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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지난번 한교님과 나누었던 개마기병건 말입니다만, 이번에 쓰려고 하는 백년 전쟁 이야기가 좀 지루해지고 내용이 불어나는 챕터라(;;) 좀 다른 잡설을 해보고자 합니다. 물론 이 내용에 대해서는 저도 궁금한 점도 많고, 모르는 점도 많습니다만 여러분들의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아, 저는 개인적인 용례일지는 모르겠지만 마갑을 씌운 놈을 중장기병, 없는 놈을 중기병이라고 합니다-ㅅ-;; 이 점 유념하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
1. 발생
중장기병의 기원은 어디일까요? 에, 뭐, 중장 기병 자체가 전세계적으로 워낙 많이 쓰이던 놈들이라 여러 가지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그래도 기원전 6~1세기, 이란 고원에서 발생 했으리란 추측이 가장 신빙성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원래 새로운 것이 나오려면 그에 상응하는 조건과 이유가 필요하지요. 그럼 중장기병이 발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원래 기병이란 놈들은 높은 기동성을 바탕으로 전장을 전전하며 적과 교전하라고 있는 놈입니다만, 이놈의 중장기병이란 놈들은 말에 마갑을 씌우고, 사람도 중무장하고 온갖 무거운 무기를 들고 싸우던터라 기동력이나 지구력이 경기병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놈입니다. 도대체 이 놈들이 왜 나온걸까요?
페르시아쪽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만, 원래 이란 고원이란 곳이 상당히 독립적인 지주와 무사들이 많이 거주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카탁하면 떠오르는 파르티아 역시 중심은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인근의 도시들에 위치해 있었고, 수사나 페르세폴리스도 좀 더 이란쪽으로 갑니다만, 역시 이란 고원과는 좀 거리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페르시아든 파르티아는 이 지역에 상당한 독립성과 드넓은 토지를 가진 지주 호족들이 산재해 있었고, 당연히 이들은 나름대로의 강력한 사병 집단을 거느리고 이란 고원의 지배자로 떵떵거렸을겁니다.
하지만 이 호족들에게도 무서운 놈들이 있었으니---

(무서운...!)
바로 북방의 유목 민족들, 그리고 이들의 주력 부대인 초원 기병들입니다. 뭐, 미디블에서야 150플로린 하는 노매딕 카발리도 쓸만은 합니다만, 창병들이 가서 살포시 찔러주면 못 잡을 놈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놈들이 활을 들고 돌아다닌다고 한다면?=_= 보병으로...못 잡지요-ㅁ-;; 이놈들이 원거리에서 화살을 날려주면 보병들이 멋대로 쫓다가는 "탈진함"이 되어 무심한 기병은 제 좃난가 내 좃난가가 되버리는 겁니다-_-
당연히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병 집단이든 전차든 양성 해야겠습니다만, 호족들이 유목민하고 기병전으로 맞짱 떠서 이기면 여기서 호족하고 있겠습니까-ㅅ- 전차도 마찬가지입죠. 전차는 안정된 사격 자세를 제공해 주지만, 전차 한 대에 말이 몇 마리가 필요합니까. 이 기병들이 우세한 기동력을 발휘해서 보병들을 유린하고 다닌다면, 호족 A씨는 대책이 없습죠. 뭐, 그런 경기병이야 돌파 작전이 제한되니 강력한 밀집 대형을 가진 보병 대열을 허물어트리는건 힘들겠습니다만, 호족 A씨에게 뭘 바라겠습니까-_-
뭐, 이게 불가능하다면 성으로 피신하는 수가 있겠지만 그렇게되면 "병술년 정월 초 이틀, 상께서 왜국의 와도손장군과 일곱번 싸워 일곱번 패하였다. 왜장 와도손이 말채찍을 두드리며 "턱 아래 그것은 음모인가?"하니 상이 두려워하여 성밖을 내다보지 못하였다."가 되는겁니다-3- 그럼 기병들은 신나서 주변 농촌들을 약탈해서 돌아가는거지요. 뭐, 마케도니아의 국왕이셨다는 A씨야 경기병과 뛰어난 전략으로 스키타이 궁기병들을 유린했다고 합니다만 호족 A씨에게 뭘 바라겠습니까-_-;;

(이분들과는 다르지요-_-)
그러던 어느날, 이번에도 신나는 원정~을 감행해온 유목 민족들은 자기 앞을 막아서는 괴생물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니, 저럴수가! 온 몸을 쇳덩어리로 감쌌는데, 그놈 아랫도리도 무지막지한 금속조각을 두르고 있는겁니다. 잠시 후, 그들은 그 정체가 사람과 말이라는걸 깨닫게 되겠지요. 상당히 움츠러든 유목민족들, 평상시 장기대로 적을 향해 화살을 날립니다. 그러나, 기세 좋게 쏘아보낸 화살에 맞고 거꾸러지는 놈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헉, 하는 사이 이놈들이 느리기는 하지만 보병보다는 빠르게 창을 앞세우고 달려옵니다. 어쩌겠습니까-_-;; 뭐, 진짜 강력한 유목민 부대였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약탈하러 온 놈들이라면 튀어야지요;;
이렇게하여 정주민이 유목민족을 개활지에서 요격할 수 있는 새로운 병과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아. 그런데 그럼 왜 이제야 나타난걸까요?

(마녀 할머니...왜 이제야 오셨나요...)
일단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이전의 말은 체격이 작아서 완전 무장한 사람을 태우고 효과적인 전투를 벌이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아시리아 부조에는 갑옷을 입은 기병의 모습이 보이기는 합니다만, 마갑까지 씌우면 도무지 무리였지요. 그런데 이 즈음해서 이란 고원에서 새로운 말 품종이 개량된 겁니다. 힘이 좋고 거대한 말은 주인과 자신을 무장시키고도 적과 교전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해서, 이란 고원에서 알팔파라고 불리는 사료 작물이 재배되기 시작합니다. 전마라는 놈이 키우기 귀찮습니다. 그냥 풀 베어서 주면 끝이 아닙지요. 이놈들이 입맛이 까탈스러워서, 생초를 주거나 곡물을 줘야지 소한테처럼 여물 쒀주면 못 배깁니다. 곡식도 덜익은 놈으로 먹으면 소화불량입지요-_-;;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가서 마초가 부족해지자 덜 익은 곡식을 사료로 줬더니 단체로 말의 위장이 반기를 들어서 기병들이 고생했다고 합니다-_-;; 그런데 사람이 먹는거랑 말이 먹는거랑 다른 작물이 재배 가능해지자 말의 사육도 가능해진거지요. 물론 이후에도 말에게 곡물을 먹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만...
2. 전파

한편, 파르티아를 중심으로하는 중동 국가들은 중무장한 기병이 유목민족의 화살 뿐만 아니라, 보병들의 무기에도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즉 고정된 보병 진지에 대한 돌격에서 이 기병들은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거지요. 기병전을 하더라도 중무장한 이들의 위력은 상당합니다. 더군다나 기병전의 경우, 자칫하면 둘 다 대열이 헝클어져 단체 일기토(...)로 전환되기 때문에 개인 무술이나 무장, 군마의 질이란 요인들이 매우 중요해집니다. 이 점에서도 중장 기병이란 병과는 강력한 동방 군주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물론, 이 시대에도 중장 기병, 즉 캐터프랙터의 활용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웃의 강력한 나라 ROME! 세계 최강(!) 보레누스와 풀로가 있는...아니 군단병(Legion)이 있는 로마군 보병들은 유능한 지휘관이 지휘하는 한, 기마 궁수들의 화살비나 캐터프랙터의 돌격에도 진형을 허물어트리지 않고 버텨내고, 충분한 기병 전력이 받춰준다면 역습을 가해 강력한 적을 격파할 수 있었습니다.(그런 점에서, 카레 전투에선 크라수스의 삽질과 훈련 부족으로 인해 로마군이 자중지란으로 무너진 면이 더 큽니다. 안토니우스의 원정에선 기병 전력이 모자랐구요.)
어찌되었건, 트라야누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치세를 겪으며 로마와 파르티아의 오랜 적대 관계는 로마 쪽으로 추가 기울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로마도 저물어가기는 마찬가지여서, 새롭게 등장한 페르시아는 이후 로마와 비잔티움을 두고두고 괴롭히는 숙적이 되지요.
물론 로마군도 군제가 무너지면서 군의 주력이 기병으로 바뀌고 중장기병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캐터프랙터, 클리바나리를 비롯한 마갑을 입힌 기병들이 로마군의 주된 병과로 활약했다고 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물론 페르시아쪽에서는 이들이 명실상부한 주력이었습니다만...
이후 동방의 헤게모니를 두고 다투던 동로마와 페르시아에서도, 동로마, 이후의 비잔티움이 되는 제국의 군대는 마갑을 입힌 기병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당시 동로마의 기병은 경기병으로 훈족 기병, 충격 기병으로 게르만족 기병을 고용하였고 로마인들은 중무장한 궁기병으로 싸웠습니다. 특히 벨리사리우스가 이끌던 이사우리아인 기병대가 이 모습을 보여주는데 마갑은 없고 몸통 갑옷과 각반을 갖추고 말을 달리며 화살을 쏘거나 적을 향해 돌격 작전을 시행할 수 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비잔티움 군대의 척추가 되는 카타프락토스도 벨리사리우스 기병대에 좀 더 장갑(상당히?)을 추가하는 수준이었지요.

(카타프락토스)
지리하게 진행되었던, 한 때 비잔티움을 멸망 직전까지 몰고간 페르시아 전쟁은 결국 니네베 전투에서 헤라클레이오스 황제가 페르시아의 장군 라자테스와 일기토를 벌여 그의 머리를 날려버린 이후, 비잔티움의 기적적인 역전승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물론 비잔티움도 상처 투성이였지만 페르시아는 척추가 부서졌고, 이 틈을 노려 흥기한 이슬람 세력들은 페르시아를 멸하고 비잔티움을 시리아와 이집트에서 몰아냅니다. 이 과정에서, 이슬람 군대는 초기의 종교적인 열정만으로는 서서히 기력을 추스리는 비잔티움의 군대와 맞서 싸우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대신 이들이 모델로 삼은 군대는 페르시아가 아니라 비잔티움이었습니다. 마갑을 입힌 기병은 물론 이슬람에도 존재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주력은 아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편, 지중해의 헤게모니를 두고 비잔티움과 이슬람이 대립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동안, 캐터프랙터는 전혀 반대편 루트쪽에서 대단한 주목을 받습니다.

4세기는 동양 전쟁사에서 일대 혁신이 일어난 시기입니다.
등자와 철갑기병이라는 중요한 혁신이 동시에 일어났지요. 아마 중국으로 철갑기병이 들어오는 루트는 북방의 초원계 유목민족으로부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특히 동북아시아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쪽은 선비족이고, 늦어도 4세기 초중엽에는 흉노와 고구려, 좀 더 후에는 중국과 한반도 남부에도 전파 되었으리라 봅니다.
'전쟁으로 보는 중국사'

(낚였다...전쟁으로 보는 중국사...)
(낚였습니다. 원제는 Osprey의 Men-at-Arms, 그 중에서 이 부분에 관한 것은 <Imperial Chinese Army (1), BC 200~589>입니다ㅜ.ㅜ 설마 무장병 시리즈일줄이야;;)...에 따르면, 동아시아에서 유물로 확인되는 최초의 완벽한 중장기병의 모습은 고구려의 동수묘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전의 기록으로 보아, 비슷한 철갑 기병은 선비족이 먼저 사용하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4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선비족의 모용부는 5,000명의 기마궁수를 사슬로 묶어 흉노족 기병의 돌격을 저지했다고 합니다. ...궁기병을 사슬로 묶을 이유가 뭘까요=_=;; 이는 선비족의 기병들이 강력한 무장을 했음을 반증하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장갑기병이 나타나는 것은 후한말부터로 알고 있습니다. 관도 대전에서도 원소군은 600개의 개마, 조조군은 10여개의 개마를 보유했다는 글을 읽은 적 있습니다. 물론 302년에 발굴된 유물에 따르면, 당시 마갑은 완전한 형태라기보다는 가슴가리개 형태의 초보적인 마갑으로 추측됩니다.
이 중장기병의 트렌드는 순식간에 동북아 일대를 휩쓸었습니다. 고구려, 북위, 유연, 돌궐, 심지어 남조와 백제, 신라까지도 강력한 중장기병을 보유하며 이들을 결전부대로 활용했습니다.
고구려에서 중장기병으로 추측되는 최초의 기록은 동천왕 때 입니다.
비류수와 양맥곡에서 관구검이 이끄는 위군을 연파한 동천왕은 기세 좋게 5,000의 철기를 앞세워 적을 추격합니다. 그러나 원래 추격이란 위험한 법. 손자도 달아나는 적을 쫓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일까요? 달아다는 적을 추격하는데 대열을 유지하고 추격하기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효과적으로 적을 추살하기가 불가능해지는데, 할 수 없이 개미떼같이 흩어지는 적을 향해서는 개미떼같이 따라가야 적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지요-_- 이 와중에서 경험많은 군대라면 대열을 재정비하고 흩어진 아군 전열을 향해 공격을 감행할 수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역습(counter attack--of char-_-;;;;?--)이란 이런 것으로, 임진왜란 때에도 경험 많은 일본군 장군들이 자주 써먹어 조선군을 괴롭혔다고 합니다.
어찌되었거나, 동천왕의 기병 개돌은 관구검의 역습에 대패하고 군대가 거진 쪽박 찼다는건 넘어가더라도, 여기서 철기란 존재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고구려의 국력으로 중장기병 5,000을 키운다는 것은 확실히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만, 이것이 중장기병을 포함한 공격부대의 숫자이거나, 앞 부분만 가린 불완전한 형태의 중장기병일 가능성도 고려해 봐야 겠습니다.

어찌되었건 동수묘에서 고구려의 완벽한 형태의 중장기병을 확인할 수 있고, 이런 식의 군대 구성은 당시 동북아 전역에서 이루어지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병 부대와 장갑 궁수들이 지원을 받으며, 등자에 발을 디디고 4미터, 혹은 고구려처럼 5.4미터의 삭(Lance)을 겨누고 달려드는 중장기병의 파괴력은 엄청났을겁니다. 화살을 쏴도 제대로 피해를 주기 위해서는 근접해야하고, 한 번 적진을 파고든 중장기병들은 엄청난 방어력때문에 몰아내기도 어려우니까요. 물론, 잘 준비된 보병 부대를 향한 중장기병의 개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파멸적인 결과를 불러왔습니다만, 이들의 존재와 충격전술은 당시 전장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지배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물론 삼실총 벽화로 보건대, 고구려 기병은 양 손으로 창을 잡고 적을 찌르고 있어, 돌격전에서 큰 위력을 발휘하는 어깨에 창을 끼우고 돌격하는 방법(couched lance)을 익혔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5.4m에 6~9kg이나 되는 크고 무거운 창의 활용은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기엔 충분했을겁니다.
이런 트렌드는 백제와 신라(백제의 명궁 축자국조가 앞에서 달려오는 신라의 선봉 장군에게 활을 쏘아 마갑과 말, 안장, 그리고 갑옷까지 꿰뚫었다는 기록이 있었던 것 같군요 ㅇㅅㅇ) 중국에서도 보여지는데, 남조는 활용할 수 있는 말에 한계가 있어서 큰 활약을 못했다고는 하나(물론, 중장 기병 부대는 있었습니다.), 적어도 북조에서는 계속해서 활약했고 중장기병의 활용은 수나라까지 이어집니다. 이 중장기병의 전장 지배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바로 당태종 이세민이었습죠.

(당의 기병. 마갑이 없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물론 친위부대엔 있었지만)
이세민, 그리고 그의 명장인 이정--육화진도 이정의 병법서인 '위공이정병법'에 실려있고, 이후 당의 기본 전술 중 하나였다는군요--이 이루어낸 일련의 군제 개혁은 당시의 중장기병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통일 전쟁 당시 이세민의 기병 부대는 삼일 밤낮으로 적을 추격해서 끝내 섬멸했다고 하는데, 이는 적어도 전술적으로는 오랜 활동을 감당해 낼 수 없는 중장기병이라면 불가능한 전과입니다. 당의 군대는 과감하게 마갑을 없애고 장갑을 줄였습니다. 이렇게하여 기병에 우세한 기동력과 지구력을 부여하는 한편, 북방민족에 비해 부족한 기병의 숫자를 늘릴 수 있었습죠.
대신 줄어든 충격력은 강력한 궁노수를 충원하여 보충했습니다. 한 때 궁노수의 비중이 전군의 1/3까지도 올라가는데(궁수와 노수의 비율은 일반적으로 4:1이었다는군요), 일종의 삼단 사격으로 화망을 구성해 적을 저지한 다음, 활과 노를 버리고 창을 들고 창병 부대와 합세하여 적의 공격을 저지합니다. 뭐, 따로 석궁을 수거하는 부대가 존재했다고 하더군요ㅇㅅㅇ
어찌되었건 이런 방식으로 당은 강력한 돌궐의 중장 기병부대를 격파했으며, 주필산 전투에서도 화려한 전술과 특성을 발휘하여 고구려군을 격파합니다.
주필산 전투에서도 당의 이러한 전술 방식이 완연히 드러나는데, 우선 돌격해온 고연수군을 이세적 부대가 힘겹게 저지하는 사이, 매복해두었던 장손무기와 도종의 부대가 우수한 기동력을 발휘하여 고구려군의 후미를 기습합니다. 당황한 고구려군은 후방 대응을 하기 위해 전방의 압력을 줄였습니다만, 한참 벌어진 전투의 결과에 고연수도 그다지 유능한 인물은 못 된 듯, 전열을 정비하지 못하고 혼란이 일어났고 그 틈을 타 이세적의 보병부대가 장창을 들고 짓쳐들어와 고구려군에게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고연수군은 교전만으로 1만 이상의 병사들이 죽고 대패해 물러났습니다만 결국 포위되어 항복했지요. 물론, 이 때 태종이 노획한 물품 중에 명광개 5,000점이 있는데, 보통 당군이 장갑을 줄이고 흉부에 장착한 갑옷이 이것이므로 고구려군도 비슷한 개량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주필산 전투로 보건대, 이를 활용하는 측면에서는 당태종에게 밀린 듯 하군요 ㅇㅅㅇ
적어도 당 이후, 중국의 전장에서 중장기병은 추방됩니다만, 기마 민족들은 여전히 중장기병을 활용합니다.
물론, 각 민족마다 특징이 있어서 거란족은 기병의 마갑을 경량화 시키는 대신 기동전과 양동 작전 등 다양한 전술 수행 능력을 부여했고

(비뚤어졌어!)
여진족은 반대로 두 세겹씩 갑옷을 껴입히고, 여기에 심지어 사슬로 서로를 묶어 전열을 무너트리지 않게 한 뒤, 적진을 붕괴시키는 괴자마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사슬로 묶은 이유는 퇴각을 막는 이유도 있지만, 느리게 갈 수록 죽던 안 죽던 화살비는 두드려 맞게 되고, 자칫하면 대열이 헝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열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서긍의 고려도경에서도, 고려 기병은 미늘갑옷을 입고 마갑을 갖추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고려 기병도 삼국 시대와 큰 차이가 없었던 듯 합니다. 몽골 기병 중 중장기병의 모습은 여러 자료에서 자주 보셨을겁니다;;

(비잔티움 클리바노포로스)
유럽에서도 비잔티움 제국에서 한 때 중장기병을 부활시켰습니다. 963년 제위에 오른 위대한 군인황제인 니케포로스 2세 포카스는 장군 시절에 함단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한 때 알레포를 점령하여 함단조의 기세를 꺾었습니다. 소아시아 지주 귀족의 대표자였던 그는 이슬람 세력을 향해 강력한 돌진을 벌이는데 그 와중에서 돌파작전을 시행하기 위해 클리바노포로스라는, 마갑을 갖춘 기병을 양성시킵니다. 이들은 장창과 작은 원형 방패, 사슬 갑옷과 일반 카타프락토스가 입는 것보다 긴 철제 조끼(클리바니온), 그리고 맨 위에는 패드를 댄 갑옷(에필로리콘(!))을 걸칩니다.
아마 니케포로스 황제가 충실히 지주 귀족의 이익을 반영하면서도 테마 병사들의 토지를 3배로 확대시키는 것도 저런 식, 혹은 봉건제도와 유사한 강력한 돌격 기병을 양성하려는데에 이유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압?抵볜?운 비용 때문에 이들은 타그마타에만 소속되어 있었고(공식적으로는 1,008명), 만지케르트 이후 소멸됩니다.
이외에 이슬람쪽에서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쪽 군사사는 무지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ㅜ.ㅜ
3. 활용
비잔티움의 클리바노포로스를 보면, 이들의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겁니다. 일반적으로 비잔티움의 기병들은 깊은 방진을 짜는데 비해, 이들은 첫열이 20명, 12열이 64명인 등차수열(-_-;;)꼴로 총 504명이 쐐기꼴 부대를 이루어 대열을 짰습니다. 타그마타에는 이 부대가 2개 있었지요 ㅇㅅㅇ 이걸로 미루어보건대, 중장기병의 중요한 활용 요인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실겁니다.
이들은 전술적으로 느릴 뿐더러, 오래 활용하기도 어렵습니다. 복잡한 기동은 말할 나위도 없지요. 대신, 강력한 돌파력과 방어력으로 적진을 붕괴시키는 결전부대의 역할로 이들을 능가할만한 부대를 찾아보기란 어렵습니다. 주로 이들은 중앙이나 양익에 배치되는데, 괴자마도 양익에 배치하는걸 선호했습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기동은 정면돌격, 혹은 크게 우회하는 기동밖에 없거든요.
반대로 이들이 한 번 전열을 뚫고 들어오면? 몰아내기가 참 난감합니다. 송나라 같은 경우도 악비같은 명장이 금나라 기병 돌격을 막아냈을 때 사용한 무기가 3m나 되는 도끼(...)입죠. 1.5m정도 되는 도끼만 해도 휘두르기가 무거운데-대신 효과는 탁월해서 헤이스팅스에서 해럴드의 허스칼들은 노르만 기사들의 목을 확실히 따줬습니다 ㅇㅅㅇ-3m나 되면...물론 과장이 섞이지 않았는가 싶지만 그만큼 중장 기병이 적진으로 파고들었을 때의 위력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활용은 분명 큰 효용이 있었고, 이것이 주된 사용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제부터 한교님께서 지적하신 사항입니다만- 기동의 제한은 전술적인 것이었습니다.
전략적으로 추측을 해보건대, 분명 중장 기병은 군대의 행군을 느리게 할 것 같습니다만, 사실 중장 기병뿐만 아니라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보병들도 자기 갑옷에 무기, 천막, 군복, 냄비(-_-), 의복 등등을 짊어지고 다녀야 합니다. 자기 몇 배나 되는 무게를 이끌어야 하는 소나 말은요? 덜커덩거리는 공성기구와 사치품, 약탈품, 보급품...이런걸 고려하면, 아주 급박한 기동이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중장기병 때문에 전략적으로 기동이 느려진다는건 아니라고 봅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보급품을 실어 나르는게 얼마나 기동력을 잡아먹는지는 아실겁니다-ㅅ-;;
더군다나 중장 기병은 말이 여러 마리일 "수 밖에" 없습니다.
1)정주민의 경우--->그런 무장을 갖출 수 있는 존재는 당연히 돈 많은 부자님들입죠-ㅅ- 집에 말 몇 마리 있는건 일도 아닙니다.
2)유목민의 경우--->...

중세 기사들도 전마를 지치게 하지 않기 위해 전장으로 갈때는 다른 말을 타고 다닙지요. 이분들도 그렇게 했을것이고, 험준한 산악지형에서는 그것도 보병이 짊어지고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_- 더군다나 전마란 놈들도 오랫동안 기동시키는건 금물입니다. 여기에 보병도 지치고, 달구지 끄는 소나 말도 지칩니다.
거란족의 경우 더욱 적나라합니다. 아무리 경량화 시켰다고 해도 다수의 중장기병을 보유한 그들입니다만, 거란 전쟁에서 그들이 보여준 일일 이동거리 50km라는 놀라운 속도과(그것도 포로까지 끌고 양규에게 시달림을 받으며 퇴각하면서!) 400km의 고립을 감수하는 덜덜덜함을 고려해보면, 중장기병이 반드시 방어적이고, 기동력에 큰 희생을 주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몽골족의 이동 경로는 어떨까요-_-
서양에서도 백년 전쟁 와중에 에드워드 3세의 군대는 크레시에서 기사 위주인 필리프에게 따라잡혀 교전을 강요당한 적도 있었지요.(이겨버렸으니 할 말 없습니다만...)
그리고 기습전인 경우에도, 전에 언급했듯 단기 접전에서의 승패가 매우 중요할 뿐더러, 중장 기병의 활용도도 결코 낮지 않습니다.
특히 이런 점이 가장 잘 드러난게 고려와 여진의 전쟁이라고 봅니다. 윤관의 초기 전략은 매우 훌륭했습니다만, 병목 지형 외에 산지를 통해 기병이 오갈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윤관의 9성은 서로 고립되어 버립니다. 여진족은 오고가는 고려군에게 습격을 가하고 요격하는데, 한 번은 윤관과 오연총이 여진족에게 갇혀 고립되어 버립니다. 이 때에 아시는 고려 최강의 굇수, 척사마가 신기군 중에서 결사대를 뽑아 여진족의 저지선을 뚫고 윤관을 구출해냅니다.
과연 이 전투를 수행했던 여진족의 기병은 어땠을까요? 이에 관해서 권지승선 왕자지(!)가 기습으로 자기 말을 잃어버렸는데, 척준경이 기병을 이끌고 달려가 적을 또 박살내고(=_=) 여진의 "중갑마" 한 필을 뺏어와 왕자지에게 선물로 줍니다.
이렇게 되면 대강 어떻게 상황이 진행되었을지 드러납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고려군의 기병은 마갑을 입고 있었던 기병이었고 이들을 강력한 돌파력을 바탕으로, 역시 강력한 중장기병으로 공격해온 여진족을 몰아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고려군에 척사마라는 굇수의 존재를 고려하더라도, 기습적인 습격과 기습전에서도 중장 기병으로도 대처가 가능하고, 그 효용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이런 기습이라면야-3-)
대 거란 전쟁에서도, 거란족의 기병부대는 우수한 고려군의 기습, 기동, 후위 습격에도 효율적으로 대처합니다. 2차 거란전과 3차 거란전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교전에서, 거란군은 고려의 기습에 패배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기습해온 고려군에게 엄청난 타격을 주는 경우도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중장 기병은 기습전의 공격, 방어에 모두 사용될 수 있는 병과라는 뜻이지요.
이상으로 추측해보건대, 반드시 중장 기병이 반드시 방어적인 전투 풍조나 환경에서만 활용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물론 한교님께서 지적하신 사항, 즉 이동 거리가 짧고 전쟁이 회전 위주로만 이루어진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만 그 상황에서만 효과가 있었다면 애초에 중장 기병이라는 병과가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을겁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정주 문명인 고구려가 저들과 같은 화려한 기동과 작전을 보여주기는 어렵다고 해도, 고려의 예시도 참조해 본다면 반드시 중장기병이 방어적, 혹은 그와 유사한 환경에서만 공격용 효과를 갖는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에, 물론 평지의 회전에서 중장 기병이 가장 효과적인 성능을 발휘한다는것에는 찬성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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