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兩脚有步(양각유보)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을 때만 인생이다 ”
이 문장이 가진 무게는
젊을 때는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20대, 30대에는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오르고,
40대, 50대에는 여전히 등산을 다니며 “아직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60, 70대를
넘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화장실 가는 것,
현관문 여는 것,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이 모든 게 협상의 대상이 됩니다
젊을 때 우리는 성취, 돈, 평판을 위해 노력 했읍니다.
승진, 연봉, 사회적 지위가
삶의 척도였으므로
밤을 새워 일했고,
건강은 담보로 맡겼다
“ 나중에 쉬면 돼 ”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나중이
왔을 때, 쉬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노년에는 정작 아주
작은 것들이 삶의 질을
가릅니다.
스스로 양말을 신을 수 있는가?
혼자 목욕을 할 수있는가?
손자를 보러 버스를 탈 수 있는가? 등
이런 질문 앞에서 과거의 직함이나 통장 잔고는 무력해집니다.
걷기, 일어서기, 계단 오르기, 이런 단순한 동작이 무너지는 순간,
삶 전체가 흔들립니다.
처음에는 “오늘따라 좀 힘드네”로 시작하고,
그러다 지팡이를 짚게
되고, 이내 휠체어에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누군가의
부축 없이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날이
옵니다.
그때 비로소 깨달을 것입니다.
기본 체력은 노후의
독립성과 자존심을 지키는 최소 조건이 었다는 것을, 돈이 많아도
이 능력을 잃으면 생활의 자유 대부분을 잃게 됩니다.
24시간 간병인을
고용할 수 있어도,
스스로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욕구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타인에게 의지해야 하는
순간마다 자존감은 조금씩 깎여 나갑니다.
70대 이후의 행복은 큰 재산이나 화려한 조건이 아니라 기본 체력에서 나옵니다.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
커피를 내릴 수 있는 것,
근처 공원까지 걸어가
벤치에 앉을 수 있는 것,
친구를 만나러 동네 찻집에 갈 수 있는 것,
이런 평범한 일상이
가능할 때, 노년은 여전히 삶이 됩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아직 계단을 오를 수 있고,
버스에 뛰어오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축복입니다.
그 축복을 지키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오늘도 걷고, 움직이고,
몸을 쓰는 것 근육은 배신하지 않습니다.
50대에 쌓아둔 근력은
70대의 존엄이 되고,
60대에 유지한 유연성은
80대의 자유가 된다고
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10년,
20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지금 이 순간
어떻게 몸을 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명품 가방을 사는 것보다,
매일 30분 걷는 습관이
더 값지고, 은퇴자금을 모으는 것만큼, 스쿼트 10개를 할 수 있는 허벅지 근육을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인생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쓰이는지도 모릅니다.
“ 나는 끝까지 내 발로 걸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품위 있는 결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건강을 위하여 兩脚有步(양각유보)를 되새겨 보시고, 즐겁고 행복한 날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