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습니까?
깨달음이란 새롭게 얻어지는 어떤 것이 아니다.
깨달음은 항상 존재하고 있으며,
다만 < 나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라는 생각을 버리기만 하면 된다.
진아가 존재하지 않는 순간이란 없다.
깨닫지 못했다는 느낌이나 의심이 남아 있는 한,
그것들을 제거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어야 하며,
그것들은 <진아 아닌 것>을 진아와 잘못 동일시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진아 아닌 것>이 사라지면 진아 만이 남는다.
놓여 있는 물건들을 치우기만 하면 빈 공간은 그냥 나타난다.
그 빈 공간은 다른 곳으로부터 가져온 것이 아니다.
깨달음은 바사나[Vasana (정신적 경향성, 즉 습기)]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깨달음의 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까?
그대는 지금 그 상태에 있다.
그 말씀은 진아에만 집중하고 있으면
바사나들이 나타자자마자 사라질 거라는 의미입니까?
그대가 있는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그것들은 스스로 사라질 것이다.
어떻게 하면 진아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진아에 도달한다는 그런 것은 없다.
만약 진아에 도달해야 한다면 진아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며 획득해야 할 대상이라는 의미다.
새롭게 획득한 것은 결국 잃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그것은 영원하지 않으며 영원하지 않은 것은 추구할만한 가치가 없다.
진아는 획득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진아다. 그대는 이미 그것이다.
진정, 그대는 그대의 지복에 가득 찬 상태를 모르고 있다.
무지함이 계속 나타나서 지복이라는 본질을 가진 순수한 진아 위에
막을 드리우고 있다. 이 무지의 막을 제거하기만 하면 된다.
무지란 진아를 육체, 또는 마음과 동일시하는 것이며
이 그릇된 동일시가 사라지면 진아 만이 남게 된다.
따라서 깨달음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그것은 구도자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과연 깨달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과
<나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라는 생각이 바로 장애다.
그 장애로 부터 벗어나도록 하라.
해탈에 이르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립니까?
해탈이란 미래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 영원히 존재하고 있다.
말씀은 옳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해탈을 체험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체험이란 지금 여기에 있다.
아무도 자기 자신의 진아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진아가 항상 실재하는 실체라는 말씀이지만,
실체가 곧 행복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실체가 행복이며 행복이 실체이다.
해탈이라는 말은 매우 혼동을 일으킨다.
왜 해탈을 추구해야 한단 말인가?
사람들은 뭔가 구속이 있고 그래서 자유를 찾게 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진정 구속이란 없으며 자유만이 있을 뿐이다.
왜 억지로 이름을 만들어 내서 그 이름을 추구하고 있는가?
맞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바로 그 무지만 없애면 된다.
해탈이란 구속으로 부터 벗어난다는 의미이며
그것은 현재 구속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러나 사실은 구속이란 없으며 따라서 해탈도 없다.
마음과 진아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아무런 차이도 없다. 마음이 내부로 향하면 곧 진아요,
외부로 향하면 에고와 이 모든 현상계가 된다.
같은 솜으로 만들어진 여러 가지 옷들을
우리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며,
금으로 만들어진 여러 가지 장신구들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지만,
그것들은 결국 같은 솜이며 같은 금이다.
마찬가지로 실체는 오직 하나이며,
그 외는 다만 이름이고 모습일 뿐 이다.
마음은 진아와 따로 떨어져서 존재하지 않는다.
즉, 마음에는 독립되어 있는 실체가 없다.
진아는 마음 없이 존재하지만 마음은 결코 진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 라마나 마하리쉬 / 나는 누구인가 중에서
출처 : 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