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는 그의 이력이나 남긴 업적등을 볼때 단순히 바람둥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 단순히 돈많은 귀족 바람둥이에 그친 돈후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64세때 쓴 자서전 '나의 인생 이야기(Histoire de ma vie)'의 3분1정도를 차지한 여성편력만이 부각돼 그의 다른 뛰어난 부분이 가려졌다.그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상당 부분 왜곡됐다.그의 시대는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계몽주의 사상이 전 유럽으로 확산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역사적 변혁기에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매춘부에서 명문귀족까지, 화장실에서 거실까지, 빈민가에서 궁궐에 이르는 모든 것을 꼼꼼하게 묘사한 사람이 카사노바다. 온갖 부류의 인간형이 등장하는 그의 자서전은 우리를 매혹시킨다.
그는 학자이자 소설가, 발명가 이면서 재정전문가였다.당대의 지성이라고 해도 어색함이 없는 엘리트중의 엘리트였다. 법학 박사, 비밀 첩보요원, 종교 철학자, 사제, 바이올리니스트, 프리메이슨 비밀결사 단원, 사기꾼, 도박가, 모험가로 불리기도 했다.
1798년 보헤미아의 둑스 섬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4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자서전 '나의 인생 이야기'는 18세기의 유럽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 받고 있다. 당시의 유럽 사회의 정치, 경제,문화를 몸으로 겪은 카사노바는 천의 얼굴을 한 재간꾼이자 천재였다.
카사노바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1725년 6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귀족은 아니지만 예술적 감각을 갖춘 먹고 살만한 중산층 시민계급이었다.아버지가 일찍 죽어 귀족 미켈레 그리마니에게 맡겨져 양육되었다.
당시에 평민이 출세하려면 사제가 되든지 군인이 돼야했다. 카사노바는 성직의 길을 택했다. 1741년 열여섯살에 비잔틴 성당에서 첫 신학 강의를 했고 추기경의 비서로 일하는 등 유망한 젊은 사제였다.
그러나 그는 70세 성직자가 17세 어린 가수를 농락하는 걸 지켜보며 성직자가 깨끗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린다. 그는 절제하지 않고 자주 일탈했다. 열일곱 살에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바이올린 천재라는 명성이 여자들을 무너트렸다.
그러나 계속 구설수에 오르자 교회는 그를 쫓아낸다. 그가 도망간 곳은 기독교가 없는 오스만 제국이었다. 오스만 제국에서 다시 이탈리아 반도로 돌아온 카사노바는 프리메이슨에 가입하고, 비밀 첩보 요원으로 활동한다.
1747년 카사노바는 베네치아 귀족이자 상원 의원인 마테오 조반니 브라가딘과 우연히 같은 곤돌라를 타게 된다. 곤돌라 안에서 브라가딘이 갑자기 쓰러지자 자신의 의학지식을 활용해 치료했다.
놀랍게도 브라가딘이 회복되었다. 이에 감동한 브라가딘은 그를 양자로 삼고 매달 많은 액수의 용돈도 주었다. 브라가딘 가문의 양자가 된 카사노바는 귀족이라는 신분과 돈을 양손에 쥐면서 거칠 것이 없었다.
환락의 도시 베네치아는 당시 섹스 파티가 유행했다.그는 수녀들까지 파티에 초대했다. 이 섹스 파티 때문에 카사노바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카사노바와 파티를 즐긴 여인 중에는 성직자의 부인, 종교 재판관의 애인 등 고위층들이 많았다.
카사노바에 반감을 품은 이들은 1755년 금지된 이단 마법을 사용하고 사회의 안정을 해한다는 죄명으로 그를 체포한다. 카사노바는 후일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타인에게 잘못한 적이 없다. 사회 안정을 위협한 적도 없고 남의 일에 간섭한 일도 없다.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아마도 종교 재판관의 애인과 자주 만났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로부터 1년 간 카사노바는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에 있는 피옴비 감옥에서 수감 생활을 해야 했다. 그가 투옥된 감옥은 누구도 탈옥할 수 없다는 악명 높은 감옥이었다.그러나 카사노바는 탈출에 성공한다.
그는 탈출에 성공한뒤 자서전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를 이곳에 가둘 때 나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듯 나 역시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이곳을 떠나노라"
감옥을 탈출한 카사노바는 곧바로 문화와 예술의 도시인 프랑스 파리로 향한다. 1757년에 파리에 도착한 카사노바는 옛 친구의 소개로 프랑스 재정 전문가로서 상류 사회의 스타로 대접 받았다. 당시 파리 시는 재정 문제로 곤란을 겪었다.
카사노바는 루이 15세에게 복권도입을 제안해 곧바로 복권 사업을 관장하는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루이 15세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복권 제도를 시행한 군주라는 명성과 함께 재정문제를 해결했다.프랑스 정부는 그에게 비밀요원의 직책을 주기도 했다.
삼십 대 바람둥이 카사노바에게 경제적인 여유까지 생기자 많은 여성이 그의 품에 안겼다.허나 그의 여성편력에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갔다.
또 그가 투자한 실크 프린팅 사업이 실패해 빚더미에 앉자 그는 다시 도피행각에 나선다. 패션 산업계에서는 카사노바를 염직산업을 부흥시킨 주인공으로 기록하지만 카사노바에겐 뼈아픈 사업실패일 뿐이었다.
그는 도피 생활중에도 계몽사상의 아버지 볼테르를 만나 우정을 쌓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1763년 카사노바는 영국을 방문하지만 프랑스에서와는 달리 찬밥 취급을 당했다.
그의 여성 편력도 신통치 않아 창녀에게 속아서 가진 돈을 모두 빼앗기고 빈털터리가 되기도 한다.독일을 거쳐 러시아로 간 그는 여성 편력에 화가 난 러시아 남자들이 수없이 결투를 신청해 폴란드를 거쳐 스페인으로 다시 도망갈 수 밖에 없었다.
카사노바도 진지한 사랑을 나눈 경험을 갖고 있다.그중 하나가 그의 생애를 아름답게 장식해준 프랑스 여성 앙리에트와의 3개월 동안의 동거다. 다른 하나는 수녀 M. M.과의 사랑이었다.또 로마의 루크레치아와의 연애도 있다. 그러나 한곳에 가만있지 못하는 방랑벽으로 평범한 가정을 꾸릴 수 없었다.
돈후안은 이러한 카사노바와 달리 별다른 이력이나 경력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아버지 잘만나 귀족이 되었고 2세 망나니처럼 집안재산으로 흥청망청 유흥에 탕진한 탕아내지 양아치에 불과했다.
그는 만나는 모든 여성들에게서 성욕을 느낄 만큼 끊임없는 욕구를 가졌다.단지 여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만 열을 올렸다. 유혹에 성공한 후에는 싫증을 내고 하찮게 대한 것으로 묘사됐다.
사람들은 돈 후안을 가리켜 여자를 좋아하지 않으며 오히려 여자를 경멸했다고 말한다.그는 여자들을 사냥감처럼 취급했다. 그의 하인이 만든 2000여명에 달하는 정복한 여자들의 명단은 그의 사냥 리스트에 불과했다.
그는 이런 성향때문에 '돈 후안 증후군 (Don Juan Syndrome)이란 의학용어를 남겼다.주로 남성에게서 발견되는 증후군이다.많은 여성들과 교제를 하며 문란한 생활을 하거나 한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해 연인 관계를 오래 이어가지 못하는 증상을 가리킨다.
돈후안은 수많은 희곡과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방탕아, 호색한, 바람둥이로 묘사되는 돈 후안에 관한 작품만 3,000 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탕아 바람둥이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제인물이 아닌 전설상 인물로 작가들이 상상을 펼칠 공간이 넉넉해 다투어 돈후안얘기를 작품으로 다뤘다.
카사노바와 돈후안의 여성편력이 대조적인 것은 카사노바가 자수성가형인데 반해 돈후안은 2세 망나니형이었기때문이다. 카사노바가 연애를 하는데 있어 철든 어른이라면 돈후안은 철들지 않은 망나니에 불과했다.
카사노바는 여인들이 아니라 여인들의 연인이나 남편이 죽인다고 쫓아다녔다.반면 돈후안은 배신때린데 대해 한 맺힌 여인들이 원수갚겠다고 쫓아다녔다.
여성입장에서보면 같은 바람둥이 호색한이라해도 천지차이가 아닐 수 없다. 카사노바가 바람둥이임에도 여성들이 좋아하는 이유인 것 같다.
헬렌 레디(Helen Reddy)는 1942년 호주의 멜버른태생이다. TV쇼에 출연하는 등 어릴 때부터 연예인으로 재능을 발휘했다.
그녀는 뉴욕으로 가 1967년 흥행업을하던 제프 월드(Jeff Wald)를 만나 결혼하고 뮤지컬 'Jesus Christ Superstar'에 삽입
된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을 불렀다.
1977년에 영화 'Pete's Dragon'에 출연하며 영화에 들어간 Candle On The Water를 불러 아카데미 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대표곡으로 Delta Dawn, Leave Me Alone(Rudy RedDress),Angie Baby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You Are My World가 인기를 끌었다. 이곡은 1963년에 이태리 가수 Umberto Bindi가 Il Mio Mondo(My World)
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곡이다.
첫댓글
잡놈들은 필요 없다
수선화 같은 남자로서
동백꽃 같은 여자를 만나
나를 불사르고 싶을뿐 ^^
이따 봐요...어떻게 불사르는지 볼게요...ㅎㅎ
보통 사람은
서로 끌림이 시작 되는
호르몬의 유통기간이 3개월이라면
카사노바는 그 기간이 아주
짧았던 것같고
돈후안은 스치기만 해도
자크가 열리는
자동문이었나 ᆢ ㅋㅋ
카사노바가 천재임은 확실해요
둔재는 한 여자도 관리하기
힘들 거든요 ㅎㅎ
아주 잘 읽었습니다 ㆍ
감사합니다 ㆍ
카사노바: 호르몬유통기한이 3개월도 않되는 사람.
돈 후안:스치기만해도 자크가 열리는 자동문
윤슬하여님이 유머러스하게 두사람을 한마디로 정의해 주셨네요...
여자사귀려면 이거저거 생각할게 많은데...
좋은 말씀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카사노바 라는 이름의 칵텔 바를 차리고 싶다 .
쩝 !
그 칵텔바의 부제로 한국의 카사노바
오분전이라고 달면 장사잘 되겠습니다...
@비온뒤 그날로 문 닫습니다
대신 얼굴마담으로 ....ㅋ
@오분전 사근사근한 얼굴마담 서비스를 한번
받으면 영원히 잊지못할 추억이 될 겁니다....ㅎㅎ
@비온뒤 그 방면에는 자신이 없음 ㅋㅋㅋ
저도 낯을 가리거든요 ㅋㅋ
카씨 돈씨와 우리나라 변씨 3인이 올림픽 SEX 실연 경기에서 메달을 놓고 마지막 쟁투를 벌렸습니다.
심사위원들의 총 10부문에 걸친 종합적인 심사 결과 최종 우승자가 결정됐습니다.
금메달!
변강쇠!
선배님 말씀대로 특히 절륜한 정력으로 말하자면 변강쇠님을 따라갈 사람이
세계적으로 없을 겁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