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무라 가의 가계도
(이마이칸 뉴스 65호)
후지다 유타카(藤田 豊)
이마이칸 교우회 이사
우리무라 간조의 장남 유우지(祐之)의 부인, 미요코(美代子, 1903-2003) 씨는 '만년의 아버지 우치무라 간조(1985. 교문관)'라는 책 마지막에 우치무라가의 가계도를 게재하였다. 이 가계도를 올리게 된 보람을 책 안의 '간조의 배경' 부분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 집의 고문서라 할만한 것이었는데, 아버지의 전기를 쓰신다고 하여 스즈키 도시로(鈴木 俊郞) 씨에게 빌려드렸으나, 전쟁 공습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이 번 책 안에 조금이나마 자세히 가계도를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그 바람이 하나님께 닿았는가 생각할 정도로 기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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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치무라 씨 계보 | 아들 유우지, 아버지 宣之, 간조 |
위의 책, '만년의 아버지 우치무라 간조'에 올라온 가계도는 간조의 종형(內村金爾)의 집에서 전해져 온 것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었다. 선조에 대해서는 교문관의 '우치무라 신앙저작집' 25권의 가계도보다 훨씬 정확하다. 그러나 반대로 자손에 대해서는 당연히 교문관의 전집이 상세하다. 이와나미의 1980년판 전집에는 가계도가 아예 수록되지 않았다.
나는 이마이칸이 혼고마고메(本駒込)로 이전한 후부터 서고내의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데, 종종 놀랄만한 자료가 튀어나와 자료 정리하느라 누적된 피로가 확 날아가는 경험을 하는 때가 있다. 그 한 예가 바로 스즈키 도시로 (鈴木 俊郞, 1901-1982)의 사후, 친인척께서 기부해주신 자료더미이다. 스즈키 씨가 '우치무라 간조 미국유학까지(1986, 岩波서점)'의 집필을 위해 준비한 자료로 보인다. 젊은 날의 우치무라가 쓴 미발표 자필 노트를 비롯하여 내촌연구를 더 깊이 하고자 했던 많은 자료가 들어있었다. 그 중에 우치무라 선생의 며느님 미요코 씨가 전쟁 공습으로 잃어버렸다고 한 그 가계도도 들어 있었다.
그런데 가계도는 하나가 아니라 세 종류였다. '우치무라 씨 계보'라 이름붙인 8장의 것, 초대부터 7대까지 업적을 기록한 30쪽에 달하는 상세한 연보, 마지막 하나는 초대부터 7대까지를 8쪽으로 정리한 약연보(略年譜)이다.
첫 번째의 '우치무라 씨 계보'는 미요코 씨가 게재한 가계도와 거의 흡사한데, 조금 더 상세하다. 우치무라 가의 뿌리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 때문에 그 전체 사진을 아래에 소개하니 봐주시기를 바란다. 간조 이후의 계보에 대해서는 교문관 전집의 가계도에서 보충하였다.
'우치무라 씨 계보' 8 면 중 7번째에는 8대인 간조의 어릴 적 부르던 이름이 있는데. 이름을 모(某)로 기록하였다. 그것은 성인식 후에 다른 이름을 붙이는 관계에 따른 것이다. 우치무라의 형제로 알려진 다츠사부로(達三郞), 미치지(道治), 순야(順也) 외에도 죠오지(城次), 고마츠(小松), 고사쿠(剛作)라는 요절한 형제가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우치무라 씨 계보'는 누가 썼을까? 작성된 종이의 재질은 같은데, 필적은 후반부터 다르다. 전반부는 간조의 할아버지인 나리요시(長成), 7번째 장의 고마츠 이름 이후는 아버지인 노부유키(宣之)의 필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다음 8번째 장부터 필적이 뚜렷이 달라진다. 간조의 글씨는 아니므로, 유우지 (祐之) 이후의 누군가가 가필한 것 같다. 주의해서 보면, 첫 장의 2대 요시유키(吉之) 부인의 돌아가신 해를 빨간 글씨로 정정한 게 있기 때문이다.
'우치무라 씨 계보'와는 별도로 초대부터 7대까지 업적을 기록한 30쪽 짜리 고문서가 있는데, 이미 활자화가 끝났기 때문에 그것도 조만간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스즈키 도시로 (鈴木 俊郞) 씨는 '우치무라 간조 전'에서 2대 요시유키(吉之)의 나이를 향년 57세로 기록하였는데, '우치무라 씨 계보'에 있는 '미상'이라는 기록이 바르다. 만일 이 초대부터 7대까지의 업적을 기록한 고문서를 읽는다면 57년이 나이가 아니라 근속년수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치무라 가는 간조와 다츠사부로에게 영어를 배우게 하는 등 개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 고문서는 선진적인 사상을 받아들인 인물로서 아버지 뿐만 아니라 그 위 조부가 서구인과의 대응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였다.
<우치무라가 가계도, 초대부터 간조(8대)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