 사용하도록 하십시오!
■ Lord, teach us to use our strengths in cooperation
with the strengths of others. Help us to serve
as one so that we might know the joy of
the power of our togetherness for Your name’s
sake and the advance of Your kingdom.
주님, 우리의 힘을 다른 사람들의 힘과 합쳐
사용하도록 가르쳐주소서.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나라의 진전을 위해 단결된 힘의 기쁨을
알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로 섬길 수 있게
도와주소서.
■ We can accomplish more together
than we can alone.
함께 하면 혼자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
■ [그리스도의 자녀들은 한 사람 한 사람 주님이 구원하시는 것을 믿으며 이러한 깊이 있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에 보내시든지 우리의 삶을 지켜 보호하실 것입니다.] God promised Jeremiah that He would deliver him personally--“...your life shall be as a prize to you...”(Jeremiah 39:18). That is all God promises His children. Wherever God sends us, He will guard our lives.
■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깊은 믿음 속에 있지 않으면 우리는 공포, 두통,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개별적으로 구원하신다는 확고한 믿을을 가지고 있는 증거입니다.]
Our personal property and possessions are to be a matter of indifference to us, and our hold on these things should be very loose. If this is not the case, we will have panic, heartache, and distress. Having proper outlook is evidence of the deeply rooted belief in the overshadowing of God’s personal deliverance.
■ [하나님의 사람들이 주님이 맡겨 주신 일을 할 때에는 자신을 돌 볼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이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네가 정의롭게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정의롭게 대우받는 것을 구하는 것은 당신이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당신은 자기 연민의 불만족에 휘둘리게 됩니다. 그러나 당신이 남들을 정의롭게 대하도록 하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The Sermon on the Mount indicates that when we are on a mission for Jesus Christ, there is no time to stand up for ourselves. Jesus says, in effect, “Don’t worry about whether or not you are being treated justly.” Looking for justice is actually a sign that we have been diverted from our devotion to Him. Never look for justice in this world, but never cease to give it. If we look for justice, we will only begin to complain and to indulge ourselves in the discontent of self-pity, as if to say, “Why should I be treated like this?”
■ [주님을 의지하고 우리가 헌신하고 있다는 우리 자신이 정의롭게 대우를 받든지 그렇지 않든지 신경을 쓰지 않게 됩니다. 사회적 정의가 당신에게 구현되기를 바라는 것은 상식이라는 당신의 생각을 주님의 보좌에 앉히고 주의 이름을 그 위에 붙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마음과 몸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If we are devoted to Jesus Christ, we have nothing to do with what we encounter, whether it is just or unjust. In essence, Jesus says, “Continue steadily on with what I have told you to do, and I will guard your life. If you try to guard it yourself, you remove yourself from My deliverance.” Even the most devout among us become atheistic in this regard—we do not believe Him. We put our common sense on the throne and then attach God’s name to it. We do lean to our own understanding, instead of trusting God with all our hearts (see Proverbs 3:5-6).
(오늘의 idiom)
■ you could hear a pin drop = absolute silence. “It’s so quiet in the room you could hear a pin drop.”
■ ㆍ햄버거 - hamburger
ㆍ햄버거 빵 - bun
ㆍ햄버거용 고기 – patty
빵(bun) 사이에 간 고기로 조리된 패티(patty)와 치즈, 양파, 양상추, 케첩 등을 넣어 만드는 햄버거. 이 패스트푸드의 상징인 햄버거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햄버거에 들어가는 패티는 몽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유목민이던 몽골인들은 양이나 쇠고기를 적당히 잘라 안장 밑에 넣고 다녔는데, 안장의 무게 등으로 눌려진 고기는 날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육질이 연해졌다고 한다. 이런 식습관 때문에 몽골인들은 말에서 내리지 않고도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몽골이 러시아를 침공한 일이 있었는데, 당시에도 몽골인들은 안장 밑에 고기를 넣고 식사를 했다고 한다. 몽골이 침략한 이후, 러시아에서는 지금의 햄버그스테이크와 비슷한 이 고기 요리를 steak tartare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며, 이후 이 요리는 햄버거의 이름이 유래한 독일의 함부르크까지 퍼지게 되었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우연찮은 기회에 뉴욕으로 건너간 이 요리는 햄버그스테이크(Hamburg steak)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 Sometimes when we think of being ready for Jesus’ return, we think about what we shouldn’t be doing. But being prepared is really about purifying ourselves and becoming more and more like Him so we are pleasing to Him when He comes back for us (1 John 3:2-3). Jesus taught that being ready for His return requires living according to our Master’s will now (Luke 12:47). Will we be prepared when it’s time for the real thing?
때때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면, 우리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준비는 우리자신을 깨끗케 하여 주님을 더욱 더 닮아감으로써, 주님이 우리를 위해 다시 오실 때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요한1서3:2-3). 예수님은 주님의 재림을 위한 준비는 지금 주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누가복음 12:47). 진짜 재림의
시간이 왔을 때 우리는 준비되어 있을까요?
■ Look for Christ’s return and you’ll live
for Christ’s glory.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하고 살면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게 된다.
■ Our character is measured by what we do
when no one is looking.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 누가복음 12:40
■ As our rock, God is dependable and strong. As our refuge, He can provide safety until problems pass. The psalmist reminds us: “Under His wings you shall take refuge” (Ps. 91:4). With God as our defender, we don’t have to fear what others will do. We can trust that God will support us when trouble comes.
우리의 반석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할 만한 강한 분이시며, 우리의 피난처이신 하나님은 문제가 다 지나갈 때까지 안전을 지켜주십니다. 시편기자는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시편 91:4)라고 우리를 일깨워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보호자 되시기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행할 일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려운 문제들이 생길 때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 Thank You, God, for Your stable and unchanging nature. Help us to hide ourselves in You when trouble comes our way. Remind us that we
don’t have to fight our own battles.
한결같으시며 신실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인생길에 어려움이 닥칠 때
주님의 품 안에 숨게 하여 주소서
우리가 나서서 싸울 필요가 없음을 일깨워주소서
■ Refuge can be found in the Rock of Ages.
만세반석이신 예수님 안에 피난처가 있다.
* (아래 내용은 다음에서 인용함) http://bethelpress.org/dailybread.php
If any of you lacks wisdom, let him ask of God. —James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 — 야고보서 1:5
Wisdom is the beauty of holiness. James says wisdom is reasonable; flexible; forgiving; peaceful; caring; given to friendly visits, small acts of courtesy, and kind words. It is humble, transparent, simple, gentle, and gracious to the core (James 3:17). 지혜는 거룩함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야고보에 의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분별력이 있으면서 유연하고, 관대하고 온화하며, 배려심이 있어 다른 사람을 다정하게 방문하고, 조그만 일에도 공손하고 친절한 언행이 몸에 배어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겸손하면서 솔직하고, 순수하고 친절하며 자비롭습니다(야고보서 3:17).
Where can wisdom be found? It comes from heaven (1:5). “Wisdom,” wrote Charles Spurgeon, “is a beauty of life that can only be produced by God’s workmanship in us.” It’s good to ask from time to time: “Am I growing in wisdom?” After all, life is relentlessly dynamic. We’re either growing sweeter and wiser as the days go by, or we’re growing into foolish or even sour-faced curmudgeons. Into what are we growing? 그러면 지혜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1:5). 찰스 스펄전 목사는 “지혜란 우리 안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만드실 수 있는 삶의 아름다움이다.”라고 기술하였습니다. “나는 더 지혜로워지고 있는가?”라고 가끔씩 물어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인생은 어떻든 냉혹하게도 역동적입니다. 우리는 날이 갈수록 더 착해지고 더 지혜로워지든지, 아니면 어리석게 되거나 심지어는 심술궂은 얼굴을 한 구두쇠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자라가고 있습니까?
It’s never too late to begin growing in wisdom. God loves us with an ardent, intense affection that can deliver us from our foolishness if we yield ourselves to Him. His love can make the most difficult nature into a miracle of astonishing beauty. It may hurt a little and it may take a while, but God relentlessly seeks our transformation. When we ask, His wisdom will begin to rise in us and pour itself out to others. 지혜로 자라가기 시작하는데 너무 늦은 때는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은 불타는 열정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우리의 어리석음으로부터 구해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까다로운 천성도 기적같이 놀랍고 아름다운 것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조금은 아프고 시간도 걸릴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가차 없이 우리의 변화를 추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 안에서 자라기 시작하여 다른 이들에게까지 부어질 것입니다.
We have this promise: “If any of you lacks wisdom, let him ask of God, who gives to all liberally and without reproach, and it will be given to [you]” (1:5). 우리에게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1:5)는 약속이 있습니다.
Lord, please put an end to our foolishness and turn our hearts toward the wisdom that comes only from You. We ask You now to take our lives and transform them into Your likeness. 주님, 우리의 우매함을 끝내시고 우리 마음이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오는 지혜에게로 향하게 해주소서. 지금 우리의 삶을 주장하셔서 주님을 닮은 삶으로 변화시켜 주소서.
True wisdom begins and ends with God. 하나님은 참된 지혜의 시작과 끝이 되신다.
Let the brilliance of the treasure of Christ shine through you as you live for Him.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을 통해 보배로운 그리스도의 광채가 빛나게 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