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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와 난 운명인가 보다. 내가 읽어온 오래된 책 이야기를 쓰기 위해 도토리 열심히 질러 구매했던 내 감성 충만 싸이월드 BGM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창에 ‘싸이월드’를 쳐보았다. 그러자 바로, ‘싸이월드 4시간 전에 열렸다’라는 기사가 두 시간 전에 올라와 있었다. 헉. 오늘은 바로 ‘싸이데이’였던 거다(‘맘스터치 싸이데이’ 아님 주의). 비록 BGM은 복구되지 않았으나 싸이월드가 애플리케이션으로 돌아온 오늘이야말로 레트로 열풍 문화의 정점이 아닌가 싶다.
레트로 문화와 싸이월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 시절 내가 싸이월드 BGM을 배경 삼아 읽고 필사하던 어떤 작가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 오랜 독서 생활 가운데 삶의 어느 지점마다 도끼를 찍듯 정신세계를 후려쳐주고,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고민과 아픔도 시가 될 수 있다고 속삭여주고, 가부장제의 나라 한국은 나를 받아들여주는 사회가 아닌 것 같은 이질감에 허우적댈 때 대담한 시야를 보여주고, 자본이 신이 된 사회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을 밝혀준 나의 작가들.
책을 읽은 이유: 세계관이 만들어지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시답지 않은 이야기에 반응하는 법을 모르는 고등학생은 도서관과 친구가 된다. 비록 학교 안에 새로 생긴 작은 도서관이었지만 그곳에는 동아출판사의 1995년판 ‘한국소설문학대계 100’ 시리즈와 온갖 장편 대하소설이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채 가지런히 꽂혀있었다. 도서관을 다니는 이들은 안다. 아직 아무도 대출하지 않은 새 책을 처음으로 대출해가는 기쁨을. 공공의 자산이지만 아직 빳빳한 새 책을 1번으로 펼쳐 들면, 이 책은 그냥 내 책이다.
대학 입시 중심의 고교 생활 중 누가 학교 저 외진 곳에 조용히 개관한 작은 도서관에 들러 책을 대출하겠는가. 게다가 우리 고등학교는 입시 경쟁이 치열하고 학원가가 즐비한 서울 S구에 있었다. 그야말로 대다수가 ‘집-학원-독서실’ 루트를 무한 반복했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당시 힙플레이스였던 동네 베니건스에 가서 특식을 먹거나, 교포로 구성된 알앤비 그룹 S를 덕질하거나, 순정만화 잡지 〈윙크〉를 돌려 읽거나 하는 일상에 도서관 같은 존재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집을 유난히 사랑했던 나는 독서실은 패싱하고 ‘집-학원’ 루트를 반복했고, 소수의 친구들과 순정만화를 돌려보며 심도 있는 토론을 했으나, 베니건스를 가거나 누군가를 덕질하지는 않았다. 아, 솔직히 말해야겠다. 나 혼자 몰래 덕질한 사람이 있긴 했다. 바로 그 ‘한국소설문학대계 100’의 45번 작가 김승옥의 사진을 보고 작가 사진과 사랑에 빠졌다. 피다 만 담배를 손에 들고 청량한 얼굴로 어딘가를 응시하는 그 흑백사진을 본 후, 문학인과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 한구석에서 혼자 발견한 나만의 덕질 대상.
영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촬영 장소이기도 했던 우리 여고는 그 아련한 공포 영화의 배경답게 실내에는 빛이 부족했고, 구조는 미로처럼 복잡했다. 그중에서도 인적이 드문, 어둡고 외진 1층 구석에 위치한 도서관은 흡사 하데스의 문지기처럼 입구에 엄중하게 앉아계시던 사서 선생님의 눈초리를 지나 도착해야만 하는 고난도 레벨 던전이었다. 그 던전에는 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이 모르는, 피다 만 담배를 손에 든 흑백의 미남자 사진을 소장한 그런 새 책들이.
꼭 소설가 김승옥 사진 때문은 아니고, 무슨 오기에서인지 ‘한국소설문학대계 100’을 전부 읽기로 결심한 날, 난 뼛속까지 가득한 반항 정신으로 100번부터 거꾸로 내려가 시리즈를 클리어하기로 했다. 왜 시리즈를 읽는 순서에 그런 정신을 발휘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100번의 작가는 김소진·윤영수·윤대녕이었다. 김소진의 〈춘하 돌아오다〉, 윤영수의 〈올가미 씌우기〉, 윤대녕의 〈말발굽 소리를 듣는다〉를 표제로 내세운 이 책을 다 읽었다는 건 기억나지만, 당시 난 이 소설들이 무슨 소리인지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게 뭐가 중요한가? 그저 이 시리즈의 1번까지 도달하는 게 목표였지 이 소설들을 이해하는 게 목표는 아니었으니까. 86번에 자리한 이창동의 〈소지〉와 안정효의 〈미늘〉이 수록된 책까지는 읽은 것 같으니, 백 권은커녕 겨우 열다섯 권만 읽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말았다.
그때 도서관에서 한국소설문학대계만 읽은 건 아니었다. 아무도 펼치지 않은 《태백산맥》 10권, 《아리랑》 12권 세트를 역시 1번으로 빌려와 몇 달간 수학 시간 내내 수학책 밑에 깔아두고 읽었다. 어차피 들어도 모르는 말을 읊조리셨던 수학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수학 시간은 내 영혼의 양식을 채우는 시간이었다. 당시 논술 필독서였는지 서울대생 필독서였는지 그런 마케팅으로 공부 좀 한다는 우등생들이 이 책을 읽었지만, 난 그냥 거기 도서관에 새 책이 있어서, 그저 1번으로 대출하고 싶은 욕심에 이 책을 읽었다. 《아리랑》 마지막 권을 다 읽고 반납했을 때, 하데스의 문지기는 처음으로 엄중한 표정을 풀고 미소 띤 얼굴로 말을 건넸다. 마지막 권을 다 읽었으니 확인 도장이라도 받아 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무엇을 위해?). 아마 그게 그분을 뵌 마지막 모습이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시답지 않은 이야기에 반응하는 법을 모르는 고등학생은 롯데월드의 고장에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롯데월드를 멀리했다. 그 월드가 내뿜는 소리와 색채와 향기와 형태에 치를 떨었고, 그 월드가 제공하는 즐거움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롯데월드 2층에 있던 S문고의 넓고 쾌적한 공간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아마 거기서 처음 만났을 것이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의 《인물과 사상》 시리즈를. 대선이 있던 해였고, 당시 김대중 후보 사진 옆에 ‘97 대선과 위선의 종언’이라는 주제가 적힌 표지에 유시민과 강준만의 글 제목이 실렸다. 아래로는 그 유명한(!) 〈조선일보〉 주필, 또 다른 김대중 사진이 박혔고, 젊은 백낙청의 사진도 있었다. 정치·시사는 잘 몰랐지만 《인물과 사상》 아래 적혀있던 모토에 뼛속까지 가득한 반항 정신이 반응했다.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 (호우. 굿굿.)
당시 1997년 11월 15일에 발행된 이 《인물과 사상》 시리즈 4권을 내 책장에서 다시 꺼내 보니, ‘97.11.22.’라는 도장이 찍혀있다. 책이 발행된 지 일주일 만에 구매한 것이다. 싸이데이에 싸이월드를 검색한 것만큼의 운명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 수천 권의 책들 사이에서 한 고등학생이 발견한 책이 갓 나온 《인물과 사상》이었으니. 그 고등학생은 이 책을 읽고 큰 충격에 빠졌다. 너무나 자기 스타일이었던 거다. 그리고 문학대계 속 김승옥 사진을 보며 문학인과 결혼해야겠다고 한 결심보다 진일보한(?!)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전북대 신방과에 입학해 강준만 교수님께 배워야겠다는 기특한 결심.
그러나 부모의 지원과 보호 아래 서울에 사는 여자 고등학생이 수능 점수를 낮춰(!) 전라북도 전주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독실한 장로교 합동 교회의 가풍에서, 오히려 더 멀리 있는 도시의 ‘하나님의 대학’에는 지원해볼 수 있을지언정, 난 ‘ㅈ’도 꺼내보지 못한 채, 전공만 유지해 수능 점수에 따라 서울에 있는 한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하니, 많은 주변인이 당시 인기리에 방영되던 시트콤 속 대학생들을 따라 신방과에 입학했느냐고 물었다. 아마 당시 그 시트콤 때문에 신방과에 간 사람이 좀 있긴 했을 거다. 그 앞에다 대고 차마 신방과 교수님의 책을 읽고 ‘이런 글을 쓰려면 신방과에 가야 하나 보다’ 해서 이 전공을 선택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시답지 않은 이야기에 반응하는 법을 모르는 한없이 진지한 내 정체가 탄로 날까 봐. 1980-1990년대 한국소설과 특정 역사관을 가감 없이 드러낸 장편 역사 대하소설, 변방에서 시작된 어떤 인문 사회 담론이 내 세계관을 구성해가고 있었음을 그때는 몰랐다.
사진: 박혜은 제공
책으로 시작해 책으로 끝난 대학 생활: 취향을 가꾸다
그렇게 고등학생 시절, 김소진과 이창동과 조정래를 거쳐 강준만을 사수 삼아 사회과학 공부를 시작한 인문대 반, 사회대 반의 어정쩡한 정체성의 대학생은 잡다한 취향 세계를 갖게 된다. 이제는 〈월간 인물과 사상〉을 구독했고, 복음주의 운동권에서 훈련받는 대학생으로서 당연히(!) 〈복음과상황〉을 구독했으며, 당시 〈씨네21〉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의 히어로 김규항(의 글)을 추종했다. 다양한 매체에서 활약했던 진중권(그래, 지금의 그 진 작가님 맞다)의 재기발랄한 지성을 사랑했으며, 한없이 진지하면서도 비장한 홍세화의 글을 탐독했고, 리버럴 유시민의 행보를 주시했다.
그러던 때, 김규항이 홍세화, 김정란, 진중권과 함께 격월간 시사·문화 평론지 〈아웃사이더〉를 창간했다. 좌파 어벤져스랄까, 지금이라면 결코, 아니, 단연코 한자리에 모일 수 없는 조합이 편집위원으로 모였고, 난 망설임 없이 정기구독자가 되었다. 지금도 내가 이 글을 쓰며 바라보고 있는 정면 책장 서가에 2000년 4월 창간호부터 폐간호인 2004년 6월 19호까지 열아홉 권이 깨끗한 상태로 꽂혀있다. 이 네 명의 편집위원이 19호까지 계속 유지된 건 물론 아니다. 네 명의 창간호 편집위원은 지금 각자의 정치 지향과 신념에 따라 제각각 자기 길을 걷고 있고, 이 중에 지금까지 내게 남은 이는 시인 김정란뿐이다.
아무튼, 대학 생활 중 〈또하나의문화〉 동인지 시리즈를 찾아냈고, 조한혜정을 감탄하며 읽고, 여성주의 계열 온·오프라인 잡지를 읽었으며, 정희진 칼럼을 (싸이월드 게시판에) 필사했다. 사실 전공 공부를 하며 읽은 정치사회학 책과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책들은 다시 찾아보면 밑줄이 열심히 그어져 있으나,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는 책은 없다. 오히려 비전공자로서 순전히 호기심으로 들어간 영문과 수업에서 함께 읽은 《제인 에어》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내게 영향을 끼쳤고, 교양 수업에서 접한 루쉰 소설과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우리 안의 파시즘》 같은 책이 지금까지 삶에 남아있다.
그저 사회과학부 1학년 교양 수업에 불과했던 수업에서 교수님이 읽혔던 《오월의 사회과학》은 내 인생의 책 중 한 권이 되었다. 전공 수업에서는 주로 미국의 여러 미디어 이론서와 저널리즘서를 읽었지만, 이 책만큼 ‘사회과학’의 본질을 알려준 책은 없었다. 문학회에서 활동하던 친구의 친구가 권했던 루카치 책도 잊을 수 없는데, 그 책을 권했던 친구가 졸업 후 보수적인 경제지에 입사해 써내던 글들에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을 보면 그 친구가 떠오른다.
출판문화를 향유하는 1인으로서, 도저히 한국 출판물의 마케팅 세계를 피할 수 없어, 하루키와 김훈을 읽기도 했다. 지금은 굳이 따로 찾아 읽지 않는 작가들이며 책장을 정리할 때 뒤쪽에 배치되는 작가들이다. 교회 공동체 훈련과 복음주의권 출판물 마케팅 세계 또한 피할 길이 없어 유진 피터슨과 헨리 나우웬, 필립 얀시와 C. S. 루이스를 최선을 다해 읽었다. 마케팅을 따르는 게 꼭 나쁘지만도 않은 게 피터슨과 나우웬은 지금도 내 소중한 벗들이기 때문이다. 얀시와 루이스는 지금까지 책장의 잘 보이는 위치에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다.
장로교 합동 교회에서 자랐고 훈련받았으므로 마틴 로이드 존스를 읽는 한편, 기독교와 사회를 함께 고민한 H 대학교 선교단체 J의 선배들 영향으로 자크 엘륄을 함께 읽었다. 지금은 사라진 동아리방 책장에는 박영선부터 이현주까지 두서없이(!) 꽂혀있었다. 다채로운 취향의 향연을 맛보게 해준 독서 고수가 다수 존재했던 선배들과 부대낀 대학 시절을 결코 잊지 못한다. P 선배가 간사가 되어 우리와 함께했을 때, 어느 날 헌책방에 들렀다가 사 왔다며 녹색평론사의 책 두 종을 여러 권 펼쳐놓았다. 장일순의 《나락 한 알 속의 우주》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였다. 난 장일순을 골랐다. 그 책도 지금까지 내 책장 앞쪽에 단정하게 꽂혀있다.
도서관과 서점에서 혼자 길을 찾던 고독한 10대 독서가는 대학 공동체 안에서 읽기의 세계를 넓혀가고 다양한 사상과 취향이 교차하는 가운데 자신만의 세계와 취향을 만들어갔다. 이때, 그러니까 10대와 20대에 읽은 책들이 나를 형성해간 가운데 오랜 시간이 흘러 이 책들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
다시 책으로: 내가 사랑한 작가마다 폐허다
긴 독서 여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간이 훌쩍 지나, 난 김태리 나희도에서 김소현 나희도가 되었다(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참고). 지금은 헌책 13만 권이 빼곡하게 들어찬 공공헌책방에서 4년째 일하고 있다. 한 곳의 헌책방에도 천 개의 책 세계가 펼쳐지는데, 무려 서른한 곳의 헌책방이 모인 서가를 매일 지켜보다 보면 수많은 언어와 세계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아 어질어질하다. 가끔은 잠잠한 책섬 앞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앞서 길게 서술한 내 개인적인 책의 역사가 이 헌책방 서가 곳곳에 새겨져 있어, 종종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하며.
때로는 옛 연인을 우연히 만난 듯 (옛 연인은 마주치지 않아야 한다) 마주치는 책이 있는가 하면, 편안하고 오랜 친구를 바라보듯 (오랜 친구는 서툰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마주하는 책들도 있다. 그렇게 매일 서가를 거닐며 책을 고른다. 숨어있는 헌책을 발견해 시민들에게 이야기와 블라인드북으로 건네는 게 내 일이니까. 그러면서 하는 생각.
‘슬프다. 내가 사랑한 작가마다 폐허다.’
읭? 지금까지 내 독서 여정을 감동적으로 읊은 거 아니었어? 응, 아니었어. 사실 이 문장은 얼마 전 소중하게 읽어 내려간 최지은 작가의 《이런 얘기 하지 말까?》(콜라주, 2021)에 나온 이 구절의 오마주다. “이 글을 쓰다가, 유명 시인이자 대학교수인 H가 성희롱 발언 등으로 강의에서 배제되고 진상 조사를 받게 됐다는 기사를 읽었다. 불행 중 다행이랄지, 윤동주를 제외하면 시인을 사랑해본 적은 한 번도 없는 나조차 알 만큼 유명한 그의 시 구절이 멋대로 각색되어 가슴을 때려왔다. 슬프다. 내가 사랑한 남자마다 모두 폐허다.”(56-57쪽)
그러니까 앞으로 쓸 글은, 내 삶에서 날 깨뜨려주었던 작가들의 이야기다. 한때 사랑했던 작가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아 날 일으켜주는 작가까지 불러낼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사랑한 작가‘마다’ 폐허라고 고백하는 건, 살아남은 작가가 많지 않기 때문일지도. 2000년부터 2020년까지 이어지는 시대와 ‘나’라는 개인을 교차하며 통과한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작가 생존 여부가 궁금하다면, 다음 글을 조-금 기대해주셔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