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 생각: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
나의 사견으론, 효자는 무조건 부모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사는 자식이다.
효자처럼 보이는 건, 멀리 떨어져 살며 이따금 한 번씩 찾아 돈 봉투를 보내는 자식이다. 성직자로 살며 효자인 사람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나를 기준으로 보면 더욱 그렇다. 그래도 난 효자로 살려고 시늉을 많이 한 사람에 속한다. 마음의 부담과 짐을 벗으려고 어머니를 모시기도 했고, 그나마 자주 찾아 인사도 드렸다. 그러나 가깝게 사는 자식에 비하면 어찌 시늉을 넘을 수 있겠는가!
지난주 화요일에 목포 어머니의 2주기 추념식이 있었다. 1주기 때는 교회 건축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못했다는 좋은 핑계가 있어 가지 못했다. 마침 아내도 동행하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으니 좋아하실 어머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런 호사에 의미를 더한 건 아침 일찍 잔발로 뛰어나가 맞는 톡톡이와 걸침이를 보고 알았다.
아침 햇살에 더욱 찬란한 화분을 들고 오는 한 사람이 화분에 매직 펜으로 “축 부활, 부모님 고맙습니다!”란 글씨가 함께 살금살금 걸어오고 있었다.
따뜻한 라떼 거품이 부드럽게 입술을 적시는 순간, 그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말은 코미디보다 더 코미디 같은 말이었다.
“봉투를 하려니 오만 원을 담겠어요, 십만 원을 담겠어요. 그래서 국화 화분으로 때우기로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령 그런 이유를 가졌다 해도 침묵하지만, 자기의 속마음을 포장하지 않고 국화처럼 전하는 사람, 그가 행복 코미디를 연출해내는 아침이다.
난 두 개의 화분을 목포 부모님 묘지 앞에 두었다. 그리고 예배를 인도하며, 말씀을 전하는 중간에 화분의 의미를 덤으로 얹었다. “오늘 이 자리는 우리 가족만의 추념 예배가 아닙니다. 단 한 번 만난 적 없고, 본 적도 없는 분이나 우리들의 어머니 2주기 추념 예배를 생각하며 아침 일찍 가져온 국화 화분으로 예배의 마침표를 찍었다고 생각합니다. 난 국화가 아니라 사랑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가족들은 입술을 가볍게 달싹이며 ‘아멘’이라고 화답했다.
묘소를 뒤로하고 내려오는데, 환하게 웃는 어머니의 웃음이 가을 햇살처럼 따듯하다.
너무도 이쁜 사람, 너무나 이쁜 마음이 어머니의 2주기 추념 예배를 빛나게 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말을 살면서 자주 듣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세상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 가을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찾아보도록 하자, 찾아서 감사하고 행복해하자!
여러분~ 이쁜 사람이 전해준 국화 화분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담겨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