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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에 올렸던 글을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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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만에 관악산 연주암을 다시 찾다
2010년 12월 30일
지난 12월 21일 34년 만에 관악산(冠岳山)에 올라 연주암(戀主菴)을 다시 찾았습니다. 지난 일을 생각하며 34년 만에 해발 632미터 관악산에 올라, 연주암을 찾기로 하였지요..
추운 날이 계속되다가 다행히 그날은 날씨가 좋다고 예보가 되어 있어서 전날, 내일 관악산을 34년 만에 다시 찾기로 마음먹었습니다.
34년 전에 군 복무하던 시절로 되돌아가 일등병시절 관악산에서 우리부대 옆에 있던 건설 공병대대가 관악산 정상에 통신 벙커 작업을 하는데 인력이 부족하다고 우리부대에 인력지원 요청이 들어와서 작업 지원에 차출되어 나가 관악산 정상 부근에서 약 3 개월가량 생활하였었는데,
그 때의 추억이 서린 서울 남쪽의 관악산과 관악산 중턱에 있는 연주암(戀主菴)이란 절의 주지승과 평생 잊지 못할 대화를 나누었던 터라, 연주암을 다시 찾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생각한 바도 있어서.........
인터넷에 관악산 가는 길을 찾아 쪽지에 적어 전철을 탔습니다.4호선을 타고 정부과천청사역에 내려 9번 출구로 나와서 과천외국어 고등학교를 지나 올라가니 관악산 가는 입구에 있는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적힌 표석이 있는 향교가 나타났습니다.
과천(果川)이라하면 글자 그대로 물가를 따라 과수원이 많은 동네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정부 종합청사나, 과천경찰서나 등등의 수많은 공공기관과 아파트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지만, 34년 전에는 주로 포도, 배 과수원들과 감자나 고구마 심은 밭들이 주로 있었습니다.
향교 옆을 지나 관악산 등산로 입구로 올라가니 과거엔 거의 없던 등산객이 즐기는 향토 음식점들이 길 양편에 제법 많이 있었습니다. 그 길을 뒤로하고 산골짝 계곡을 따라 나 있는 등산로로 걸어 오르니...
겨울이라 과거 관악산에서 생활 할 때 보았던 시원한 계곡물 흐르는 소리는 들을 수가 없지만, 등산하기에 편하도록 곳곳에 나무로 만들어 놓은 나무판자 길을 제외하고는 거의 옛날이나 별 차이 없는 길이요. 골짜기 입니다.
삼한사온 기후 중에 사온에 속하는 시기라 겨울 산을 오르지만, 오르니..불과 몇 백 미터를 못가 더워서 등에 땀이 나려고 합니다.
잠바를 벗어 한손에 들고 오르는 중간 중간에 2, 3번 쉬고 약 2시간이 안되게 올라가니... 연주암이 눈에 나타났습니다.
연주암 대웅전 앞의 마당에 서니.. 그 옛날보다 절 마당이 좁아져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에 보지 못했던 몇몇 건물들이 추가로 눈에 들어옵디다.
등산객들에게 점심 대접을 하는 건물이 새로 만들어져 있었고, 연주암 꼭대기에 통신벙커 작업을 하기위해 시누커라는 미군 헬기의 도움을 받아 운반했던 벙커건설용 자재 운반 시 절(사찰)에서도, 이때를 놓칠 새라 떡보는 김에 제사지낸다고..
절 신자들 중에 파워가 막강한 신자들(연주암은 寺字가 붙지 않은 작은 절이지만 서울 근방 경치가 아주 좋은 곳에 있는 절인지라,
신자들이 당시나 지금이나 대부분 행세깨나 하는 막강한 사찰임)을 대상으로 서명을 받아 당시 국방부에 협조 요청을 하여 운반비를 절감하기 위해 절 중건(重建)용 건축자재들을 운반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공짜로 군용 헬기를 이용하여 운반하였는데,
건설 자재들은 벙커작업을 하던 병사들이 절간 옆 바로 위 헬기가 내릴 수 있는 편편한 언덕위에 하역을 하였고, 헬기가 운반해온 모래나 자갈 시멘트 등등이 들어 있는 포대를, 우리가 땅 바닥에 비우는 일을 하였었습니다.
절 중건에 쓸 분량만큼은 절이 있는 아래쪽으로 끌어내려다 주었었지요. 절 주지가 자기들이 쓸 자재를 병사들이 운반해 주는 수고를 했다고 나중에 한 끼 저녁식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헬기가 산 아래 안양 부대에서 5분 간격으로 뜰 때는 산위에서 자재를 하역하던 우리도 바빴고, 헬기가 오랫동안 뜨지 않는 시간은 우리도 휴식 시간이 길었습니다.
당시 어느 날 하루는 작업 중 휴식 시간에 매미 소리를 들으며 절 대웅전 앞에 있는 정자나무 (느티나무)아래 벤치(현재는 없어지고 없더라)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주지 스님이 여신자들 중 간부임을 한눈에도 알 수 있는 귀티 나는 여신도 몇 분을 절 아래로 내려가는 섬돌(돌계단 아래 상층부)까지 배웅을 한 후에 느티나무 아래서 부채를 흔들며 더위를 식히면서 잠시 상념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때의 주지 스님 인물이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쯤으로 보였는데 너무나 잘 생겼었고, 온화한 얼굴과 입가엔 평화가 가득 찬 미소를 머금으신 분으로 느낌이 드는 분이셨습니다. 내가 여자라고 해도 저처럼 멋진 남자와 연애라도 해 보고 싶은 감정이 강하게 들 정도로 잘 생기신 분이였습니다.
이때를 놓칠세라, 내가 며칠 전부터 대웅전 네 기둥에 적혀 있는 저 글귀(法門)내용이 궁금하여 내 나름대로 해석도 해본 처지라!! 지금 주지승이 마당에 나와 있을 때, 지금 물어봐야지!!하는 생각이 빨리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순간적으로 확 떠오르는 생각이 저걸 내가 주지 스님에게 물으면, 주지스님은 여름철 작업하느라 얼굴은 해 빛에 검게 그을리고 초록색 포대 런닝 샤스는 땀에 젖어 허름하게 탈색되어 볼품없게 변한 옷을 걸친 하잖게 보이는 군대 졸병이 물어오는 말이라,
허럼한 군복을 걸친 군대 졸병이라는 나에 대한 선입견과 불교에 대한 사상과 지식을 자기가 군대 졸병인 나보다 응당 월등히 많이 알고 있다는 권위의식에 의해서 나를 깔보고서는 값 튀기며 하는 말이, 저 글귀는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모를 것입니다.!라고 내 물음에 대답 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서는 주지스님보고 제일 오른쪽 글귀(법문)은 이러 이러한 내용이며, 그 다음 글귀는 이러이러하고 그 다음은 이러이러하고 그 다음과 그 다음은 이러이러한 내용이 아닙니까? 라고 말하면, 주지스님은 깜짝 놀라!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하고 나에게 되물을 것이다.
그때 나는 배운 적이 없습니다!(사실은 고교졸업 후 대학 1학년 때 번역한 불교 경전을 한번 읽은 것 밖에 없었다. 그래서 배운 적이 없다고 한 것이다.)라고 대답해야지!
그러면 주지 스님이 다시 나에게, 그러면 스스로 깨달았습니까? 라고 다시 나에게 되물을 것이다. 그러면 그 때 내가 예!~라고 대답해야지....
그때서야 주지스님은 아!~~ 사람이란 선입관을 가지고 대하거나 생각하거나 깔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구나!~~라고 느끼고 진지하게 생각하며, 좀 더 내가 겸손해 져야겠다! 는 마음을 가져야지!~라고 주지스님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마침 절간엔 사람도 별로 없어 조용한지라, 내 말을 주지 스님이 잘 들을 수가 있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제법 약간 큰 소리로 불렀다. 주지 스님!~ 대웅전 네 기둥에 적혀 있는 저 글귀는 각기 무슨 뜻입니까? 라고 물으니....
역시 내가 짐작한 대로 주지 스님이 대답하시기를, 저 글귀는 불교 공부를 수 십 년간 한 사람에게 가르쳐 주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할 것입니다! 라며 값을 튀기었다.
이에 내가 준비한대로 네 기둥에 적힌 글귀의 내용이 이러이러 한 것이 아닌지요?!!하며 내 의견을 피력했더니.. 예상대로 깜짝 놀란 토끼 눈을 하고선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한다.
그래서 또 준비 된 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라고 했더니... 그러면 스스로 깨달았습니까? 라고 다시 되 물었다. 그래서 예! 라고 했더니... 놀란 토끼 눈과 표정을 계속 지으며..잠시 생각에 잠기었더라!!~~~
대웅전에 네 기둥에 걸려 있던 글귀를 일부는 잊고 있었는데, 관악산에 다시 올라 보니..그 글귀(법문)들은 이러하였습니다.
佛身普遍十方中(불신보편시방중) 직역:o 부처님의 몸은 시방세계에 두루 가득 하시네
三世如來一切同(삼세여래일체동) o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이 모두 같다.
廣大願雲恒不盡(광대원운항불진) o 크고도 넓은 원력 구름은 항상 다함이 없다.
汪洋覺海渺難窮(왕양각해묘난궁) o 한없이 넓은 깨달음의 바다 끝도 아득하여라.
76년 여름 당시 나의 의역; o 깨달음을 얻는다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고, 부처는 세상 어디든지 곳곳에 있다.
o 과거 부처의 가르침으로 현재의 부처가 있고, 현재 부처의 가르침으로 미래의 부처가 생겨난다.
o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염원은 끝이 없다.
o 깨달음의 세계는 큰 바다와 같이 한없이 넓고,끝도 없다.
그 당시 주지 스님의 법명도 물어보지를 못한 터라, 이번 등산길에 절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물어보아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른 터라, 절에 불교 물건들을 판매하는 보살님에게 옛날 일을 물었더니..
그 때의 주지스님은 연주암 주지를 그만 두신 후에 지금까지 청주 보살사에 계시는데, 불교 종정(宗正: 불교종단의 정신적 최고지도자)으로 몇 번이나 추대되었지만,
다 사양하시고 지금은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으로 계시는 올해 87세인(인터넷 검색결과) 종산(從山)스님이라고 하시면서 경주 불국사에도 자주 가시고 연주암에도 간혹 들리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주지 스님이 나와 문답이 있은 후로 우리 막사에 추위를 잊고자 불을 피우는데, 불소시게로 사용하라고 절에서 불공드리고 난후 남은 초들을 많이 내어 주셨고,
병사들이 자재 운반해 주었다고 감사 답례로 절에서 저녁 식사를 대접할 때, 솔직한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당시의 그 말씀도 잊을 수가 없어서 오래 토록 기억하고 있습니다.
스님이 말씀 하시기를 우리도 건강 유지를 위해서는 고기를 종종 먹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절 중건 자재를 운반해 주시어 그 고마움에 보답고자 오늘 저녁을 소고기국으로 준비 했습니다 오늘 소고기 국을 끓였으니 맛있게 드십시오.
절 체면도 있고 하여 소고기 국이지만, 건더기는 없고 소기름만 사다가 끓였습니다! 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불경을 한번 읽은 터라, 석가모니부처도 처음엔 과거부터 있었던 선각자들이 해온 바대로 남 따라 보리수 밑에서 정좌를 하고서 금식을 하며 깨달음을 얻고자 상념에 잠겨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금식으로 인하여 영양결핍상태에서 정신은 혼미해지고 판단력은 흐려지고 헛것이 보이려고 하는 것이 깨달은 바가 없더라,
그래서 석가모니가 금식기도 상태를 그만두고 보리수 밑을 떠나 헤매다가 며칠간 고기죽을 얻어먹고서 기운을 차린 후에야 맑은 정신을 되찾고, 처음으로 깨달은 바가 있어서 그 후 제자들에게 처음 설법했다는 것이 “양극단(兩極端)을 피하라”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양극단을 피하라는 말은 부처(깨달음을 얻어 행복해진 사람)가되기 위해서는 지나친 금욕주의도 피하고, 지나친 환락주의도 피하라! 는 뜻이랍니다.
이런 내용을 불경을 읽어서 알고 있던 나로서는 주지스님이 건강을 위해 종종 고기 먹는다는 말이 하나도 이상하거나 나쁘게 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 솔직함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고 존경스러움까지 느껴졌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34년 흐른 지금 그 당시 주지스님이셨다는 종산 스님이라는 분을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에 쳐보았더니... 종교 담당 기자 분(동아일보)이 조계종 원로 회의 의장이신 종산 스님에 대해 기사를 쓴 내용 중에,
종산스님은 수 십 년 동안 절식(節食 )기도하는 중에 아무리 배가 고프고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하는 곳을 지나는 길에도 유혹을 뿌리치고 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기사 내용을 보니....한편으로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인간이란 사석(私席)에서는 진실을 자주 말하지만, 공석(公席)에서는 자기 개인적 이해관계가 크게 걸려 있거나, 자기가 속한 단체의 이해관계 때문에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서 허위나 거짓을 말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치가나 정치 집단, 종교가나 종교 집단들이 이러한 표리부동을 가장 많이 나타내는 것이지요.
종산(從山)스님 또한 자기 자신이 고기 먹지 않았다고 기자에게 말한 것이라기보다는 종교지도자를 띄워 주는 기사를 쓴다고 기자 분이 자진해서 스님은 특별한 분인 양 비행기 태움이 지나쳐서 그러한 허위 기사를 쓴 것이라고 믿습니다. 정치인이나 종교인을 평할 때는 종종 이러한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 불교 조계종 종정(宗正) 성철 스님이 타계한 후 성철 스님의 다비식을 하였더니 사리가...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도 그러 합니다. 사리 자체를 신성시 하는 것은 불교 집단의 이익 때문에 뻥튀기하는 것이지요.
기독교로 치면 예수가 물위를 걷고, 앉은뱅이를 고쳐주고, 나병환자를 고쳐 주었다고 것도 다 그렇고 그런 이유로 가공된 거짓인 것이고, 로마 교황청에 보관되어있다는 예수 성의(聖衣)도 탄소동위원소 측정결과 중세기 때 화가가 물감으로 그린 것이라는 것이 탄로가 났듯이.....
몇 십 년 전 시골 장터에서 약장사들이 서로 짜고서 앉은뱅이(한패인 가짜) 구경꾼을 혈도(血道)를 뚫어서 기가 통하게 해주면 앉은뱅이도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하며, 쇼한 후에 장(場)이 파하고 해 질 무렵에 골목길에서 약장사패들이( 앉은뱅이 역할을 하던 자도 함께 같이) 그날 수입을 나누어 가지는 것을 제가 보았는데....
앉은뱅이를 순식간에 일으켜 세웠다는 것은 다 그렇고 그런 것이지요...인간 집단들이 어리석을수록 속임수 단수도 낮고, 속임수에 군중들이 잘 속아 넘어갑니다.
종교나 정치와 관련된 인물을 묘사할 때는 종종 대부분 띄우기가 심해져서 허위가 날조되어 만연되어 있습니다. 인간이란 똑 같은 인간은 하나도 없으며, 특별한 인간 또한 한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은 그냥 사람일 뿐이고,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 일 뿐이며, 개는 그냥 개일 뿐이며, 쥐 또한 그냥 쥐 일 뿐입니다. 인간이란 서로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 동기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자신도 크게 넉넉하지도 않으면서도 자신을 지나친 욕심으로부터 멀리하는 맘을 항상 가지고 ,
자제하면서 자신의 삶에 만족을 하고, 평화로움을 찾고 온화한 맘씨로 자신보다 못살고 가난한 분들에게 연민의 정을 가지고 나눔의 정을 베풀어서, 그 베품 속에서 행복을 찾으며 이로 인해 지상 천국과 지상 극락 생활을 유지하며 살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강태수군과 신향숙양 그리고 조성식 정홍륜 유옥님 최상석 서영길 이연우 등등의 이런 많은 분들과 고인이 되신 백광석군 같은 분들이 바로 이런 분들이 아닌가 합니다.
세상에 이름깨나 났다고 훌륭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재산이 많다고 훌륭한 인품을 갖춘 것도 아닙니다. 인품 또한 소문난 분들보다는,
그냥 보기에는 평범하지만 자신의 처지에 가급적 만족하면서 욕망을 항상 절제하며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조금이라도 돕지 않고는 못베기는 성품을 가져 높은 인류애를 가진 분들이 사실 많습니다.
앞에서 열거한 이런 동기 분 들은, 자기 재산이 10조원이 넘으면서도 더 많이 벌기위해 배 다른 형제간과 재산 싸움을 벌이고 제수씨와도 재산 싸움을 벌이는 그런 자에 비하면 아주 훌륭하고,
부모의 유언이 없었다고 재판까지 하여 장조카의 재산을 뺏은 모 재벌은 또 다른 조카가 사업에 실패하여 이혼 당하고 혼자 살며, 생활비가 없어서 자살하도록 방치 한 사람도 있는데, 그 흔한 사외 이사자리나 하나 안겨주었으면 조카가 생활비가 없어서 자살하는 사태는 막았을 것입니다.
이런 재벌이 년 말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신문사에 수 억 원을 기부하는 것보다 앞의 동기 분들은 더 나은 훌륭한 분들입니다.
또한 이런 동기 분들은 국가의 빈부격차가 심하여 빈민층들이 자주 폭동을 일으키고 국민 여론이 좋지 않게 변하여 유럽처럼 고소득층에게 소득세를 높이게 되면, 자신의 재산이 대폭 줄어들 것을 두려워하여,
절세와 자기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국민 여론을 좋게 만들기 위한 수작으로, 재단을 만들어 그 재단에 자기 재산의 상당액을 기부하는 쇼를 벌리는 미국의 빌게이츠나 조지 소로스 같은 유태인들처럼 유치한 장난을 하는 위선적인 행동가도 아니며,
천문학적인 재산을 지키고 나아가 더 많은 재산을 모으기 위해 정계에 투신하여 고위 공직자가 된 다음 죽을 때까지 친인척들까지 동원하여 사회의 막강한 집단들과 자매결연을 맺고서 고소득층 집단의 소득세와 법인세를 낮추어서 맘 놓고 부를 축적하며 재단 만들어 재산을 기부하는 쇼를 하는 자와도 질적으로 다르며,
헛소문만 요란한 천주교 추기경과도 다르고, 빛깔만 좋은 조계종 총무원장보다도 더 훌륭하시고, 사기꾼들의 대표적 인물인 큰 교회 담임 목사들보다도 더 양심적이고 더 겸손하시고 더 훌륭하시고 참다운 행복을 아시는 분들입니다.
강태수군과 신향숙 양을 보고 있노라면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알 것만도 같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나이에 비해 맑고 깨끗한 얼굴을 할 수가 있느냐? 고...
얼마나 자신을 자제하고 절제하여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며 걱정 없이 살기에 그렇게 행복한 미소를 가질 수가 있겠냐? 고...
그러면서도 불쌍한 분들을 보면 연민의 정 또한 얼마나 깊은 가를!...강태수군과 신향숙 양은 지상 천국에 사는 사람이요. 동시에 극락세계(지상의 행복한 세상)에 사는 부처와도 같고 무릉도원에 사는 신선(神仙)처럼 느껴집니다.
조성식 군과 정홍륜 군과 이연우군은 또한 근면 성실하면서 지나친 욕심을 갖지 않고 항상 부지런하면서 불쌍한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인정을 베풀고 돕고자 하는 맘 또한 강한 것을 볼 때 마치 전형적인 인정 많고 착하고 온화한 촌로(村老)를 보는 듯합니다.
유옥님 양은 장사를 하면서 경우(境遇)가 바른 것이 나좋고 상대방 좋다는 것을 깨닫고, 항상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살아 온듯하며, 항상 밝고 크게 웃는 웃음으로 눈가엔 잔주름이 있지만 그건 행복한 웃음으로 생겨난 주름이라 항상 즐거운 지상의 극락세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주름이며,
서영길 군은 자신도 재산이 별로이면서도 남에게 신세지거나 부담 주기를 매우 싫어하는 성격이라 세상에는 수십억 재산가나 수백억 재산가도 남에게 밥 사기를 싫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자신의 처지에 비해 남보다 먼저 밥값을 지불하지 않고는 못 베기는 성격이라 남에게 절대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하면서 정의감 또한 무척 강하고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돕지 않고는 못 베기는 무척 훌륭한 분이십니다.
이런 분들에 비해 나 자신은 젊은 시절(30대 시절) 돈 욕심 때문에 막내 처제 대학공부를 시켜 주자는 아내의 제의를, 장인이 공부시킬 재산이 충분히 있는데 딸에게 투자하기 싫다고 시집간 큰딸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우리도 젊을 때에 제대로 벌어놓아야 나중에 자식들 공부시키고 결혼시킬 수가 있다면서 반대를 하여 대학 등록금철만 되면 부부간에 서로 싸우고 이로 인해 오랫동안 아내 맘 고생시켰던 것이, 한 십 수년 년 전 부터 후회가 됩니다.
처제 공부 시키는 데는 강하게 반대를 했으면서도, 막상 못사는 내 여동생 아들(조카)공부 시키는 데는 내 맘이 약해져서,
아내 몰래 중고등학교 6년간 공부시키게 되었고, 4년전에 아버님 돌아가신 후에 남은재산이 워낙 별로 없다보니 유산으로 내 몫으로 일천 만원은 어머니가 주겠다는 것도,
1천만원이 나에게 더 있다고 내가 더 큰 부자가 되는것도 아니고, 1천만원이 없다고 해서 내가 못사는 것도 아니지만, 혼자 선생하여서 나보다 못사는 막내 동생에게는 1천만원이 자식 공부시키는데 도움이되겠다 생각해서,아내가 보는데서(아내가 싫어하겠지만) 어머니에게 나 보다 못사는 막내 남동생 더 보태 주라고 양보도 했었지요.
불교 천수경에, 나라에게 지은 죄 지금 모두 참회(懺悔)하고...
스승님께 지은 죄 지금 모두 참회하고..
부모님께 지은 죄 지금 모두 참회하고..
형제간에 지은 죄 지금 모두 참회하고..
친구간에 지은 죄 지금 모두 참회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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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으로 지은 죄 지금 모두 참회하고...
욕심으로 지은 죄 지금 모두 참회하고...
썽냄으로 지은 죄 지금 모두 참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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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등이 있는데...이 천수경 또한 아주 오래 전에 남존여비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라......부부간에 지은 죄 지금 모두 참회하고...라는 문장은 없더군요.
불법에서 참회란 다른 종교처럼 어떤 가상(假想 )의 절대자를 만들어 놓고서 그 절대자 앞에서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는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자신(眞我)에게 인연과보(因緣果報)를 달게 받겠다는 각오와 다짐의 참회를 하는 것입니다.
가상(假想)의 절대자(神)을 자기 마음속에 만들어 놓고 자신의 과오를 토로하고 용서를 구하면 용서해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인간심리상 착각에 불과 합니다.
정신과 의사들이 사용하는 정신분석학적인 측면에서 이를 규명하면 이는 절대자에게 속죄함을 구하는게 아니라, 자신이 자신에게 속죄를 구하고 이해를 구하여 죄 지음의 불가피성을 합리화 시키고 양해(諒解) 받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생존본능 때문에 근본적으로 자신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자기는 항상 자기편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속의 神(실제는 神이 아니라 자기 자신임)에게 속죄함을 구하고 양해를 구하면 자기는 항상 자기편이라 세상 그 어떤 범죄자도 범죄에 대해 용서를 해주고 합리화 시켜주며 양해(諒解)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용서 해주지 않을 자도 없고, 합리화 시켜 주지 않을 자도 없고, 양해 못해 줄 자도 없고, 죄 지음을 이해를 못해 줄 자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십명을 연쇄 살해 했거나,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일으켜서 수 십 만명 또는 수 백 만명을 죽게 만든 침략자가 神(자기 자신)에게 어쩔 수가 없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핑계를 만들어 용서를 구하면 神(자기 자신)은 자기를 용서 해 주고, 반드시 합리화 시켜주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이런게 기도(기복신앙: 祈福信仰)의 효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귀신을 믿는 모든 종교 신자들의 기도 효과 입니다. 즉 자기가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고, 자기가 자기 자신을 용서해 주고, 나아가 복을 내려 주겠다는 언질을 주는 심리적 효과인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기도만하면 神은 항상 자기 편이고, 항상 자기가 믿는 종교 집단편이고,항상 자기 지역편이고, 항상 자기 나라 편이라고 생각을 하고 살며 행동을 하는 것이고, 어떠한 잘못을 저질러도 그게 큰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고,
자기나 자기 지역, 나아가 자기 나라의 그 어떤 정책도 당연시하고 합리화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가 속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수많은 상대 국민을 죽여도 당연시하고 그게 정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침략자요 살인마인 징기스칸을 몽골인들은 영웅이라 하고, 역시 침략자요 살인마인 나폴레옹을 프랑스 사람들은 영웅이라 하고, 일본인도 침략자요 살인마인 이등박문이를 영웅시하고, 한국인도 역시 침략자요 살인마인 광개토왕을 영웅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법의 원래 참회의 본 뜻은 참회하여 용서를 받기 위한 참회나 기도가 아니고, 참회(懺悔)란 인연과보(因緣果報)에 의해서 자신이 지은 업(業)에 대한 결과에 대해서 그 과보( 果報 )가 좋든 싫든 용기있고 떳떳하게 그 결과를 달게 받겠다는 다짐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교 신자들도 다른 종교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마음이 약하다보니, 본능적 이기심 때문에 기복신앙이 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나 자신의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후회되는게 있다면 오직 하나 몇 푼 안 되는 돈 욕심 때문에 유독 아내에게 지은 잘못이 가장 맘에 걸립니다.
내가 반대를 한다고 해도 아내가 나 몰래 결국 등록금 대 주었는데, 괜히 나만 반대하여 등신 되고 물에 뜬 기름처럼 되어 버렸고, 아내 마음만 고생시킨 것을 생각하니 후회가 막심하지요.
처갓집에도 도통 잘 오지 않는 서울 처남댁이 금년 초에 저보고 그럽디다. 고모부는 젊을 때는 아주 눈매가 무섭더니만 요즘 보니 아주 인자해 보입니다! 라고...
젊은 시절엔 돈 욕심 때문에 눈빛이 무섭게 보였었고, 요즘은 그런 욕심을 버리니 얼굴에 욕심 버린 것이 온화한 빛으로 나타나는 것인가 봅니다.
며칠 지나면 인생 육십이라 앞으로 나의 아버지처럼 살아도 25~26년밖에 남지 않았는데...그 세월이란 순식간에 지나갈 세월이지요...하여 늙어 갈수록 돈 욕심이 지나치면 추잡하기 그지없으니 ...
돈 욕심도 더 죽이고, 가족들과 주변 4촌 6촌 등 친인척들에게 좀 더 잘하며 좀 더 인정을 베풀면서, 앞에서 말한 동기 분들처럼 그런 분들을 본받고,
그리고 함양에서 근무하고 살 때인 30대 후반에 그 당시 내가 생각하기를 현재 퇴직하는 분들은 대부분 욕심이 너무 많아서 연금보다는 일시금을 받는데, 나는 그렇게 과욕 부리지 않고 장차 우리부부는 마누라가 한 사람만 연금으로 받자고 주장해도 더 확실하게 안전하도록 내가 강하게 밀어 붙여서 둘 다 연금으로 받도록 할 것이고,
그렇게 하여 연금과 집 한 채만 있으면 노부부가 죽을 때 까지 사는데 경제적 지장은 없으니, 앞으로 그동안 모아서 축적할 재산 중 내가 노후에 살 아파트 한 채를 제외하고는 자식들이 재산을 불리는데 활용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나머지 재산은 최대한 빨리 물려주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래서 이제 지난 4월에 둘째 딸도 결혼 했으니, 두 딸 자식 부부가 앞으로 자식 낳고 잘 살게 되면 빠른 시일내에 마누라가 반대를 하더라도 내 명의로 된 아파트를 팔아 보태어서 두 딸과 사위들에게 한 약속대로 2 억 원 씩을 최대한 빨리 물려주겠다고 생각했었다.
연금과 아파트 한채외에는 비상시 쓸 현금은 몇 천만원만 가져도 되니까, 나머지 재산은 많지가 않지만 빨리 내 손을 떠나야 내가 물질로 부터 자유로워 질 것이고, 이로인해 내 마음에 평화도 오고, 자식들에게도 이로울 것이라서,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결심도 관악산 정상에서 재 다짐하기 위해서 관악산에 올랐다고 할 수가 있다.
또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백광석 군처럼 삶과 죽음도 어느 정도 초월하면서, 좀 더 겸손하게 평화롭게 살아가며, 대학 1학년 때 읽은 버트란드 러셀의 "무엇을 위해 살것인가? " 라는 책을 읽고,
내 인생은 앞으로 "사랑에 대한 동경(憧憬)과 진리에 대한 탐구(探究) 그리고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憐憫)을 갖고 살겠다" 고 다짐을 했었는데,
그 다짐대로 이제 자식도 다 키웠으니, 앞으로는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憐憫)을 더 갖고 살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기위해서 지난시절 추억을 간직한 관악산 연주암을 지난 12월 21일 다시 찾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