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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9월 16일 (일요일) : <새재사랑산악회> 122차 신선봉-마역봉 산행 (2)
* [산행] 고사리(괴산 연풍) 레포츠공원→ 산의 들머리(2기의 봉분)→ 병풍바위(뾰족봉)→
방아다리바위→ 서봉→ 신선봉→ 마역봉→ 제3관문(조령관, 새재)→ 시멘트포장도로→ 고사리주차장 → 문경 제1관문 입구 주차장→ 귀경
▶ [신선봉(神仙峰) 정상에서의 천하 조망(眺望)] 운해 장관이 연출하는 신비경…
☆… 안부 갈림길에서 다시 오름길, 얼마 가지 않아 정상인 신선봉(神仙峰)에 도착했다. 오전 11시 51분이었다. 정상(966m)은 암봉이었다. 봉우리 가장자리에 덩그러니 초소가 하나 있는데 사람은 없고 자물쇠만 굳게 잠겨 있었다. 표지석은 다른 산정과는 다르게, 암봉 바로 아래에 설치되어 있었다. 좁은 암봉 위에 정상 표지석을 세워놓으면 사람들이 좁은 곳에 모여 사진을 찍다가 사고가 날 것을 염려하여 그렇게 한 것이라고 했다.
☆… 해발 966m 신선봉 정상은 백두대간 주변의 거대한 산군(山群)을 한 눈에 조감할 수 있는 전망의 포인트이다. 오늘은 사방이 운해가 펼쳐져 있어 그 산봉이나 산맥들이 하얀 구름 위에 떠 있는 형상이고, 그 뽀얀 산안개가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 수시로 변화무쌍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참으로 그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이곳 산의 이름이 신선봉(神仙峰)이니 내 호연지기(浩然之氣)로 표현한다면, 정상에 올라서 있는 내가 잠시 신선(神仙)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비는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고 바람결도 그렇게 드세지는 않았다. 정상에 버티고 서서 잠시 구름 위에 솟아있는 ‘천하의 산봉’을 조망한다. … 동쪽으로는 구름 위에 떠 있는 산봉들이 여기저기 원근의 자리에서 솟아 있는데 그 중 가장 뒤쪽에 뾰족하게 높이 올라와 있는 것이 월악산(1,092m)이다. …
☆…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저 멀리 주흘산(1,079m) 연봉을 비롯한 백두대간의 산군들이 보이고, 그 산군 한 가운데 6개 연봉으로 솟아있는 것이 부봉이다. 이 부봉은 새재 관문 주변의 여러 산봉의 중심인 제2관문 옆에 자리하고 있어 마치 연꽃의 꽃술과 같은 형상이다.
☆… 남서쪽으로는 눈을 돌리면, 장대한 조령산맥이 이어져 나간다. 조령산(1,026m)은 새재(제3관문) 옆에 솟아 있는 깃대봉(835m)을 비롯하여 신선암봉(939m)으로 이어져 나가고 있다. 그 뒤로 대간의 줄기인 황학산-백화산(1,064m) 봉우리가 구름 위로 떠 있는 모습도 보이는 듯하다. …다시 멀리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희양산(996m)과 그 뒤의 악휘봉(845m)이 아득하게 구름 위에 떠 있다. 모두 백두대간의 연봉이다. 날씨가 맑으면 사방의 장관을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기도 하겠지만, 지금은 1,000m 전후의 산봉들만 구름 위에 솟아 있으니 산의 대맥을 파악하는 데, 오늘 같은 날이 아주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오늘 눈앞의 펼쳐진 운해(雲海)는 드물게 보는 비경(秘境)이다. 비록 우중 산행이지만, 저 신비스러운 풍경은 이런 날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것이니, 매사 실(失)이 있으면 득(得)이 있는 법이다. 중국에서는 안후이성(安徽省) 황산(黃山)의 운해(雲海)를 두고 그것을 예찬하는 시인묵객들의 먹물이 지금도 번쩍거리고 있다. 내 오늘 새재의 신선봉에서 백두대간의 산군을 조망하며 저 구름바다의 아름다움을 필설로 다할 수 없다. … 그런데 참 아쉬웠다. 오늘 새재사랑산악회 모든 대원들이 함께 올라왔더라면 이 아름다운 장관을 같이 볼 수 있었을 터인데….
▶ [점심식사] 환담과 어우러진 즐거운 식사…
☆… 신선봉 아래 작은 돌들이 깔린 너른 자리를 잡아 점심식사를 했다. 다행히 비는 소강상태이므로 점심식사를 하는 데는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산에서 먹는 음식은 그냥 보아도 진수성찬이다. 시장이 반찬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산우들이 내 놓은 음식들은 소박하면서도 넉넉하고, 한 점 한 점 감칠맛이 있다. 단출하게 둘러 앉아 환담을 나누며, 함께 나누어 먹는 음식이야말로 하나의 동지애를 느끼게 하는 원초적인 즐거움이 아닌가. 이야기꽃은 얼마나 또 풍성한가. 맛깔스런 게장을 담아온 꽁지 문 사장의 지극한(?) 부부애가 닭살을 돋게 하지만 그것도 보기에 좋은 인생의 한 장면이고, 뒤늦게 내놓은 하회탈의 메밀묵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어디로 갔는지 바닥이 나버렸다. 메밀묵 특유의 그 담백하고 구수한 맛으로 하여 그냥 몇 번의 맨손들이 들락거리더니 각자의 입으로 날아들어 가버렸다. 열 통장의 사부인이 발그레한 솔방울주를 내놓았다. 한 모금 음미하니 진한 솔향기를 풍긴다. 즐거운 식사, 행복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 [산길의 야생화] 하얀 구절초 보랏빛 구절초…
☆… 오후 12시 35분, 신선봉 정상에서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다시 산행을 계속했다. 가파른 내리막 길, 그리고 다시 가파른 바윗길을 오르고 또 다시 낙차가 큰 바위를 타고 내린다. 가끔 가파른 곳에서는 자일이 설치되어 있어 그것을 이용하여 안전하게 진행을 할 수 있었다. 바위틈이나 길목의 여기저기 물기를 흠뻑 머금은 구절초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웃음 같은 환한 분위기, 아주 깨끗해 보인다. 특히 흰색의 구절초는 그 청초하고 개결함이 돋보이는 꽃이다. 간간이 보랏빛 구절초도 보인다. 비교적 꽃봉오리가 하얀 꽃보다 작은 편이지만 은은하고 다소곳한 자태가 아주 곱다.
▶ [소나무] 산을 지키는 장엄한 생명…
☆… 무엇보다도 신선봉 암릉 길은 곳곳에 장대한 적송(赤松)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하늘로 쭉쭉 뻗어 올라간 모습이 아주 시원스럽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도 있다. 거대한 소나무가 지난번 15호 태풍 ‘볼라벤’의 강풍을 이기지 못하여 뿌리를 드러내고 가로 누워 있었다. 그렇게 몇 그루 눈에 띄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바위틈이나 암벽에 뿌리를 내린 거송(巨松)은 온전하게 서 있는데, 길을 가로막교 쓰러져 누운 소나무는 흙속에 뿌리를 내린 것들이다. 그렇다. 사람이 사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척박한 환경에서 갖은 고난을 극복하고 성장한 사람은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그런데 어려움 없이 자란 사람들은 조금만 힘이 들어도 금방 한계를 느끼고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하늘이 내린 생명의 이치는 이렇게 ‘하나’로 통한다. 우리가 심신을 더욱 강건하게 하고자 구슬땀을 흘리며 힘든 산길을 오르는 것도 이러한 ‘하나의 이치’에 근거한 것이리라.
▶ [산길에서 만난 산우] 세 사람…
☆… 성긴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고 안개가 휘감고 있는 암릉 길을 따라 크고 작은 바위를 타고 오르며, 때로는 절벽을 우회하는 길을 따라 걷기도 했다. 그런데 어! 이게 누구인가. 신선봉과 마역봉 중간 쯤 되는 위치에서 제2진으로 갔던 김동순과 이융희, 그리고 김이순 산우를 만났다. 우리와는 반대로 신선봉을 향하여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2진을 따라가던 세 사람이 제3관문에서 마역봉에 올라 신선봉을 향하여 산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직 점심도 들지 않은 상태였다. 일단 신선봉을 가서 가장 가까운 고사리휴양림 쪽으로 하산하도록 이르고, 교차해 나아갔다.
▶ [마역봉] 백두대간 종주의 중요한 포인트…
☆… 우리들은 신선봉을 출발한지 40분 만에 오늘의 최종 등산 지점인 마역봉에 도착했다. 오후 1시 26분이었다. 마역봉은 일명 마폐봉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암행어사 박문수가 관문(關門)의 기찰을 피하여 이곳을 지나가면서 잠시 마패를 걸어놓고 쉬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거울 같이 깨끗한 오석(烏石)에 산뜻한 글씨로 표지석을 앉혀 놓았다.
☆… 마역봉(925m)은 백두대간 산행의 중요한 포인트이다. 한반도의 중추인 백두대간은 소백산-죽령-도솔봉을 넘어 와, 문경시 구간에 들어서면서 동로의 황장산-대미산-문경의 포암산을 지나서 안부 하늘재에서 잠시 한숨을 내려놓은 뒤, 다시 서진하여 주흘산-영봉 갈림길과 부봉 삼거리를 지나 이곳까지 내달려온 것이다. 대간은 이곳 마역봉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가파른 내림길로 쏟아져 내려간다. 바로 저 아래 안부인 새재(제3관문 조령관)를 경유하여 다시 오름길을 타고 조령산 줄기로 이어져 나간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산행한 신선봉 줄기는 백두대간 마역봉에서 서쪽으로 뻗어나간 지맥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곳 마역봉은 조금 전 지나온 신선봉처럼 사방의 경관을 살피기에 아주 좋은 지점이다. 특히 새재 안쪽의 계곡과 주변의 산을 관망하기에 좋은 곳이다. 오늘은 산안개로 인하여 전망이 별로 좋지 않았다. 이곳에서 제3관문까지는 1km가 채 되지 않지만 경사가 급하고 산길이 험하다. 하산길 중간 지점에 벼랑을 이룬 우뚝한 바위가 있어 조령계곡을 조망하기에 좋다.
▶ [새재] 제3관문 조령관…영남대로의 관문
☆… 오후 2시 정각, 새재(제3관문)에 도착했다. 이 관문은 충청북도에서 경상북도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이면서 한반도 수계(水系)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관문 바깥의 물줄기는 충주 달천강으로 흘러가 남한강에 유입되고, 새재 안쪽의 물은 조령계로 이루어 흐르다가 영강의 본류가 되어, 낙동강에 합류하여 남해로 흘러가는 것이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영남을 비롯한 남도의 선비들이 청운의 뜻을 품고 넘나들었던 곳이며, 영남의 갖가지 물산들이 모두 이곳을 통하여 중원과 한양을 향하여 오고가는 영마루이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 동안 사연도 많고 애환도 많다. 특히 1592년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小西行長)가 18,500명의 왜군을 이끌고 한양으로 진격하던 곳도 바로 이 길이었다. … 관문 옆에는 조령산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약수가 있다. 우선 이 높은 고갯마루에 샘이 있다는 것도 특이하거니와 산길을 오르면서 목이 마른 과객들에게는 얼마나 고마운 물이겠는가. 조선 숙종 34년(1708년) 조령성을 축성할 때 새재 정상(650m)에서 발견된 이 샘은 한양 길을 넘나들던 선비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역사 속의 명약수로서, 옛날부터 이 물을 즐겨 마시면 장수한다는 백수영천(百壽靈泉)이라 한다. 그러나 오늘은 요즘은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마시기에는 부적절하다는 판정문이 안내판에 붙어 있고 바가지도 다 치워 버렸다.
▶ [새재] 우리 인간의 삶과 역사가 교차하는 곳…
☆… 산줄기가 뻗어가는 맥락을 보면, 이곳 새재(제3과문 조령관)는 장대한 백두대간이 동서(東西)로 지나가다가 잠시 무거운 숨결을 내려놓는 곳이요, 또 남북(南北)으로는 사람들과 물산이 교차하는 교통의 요로이며 군사적 요충지이다. 새재를 지나는 수많은 선비들의 사연이나 감상도 많다. 그래서 이름난 시인 묵객들이 이곳을 지나면서 한두 편의 시를 남기고 가지 않은 사람이 없다. 조선시대의 사림(士林)의 중심은 영남의 선비들이었다. 고려가 망하자 자신의 본향인 경상도 구미로 낙향하여 채미정(採薇亭)을 짓고 제자를 길러낸 야은(冶隱) 길재(吉再)를 위시하여, 그 계보에서 용출한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등이 모두 이 길을 오고가면서 세상의 영욕을 다하며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조선 성리학의 거봉을 이룬 퇴계(退溪) 이황(李滉)을 비롯하여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이나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등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모두 이곳을 통해 관직에 나아갔으며, 한때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안동 도산의 퇴계를 찾아오면서 지나간 길도 이 길이었다. 새재의 과거옛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의 시를 자연석 시비에 새겨 곳곳에 세워놓았다. 제3관문 안쪽 좌측에도 서거정, 김종직 등의 시가 빗돌에 새겨져 있다.
다음은 관문 옆에 서 있는 시비(詩碑) 중 조선 중기의 문인 허암(虛庵) 정희량(鄭希良)의 <登鳥嶺>(새재에 올라)이다. 가을 단풍이 곱고 솔바람소리가 스산하다. 높은 고개를 넘는 시인의 행색은 초라하다. 유랑의 길이 험난한 듯 낡은 삼베옷에 고독한 여운이 감돈다. 날아가는 새를 홀로 바라보는 정경이 쓸쓸하다.
一路秋山三尺驪 단풍 든 새재를 나귀 타고 넘는데
三霜古褐一溪奴 세 해 지난 베옷에 몸종 하나뿐
翩翩獨望松風過 나는 새 바라보며 솔바람소리 맞노라니
此是詩人出峽圖 내 모습 그야말로 그림 속의 그 시인
▶ [주차장 내려오는 길] 고사리 관문 길, 그 심각한 자연 훼손…
☆… 새재 관문에서 고사리 주차장까지는 약 3km의 거리이다. 서둘러 내려 왔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후둑후둑 성글게 떨어지는 빗줄기였다. 그런데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고사리로 내려오는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오다 보면, 길옆의 평지나 장대한 소나무 숲 속 여기저기에 통나무집이나 식당과 매점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서 있어 아주 난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제3관문 앞 조령산 깃대봉 산록에 울창한 산림을 베어내고 눈썰매장을 만들어 놓는 등 지자체에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안간 힘을 쓰면서 이렇게 천혜의 자연을 마구잡이로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자연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그 생명성을 유지하는 길이요, 자연이 건강한 생명을 유지할 때만이 인간도 건강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고, 관(官)에서는 앞을 내다보지 않고 개발을 허가하거나 방조하고 있으니, 이 조잡한 행태를 어찌하면 좋은가. 그렇게 보면 문경 쪽의 새재도립공원은… 아주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생태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 [에필로그] 아쉬움, 그리고 정체가 심한 귀경길
☆… 오후 3시 정각, 고사리 주차장에 도착, 우리 제1진의 대원들은 하산을 완료했다. 그런데 제2진의 산우들은 고사리휴양림에서 신선봉을 오르지 않고, 그냥 제3관문 새재를 넘어 문경 제1관문까지 내려갔으므로, 그들을 태우기 위해 우리는 차를 몰아 문경 1관문 주차장으로 내려가야 했다. … 오후 3시 52분, 문경 관문주차장에서 대원들을 모두 태우고 서울로 출발했다. 귀경길은 정체가 극심했다.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막혀 충주 노은I.C에서 내려, 서이천까지 3번 국도를 이용했는데 거기도 막히는 건 마찬가지였다.
☆… 비가 내리면 산을 오르는 데 불편한 점이 많다. 우선 빗물이 몸에 젖어들어 축축한데다 우의(雨衣)를 착용하게 되니 몸에서 나오는 열기와 땀이 배어 여간 답답하지 않다. 그리고 산길이 평소보다 미끄러워 산행에 불편한 점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거기에 대비한 장비를 갖추고, 서로 도와가며 산행을 진행하다보면, 어느 정도의 열악한 조건은 모두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다함께 산의 정상에 올라 통쾌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맛보고, ‘한마음’으로 성취감을 나누면서, 정겹고 인상 깊은 추억을 공유(共有)할 수가 있다. 특히 오늘 같은 경우, 수많은 새재 산군의 운해(雲海)와 산안개에 싸인 기암절벽과 낙락장송이 어우러진 그 아름다운 장관은 비가 내리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풍경이다. 새재사랑산악회의 이름 한 복판에 따뜻한 ‘사랑’이 들어 있다. 우리 산악회는 ‘사랑’의 마음들이 모여 이루어진, 고락을 같이하는 정겨운 모임이다. 하나의 산행 계획에 따라 같은 차에 타고 산을 오르기 위해 같이 간 산우들이다. 대원 모두 한마음이 되어 다 같이 산행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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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보기더문 운해를 보았습니다.. 모든대원들이 함께하지못한
아쉬움이 남는 산행이였습니다.산에가기전에 그 산에서
무엇를 보겠다는 인간의 마음을 자연은 그렇게 무너지게
합니다. 그냥 산에에들면 산은 사람에게 다변하는 감동을
주는것같습니다. 이렇게 9월 산행도 마무리됩니다.
고생 하셨습니다.
개으럼 피우다가 저 아름다운 운해를 보지 못해 아쉽네요....
못본 운해 호산아고문님 그림으로 보게되니 황홀합니다.
아름다운 사진 고맙습니다....
운해의 비경이 정말 환타스틱! 합니다
함께하지못해 넘넘 아쉽네요 ...
아름다운글 아름다운사진 잘 감상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