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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원수인가, 이웃인가를 읽고서
1. 프롤로그
책 한 권을 값없이 받고서 반신반의하였다.
내가 이 책을 받아도 될까,
친구의 배달 여부를 묻는 카톡을 받고서 바로 그 시각부터 읽기 시작하여 밤이 이슥하여 마지막 장을 덮었다. 노고와 땀으로 점철된 몸의 기록을 나는 이렇게 편하게 읽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를 펼쳐 놓고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친구의 여정을 반추하며 함께 걸었다.
친구에게는 그토록 능통한 일본어, 나는 그것에 대한 회한이 있다.
내가 성균관대학교 야간부에 등록하여 주경야독의 만학을 할 때, 1학년 첫 학기에 초급일본어라는 강좌가 있었다. 수업을 들어보니 재미가 있어서 2학기에는 중급일본어도 등록을 했다. 그런데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암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시간이 태부족했다. 기말 고사를 치는 날, 나와 연배가 비슷한 사람에게 페이퍼 컨닝을 부탁했다. 그 중급일본어를 B¯를 받았더니 대학생이던 아들이 선방하셨다고 하더구나.
인간이 가진 능력 중에서 가장 고도의 지력이 언어에 대한 감수성이라고 하였다. 일본어에 대하여 표현의 자유를 얻은 친구가 참 부럽기도 하다.
2. 규수 지방
첫 페이지 규수의 나카사키 항만의 사진,
그 사진은 오랫동안 공력을 들인 전문가가 표현할 수 있는 사진이다. 친구의 책에서 만나게 되는 큰 사진들은 대부분 명품의 사진들이더구나. 아마도 출판사의 배려였을 것으로 사료된다.
첫 페이지를 열면서 만난 나카사키 항구의 사진으로부터 심상치 않은 수준의 책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어디 한 군데 허술한 곳이 없고 내용은 알차며 문장 또한 유려하였다. 소장해 두어도 부끄럽지 않을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1) 가고시마의 자비에르 신부 상륙 기념비
‘16세기 중반 포르투갈 사람 자비에르 신부가 가고시마에 천주교를 들여왔다. 조총 역시 이곳을 통해 일본에 들어왔다. 다네가시마 도주 도키다카가 포르투갈 상인에게서 비싼 값에 구입한 조총 2자루가 일본의 역사, 나아가 동아시아의 역사를 바꾸었다.’
일본에 조총이 전해진 것은 1543년, 포르투갈 상인에 의하여서였다. 총 한 자루에 1,000금을 지불했다고 한다. 지금 시세로 1억 원에 상당하는 금액이다. 일본인들은 조총을 분해하고 세밀히 궁리하여 대량생산하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것은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문명의 총화였다.
(2) 구마모토
구마모토에서는 수돗물을 그대로 마신다고 하였다. 아소산 자락이 자연 정수기 역할을 하여 수맥이 손상될까 싶어 지하철을 건설하지 않고 노면 전차가 시민의 발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지혜란 바로 저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3대 성 중의 하나인 구마모토 성, 가등청정이 조선인 포로들을 동원해 축조하였다고 한다. 저토록 번듯한 성을 쌓기 위해 노심초사했을 동포들을 생각하면서 친구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3) 나카사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39,000명이 순식간에 죽고 방사능 후유증으로 130,000명이 죽은 인류 두 번째의 원자탄이 떨어졌다. 희생자들 중에는 조선인이 무려 20,000명이 있었다. 평화 공원에는 보이지 않고 다리 건너의 폭심 공원의 후미진 곳에 설치된 조선인 위령비, 달리 무슨 말을 보태겠는가.
(4) 아츠히메
오래 전에 ‘아츠히메’라는 50편으로 된 일본 장편 드라마를 참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그 여인은 에도 막부 말년의 쇼군 ‘도꾸가와 이에사다’의 정실이었다. 여인의 출신이 이곳 가고시마였다. 에도의 저택에서 늘 가고시마의 자연을 그리워하던 그녀의 뒷모습이 참 쓸쓸해 보였다. ‘사이고 다카모리’가 지휘하는 메이지 유신의 혁명군이 에도 막부의 본진으로 진격해 왔다. 남편이 죽고 막부의 어른이 된 그녀가 혁명군이 무혈입성하게 하여 도꾸가와 집안을 보전하게 하였다. 참으로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언젠가 가고시마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5) 가고시마와 사가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도자기 산업을 꽃피운 곳이다. 심당길은 1598년 정유재란 때 끌려가 사스마 도자기의 원조가 되었다. 그의 후손인 14대 심수관이 일전에 92세로 별세했다.
정유재란이 끝난 뒤 조선과 외교관계가 정상화되어 피로인들을 쇄환하러 조선 관리가 갔을 때 장인으로서 상당한 대접을 받는데 만족한 조선의 도공들이 산 속으로 도망쳤다는 사실은 이곳 현지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3. 혼슈 지방
(1) 시모노세키의 고급 식당 ‘슌판로’
1895년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등박문이 이홍장을 불러 청일강화조약을 체결한 장소다. 대륙에 속한 조선이 해양 세력에 편입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평범한 장소가 지니는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에 더하여 누천년의 지배를 받던 대륙세력으로 편입을 시도하려 하는 현재의 대한민국 정부를 보면서 섶을 지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 든다는 생각이 든다.
(2) 히로시마에서 만난 기업인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는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이 떨어져 피폭자를 포함한 사망자가 140,000명이었다.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원자탄이 떨어진 뒤 일본은 미국과 항복 교섭을 하였다. 일본이 제시한 조건이 두 가지였다. 천황제의 유지와 조선의 식민지 유지였다. 미국은 후자는 안 된다고 거절하였다. 일본은 첫 번째의 조건으로 만족하고 항복했다.
그토록 강성하던 일본이 패배의 독배를 마실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으로 조선은 해방되었다. 그것은 우리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기에 불과 5년 후에 우리는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두 이념의 사투 속에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이념의 제물이 되어 분단된 나라에 살고 있으며 북한의 동포들은 3대 세습의 독재정권의 제물이 되어 신음하고 있다. 이렇게 역사에는 도무지 공짜가 없다.
열차에서 만난 중년 남자가 한 말, “기업이 잘 되어야 세금이 많이 걷히고 나라가 부강해 지는데 일본사회의 기업 존중 문화는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황금알을 낳는 원천의 일등 공신은 기업이다’로 시작하여 이 책의 주제가 고개를 내민다.
(3) 히메지 성
‘일본은 서구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아시아의 유일한 선진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나라이기도 하다.’
친구의 표현을 보면서 일본이 참 부럽다. 이 세상에 존경과 신뢰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사랑이라고 하였는데 존경과 신뢰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일본인들이 사회지도층을 신뢰하는 것은 부정부패가 덜한 것도 있겠지만 국가를 끌고 가는 방향이 옳기 때문이다. 그만큼 일본인들은 나라 걱정을 하지 않고 생업에 열중할 수 있다. 제발 백성이 나라 걱정을 하지 않고 사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목이 멘다.
‘일본은 자전거 천국이다. 실용적인 목적으로 탄다는 게 우리 사회와는 다르다.’
마치 베트남의 오토바이 물결처럼 자전거로 시장도 가고 관공서도 가면 얼마나 좋겠느냐.
(4) 나라
우리나라 말이 지명이 된 도시. 우리 선조들이 건너와서 아스카 문화를 꽃피운 곳.
백제 부여의 백강 전투에서 왜군과 부흥군이 당나라 군대의 화공에 전멸하여 화염 속에 죽어가며 “백제라는 이름은 이제 끝났다. 앞으로 누가 조상의 묘를 돌볼 것인가!”라고 외쳤다.
일본에서 좋아 보이는 물건을 보면 ‘구다라 나이’라고 한다. 백제물건이 아니면 좋은 것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그 ‘구다라’라는 말은 ‘큰 나라’라는 말이거나, ‘부여에 구드레 나루가 있는 나라’란 말이라고 한다.
현대에 와서 유전학자들이 일본인과 한국인의 DNA를 비교해 보았더니 꼭 같았다고 한다.
(5) 오쿠노인
‘히데요시의 가족묘는 10평도 안 된다. 풍운아 노부나가의 묘는 더욱 초라했다.’
고야산에 누워 있는 영웅호걸 중 주목할 만한 인물, 다케다 신겐.
신겐에 대해서는 유명한 영화감독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 ‘카게무사’가 기억된다. 전국시대 최강이었다는 그 사람도 여기에 묻혀 있구나.
(6) 가나자와
‘일본에는 200년이 넘는 기업이 3,000개나 있다. 그리고 100년이 넘는 기업은 10,000개 이른다.’
이 말을 들으면 한국의 상속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영권이 있는 기업의 상속세가 무려 65%나 되니 어찌 영속적인 기업이 나올 수 있겠는가.
아직 우리 대한민국이 걸어가야 할 길이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7) 오쿠타마
‘일본은 장인을 존중하는 사회다. 어느 분야건 일가를 이룬 사람을 높게 평가한다. 직업에 귀천이 없는 나라가 일본이다. 어느 분야이건 경지에 오르기까지 흘린 땀과 피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동양의 유학이 중국에서 발현하여 주자학으로 발전하였다가 조선에 와서 성리학으로 만개했다. 그러나 그 주자학은 더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이 양명학이다. 조선에도 양명학이 들어와 강화학파로 싹을 틔우다가 변두리로 밀려나고 말았다.
일본은 그 양명학을 받아들여 사회철학으로 정착시켰다. 진정한 앎은 실천함으로 완성된다는 실용의 정신을 그들의 정신 속에 깊이 새겨 넣었다.
왕양명이 한 말이 기억된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다면 아직 제대로 안 것이 아니다.’ 일본인들은 진정으로 알았던 것이다.
(8) 아오야마
‘숙소를 나서는데 여주인이 정중하게 현관에서 인사를 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문화란 말인가. 아침 산책을 하며 종종 산에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눈 길 조차 마주치지 않고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하루의 시작부터 이 세상이 참 각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 약속한다는 것은 ‘인력으로 통제 불가능한 천재지변이 아닌 한’이란 전제가 깔려 있다고 했다. 그만큼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사람의 마음을 귀하게 여기는 관습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이곳을 영지로 가졌던 ‘우에스기 켄신’,
다케다 신켄과 함께 다 오래 살았더라면 일세를 풍미했을 영웅호걸들이었는데 다들 일찍 죽었다. 이곳 출신의 유명한 정치인 ‘다나카 카쿠에이’, 건강했을 때 사나이로서의 힘이 넘치던 풍모가 생각난다.
(9) 센다이 아오바 거리
‘트럼프의 푸들’이란 조롱을 받으면서까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분투하는 아베 수상,
일본인들은 아베의 대미외교를 당연하게 여긴다. 허울 좋은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10) 마쓰시마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 믿고 싶은 것만 믿기 때문에 진실을 속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에 진실을 믿지 않는다.’
시민은 결코 고결한 영혼만은 아니라는 게 자유민주주의의 기저에 깔려 있는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
4. 북해도
(1) 하코다테
하코다테의 야경이 천하 절경이란 소문은 들었다. 사진을 보니 낮 풍경 역시 명불허전이구나.
(2) 나가야마 미우라 아야코 기념문학관
‘나는 중학생 시절 ’빙점‘을 읽었다. 당시 그녀의 인기는 지금의 무라카미 하루키 이상이었다. 내가 이곳을 마지막 일정으로 정한 것도 그녀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군국주의 교육의 잘못을 깨닫고 교직을 떠나면서 그녀의 방황은 시작되었다. 폐결핵에 걸려 투병하면서도 술과 담배를 끊지 않는 자포자기의 삶을 살았다. 결핵성 척추 카리에스로 발전하여 13년간의 침대 생활을 하던 그녀를 소생하게 한 것은 마에카와 타다시였다. 그러나 타다시는 그녀에게 헌신적인 사랑의 사명을 다하고 폐결핵으로 죽었다.
그리고 헌신적인 신앙인 미우라 마쓰요를 만났다. 마쓰요는 그녀에게 미우라라는 아름다운 성을 주고 그녀와 여생을 해로했다. 1999년 77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35년간 84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중 80권이 구술에 의한 것이었다.
그대 드디어 미우라 아야코, 그 마음의 고향에 왔구나.
그 여인은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이었나 보다.
나는 가끔씩 훌륭한 사람을 만나면 그와 동시대를 살아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의 서재에 있는 ‘빙점 상’ · ‘빙점 하’ · ‘속 빙점’까지, 언제 다시 한 번 찬찬히 일독해야 겠구나.
5. 에필로그
친구의 피로를 푸는 방법이 센토를 이용하는 것이었구나.
식사를 할 때 종종 맥주며 포도주를 즐겨 먹는 친구를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일본인이 여행의 목적을 물었을 때 열도를 걸으며 사람과 문화를 이해하고 건강 증진을 위해서라고 했다. 참으로 진솔한 고백이라고 여겨진다.
여행지에서의 가장 어려운 일이 숙박을 해결하는 것이다. 사람은 잠을 자야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슬기롭게 해결하는 것을 보면서 일본이란 나라가 참 안전하고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마쓰모토 가요코의 격려의 편지에서 친구는 정말로 매력적이고 불가사의한 능력의 소유자라고 묘사한 부분이 나온다. 조금의 과장됨이 없는 객관적인 평가일 것이다.
긴 기행문의 갈피에 은닉된 대한민국에 대한 연민과 담대한 염원을 군데군데에서 발견하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체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전체주의적 사고는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부자에 대한 증오로부터 출발했다.
증오는 정의를 촉발시킬 수는 있지만 정의 그 자체는 아니다. 정의를 완성시키는 것은 용서와 화해 그리고 사랑이다.
대한민국은 이념에 경도되어 규제의 만리장성을 쌓아 갈라파고스로 전락하고 있다. 또 경제를 정치와 이념에 복무하는 하위 개념으로 보고 어이없는 정책들을 남발하고 있다. 증오와 혐오를 통치의 수단으로 삼아 저 베네수엘라, 아프리카의 길을 답습하고 있다.
나라가 망할 때는 필부도 그 책임이 있다고 했다.
지금 화곡2동성당의 마당에서 ‘강남수 베드로’라는 사람이 죽기를 각오하고 단식을 하고 있다.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이 지경이 되었는지 너무도 답답해서 단식을 한다고 한다. 그는 나라를 걱정하여 필부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 의로운 사람일 것이다.
긴 여행기, 너무도 잘 보았다.
한 권의 책으로 묶으면서 그대가 하고 싶은 말들, 중간에 간헐적으로 나오다가 마지막 후기에 다 토해 놓았다. 그대가 걸었던 그 긴 여정을 생각하면 아무도 폄훼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 여행의 목적이 慢遊하는 것에 있지 않고 굳센 목적이 있음을 의심치 않는다.
현실이 늘 당위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지라도, 인류는 모든 이의 가정이 되고 지구는 공동의 집이 되어야 할 것이다.
늘 건강하고 늘 평화롭기를 빌어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