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의 선사상은 백파(白坡)가 저술한 ‘선문수경(禪文手鏡)’을 논박하기 위해 내놓은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초의의 선문수경에 대한 반박으로 시작된 선문논쟁은 이후 1세기 이상 동안 계속된다. 백파가 선을 우열에 따라 조사선(祖師禪)과 여래선(如來禪), 의리선(義理禪)으로 나눠 분류하고, 조사선과 여래선을 격외선(格外禪)이라고 한 주장에 대해 분류 자체가 근본적으로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그는 의리선은 여래선에 포함되고, 조사선은 격외선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론(禪論)을 편 초의는 평소 교에만 치우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에만 기울지도 않으면서 지관(止觀) 수행을 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지(止)는 일체의 경계를 끊어버리고 조금도 분별하거나 헤아림이 없는 것이며, 관(觀)은 모든 사물이 지니는 본질적인 본분을 깊이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그치지 않으면 정(定)에 들 수가 없고, 보지 않으면 지혜(慧)를 얻을 수 없다. 이같은 지관법은 한동안 한국 불교계를 지배해온 수행법이었다.
초의는 본분사인 선수행과 함께 일생 동안 다도를 즐기면서 신라 때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다도가 사라져 갈 당시 우리 차의 훌륭함을 예찬한 ‘동다송(東茶頌)’과 차 만드는 법, 물 끓이는 법, 차 마시는 법 등을 기록한 ‘다신전(茶神傳)’을 저술해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한국다도를 정립했다.
초의의 다도관(茶道觀)은 무엇인가. 그는 동다송에서 ‘다도란 신(神), 체(體), 건(健), 영(靈)을 함께 얻는 것’이라고 했다. ‘평해서 말하기를 채다(採茶)는 그 묘(妙)를 다해야 하고, 조다(造茶)는 그 정성을 다해야 하고, 물은 그 진(眞)을 얻어야 하고, 포법(泡法:차 우려내는 법)은 중정(中正)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체와 신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건과 영이 서로 함께하는 것을 일컬어 다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초의의 다도를 연구한 효당(曉堂) 최범술(崔凡述)은 초의를 ‘근세 한국차의 중흥조’라 칭했고, 그의 다도를 ‘다선일미(茶禪一味)’라 표현했다. 초의는 차와 선이 별개가 아니며, 한 잔의 차를 통하여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느낀다고 했다.
불화에도 뛰어났던 초의의 화풍은 소치(小痴) 허련(許鍊)으로 이어져 남종화로 꽃피게 된다. 소치는 초의와의 만남을 ‘소치실록’ 에서 ‘을미년(1835)에 나는 대둔사에 있는 암자에 들어가 초의선사를 뵈었습니다. … 선사의 그 청고하고 담아한 경지는 세속인들이 입으로 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양 구름이 오락가락하는 새벽이나 달 뜬 저녁이면 선사는 고요에 잠긴 채 시를 읊으면서 흥얼거렸습니다. 향불을 피워 향내가 은은히 퍼질 때 차를 반쯤 마시다 문득 일어나 뜰을 거닐면서 스스로 취흥에 젖어들곤 했습니다. 정적에 잠긴 작은 난간에 기대어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새들과 상대하고, 깊숙한 오솔길을 따라 손님이 찾아올까 봐 살며시 숨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초암(草庵:일지암)에 있는 선사의 서가에는 서책들로 가득했습니다. 나는 그 초암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배우며 시를 읊고 경을 읽으니 참으로 적당한 곳을 만난 셈이었습니다. 더구나 매일 선사와의 대화는 모두 물욕 밖의 고상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습니다’라고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