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영성훈련
하나님께 더 가까이하는 여정
2025년 10월 26일 주일 설교를 팟캐스트로 소개합니다.
모두 네 개의 주제로 나누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shorts/OpssvM4-HZI
에피소드 1: 신앙, 믿음만으로 충분한가? (영성훈련의 재정의)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생명의바다교회 조해강 목사입니다. 오늘 저는 신앙의 여정 속에서 우리가 반드시 고민해야 할 주제, 바로 ‘그리스도인의 영성훈련’에 대한 이야기로 네 차례에 걸쳐 이야기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은 아마 ‘영성이 깊다’는 칭찬과 ‘육신적인 사람’이라는 따끔한 평가를 모두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는 이 말이 군대에서 ‘군인정신이 투철하다’는 말처럼, 우리가 신자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본질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를 묻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앙 내내 이 ‘영성’이란 무엇일까 고민했던 저에게, 마커스 보그의 책 『기독교의 심장』은 명쾌한 답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방법은 훈련이다.”
저는 이 정의가 영성훈련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영성이 깊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것이고, 이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훈련을 깊이, 그리고 오래 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죠.
사실 모든 종교에는 반복적인 수행과 계율이 있습니다. 가톨릭의 정해진 기도 시간, 유대인의 하루 세 번 기도, 불교나 이슬람교의 수행 지침들이 모두 그들의 영성을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우리 개신교회는 어떻습니까?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구원을 믿음으로 받는 은혜로만 강조하다 보니, 종교적인 수행이나 반복적인 훈련을 행위 구원론으로 오해하고 경계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신앙은 ‘믿는 것’이지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진지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깨닫습니다. 사랑은 감정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반드시 실천을 요구한다는 것을요.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믿음과 훈련은 반대가 아닙니다. 오히려 훈련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저는 오랜 고민 끝에 구원을 ‘하나님이 처음부터 우리를 위하여 계획하신 참 인간의 삶을 회복하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 참 인간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그 결과 이 세상이 더 나은 곳으로 변화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훈련이 필수적입니다.
최근 저는 10년간 섬기던 교회에서 사역을 중단하고 아내와 단 둘이 매일 저녁 독서와 성경읽기, 암송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시간이 저의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을 다잡게 해주었습니다. 사역 중단 후 느꼈던 허전함을 채워준 것이 바로 이 영성 훈련이었습니다.
오늘 저희가 이 팟캐스트를 통해 함께 나눌 이 영성훈련의 이야기는 바로,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이웃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더 가까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 될 것입니다.
다음 2화에서는 이 영성 훈련의 가장 중요한 목적, 즉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자기 정체성의 확립에 대해 깊이 있게 다뤄보겠습니다. 나치 감옥에 갇혔던 신학자 본회퍼의 시를 통해 현대인의 정체성 혼란을 짚어볼 것입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https://www.youtube.com/shorts/Q_K1muiOSRM
에피소드 2:
“나는 누구인가?”: 본회퍼와 현대인의 정체성 혼란
에피소드 1에서 우리는 영성 훈련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자 실천임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그렇다면 이 훈련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유익, 즉 영성 훈련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저는 그 목적이 바로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확립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목사직에서 사임하는 환경의 변화를 겪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이 이 정체성의 혼란이었습니다. ‘나는 목사인데, 교회도 없고 교인도 없다. 나는 목사가 맞을까?’ 누구나 관계나 환경의 단절을 겪을 때 이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이 질문 앞에서 저는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시 「나는 누구인가?를 (Who Am I?)」 떠올렸습니다. 본회퍼는 나치 감옥에서 사형 집행을 앞둔 극한 상황에서 이 시를 썼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외로운 질문들이 나를 조롱하네. 오 하나님, 내가 누구이든 당신은 나를 아십니다. 당신이 아시듯,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겉으로는 침착하고 당당한 ‘영주 같은’ 모습이지만, 내면은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연약한 자신을 보며 갈등하는 이 시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문화라는 강력한 영향력 아래서 형성됩니다. 마커스 보그는 현대 미국 문화의 핵심 가치를 세 가지 3A로 설명합니다. 외모 지상주의 (Attractiveness), 성과 지상주의 (Achievement), 물질 지상주의 (Affluence). 우리 사회 역시 몸매와 외모, 성공과 재력으로 사람의 가치를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문제는 우리 모두가 이 세 가지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 세대의 문화를 좇아 살 때 반드시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 교회 안에서 ‘인간은 죄인’이라는 메시지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우리는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종교라는 감옥’에 더 깊이 갇힐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단에 미혹되는 이유 역시 자신의 정체성이 심각하게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 혼란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복음의 은혜입니다. 저는 인생을 ’그림을 그리고 고치는 과정’으로 이해했습니다. 인생의 절반은 세상의 문화가 우리 안에 편견으로 가득 찬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고, 나머지 절반은 영성 훈련을 통해 그 그림을 하나님의 진리로 바르게 수정하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하고 말씀에 집중하는 영성 훈련을 할 때, 우리는 세상의 3A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분명하고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영성 훈련의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정체성을 확립했다면, 이제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합니다. 다음 3화에서는 마커스 보그가 제시하는 영성 훈련의 두 가지 영역, 즉 ‘내면의 훈련’과 ‘공동체의 훈련’이라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깊이 다뤄보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shorts/V8kLQP1s0Xg
에피소드 3: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두 가지 길
(내면 vs. 공동체)
여러분, 에피소드 2에서 우리는 영성 훈련의 목적이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라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오늘은 그 정체성을 회복하는 구체적인 훈련의 방법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마커스 보그는 영성 훈련의 방법을 크게 두 가지 영역으로 나눕니다. 바로 내면의 훈련과 (Inward Practice) 공동체의 훈련입니다. (Outward Practice)
첫째, 내면의 훈련: ‘하나님은 나의 것’이라고 고백하는 훈련입니다. 대표적인 것은 기도와 규칙적인 성경 읽기입니다.
제가 사역을 중단한 후 아내와 단둘이 했던 영성 훈련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매일 밤, 약속된 시간에 성경을 읽고 암송하며, 하나님께 집중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기도는 단순히 간구하는 것을 넘어섭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주의를 집중하는’ 행위이며, 세상의 3에이 A, 즉 외모, 성과, 물질의 압박으로부터 해방되어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라는 본회퍼의 고백을 새기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할 때, 내면의 새장에 갇힌 듯 불안하던 자아가 잠잠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규칙적인 성경 읽기는 세상이 우리에게 심어놓은 거짓된 그림을 걷어내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진짜 지도’로 세상의 ’가짜 지도’를 수정하는 작업입니다. 제가 성경 구절과 왕조 계보를 외우는 행위는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저의 정체성을 하나님의 진리 위에 단단히 고정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둘째, 공동체의 훈련: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나도 사랑하는’ 훈련입니다. 이는 예배와 봉사, 자선과 사회 정의에 동참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내면의 훈련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한 그리스도인은 이제 자기 자신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하는 삶’이 자신을 넘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세상’으로 향해야 함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와 금식의 내면적 훈련에 깊이 몰두하셨지만, 동시에 병든 자를 고치고, 가난한 자를 돌보며, 사회 구조적인 죄악과 맞서 싸우셨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진정한 영성 훈련은 종교적 행위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사회적 행동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주일 예배를 통해 힘을 얻었다면, 주중에는 그 힘으로 자선과 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불의한 세상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정의의 목소리를 내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에 동참하는 공동체의 영성 훈련입니다.
훈련의 방법까지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훈련이 개인의 경건에서 멈추지 않고, 세상을 향한 봉사와 정의로 확장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지막 4화에서는 이 ‘공동체를 위한 영성’과 사도 바울의 결단을 통해 우리의 구원 여정이 완성되는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shorts/2HA-mnuhAsQ
에피소드 4: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나를 넘어 세상으로 확장하라
여러분, 드디어 4부작 시리즈의 마지막 에피소드입니다. 오늘은 영성 훈련의 최종 단계이자, 우리의 구원 여정이 완성되는 지점, 바로 ’공동체를 위한 영성’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가 훈련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라는 정체성을 확립했다면, 이제 이 고백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본회퍼의 시에서 보았듯이, 훈련의 목적은 겉모습만 당당한 위선자가 (Hypocrite)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면의 연약함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힘으로 ’사랑과 평화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 즉 ’타인을 위한 인간이 (Human for Others)’ 되는 것입니다. 참 인간의 삶은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며, ‘이 세상이 더 나은 곳으로 변화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도의 여정에서 우리는 세 가지 큰 변화를 경험합니다.
1. 무지와 편견의 노예생활에서 진리와 해방으로 나아갑니다.
2. 증오와 갈등의 인간관계에서 사랑과 평화의 관계로 발전시킵니다.
3. 허무와 냉담의 삶을 의미와 기쁨으로 충만하게 채웁니다.
이 모든 것은 반드시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예배하고 훈련하는 힘으로 세속적인 3에이 A (외모, 성과, 물질 지상주의)를 거부할 용기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용기를 가지고 이 세상의 불의와 아픔 앞에서 자선과 사회 정의에 동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는 공동체의 영성입니다.
오늘 설교의 본문, 빌립보서 1장 21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의 영성 훈련의 절정을 고백합니다.
인용: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바울에게는 세상의 3 에이가 A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정체성은 철저히 그리스도 안에 고정되어 있었고, 그 힘으로 그는 “내가 이 땅에 더 머무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정체성이 자신을 넘어 공동체를 향한 사랑과 봉사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고백이었습니다.
여러분, 영성 훈련은 단순히 개인의 경건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 예배, 성경 읽기라는 내면의 훈련으로 하나님께 집중하여 힘을 얻으십시오. 그리고 그 힘을 가지고 봉사, 자선, 사회 정의라는 공동체의 훈련에 동참함으로 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과 소금이 되십시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영성 훈련은 종교적 행위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사회적 행동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바울처럼, 그리고 본회퍼처럼 고백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4부작 시리즈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영성 훈련이 깊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