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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패션기업
㈜신원의 개성공장 준공 기념 패션쇼
▲개성공단 시범지구에서 열린 (주)신원
의 개성공장 준공기념 피복전시회에 참가
한 김태희씨.
패션그룹 (주)신원이 2005년 5월 26일
남 북 경협사업의 상징인 개성공단에서 ‘개성공장 준공 기념 패션쇼’를 개최했다.
신원은 2005년 1월 초 개성공장을 준공
해 2월 말까지 시범 가동을 끝내고 3월 초부터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해 개성산 의류제품을 전국 신원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이번 패션쇼에서는 여성복 브랜드 베스띠
벨리, 씨, 비키 등과 남성복 브랜드 지이크, 캐주얼 브랜드 쿨하스 등 총 5개 브랜드 100여 제품을 소개하며 신원 의 2005년 봄~여름 제품과 개성에서 생산된 의류제품
을 함께 선보였다.
이날 패션쇼를 참관하기 위해 남측에서는
박성철 신원 회장을 비롯해 현정은 현대
그룹 회장,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 이수
영 한국경총 회장, 김용구 중소 기협중앙
회장 등 각계 인사 500여 명이 26일 오전 9시 30분께 군사분계선을 통과해 개성으
로 들어갔다. 또 신세대 스타 김태희 씨도 씨(SI)의 전속모델 자격으로 이날 패션쇼 무대에 섰다.이번 신원 공장 패션쇼는 북측
에서도 상당히 높은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성철 신원 회장은 “90년대 북한에서 임
가공으로 의류생산을 해 봤을 때 북한 노동
자들의 손재주가 뛰어나 육로만 트인다면 북한에서 생산하는 것이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신원은 앞으로 개성
공단에서 월 2만피스 이상의 제품을 생산
할 예정이며 총 생산량의15~20%를 개성
공단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2014년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 '경기도 고양시 고양종합터미널 화재…20여분 만에 진화
고양종합터미널에서 화재가 발생해 6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26일 오전 9시 5분께 경기도 고양시 일산 동구 고양종합터미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6명이 사망하고 42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양종합터미널 화재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소방대에 의해 20여분 만에 진화됐다. 현재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고양터미널 화재 소식에 네티즌들은 "고양터미널 화재, 왜 자꾸 이런 일이" "고양터미널 화재, 비통한 심정"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09년 정부, PSI(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구상) 전면참여
▶2006년 미셸린 사장, 보트사고로 사망
▶2006년 국보법 위반 강정구 동국대 교수 유죄
▶2005년 경남아너스빌컵 핸드볼 세계최강전 한국-덴마크 친선경기
▶2005년 신기성, 프로농구 KTF 입단
▶2005년 프로농구 자유계약선수(FA) 현주엽, 창원 LG세이커스와 입단 계약
▶2002년 임권택 감독, 영화 `취화선`으로 제5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 수상
👉🏿 2002년 5월 26일 제5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의 임권택 감독이 영화 `취화선`으로 미국의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과 공동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주요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한국 영화나 한국인 감독·배우가 상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취화선`은 조선 후기 유명 화가였던 오원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다. 66세의 감독은 시상식 단상에 올라가 예의 `느릿느릿 분명한` 어투로 1600여명의 전세계 영화계 VIP 앞에서 소감을 말했다. "이 상은, 남북한을 통틀어 우리 한민족에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 시절 끼니를 해결하려고 충무로에 들어갔던 청년이 세계가 인정하는 영화 거장으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그의 40년 영화 인생은 한편의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1936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임권택의 어린 시절은 가난으로 얼룩졌다. 부친의 좌익 활동 가담이 빚어낸 그늘이 소년 임권택을 고통스럽게 했다. 학력도 중졸에 그쳤다. 그러던 그가 1955년경 충무로에 처음 뛰어든 것은 "영화판 일을 하면 밥을 굶지 않을 수 있다"는 주변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촬영 현장에 들어가서 처음 맡은 임권택의 역할은 소품 조수. 식사 때가 되면 배우들이나 주요 스태프들 밥을 나르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1962년 임권택은 `두만강아 잘있거라`로 데뷔, 1970년대까지 무려 60여편의 필름들을 정신없이 찍어댔지만 40대 들어 임권택은 "이 `싸구려 영화`들을 모조리 불살라 버리고 싶다"는 자각을 한다.
임권택이 국제 영화제의 문을 노크하기 시작한 것은 1981년 `만다라`로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면서부터. 그의 영화는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씨받이`)을 시발로 국제영화제 수상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으나, 감독은 1990년대 초반부터 `세계 최고` 영화제인 칸을 겨냥했다. 1992년 `서편제`부터 `축제` `춘향뎐` 그리고 `취화선`에 이르는 영화들은 아예 5월 칸 영화제 시기에 맞춰 매년 4월 안팎에 완성했다. 그리고 임권택은 `3전4기` 끝에 과녁을 맞혔다.
▶2001년 아프리카 연합(AU) 공식 출범
👉🏿 아프리카 대륙의 정치·경제적 통합을 목표로 한 `아프리카 연합(AU)`이 `아프리카단결기구(OAU)` 53개 회원국 중 37개국의 비준을 얻어 2001년 5월 26일 공식 출범했다. 이에 따라 아프리카 중앙은행과 단일 통화, 의회, 법원 등의 설치를 목표로 한 `유럽연합(EU)`식 아프리카 국가연합체가 첫 발을 내딛었다.
살림 아흐메드 OAU 사무총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정치적·법적 실체로 볼 때 내일부터 우리는 아프리카 연합을 갖게 됐다"면서 "아프리카 대륙은 이제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선언했다. AU 회원국들은 2001년 7월 잠비아의 루사카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아프리카 의회의 창설 시기 등을 논의했다. AU는 4월 26일부터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 있는 OAU 본부에 대한 인수작업을 시작했으며 이 작업을 12개월여에 걸쳐 계속했다.
AU는 무아마르 가다피 리비아 국가 평의회 의장이 `아프리카 합중국` 설립을 제안하면서 논의를 시작해 탄생했지만 그 동안 정상회담에서 `아프리카 합중국` 개념이 훨씬 약화된 조직으로서 출범하게 됐다. AU 창설에 합의한 OAU 53개 회원국 중 이를 비준한 국가는 AU 출범에 필요한 3분의 2 선을 약간 넘는 37개국에 불과한 형편이어서 AU의 단결력이 의문시되고 있다.
▶1999년 과학실험위성 `우리별3호`, 인도 샤르기지에서 발사
👉🏿 소형 과학실험위성 `우리별3호`가 1999년 5월 26일 인도 남동부의 하늘을 가르며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우리별3호는 인도 FSLV 4단 로켓에 실려 인도 해양과 해양관측위성 및 독일 과학실험위성과 함께 발사돼 발사후 17분40초 만에 로켓에서 분리됐다.
우리별3호는 1992년과 1993년에 발사한 우리별1호-2호의 개발경험을 바탕으로 설계에서부터 주요 시스템제작 조립에 이르기까지 외국기관의 도움없이 거의 100% 우리 손으로 설계하고 제작, 시험을 거쳤다. 우리별3호는 무게 110kg, 크기 60 X 50 X 85cm의 소형과학위성으로 하루에 약 14-15번 지구를 선회했다. 위성내에는 지상 15m까지 구분할 수 있는 CCD카메라, 고에너지 입자검출기, 반도체 방사능영향 측정기, 고해상도 지자기감지기 등을 탑재했다. 우리별 3호 개발에는 1995년부터 과학기술부-정보통신부-과학재단의 지원으로 약 8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1999년 제1회 조선일보 인터넷대상 시상
▶1999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현 국가원수 처음으로 전범협의 기소
▶1994년 패륜아 박한상 사건
👉🏿 1994년 5월 26일 1백억원대의 아버지 재산을 노려 부모를 살해한 패륜적 범죄가 발생했다. 한약상 박순태씨 부부는 각각 온몸을 흉기에 50곳, 40곳 난자해 살해된 뒤 불에 타 숨진 채로 발견됐다. 사건 조사결과 박씨의 장남 한상군이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박은 1993년 8월부터 미국에 어학연수를 갔으나 라스베이가스에서 포커 도박으로 생활비, 승용차구입비 등 2만3천달러를 탕진한 뒤 아버지에게 심한 꾸중과 함께 유학 포기를 종용받고 1백억원대의 아버지 재산을 상속받을 욕심으로 범행을 결심했다고 경찰에서 말했다.
경찰 조사결과 박은 어머니를 먼저 흉기로 찔러 쓰러뜨리고 잠에서 깨어난 아버지의 얼굴과 가슴 등을 마구 찔러 살해한 뒤 어머니를 난자해 사망여부를 재확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박은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체계적인 범행수법을 계획, 서울 세운상가에서 등산용칼을 2만원에 구입하고 주유소에서 휘발유 8ℓ를 사는 등 사전에 범행을 치밀히 준비했다. 박은 범행 후 화장실에서 몸을 씻고 차고에 숨겨둔 휘발유를 가져와 부모 방에 뿌린 뒤 범행에 사용한 등산용 칼과 휘발유통, 운동화 1켤레 등 증거물을 아버지 승용차에 싣고 집에서 5백m 떨어진 공터에 가서 버리고 돌아와 집에 불을 질렀다.
경찰은 “박이 조카를 화재현장에 남겨둔 채 도망쳐 나온데다 당시 박의 머리카락에 피가 묻어 있었다는 간호사의 진술 등에 따라 박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집중수사를 벌인 끝에 범행을 자백받았다”고 말했다.
▶1993년 한국-에리트레아 국교 수립
▶1992년 김대중 민주당 공동대표, 제14대 대통령후보로 선출
▶1991년 오스트리아 라운다 항공 소속 보잉 767-300기 방콩부근 추락. 223명 사망
▶1987년 이한기 국무총리 서리 취임
▶1986년 파리 감옥서 헬기를 이용한 탈옥사건 발생
▶1983년 일본에 해중지진 발생 102명 사망 실종
▶1983년 프랑스 남태평양 무루로아제도서 사상최대 지하핵실험
▶1982년 소설가 유주현 사망
▶1981년 한국-싱가포르 해운협정 서명
▶1981년 페르시아만 협력협의회 창설(GCC)
▶1979년 한국 판소리 예능보유자 박녹주 사망
▶1978년 여천 석유화학공단 준공
▶1976년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 사망
▶1972년 미·소,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Ⅰ) 체결
👉🏿 1969년 11월 17일 제럴드 스미스 군축 국장을 앞세운 4명의 미국 대표와 블라디미르 세미오노프를 단장으로 하는 6명의 소련대표가 헬싱키 교외 스몰라궁에 마주 앉았다. 스미스는 "책임을 깊이 인식하고 있으며, 이는 전세계의 관심사"라고 운을 뗐고, 세미오노프는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짧게 답했다. 그리고, 앞으로 협상을 해나갈 비밀 장소를 정하는 것으로 첫 회의를 시작했다.
후에 SALT 1, 즉 전략무기제한협정 (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s)이란 이름으로 조인되는 미소 핵군축 회담의 시작이었다. 두 나라를 협상 테이블에 앉힌 것은 핵무기 경쟁에 대한 공포심이었지만, 그 의도와 관계없이 핵으로 인한 인류의 멸망 가능성에 제동을 거는 사건이기도 했다.
SALT 1의 제동이 처음은 아니었다. 1963년에 대기권 핵실험금지조약이 체결됐고, 5년후엔 핵무기확산금지조약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핵실험 금지조약은 실험장소를 지하로 한정시켜 낙진의 위험을 최소화하자는 정도였고, 핵 확산금지조약은 핵무기 보유국을 동결하자는 수준이었다.
그나마도 핵확산금지조약은 이미 핵을 가진 나라만 살찌운다는 의미에서 불평등조약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웠다. 그런 전례를 뒤로 하고, 힘겹게 마련된 두 나라의 협상은 무려 2년 6개월을 끌었다. 434회를 기록한 만남은 순조롭지 않았지만 난항끝에 1972년 5월 26일 닉슨과 브레즈네프가 모스크바에서 만나 요격미사일(ABM) 체제에 관한 조약과 공격용 전략무기 제한에 관한 두가지 주요 협정에 서명하면서 SALT 1이 체결됐다
▶1972년 탄도탄 요격미사일 조약(ABM) 조인
▶1969년 볼리비아-콜롬비아-에쿠아도르-페루-칠레 5개국 안데스통합협정에 조인
▶1967년 서영춘, 코미디언 최초 리사이틀 공연(-28일)
▶1966년 가이아나, 영국으로부터 독립
▶1964년 서독 루루지방-프랑스 로렌지방 연결하는 모젤운하 개통
▶1961년 한국군의 작전권 유엔군에 복귀
▶1955년 영국 총선서 보수당 승리
▶1955년 서울발레단 창립공연
▶1952년 미국-영국-프랑스-서독간에 평화조약 조인
▶1952년 국회의원 48명 탄 통근버스 통째로 연행
👉🏿 1952년, 피란지 부산은 집권연장을 꾀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무리수로 연일 시끄러웠다. 직선제 개헌을 추진, 연임을 노렸지만 야당의 반대로 계획이 차질을 빚자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비상수단을 강구하던 이승만에게 1952년 4월과 5월에 치러진 지방의원 선거에서의 승리는 낭보였다. 백골단·땃벌떼·민중자결단 등 정체 모를 집단들이 연일 반국회 시위를 벌였다. 관제 데모대가 우마차를 타고 상경했다 해서 생겨난 해학성 조어 ‘우의·마의’도 이때 유행했다.
그러던 1952년 오늘, 우리 헌정사에 길이 남을 중대한 사건이 발생한다. 새벽에 정헌주·이석기 등 야당 의원이 구속된 데 이어 48명의 국회의원을 태운 전용버스가 통째로 헌병대에 끌려간 것이다. 곽상훈·서범석 등 야당 의원들이 국제공산주의와 결탁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결국 발췌개헌으로 직선제는 관철됐지만 일각에선 ‘민주주의의 장송’이란 탄식을 들었다.
▶1946년 정부 대외무역에 허가제 채택
▶1942년 영국-소련 상호협조조약 체결
▶1940년 영국군, 덩케르크에서 철수 시작
▶1919년 33인중의 한사람인 양한묵, 서대문 감옥에서 옥사
▶1911년 독일, 알자스·로렌을 한 주로 공인
👉🏿 프랑스·독일의 경계에 있는 알자스·로렌은 지정학적 위치와 경제적 가치로 예로부터 양국 간 분쟁이 끊이질 않던 곳이다. 다량으로 매장돼 있는 석탄과 철, 게다가 온난한 기후로 와인 맛도 좋아 양국은 호시탐탐 이곳에 눈독을 들였다.
먼저 국기를 꽂은 나라는 프랑스. 30년전쟁을 종결시킨 베스트팔렌조약(1648년)이 알자스를 프랑스 영토로 결정한 것이다. 로렌은 1766년에서야 프랑스로 귀속됐다. 그러나 상류층만 프랑스에 우호적이었을 뿐 독일어와 독일 풍습이 그대로 유지돼 통합이 더뎠다. 주인이 독일로 바뀐 것은 1870년 프랑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난 뒤였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발표된 것은 이 무렵이었다. 독일은 이곳에서 프랑스의 흔적을 지우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자치지역이었던 이곳이 독일연방의 한 개 주(州)로 공식 편입된 것은 1911년 5월 26일이었다.
묘한 것은 누가 이 지역을 지배해도 통합에 적극적이지 않은 주민들의 성향이었다. 어렵사리 독일의 일원으로 자리를 잡는가 싶더니 1차대전 패배는 주인을 다시 프랑스로 되돌린다. 베르사유조약(1919년)이 소유주를 변경한 것이다. 50여년 만의 프랑스 복귀였지만 지역주민들은 프랑스의 성급한 동화정책에 또 반발한다. 운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차대전 발발과 함께 5년간 독일 수중에 떨어졌다가 전후 다시 프랑스로 반환된 것이다.
알퐁스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을 통해 잘알려져있듯이 독일과 프랑스의 분쟁대상이였던 알자스 로렌지방은 국적을 네번이나 바꿔야했던 국경의 소용돌이지역이다
▶1910년 멕시코의 대통령(1958-64) 로페스 마테오스 출생
▶1908년 이란(페르시아)사막서 대유전 발견. 최초의 중동 석유 개발
▶1907년 영화배우 존 웨인 출생
▶1905년 마산-삼량진간 철도 개통
▶1901년 빈에서 제2회 국제자동차쇼 개막
▶ 1898년 군산, 청진, 마산항 개항
▶ 1877년 미국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 출생
👉🏿1877년 5월 26일, 고전 발레의 형식을 거부하고 창작 댄스를 창조적 예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최초의 인물인 이사도라 덩컨이 출생했다. 그녀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발레를 배웠지만, 몸과 다리를 조이는 코르셋과 토슈즈의 불편함을 견디지 못했다. 고전 발레의 엄격함을 거부한 그녀는 고대 그리스를 동경하여 하늘하늘한 감의 옷을 입고 자유로운 율동과 움직임을 바탕으로 맨발로 춤을 추었다. 베토벤 등 고전 음악가의 음악에 맞춰 감정이 흐르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프리 스타일에 의한 독자적인 춤을 구사했다.
이사도라 덩컨
미국에서 처음 공연했을 때는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자유분방한 공연 양식과 춤으로 기존 발레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에게 신선을 충격을 주며 영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곳에서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다.
그녀의 사생활 또한 세간의 금기들을 줄곧 거부한 탓에 그녀의 예술만큼이나 화제가 됐다.그녀의 두 아이는 타고 있던 차가 갑자기 움직여 세일즈 강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익사했고 러시아 출신 시인이었던 17세 연하의 남편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예세닌은 정신적 불안감에 휩싸여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러한 불행은 끊이지 않아 그녀 역시 1927년 9월 14일, 요양차 머물던 프랑스 리비에라 해안의 니스에서 오픈카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다 그녀의 목에 매고 있던 스카프가 차의 뒷바퀴에 말려들어가 질식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