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대회를 앞두고 약간은 설레는 것이 대학입시를 앞 둔 우리 반 아이들
심정과 같기에 며칠 전 수업 시간에 내 배번에 각자 소망을 적게 했다.
교육 현실을 반영 하듯 내 가슴에 달린 배번속의 작은 희망들은 다양했다.
All 1등급, 서울 입성, 수능대박, 쭉쭉 방방 되게 해 주세요, 1박 2일 팀 만나게 해 주세요 등
나름대로의 소박한 꿈을 실어 준다. 가끔씩은 선생님의 머리카락이 걱정이 되는지 그림으로
표현하여 웃음을 지어 내기도 한 배번을 하루 전날 정성스레 옷에 달고 토요일 일과 후 KTX
열차를 타다.
차창에 비친 봄 날 오후의 풍경이 달리기 하러 가기 보다는 봄 소풍 간다는 기분이 들면서
동시에 혼자만의 여행으로의 가족에 대한 미안함도 교차된다. 그래 4월 좋은 날에 무궁화
타고서 진달래 흐드러진 동해남부선을 소풍을 떠나기로....
옆에 동료가 긴장 해소와 약간의 숙면을 위해 큰 캔 맥주 한 개를 권한다. 몇 년 전에 경산
마라톤 대회 때 내려오면서 마신 적이 있었는데 출발 때부터 맥주로 시작...
약간의 잠과 독서 그리고 재미나는 이야기로 서울역에 도착, 이후 숙소를 찾아 서울의 지하로
이동하여 달리기만 하면 너무 아쉬운 감이 있어 숙소 주변 인사동 거리를 가니 지하철 계단부터
밀리던 이 몸이 거리에서도 이리저리 떼밀린다.
너무 혼란스럽다고나 할까? 서울 갈 때마다 느끼는 분주함과 여유 없어 보임에 느긋한 구경을
기대했던 일행들은 하나같이 발길을 식당으로 돌린다.
반주로 6명이서 소주 3병을 자빠뜨리고 의기충천 내일 일전에 힘을 불어 넣고 숙소 오는 길
찌짐집에서 숙면용으로 한 잔만 더하고 잠자리에 들다.
전 날 뉴스에 일요일 전국적으로 황사가 올 것이라 해서 걱정했었는데 하늘은 좋아 보였다.
광화문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전국의 마스터즈 마라토너, 어느 한사람이라도 의미 없이 105리
길을 뛸 사람은 없어리라.
사회자의 목소리가 서울 한복판을 울리는 가운데 이봉주 선수의 선전도 기원하는 박수도 보낸다.
출발을 기다리면서 내 옆에 서있는 -사는 지역도, 직업도, 종교도 모르는- 사람들이 달리기 하나만으로
친밀감마저 들게 된다.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긴장도 풀고, 인사도 하며 카운트다운.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오늘 완주 할 수 있다!”
전국의 2만 5천명이 서울 도심을 내달리니 청계천을 돌아 나오면서 보니 끝없는 행렬이다. 횡단보도에
우리 때문에 바쁜 걸음 묶여있는 시민들과 자원봉사자 모두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함께 한다.
불타 버린 숭례문을 가리려 만든 회색빛 담장과 그 안에 푸른 천막에 덮여 있는 문화유산을 차마 돌지
못하고 올해는 바로 앞에서 좌회전을 해야만 했다.
문화가 없는, 역사의 흔적이 없는 민족치고 부흥한 나라는 없다고들 하는데…….
7-8킬로를 접어드니 서서히 몸이 풀리고 달리기에 쉽게 집중할 수 있었다. 5킬로쯤에서 오늘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 줄 사람을 찾았다. 광명지역 마라톤 소속의 여자분 이었는데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데 감히 따라 잡기는
어렵겠고 시야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오늘의 레이스는 성공적이라 생각이 들어 한 사람에게만 집중했다.
그래도 계속되는 달림에서 주변 풍경 감상과 내 마음속 여러 가지 일들을 순서 없이 꺼내 스스로 문진하고
처방전을 쓰는 사이 페메의 모습은 멀어지고 또 따라 가고 하기를 약 25킬로, 그 이후는 또 다른 페메를 정해서
뛰기는 하는데 초반보다는 달리기에 집중보다는 체력의 한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29키로 지점에서 동료의 모습을 보았으나 그냥 가기로 했다. 혹시나 상대의 컨디션을 알지 못하여 달림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잠실대교 입구의 35키로 지점에서 지난 번 대회에서는 다리 위를 한없이 걸었던 기억이 나를 유혹한다.
잠깐 걸으면 안 되느냐고? 마라톤 벽이 내게 나타난 것이다. 오늘의 레이스는 걷지 않기, 아이들 소망 빌어주기,
가족에 고마움을 알기 등으로 정했기에 순간의 유혹을 물리치고 나니 다리 끝에 쯤에서 쭈쭈 바를 준다.
소주회사 홍보용으로 주었는데 우리 클럽에서 먼 천달 할 때 먹던 멜론바 보다는 맛이 덜 했다.
이제부터는 마의 7키로가 남았다.
누군가 말하기를 마라톤은 한 날 두 경기라 말한 적이 있다. 전반 30킬로와 후반 12킬로이다. 달리기를 할 때
마다 느끼는 후반부의 힘듦이 달리기를 더욱 하게끔 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불나비처럼 뛰어 든 나에게
한편으로는 응원의 박수도 보내고 싶었다.
38킬로에서 40키로까지 직선 주로가 어찌 거리도 길게 느껴지는지 아들 녀석은 38키로 지점, 아내는 피니쉬
라인에 기다리면 좀 더 힘이 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보았다.
그래도 주로에는 말없는 달리기는 계속되고, 피니쉬 1.5키로 앞두고 3시간 20분 페메가 후루룩 지나간다.
마치 여러 마리 말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뒤로 돌아 볼 힘도 없이 뛰는데 앞으로 힘차게 가고 있다.
아! 안 되는데....
또 한 번 내 자신이 나를 유혹한다.
순간 눈물이 난다.
남은 거리가 달려 온 거리만큼이나 힘든 이 상황에서 모든 게 소진된 듯 한 느낌, 더 이상 달려 지지 않을,
그저 주저앉고 싶은 마음뿐인데 풍선은 내 마음을 아는지 두둥실 페메의 어깨 위를 잘도 잠실운동장으로
날아가고 있다.
순간 아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야! 이 꿀물 먹고 꼭 완주해!”
어제 집을 나설 때 아내가 해 준 격려의 말이다.
마지막 1키로 남았다는 표지가 다가온다. 잠실 운동장의 응원의 함성 소리가 점점 커진다.
거대한 잠실운동장의 입구가 나를 마중한다. 남아 있지도 않을 힘이 쏟아나 메인 스타디움의 트랙을 거의
100미터 달리기 정도의 속도로 달려 긴긴 105리의 마지막을 개선장군처럼 승리자의 함성을 질렀다.
이제 기록의 굴레는 어느 정도 벗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풀코스마라톤을 스물 번 쯤 뛰면서 기록에 조금은 초연해 지고자 했고, 오늘 24번째 풀코스에서도 시계는
거의 보지 않고 오로지 내 몸이 말하는 소리에 귀 기울인 내 자신에 고맙다.
단순하게 건강하기만을 원한다면 후반부 10키로의 부분은 필요 없는지도 모르겠지만 달리면서 내 체력의
한계에 도전해 보고 그러기 위해 일상의 달리기부터 재미로 시작하여 달리는 것이 자신의 “진정한 중심”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첫댓글 정선생!간만에 보는 감동적인 풀후기였소. 훌륭한 담임선생님을 만난 그 아이들이 부럽다. 언제 쐬주 한잔 합시다!!!
한 인간으로, 가장으로, 책임있는 직장인으로, 선량한 효마클회원으로,, 간만에 느끼는 인간미 풀풀나는 후깁니다. 다시금 주로에 서서 정샘의 감동을 느끼고 싶습니다. 대우샘 힘!!!! --위M과 자리되면 낑가주쇼 ㅎ ㅎ ㅎ
대우샘... 내 딸도 대장정에 올랐고,,, 샘의 후기가 가슴을 칩니다.
정선생님! 10분대 진입을 축하하며 마라톤에 대한 애정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더욱 더 발전하는 모습 기대합니다. 정대우 힘!!!!!!
오래만에 읽어보는 대회후기,학생들의 기와 염원 정샘의 성실한 연습이 신기록 달성의 꿈을 이루었습니다,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축하주 한꼬뿌 합시더.
그렇지요! 참말로 간만에 등장한 후기올시다. 자신의 생각대로 이젠 정말 기록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게 좋겠지요. 제 생각에도 기록에 목매는 것보다는 즐달, 건달이 마라톤이 갖는 매력을 좀더 오래 유지하는 방안이라고 여겨집니다. '서브3!'이 얼마나 대단한 기록입니까? 허나 대단한만큼 목표달성 이후의 허망감도 크게 마련이겠죠. 그러니 우리 주위의 서브3의 고수들이 그런 허망한 심사로부터 부분적으로나마 영향을 받아 마라톤 초심을 유지하지 목하고 있자 않나? 여겨지기도 합니다. 즐달! 건달! & 정 선생! 아자! 아자!
대우야! 골인 지점에서 여유있는 폼 보니 조만간 일 내것는데 조만간 함 보자 요령피우는 만교하고...
정샘! 축하합니다. 마라톤이 단순한 달리기라고 한다면 누가 그렇게 힘들게 뛰겠습니까? 마라톤이 주는 감동! 오래간직하시길 바랍니다.
달림의 철학이 녹아 있는 후기, 후배 달리미들의 필독 후기 강추 ! 정대우 힘!!! 옥샘 힘!!!
간만에 올라온 풀코스 후기, 초보도 아닌 고수의 후기. 감동적입니다. 아이들의 염원을 가슴 속에 담고 간절한 마음으로 뛰셨을 정샘을 담임으로 가진 아이들은 축복받았습니다. 모든 일에 열심이신 정대우 샘 히~~~ㅁ!!!
달림은 명상의 시간, 상념의 언저리에서 묻어나는 글들이라 더욱 좋습니다. 달리기, 읽기, 쓰기라는 3기를 통해 조화를 꾀하는 정 선생 힘.
정대우선생님 축하합니다. 두 팔을 들고 환호하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고 아름답습니다.
정서상~ 소원성취했으니 축하,연습주에 얼굴함 보자~
대단한 정대우!!!
효마클의 또다른 감동은 후기 읽은 재미... 정말 아름다운
리기 인듯 합니다... 추카추카
선배님 축하 드려요...^^ 담엔 같이 풀코스 완주해요...^^
잘 뛰네. 같이 한번 뛸라켔더니 고마 니 혼자 뛰고 酒路에서나 함보자 욕봤다.
대단하십니다. 벌써 24번씩이나.. 기록도 좋으시고 이번 서울 대회는 오래 기억에 남으시겠네요. 축하 드립니다.
정선생 축하 축하,. 효마클 카페에서 정말 오랜만에 읽어보는 후기네요,..
평소 선배님의 다정다감함이 후기에도 그대로 묻어납니다. 가까운 가족과 학생들 정말 행복하겠습니다. 기록 축하드리며 오래도록 건달,즐달하시기 바랍니다. 정대우 선배님! 힘!!!
늘 생각은 있었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후기랍시고 올려보았습니다. 다함께 뛰며 즐기는 효마클이 되도록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정선생 축하합니다. 부럽네요. 후기를 읽으며 난 언제쯤 다시 완주할 수 있으려나 생각이 듭니다.
정샘, 벌써 풀이 24번이나 되었소. 대단하구만요. 즐달하시면서 달리기는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축하합니다. 힘!
나도 이제 완주후기 다시 쓸때가 되었는데...정대우 힘!!!!
뒤늦게 후기를 읽었습니다. 마냥 와~~~ 우와~~~ 감탄사만 나오네요~ 배번에 적힌 아이들의 소망과 선배님의 마음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 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