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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달별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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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꿀뚝 스크랩 고산칠곡이야기
으뜸빛 추천 0 조회 4 13.02.16 06:4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명 칭 :  고산칠곡(高山七曲)
소재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경관연혁
- 「고산잡영」에서 연유된 고산칠곡
안동부의 속현인 일직현(日直縣)의 소호리(蘇湖里) 일대에는 한산이씨(韓山李氏)와 달성서씨(達城徐氏:대구서씨라고도 함)가 세거하는 곳이다. 붉은 암벽이 병풍을 두른 듯한 대석산(大夕山) 남쪽 기슭을 배경으로 하여 앞으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멀리 황학산(黃鶴山)에서 발원하여 의성(義城)의 옥산(玉山)을 거쳐 80리를 흘러내린 미천(眉川)이 마을을 감싸 흐르고 있다.

조선 후기 영남 학파 안에서 이황(李滉) 이후 최대의 학자로 꼽히는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과 그의 동생인 소산(小山) 이광정(李光靖, 1714 ~ 1789)이 바로 이 소호리 출신이다. 대산은 30여 세 때부터 마을 뒷산인 대석산 기슭에 마을의 부로들이 지어놓은 서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이 서당 이름을 대산서당이라 하고, 이때부터 대산이라는 호를 쓰기 시작하였다.

1767년 대산의 제자들은 대석산 줄기인 제월봉(霽月峰)이 미천과 만나는 절벽 위에 서실 3칸을 짓고 고산정사(高山精舍)라 이름 지었다. 이에 대산은 고산정사로 옮겨 강학하며 주위의 풍광을 읊은 「고산잡영(高山雜詠)」을 지었다. 고산잡영은 서문(序文)과 함께 7언 절구 9수, 5언 절구 16수와 함께 7언 절구로 된 칠곡시(七曲詩) 7수로 이루어져 있다. 고산칠곡이란 명칭은 이 칠곡시에서 연유된 것인데 미천이 고산정사를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일곱 구비를 노래한 것이다.


명소
- 고산서원(高山書院)
고산정사를 제자들이 대산 사후에 서원으로 개편한 것이다.
- 소호헌(蘇湖軒)
대구서씨 소호리 입향조인 서해(徐?, 1537~1559)에게 장인인 이고(李股)가 물려준 집이다.
- 수옥정(漱玉亭)
한산이씨 소호리 입향조인 수은(睡隱) 이홍조(李弘祚, 1595~1660)의 서실, 원래 있던 자리에 후손들이 중건(重建)한 것이다. 수은은 대산의 고조부이다.
- 밀암재사(密庵齋舍)
대산의 외할아버지인 밀암(密庵) 이재(李裁, 1657~1730)를 제사지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밀암의 묘소 앞에 있으며 건물은 최근에 지은 것이다.


관련인물
- 이상정(李象靖, 1711~1781)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이다. 이황(李滉) 이후 영남 학파 최대의 학자로 꼽히며 그의 학문을 호학(湖學)이라 한다.

명소 이야기
- 고산칠곡의 경승
대산 이상정은 칠곡시를 통하여 고산칠곡의 경승을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일곡(一曲)
공산(公山)의 남쪽 기슭 냇물은 깊숙해도 / 公山南畔水幽幽
어지러운 돌 삐죽삐죽 솟아 배는 뒤집히기 쉽네 / 亂石參差易覆舟
건널 때마다 두렵고 조심하는 마음 잃지 않으면 / 惶恐一心能利涉
구당협(瞿塘峽)도 예부터 안전한 물길이라네 / 瞿塘從古是安流

일곡은 공산(公山)의 남쪽 물이 깊어 나루터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물속에 삐죽삐죽 솟아 나온 돌이 있어 배가 부딪혀 뒤집히기도 한다. 대산은 오직 두렵고 조심하는 마음만 한결같다면 물결이 사납기로 유명한 중국의 구당협도 안전한 물길이라고 노래한다. 마음속의 스승인 이황처럼 항상 벼슬길에서 난진이퇴(難進易退)하던 자신의 처세관(處世觀)을 빗대어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곡(二曲)
넓은 들 끝나는 곳에 냇물이 고여 소(沼)를 이루고 / 平郊欲盡水初渟
돌 계단과 이끼 낀 낚시터 물가를 빙 둘러 있네 / 石棧苔磯繞曲汀
늦은 봄날 제자들 데리고 목욕하고 바람 쐬기를 끝내면 / 童冠暮春風浴罷
옷을 털어 다시 입고 세심정(洗心亭)으로 걸어 올라가네 / 振衣高上洗心亭

이곡은 냇물이 흐르다가 잔잔하게 소를 이룬 곳이다. 대산은 『논어(論語)』에 나오는 증점(曾點)의 고사(故事)를 인용하여, 이곳을 제자들과 함께 목욕하고 바람 쐬는 곳으로 삼고 싶다고 노래하고 있다. 그런 다음 속세의 먼지가 묻은 옷을 털어 입고 세심정에 올라가서 마음의 먼지도 털어내는 방법에 대하여 강론(講論)하려는 것이다.

삼곡(三曲)
푸른 절벽 마주 보는 사이에 깊게 고여 있는 물 / 蒼岸雙開一水深
안개와 구름, 수풀에 가려 하루 종일 어둑어둑하네 / 煙雲朝暮暗平林
시험 삼아 한가로운 마음으로 높은 대(臺) 위에 앉아 있어도 / 試向悠然臺上坐
천 년이 지나도 누가 알랴. 산속에 사는 이 마음을 / 千年誰識見山心

삼곡은 두 절벽 사이에 고여 있는 심연을 노래하고 있다. 절벽으로 막혀 있는데다가 안개와 수풀까지 가려서 언제나 어둑어둑한 심연. 남들에게는 잘 보이지도 않고 또 남들이 잘 찾지도 않는 이 심연을 대상은 자신의 산심(山心)에 비유하고 있다. 천 년이 지나도 제대로 이해해 줄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산심. 대산의 이 산심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바로 호학(湖學)의 요체일지도 모른다.

사곡(四曲)
물 맑고 산 깊은 곳에 오롯하게 한 마을이 있는데 / 水靜山深自一村
텅 빈 서재에서 온 종일 사립문을 닫고 사네 / 虛齋終日掩紫門
물새는 물가에서 졸고 층계에서는 꽃이 웃고 있는데 / 汀禽欲睡階花笑
향로에 향 한 자루 피워 놓고 말없이 앉아 있네 / 一炷爐香坐不言

사곡은 대산의 향리인 소호리 앞을 흐르는 미천을 노래한 것이다. 텅 빈 서재에서 향 한 자루를 피워 놓고 마치 수도승처럼 사는 대산의 모습과 서재에서 본 근경과 원경을 아무런 수식도 더하지 않은 백묘(白描)의 수법으로 그려내고 있다.

오곡(五曲)
심춘대 아래 냇물은 질펀히 흘러가는데 / 尋春臺下水溶溶
오래된 절벽 우뚝 솟은 곳에 고원(古院)이 텅 비어 있네 / 老壁嵯峨古院空
한 가닥 무지개다리 나루터를 가로 질러 있으니 / 一帶虹橋橫渡口
누가 힘들여서 놓았나 제천(濟川)의 공덕이 크네 / 何人能辨濟川功

오곡은 심춘대 아래 냇물이 넓게 퍼져 흐르는 곳으로 고색창연한 절벽 위에 폐허가 된 고원(古院)이 있는 곳이다. 원(院)은 나그네들이 묵어 갈 수 있도록 나라에서 운영하는 숙박 시설이다. 그리고 오곡에는 냇물을 건너는 홍교가 놓여 있다. 홍교는 소나무를 베어서 임시로 가설해 놓는 다리를 말한다. 이 소나무 다리는 시간이 지나면 다양한 색깔로 변하기 때문에 흔히 무지개다리라고 불린다. 그런데 홍교는 큰 물이 지면 떠내려가기 때문에 매 년 다시 놓아야 한다. 소나무를 베어다가 다리를 놓는 일은 많은 노동력이 들어야 하는데, 그 일을 하는 것은 상민이나 천민들이다. 양반들은 다리가 떠내려갔는데도 빨리 다리를 다시 놓지 않으면 상민이나 천민들에게 사형(私刑)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일현감(延日縣監) 시절 누구보다도 백성들의 노고를 이해하고 다스렸던 대산은 다리를 놓은 상민들의 노고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다. 다리를 놓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그 혜택은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입기 때문에 불가(佛家)에서도 제천공덕(濟川功德)을 모든 공덕 가운데 으뜸으로 치고 있다.

육곡(六曲)
끊어진 산록(山麓) 길게 뻗어 옥병풍처럼 둘렀는데 / 斷麓?遲面玉屛
잡초 우거진 돌밭 사이에 버려진 정자가 있구나 / 石田荒草認遺亭
성색(聲色)에는 관심이 없어 관리하는 사람도 없는데 / 等閒聲色無人管
텅 빈 산은 옛 모습 그대로 냇물은 언제나 맑구나 / 依舊山空水自淸

육곡은 병풍절벽 위에 버려진 정자가 있는 곳이다. 정자는 선비들이 풍류 공간(風流空間)으로 지은 것으로 풍류에는 으레 성색(聲色)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당시 소호리 사람들은 풍류나 성색에 등한(等閑)했기에 정자는 관리하는 사람도 없이 돌밭 사이에 버려져 있는 것이다.

칠곡(七曲)
들은 넓고 산도 트인 곳 냇물은 잔잔히 흐르고 / 野闊山開但平川
수풀 너머 울타리 사이에서 저녁 연기 피어오르네 / 隔林籬落見人烟
기이한 풍광 끝나는 곳에서 머리 돌려 바라보니 / 奇遊欲盡重回首
좁은 물길과 작은 호소(湖沼)가 별천지를 이루고 있구나 / 去管壺中別有天

칠곡은 고산칠곡이 끝나는 곳이다.
절벽 사이를 흐르는 미천이 곳곳에 조그만 소와 담(潭)을 이루며 흐르다가 들을 만나 평범한 냇물로 바뀌는 지점이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대석산과 미천이 만나 이루어진 고산칠경은 아기자기한 경관으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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