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로 읽는 페더러 윔블던 정복기]
작성 : 블루하트님(저작권 있는글입니다)
런던 남서쪽 한적한 교외지역에 자리한 윔블던城이 지척에 보이는 높은 바위산 망루 - 황금색 투구와 청동으로 만든 갑옷을 입은 한 건장한 체구의 장군이 날카로운 눈매로 윔블던성을 주시하고 있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갈색 눈동자는 형형(熒熒)했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다만 그가 오른손으로 쥐고 있는 황제의 전투용 검(劒) '글라디우스 윌스니아(Gladius Wilsonia)'의 번쩍임만이 그의 여덟번째 윔블던성 정복의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Roger Federer The Great - 로저 페더러 대황제였다. 2주 전 황제는 자신의 고향인 스위스 북부 바젤(Basel)을 떠나 이반 루비치치(Ivan Ljubicic) 장군이 이끄는 황제 직속 정예부대를 대동한 채 험준한 알프스산맥을 따라 남하하여 이탈리아 나폴리항에서 미리 대기 중이던 Nef de L'empereur라는 이름의 황제의 전함에 승선했던 것이다.
황제의 나이 35세, 측근에서는 황제의 체력적 한계를 거론하며 윔블던성 8차정복의 꿈을 젊은 바브린카 장군에게 선양(禪讓)할 것을 간곡히 아뢰었지만 페더러 황제는 '짐은 아직 노쇠하지 않았으니 그대들은 쓸데없는 잔소리 그만하고 출정 준비나 차질없이 하라'는 말로 일축하고 친히 황제의 검 글라디우스 윌스니아를 들고 출정에 나선 것이다.
황제의 전함이 나폴리항을 떠나 지중해를 횡단하여 영국 윔블던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혈기방장한 장군들이 분기탱천하여 황제의 진군 길목에서 대담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처음엔 듣도보도 못한 변방 항구의 오합지졸들을 가볍게 휘두른 글라디우스 한방에 모두 추풍낙엽처럼 베었지만 황제의 배가 아프리카 북단 지브롤타 해협을 통과할 무렵에는 그 저항의 세기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먼저 최근 군소규모의 해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인 독일연방의 젊은 즈베레프(M. Zverev) 장군이 호기있게 황제와 일전을 벌였으나 족탈불급 - 계속되는 진로방해에 노여움이 오르기 시작한 황제의 고함 소리 한방에 그가 타고 온 갤리선이 반파되면서 병졸 수명만을 간신히 건사한 채 황황히 물러갔다.
그러자 불가리아공국 출신의 디미트로프(G. Dimitrov) 라는 이름의 곱상하게 생긴 덕장 하나와 유별난 오지랖을 자랑하며 멀리 캐나다에서까지 황제의 윔블던 8차정복의 꼴을 볼 수는 없다고 호언하며 나타난 구척장신의 라오닉(M. Laonic)이라는 꺽다리 장군, 그리고 체코 공국의 베르디치라는 맹장까지 모두 4명의 적장들이 황제의 연로함을 만만하게 여기며 감히 칼을 빼들었지만 그들 역시 페더러 황제가 눈을 한번 부릅뜨고 오른쪽으로 두서너번 왼쪽으로 너댓번 황제의 검을 가볍게 휘두르자 모두 겁에 질려 꼬리를 내리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았던 것이었다.
그때까지 황제가 걸친 눈부시도록 하얀 비단으로 된 망또는 티끌 하나 피 한방울 묻지 않고 깨끗했다. 다시 고요해진 바다 - 황제의 배는 지브롤타 해협을 통과해 스페인 세비야와 포루투칼의 리스본항을 바라보며 순항하고 있었다. 출항 12일째 황제의 배는 프랑스를 오른쪽으로 끼고 비스케이만(灣)을 거쳐 드디어 도버해협 인근까지 접근했다.
그 무렵 무혈상륙을 기대하던 황제와 참모들은 두 눈을 의심해야 했으니 골리앗을 연상케 하는 매우 포악하고 고약하게 생겨먹은 크로아티아 연방국 출신의 칠리치(Cilic)라는 이름의 해적선 우두머리가 시커먼 가슴털을 드러내고 오른손엔 삼지창까지 든 채로 페더러인지 뼈들어인지 자기 앞에 모습을 보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황제의 참모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겠으나 황제가 전함 위에서 가만 살펴보니 그 해적선의 우두머리라는 사내와는 안면이 있는 듯 했다. 잠깐 생각에 잠긴 페더러 황제는 바로 그 사내가 수년 전 미국 뉴욕벌판에서 벌어진 US OPEN 전투에서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급히 해적선을 타고 도주한 칠리치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註: 2014년 US OPEN 준결승전에서 칠리치는 페더러를 상대로 6:3, 6:4, 6:4로 완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라 우승을 거두었다.)
페더러 황제는 런던 교외 윔블던 성을 코앞에 둔 도버해협에서 자신에게 치욕을 안겨주었던 그를 다시 만난 것에 오히려 감사했다. 이 녀석은 성질머리가 고약하고 오른팔로 휘두르는 검법이 제법 매서운 데가 있어 자칫 방심하다가 급소를 허용하는 순간 다시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황제는 방약무도하게 자신 앞에서 웃통을 벗은 채 활개치고 있는 이 거친 사내를 일단 도버해협 바다에서 두 차례 선공으로 기선을 제압하기로 전략을 세웠다.
분명 이 찰거러미같은 해적은 황제의 선빵으로 기가 꺾임에도 불구하고 영국 본토에 상륙한 황제의 후미를 끈질기게 추격하며 윔블던을 향해 진군하는 자신의 군대의 뒷덜미를 노릴 것이기에 황제는 이것까지 감안을 해야했다.
마침내 페더러 황제가 Nef de L'empereur라는 이름의 황제의 전함 갑판 위로 걸어나와 자신의 글라디우스 윌스니아를 빼어들었다. 도버해협을 은빛으로 물들이고 있던 햇살이 황제의 칼날에 섬뜩하게 반사되었다. 그러자 칠리치라는 해적은 다짜고짜 자신의 해적선을 최고속도로 몰아 황제의 전함 옆구리 쪽으로 붙여왔다. 해적들의 전형적인 전술대로 그는 뾰족한 장못을 때려박은 해적선 머리로 황제의 배를 파쇄하고 급히 갈고리를 이용 황제의 전함에 올라 무시무시한 철퇴로 잔인한 백병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황제의 배에 오른 칠리치의 오른손 철퇴가 몇명의 황제호위군을 살상하고 위협적으로 갑판에 있던 황제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으나 페더러 황제는 새처럼 가벼운 풋워크와 상대의 큰 동작을 역이용한 전광석화같은 공격으로 칠리치의 몸에 여섯군데나 예리한 칼끝을 찔러넣었다.
칠리치의 몸에는 유혈이 낭자했지만 그는 키가 195cm의 기골이 장대한 강골이었기에 쓰러지지 않고 빠른 동작으로 황제의 배에서 뛰어내려 자신의 해적선을 타고 물러갔다. 여섯번의 공격을 하는 동안 황제도 세군데나 팔과 다리에 가벼운 자상(刺傷)을 입었지만 그가 해적에게 가한 치명타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했다.
(註: 1세트 6대3 페더러 승)
황제의 배는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본토 남단 포츠머스 항구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황제의 예상대로 해적 칠리치는 다시 해적선을 몰고 자신의 배를 향해 다가왔다. 2회전을 앞두고 황제는 이번에야말로 그에게 황제의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다시 요란한 충돌음과 함께 황제의 배에 뛰어오른 칠리치가 턱에 난 거친 수염을 휘날리며 황제에게 돌진했지만 황제의 번개같은 투창 던지기가 정확하게 해적의 좌우눈썹을 스쳐가고 또한 노련한 발레리나처럼 공중으로 도약하여 휘두르는 현란한 칼솜씨로 칠리치의 급소를 피해 귀밑과 옆구리 그리고 허리와 정강이 등 여섯군데에 날카로운 상처를 내고야 말았다.
황제는 칠리치를 단숨에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수년 전 뉴욕벌판에서 당한 치욕을 앙갚음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그의 숨통을 지켜주다가 마지막 순간 최후의 검을 윔블던 평원 한복판에서 그의 심장에 찔러넣고 싶은 것이다. 황제는 우아했지만 한편으로는 말할 수 없이 냉혹했다. 황제가 해적의 칼을 맞은 곳은 단 한 곳이었는데 이것조차도 해적이 황제의 정교한 공격에 몸서리를 치면서 아무 생각없이 휘두른 칼에 살짝 왼쪽 정강이를 찔린 것 뿐이었다.
(註: 2세트 6대1 페더러 승)
다시 해적은 해적선을 타고 퇴각했고 포츠머스 항구에 나와있던 수많은 영국 국민들은 멀리 해안에서 말로만 듣던 페더러 황제의 화려한 검술과 의연하고 위엄있는 태도에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신사의 나라답게 영국인들은 그들이 자랑하는 머레이 장군이 미국에서 온 샘 퀘리 장군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여 윔블던 수성(守城)이 좌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윔블던 8차정복의 위업을 코앞에 두고있는 황제의 귀환을 열렬히 반기고 있었다.
드디어 황제의 배가 포츠머스 항구에 도착하고 황제와 참모들은 말을 타고 윔블던 벌판을 가로질러 윔블던 성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적 칠리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 그는 잦은 해적질로 익숙한 영국남부의 지리를 바탕으로 황제가 진군하고 있는 길목에 교묘히 매복하여 기습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려고 할 것이다.
황제의 군대가 윔블던 벌판을 지나 산세가 험한 계곡으로 접어들자 마침내 해적 칠리치와 몇몇 수하들이 나무 사이에 매복하고 있다가 외딴 길목에서 황제를 가로막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바다에서의 두차례에 걸친 싸움에서 입은 부상으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발을 절뚝거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분명 황제의 배에서 두차례나 뛰어내리는 과정에서 발바닥에 잡힌 물집때문이 분명했다.
아무리 거구의 사내라도 작은 물집 하나로 자신의 전투력을 상당부분 잃을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는 매우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을 것이다.몇시간 전 갑판 위에서 자신을 향해 휘두르는 창과 철퇴의 정확성이 평소와는 달리 둔해진 것도 분명 그의 발바닥에 잡힌 물집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황제 앞에 선 그는 해적답지 않게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해적이라도 자존심이 있는 법 - 적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노쇠한 35세의 황제를 인질로 잡아 32억원의 몸값을 영국왕실로부터 뜯어내겠다는 자신의 야망이 그 작은 물집 하나 때문에 물거품이 된 것 같아서 흘리는 안타까움과 분함의 눈물이었다.
마지막 육지에서의 3회전은 눈물까지 보인 칠리치가 배수진을 치고 죽자사자 덤벼든 양상이었다. 황제는 자비롭게도 이 고약한 해적에게서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며 몇차례 그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기도 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황제에게 해적의 패배는 그의 물집때문만이 아니었다. 완벽한 풋워크,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완벽에 가까운 검술, 의표를 찌르는 창던지기와 하늘이 무너져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을 듯한 포커페이스.... 이 모든 황제의 타고난 천재적 재능 앞에 칠리치의 도전은 물잔의 폭풍에 불과한 것이었다.
결국 해적은 다시 온몸에 여섯군데 치명상을 입고 쓰러지고 말았다. 황제는 자비롭게도 쓰러진 그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내고 자신의 참모들에게 목숨을 부지하도록 정성껏 치료해줄 것을 당부했다. 신사적인 황제의 자비에 대한 소문을 듣고 윔블던에 살고있던 사람들이 황제의 귀환을 축하하기 위해 일제히 윔블던 성안으로 들어왔다.
(註: 3세트 6대4 페더러 승)
윔블던 성 - 황제의 옥좌에서 일어나 친히 백성들 앞에 선 페더러 황제가 잔잔한 미소를 띄우며 운집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미 황제는 백성들을 위해 윔블던 지방의 명물인 딸기크림을 하사해 놓았다. 사람들은 스트로베리 크림을 먹으면서 페더러 황제를 하늘이 이땅에 내려보낸 성인으로까지 추앙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천재적 재능과 자비로움을 겸비한 이 놀라운 황제의 치세가 영원할 수 있기를 소망했다.
The End.
자가님 허락하에 게시합니다.
허락없이 펌하기 없기입니다.
첫댓글 블루하트님은 테니스소설을 현재 385화까지 연재하고계십니다.
기회되면 저희 산책까페에 1회부터 연재해 주십사 부탁드렸고 현재 고심중이십니다.
제가 지금 열심히 읽고 있는중인데 테니스지식과 기술은 물론 인문학적 소양까지 두루 조회가 깊으셔서 배울점이 많습니다. 위글이 마음에 들면 댓글로 고마움을 표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넘 고맙습니다,,,테산님들은 참 복이 많은가봅니다,,,마니 덥네요,,행복한 날 되셔요
한폭의 그림이 그려지는군요,,판타지의 세계로 이끌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좋은글 테산님들이 같이 보고 행복해질수 있음 참 좋겠습니다,,,나눔이 있는 세상이 참 아름답고 살만하지 않을려나 생각해보네요,,건강하시고 좋은일만 가득하소서
감동입니다
황제의 귀환을 통해 테니스소설의 진수 맛보고 갑니다
더 많은 소설 기대합니다
소판돈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찌니형님, 제가쓴글이 아닙니다. 옮겨왔을뿐 조만간에 까페에 테니스소설 연재 할 수 있도록 설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