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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이 제 하
1
계해년(癸亥年, 1983)이 저물던 12월 중순 해질 무렵에 있었던 일이다. 물치삼거리에 잠깐 속초 시내버스에서 몇 사람이 내렸다. 방한 점퍼들을 여미고 벙 거지*에 륙쌕*을 메거나 세면도구용 가방을 달랑 손에 든 사내 서넛은 산행길인 듯, 엇 추워 뭐라고 떠들면서 길가 가게 쪽으로 곧 몰려 걷기 시작했고, 뒤따라 내린 중늙은이 하나도 시내에서 횟감을 구해 오는 길이었던 모양으로 꾸러미를 든 채 어기적거리며 그 뒤를 따르고 있었으나, 마지막에 내린 사내 하나만이 전차에 받힌 듯한 얼굴을 하고 우두커니 그 자리에 못 박힌 채 서 있었다.
코르덴*점퍼에 옛 시골 면서기의 그것 같은 낡은 가방을 늘어뜨린 모습으로, 버스 꽁무니가 사라진 쪽을 눈여겨보고 있는 눈치였으나 실은 길 건너편을 그는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닿는 한 온통 그것뿐인 듯한 바다가 통째 바로 앞에 펄쳐져 있었던 것이다.
거의 충동에 쫓기다시피 서울 터미널에서 차에 오른 이래 그동안 심심치 않게 물을 보며 흔들려온 것은 사실이지만, 좀 전 멈춘 차장너머 갑자기 들이닥친 바다는 그런 것들과는 전혀 느낌이 달랐다. 자신도 모르는 힘에 떼밀려 마지막 순간에 급하게 그가 차에서 몸을 내린 것도 그 때문이다. 무어랄까, 그것은 창졸간*에 앞을 막아선 절벽과도 같았다.
서울 바닥의 그것 같진 않아도 관광버스니 뭐니 그런 차량들이 그대로 끊이지 않는, 그 부근만 4차선의 세 배쯤 돼 보이는 더 넓은 광장 같은 아스팔트 한끝에서 곧바로 물은 시작되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진저리를 한 번 치고, 주춤거리며 낭떠러지를 피하듯 조심스럽게 그는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행락객들을 위해선지 길 중간중간에는 씨멘트 화단 같은 것이 만들어져 있기도 했으나, 딛고 선 바닥이 모로 서는 듯한 세찬 바람 속에서 그것들은 한없이 왜소하고 짜부라져 보였다. 두어 자* 높이의 길 축대를 내려서자 십여 미터쯤 돼 보이는 폭의 자갈사장* 속으로 그는 걸어 들어갔다. 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그가 허리를 굽혔을 때 정지! 움직이지 마라, 하는 고함이 들렸다.
“세 발짝 물러서! 그냥 두고.”
“……”
소총을 겨누고 다가온 초병은 그가 열어놓은 가방을 기웃이 들여다보더니 표정이 누그러졌다.
“이게 뭐요?”
“제미…….” 하고 그가 말했다.
“보면 몰우? 난수표하고 미숫가루……”
“이 아저씨가?”
가방 속이라야 내의 한 벌과 세면도구와 비닐봉지 하나밖에는 없다. 초병이 쭈그리고 봉지를 뒤적이고 있을 때 넌 벌써 죽었어, 하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쳐갔다. 간첩이라면 이 틈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가방 속에 무기를 넣고 다니는 얼간이가 이 세상에 있을까.
“뭐요, 이거? 가루 같은데…… 석회 아뇨?”
봉지 아구리*에서 꺼낸 손가락을 문대며 들여다보고 있는 초병을 언짢은 심사로 바라보다가 그는 작심하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미싯가루라고 했잖우?”
“이 아저씨가 정말? 어, 뼈군…….”
“뿌리고 빨리 올라가슈.”
“……”
“…… 빨리 올라가슈.”
십오륙 년 전 훈련병 시절에,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든 채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엉뚱한 곳에 투척해 동료 하나의 팔을 날려버린 사고를 그는 목격한 일이 있다. 주위에서 아무리 발을 구르고 제 방향을 손가락질하며 외쳐대도 그 훈련병은 더욱 시뻘게진 얼굴로 게걸음만 치고 있었는데, 초병에게서 봉지를 채뜨려* 받자 그는 자신이 흡사 같은 꼴이 된 것 같아 울화통이 치미는 것을 느꼈다. 가방을 주워 들고 두말없이 그는 길 쪽으로 올라갔다.
‘매운탕’ 이라고 종이로 유리에 써 붙인 두어 집 간이식당의 들창이 길 건너 먼빛으로도 심하게 바람에 덜컹거리고 있다.
그가 왼켠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아까 버스에서 같이 내린 예의 사내들이 난로를 끼고 앉아 술추렴*을 하고 있다가 그를 돌아봤다. 륙쌕을 메었던 사내가 안면이 있다는 얼굴로 쉬이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있었으나, 개의치 않고 그는 한쪽 구석으로 걸어가 맹꽁이의자에 몸을 앉혔다.
“이 자식이 왜 여태 안 와? 실패한 것 아냐?”
“쌔고 쌘 게 그것들인데 아무리…… 그 반대겠지.”
“반대라니?”
“이년들 쩟짜나 붙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잘못 웅웅 했다간 떼로 따라붙는다니깐.”
“미리 기를 지질러 오지 김장군이 어련할까…… 남으면 함께 조지지 뭐, 둘이고 셋이고 힛…….”
“짜아식, 들이밀자 싸면서 엄포는·…‥”
“이거 왜 이래 임마? 나 안직 끝장 안 났다구. 것두 연장 나름이야. 파이프만 맞아봐, 한 시간을 내리…….”
“신세타령 한번 던적스럽다,* 다 늙어뿌렸군. 관들 두라구…….”
낄낄대며 다시 떠들기 시작한 사내들 뒤쪽에서 중늙은이가 샛문을 열고 나와 그에게로 왔다.
“매운탕 하시겠수, 것뿐인데?”
“고기는 뭐요?”
“광어…… 것도 그뿐이우, 쇠주도 하고?”
“대포로 주쇼, 한 잔만. 밥 좀 주고…….”
깍지 낀 손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그것을 풀고 그는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 양반 나 좀 보겠수…… 하고 예의 중늙은이가 샛문 저쪽에서 다시 그에게로 온 것은, 주모가 날라준 찌개와 밥을 비운 그가 두 번째 담배를 붙여 물고 잠시 무료하게 눈을 감고 있을 때이다. 이때는 옆자리의 사내들도 기다리고 있던 동료가 들이닥치자 왁자하니 떠들면서 이미 자리들을 뜬 뒤여서, 가게는 텅 비어 있었다. 그들은 등산을 구실 삼아 엽색행각을 나온 패거리들인 듯했다. 중간에 나타난 베레모의 사내는 젊은 여자 네댓을 함께 끌고 왔고, 짝이 맞지 않아 그들은 실랑이가 벌어졌던 것이다.
“난 필요 없다고 했잖아?” 하고 륙쌕의 사내가 볼멘소리를 했다.
“필요 없다고 했는데 남아돌게 데려오면 어떡허라는 게야?”
“아따 자슥 폼 잡아쌓는다…… 까이 싫다는 놈 첨 보네. 수효대로 끌고 왔는데 웬 말이 그렇게 많아? 정말 필요찮여?”
“필요찮여.”
“필요찮음 관둬라, 내가 처분할 테니……그 대신 네 까이한테는 손가락 하나 까딱 않을 테야. 돈만 늬가 내라구.”
“이런 때려죽일 인종지말자 같은 자슥.”
“늬 마누라한테나 알러바쳐, 고자 같은 그런 소리……
영자야 춘자야 하고, 베레모의 사내는 여기저기 나앉아 일부러 휘둥그레 눈을 뜨고 있는 여자들을 밖으로 몰고 나갔고, 마지막으로 나가던 륙쌕의 사내가 또 그를 돌아봤다.
“산으로 오실 거요?”
그가 대답을 않고 우물거리고 있자 륙쌕은 벙거지 챙을 앞으로 당겨 내렸다.
“같은 길이거든 ‘백설여관’으로 오슈. 고스톱이나 칩시다. 노형*은 광은 파시든지…….”
밖에서 사내들이 택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숟가락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몸을 팔러 왔다고는 해도, 섞여서 들리는 여자들의 깔깔대는 소리는 사내들의 그것보다 훨씬 활기에 차 있었다. 그는 륙쌕의 사내가 왜 두 번씩이나 알은척을 하려 했는지 가늠이 서지를 않아 멀거니 들창을 바라보았다. 광 팔아 님을 사서 산으로 들꺼나……
암말 말고 이리 따라오우, 하고 중늙은이가 그를 이끌고 간 곳은 샛문 밖의 한 방이었다. 식당은 그러니까 원래는 헛간 같은 것이었던 데를 앞쪽으로 달아낸 모양으로 쪽문을 들어서자 처마가 납작한 작은 고가(古家)의 뜰이 바로 이어져 있고, 부엌이 따로 없는지 툇마루와 뜰 여기저기엔 을씨년스런 그릇들과 김을 내는 솥 같은 것이 걸려있었다. 이 방이우…… 해서 열어 젖뜨려주는 데를 들여다보기는 했으나, 더 이상 움직일 생각을 않고 그는 축담 앞에서 중늙은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선상님 월산(月山) 부근까지 모셔다드리시우” 하고 중늙은이가 말했다.
“십 만 원 내놓겠대유. 여든이 넘은 선상님이 사횰째 저 지경이우.”
“환자군요.”
그는 다시 힐끗 방으로 눈을 주었으나, 오늘은 액만 끼는 날이군…… 싶어 돌아설 채비를 했다.
“왜 절더러?”
“사흘째 기다려두 쓸 만한 사람이 없수. 이녁이면 되겠는데?”
“택시가 있는데 왜 그러쇼?”
“월산 길엔 차가 못 다니우. 길도 없고……휴전선 너먼지 이쪽인지, 원……”
“……”
“그 부근까지만이라두 가겠다는 거유. 서화(瑞和)까진 들 수 있을 거유.”
‘쓸 만한 사람’이라고 중늙은이가 말하는 것은 힘깨나 씀 직한 상판을 가리키는 것임이 분명 했다. 방 속에는 가슴이 덜컥할 지경으로 두 눈을 부릅뜬 노인 하나가 머리를 비튼 채 누워 있고, 간호사 차림의 여자가 바람벽*에 등을 기댄 채 무표정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아저씨가 모셔다 드리지 그러슈?”
“내가 선상님을 업어?”
화난 얼굴로 중늙은이가 말했다.
“교통빈 별도루, 십만 원 내놓는대잖아?”
“난 산으로 가는 길요, 안되겠어요.”
“길에서 만난 처지끼리 너무 빡빡하군, 이 양반? 얼마면 되겠나?”
“왜 이러쇼, 이거?”
“안되겠나?”
“딴 사람 찾아보슈.”
“억지로 그러시지 말아요, 아저씨.”
간호사 차림의 여자가 방 속에서 억양 없는 소리로 말했다. 그는 돈을 내겠다는 사람이 병든 노인인지 간호사인지 가늠이 가지를 않아 돌쳐서서* 나오면서도 꺼림칙한 기분에 휩싸였다.
가게 앞에서 길 건너를 넘겨다보았으나 갈맷빛*이었던 바다는 이미 짙은 잿빛의 암청으로 바뀌어 있고, 초병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갈사장 속으로 한 발을 들이밀기만 하면 노리쇠 소리를 내며 또 어디선가 불쑥 모습을 드러내리라.
삼거리에서 산 쪽으로 꺾어드는 버스를 얻어 타고 벌써 캄캄한 땅거미에 먹혀들기 시작한 들녘을 밖으로 내다보면서도, 그는 같은 기분에서 쉬이 벗어날 수가 없었다. 병든 노인을 팽개쳤다는 꺼림칙함 뿐이라면 또 모르지만, 그런 기분은 오히려 간호사 차림의 여자한테서 받은 인상 때문에 오는 듯했다. 그는 그 간호사가 겨우 스물 안팎의 애송이인지 아니면 서른이나 마흔이 가까운 그런 얼굴인지 도무지 가늠이 서지지가 않았다. 방 속에서 낮게 흘러나오고 있던 카세트 라디오의 판소리 가락과 함께 알전등 불빛 밑에서도 그 얼굴은 이렇다 할 윤곽 같은 것이 전허 잡혀 있지가 않았고, 그것이 묘한 거부감을 그에게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두터운 외투에 호사스런 털목도리를 한 노인은 차림새로 보아 돈깨나 있는 집안의 깐깐한 가부장쯤으로 보였다. 그들은 산에서 요양이라도 하다 병이 깊어져서 돌아가는 길인 듯했다. 팔자도 좋게…… 라기보다, 첫눈에도 중풍임이 분명했지만, 중늙은이가 휴전선 어쩌고 하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 부릅뜬 눈만 아니었더라면, 그는 그런 대로 제의에 응했을지도 모른다.
여관 동네에 내려서 ‘백설여관’을 찾아들자 예의 륙쌕의 사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이층 창문의 불빛을 등지고 그에게 손을 들어보였다.
올라오소. 틀림없다니깐……“
그가 올라가자 계단 입구에 내려오려는 자세로 사내가 서 있다가 “방은 따로 잡지 마쇼” 했다.
“넷이면 충분해요, 셋만 달랬더니 자릿값 하라고 뻗대는 거야, 주인이…… 올 때마다 들르는 덴데, 우라질…… 저 녀석들은 앉아서 날샘들을 해요. 난 고스톱 취미 없어. 낼 아침 폭포 보러 안 가시려우, 운동 삼아?”
“스톱 끼워주겠다고 오라시지 않았어요?”
“두어 시간 치다 주무슈. 그것 재미없어요. 갈 때나마 맑은 정신으로 내려가야지 이거 원, 밤낮……”
륙쌕의 사내가 데리고 가준 방을 들여다보기는 했으나, 가방을 그대로 든 채 그는 사내의 뒤를 쫓았다. 그다음 방이 사내의 방인 듯싶었고 투전판은 세번째 방에서 벌어져 있었다. 사내들 틈에 하나씩 끼어 앉은 여자들이 깔깔대거나 술과 안주를 먹여주거나 돈셈들을 거들고 있었는데, 그들은 아마 그 재미로 여자들을 부른 듯싶었다. 야야 여학생, 오늘은 내 대신 이 손님 잘 모셔…… 저녁은 하셨소? 어쩌고 하는 수인사 도중에 륙쌕의 사내는 여자 하나를 끌어다 그 곁에 앉혔고, 기왕 붙으려거든 찰떡같이 붙어라 하고 딴 여자 하나가 그에게 묘한 시늉을 해 보였다.
“따든 잃든 자정 전에는 주무쇼, 열 내면 신세 망치우. 낼 아침 깨우리다…… 난 방에서 요가 연습이나 해야겠어…….”
륙쌕의 사내는 그가 판에 끼어들 태세를 갖추자 그런 말을 남기고 나가버렸다.
“저 새낀 뭐 땜에 산에 오는지 모르겠어. 밤낮 저래·…‥” 하고 베레모의 사내가 입을 비쭉였다.
“고도리, 껍박, 똥싸개 다 있어요, 재규도 있고…… 아시죠? 광은 오 원이고…….”
“재규는 뭡니까?”
“광 뒤집어서 짝 없으면 하나씩 뺏는 거야, 닥치는 대로 띠든 열끗이든……광만 안돼, 좋다 마는 거지.”
“왜 좋다 말아? 그게 어딘데.”
딴 사내가 말했다.
“뺏은 판엔 스톱을 못해요. 한 바퀴 돌고 나서·…… 그새 임자가 나서면 신세 조지는 거지.”
“임자라뇨?”
“딴 사람이 스톱을 건다 이거요. 두 배로 뒤집어써요. 안해보셨소?”
대답을 않고 지갑을 꺼내긴 했으나, 판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광 하나에 오천 원, 점에 천 원…… 게다가 낭아리까지 있고 보면 잘못하다간 여비까지 털릴지도 모른다.
투전판 재미는 생긴 대로 노는 꼴 재미란 말도 있지만, 일단 판이 벌어지자 그들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판을 키우기 위해 그들은 잡다한 규칙을 만들어 넣은 듯싶었고, 여자들만이 그나마 지껄이거나 간간이 웃음을 터뜨려서 고개를 들게 했을 뿐이다. 곁에 앉은 여자는 앳돼 보였으나 어딘가 솜방망이로 얻어맞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짬을 타서 안주를 집어준다 술을 따라준다 하고는 있었지만, 한마디도 말을 않았다. 주물리지 못하는 여자 술집에서도 소박맞는다고, 짝이 남아돈다는 사실이 아마도 그녀를 풀 죽게 하고 있는 듯싶었다. 처음부터 짝을 정하고 온 것은 아니었지만, 륙쌕의 사내가 자리를 피했던 것이다.
아홉시 가까울 무렵에, 여자 하나가 그동안 자릿값 비슷하게 판마다 한옆으로 조금씩 떼내고 있던 돈에서 얼마를 챙기더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러곤 곧 되돌아와 문 앞에 서서, 김선생님 전화요, 했다.
“초저녁부터?”
김선생이라 불린 사내는 열에 뜬 눈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여자를 바라보았으나, 죽 쑤지 말고 만지고 와, 하고 옆 사내들이 부추겼다. 사내가 일어나 나가고 한 식경이 지난 뒤에 둘은 같이 들어왔다.
열한시에 또 한 사내가 불려나가 전화를 받고 왔고, 반 시간 뒤에 또 하나가 불려나갔다. 이때는 그도 전화 받는 일이 무얼 뜻하는지 짐작이 가 무의식중에 앞에 쌓인 돈을 내려다봤다. 잃고 있을 때 그들은 액땜 삼아 교접을 하고 왔던 것이다. 곁에 앉았던 여자가 문 앞에서 전화 받으세요, 한 것은 열두시 반이 거진 넘었을 무렵이었다.
잠자코 앞서는 여자를 따라 끝엣방으로 가자 이미 펴 있는 이부자리 앞에서 여자가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난 안해” 하고 그가 말했다.
“별로 잃지도 않았는데 웬 전화야?”
“정말 안해요?”
치마에 손을 댄 체 무표정한 얼굴로 여자가 그를 바라보았다.
“서지를 않아, 관두겠어.”
“세워드릴 게, 오세요.”
“염병할!”
그가 말했다.
“관두겠다잖아?”
“정말이세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아이 좋아라.”
말처럼 좋아하지도 노여운 얼굴도 아닌 그대로 여자가 다가오더니 그의 허리를 팔로 끼고 뒤통수에 입을 맞췄다.
“좀 있다가 들어가시거든 전화가 왜 그렇게 길어? 국제전환가? 한마디 해주세요. 꼭요.”
긴 국제전화라…… 그는 여자 곁에 엉거주춤 앉은 자세로, 갑자기 몰려드는 피로를 느꼈다. 조금 따고 있는 형편이긴 했지만, 반 시간쯤 더 앉았다 일어나도 그들의 눈자위가 사나워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것은 정확히 두시 사십오분, 제 방에 돌아오자 두어 시간 곯아떨어졌는가 싶었는데, 동틀 무렵에 어깨를 흔들리어 그는 눈을 떴다. 륙쌕의 사내는 그를 내려다보고 기묘한 모습으로 입을 오므리고 서 있었다.
“일어나슈. 사고가 생겼소.”
까이 하나가 네시 반 조금 지날 무렵에 갑자기 오바이트를 하기 시작하더니 뒤로 넘어졌다. 넘어진 채 숨이 끊어졌다. 심장마비인 것같다…… 설명을 들으면서, 부지중 그는 곁에 앉았던 여자를 떠올리고 긴장했다.
“미스 최라는 애?”
“짚이는 게 있소? 걔하고 전화는 하셨겠지, 노형이
“아뇨” 하려다 단념 하고 그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 때문에 걔가 쇼크를 먹었어요?”
륙쌕은 어이없는 듯이 주의 깊게 그를 바라보고 억지로 웃음을 띠었다.
“노형도 쇼크 먹었군. 먼저 하산하쇼.”
“……”
“경찰이 올 거요, 신고를 했으니까…… 이래 봬도 우린 공무원들요. 노형까지 골치 아픈 일에 끼어들 것 없잖아?”
“……”
“먼저 빠져 나가쇼.”
뒤처리는 어떻게 되는가, 의사는 왔는가 하고 물었으나 륙쌕의 사내는, 심장마비가 거의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런 대답만 하고 무겁게 입을 다물었다. 고맙다고 해야 할지 계면쩍다고 해야 할지 착잡한 기분인 채 어릿거리며* 그는 여관을 빠져나왔다. 딴 사내들은 방 속에 모여 앉은 채 대책을 숙의하는 눈치들이었다. 그런 자리에서 소개받은 사내들의 이름이 일일이 떠오를 리는 없었지만 예의 륙쌕의 사내와는 수인사조차 치르지 않은 것을 깨닫고, 하산을 단념한 채 그는 무작정 위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한 마장*쯤 오르자 모텔동네가 나타나고 파크호텔의 스위스풍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수학여행을 왔는지 중닭같이 볼썽사나운 머리들을 한 애들이 모텔창 여기저기서 얼굴들을 내밀고 더러는 문 닫힌 기념품가게 앞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늘린 듯한 청회색 하늘 이편으로 붉은 기가 서서히 섞여 들고 있었으나 계곡을 끼고 양옆을 꽉 막아선 산악 그늘로 주위는 으스스한 한기와 함께 아직도 부연 느낌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호텔 정원에는 큼직한 모형 이티(E.T.)가 조롱하듯이 그의 키를 넘겨다보고 있고, 계곡에서 얼어드는 듯한 물소리가 올라왔다. 송연한* 심사로 그는 몇십 만 광년 저쪽 우주의 어느 별에서 온 그 괴물을 지켜보았다.
이래 봬도 우린 공무원들요, 하던 말이 뒤통수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륙쌕의 사내가 그 말을 한 것은, 자기들은 공무원들이니까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뜻인지, 그런 신분이니까 뒤처리가 쉽다는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같은 패거리 외의 제삼자가 사고에 끼어 있었다고 하면 실속 없이 처리가 복잡해질 수도 있다. 그런 유의 공적 절차란 당사자들이 넌더리를 치건 말건 으레 그런 식으로 꼬이게 돼먹어 있다. 검시 결과가 명료해져도, 그 사람은 뭐요, 왜 여기에 있었소? 하고 경찰은 물고 늘어질 것이다. 만약에 사인(死因)이 투전판과
관련이라도 지어지면 일은 더 복잡해진다. 동전치기로 오입을 해? 낯가죽이 얼마나 두꺼운진 모르지만 당신들 입 씻고 법정에서나 그런 소리 하쇼. 아무도 곧이듣지 않을 테니.
륙쌕의 사내는 사십쯤 나 보였다. 눈빛은 온화했으나 새파란 구레나릇 자리 한복판으로 가끔 드러나는 이빨이 차가웠다. 난처한 입장을 피하게 해준 처사는 고맙기 짝이 없었지만, 그는 사내의 어딘가 보스연하는 태도가 거북살스러웠고, 피로를 무릅쓰고 간밤 그가 사내의 잠자리 권유시간을 따르지 않은 것도 그런 인상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공무원’이란 말은 실은 자신의 입에서 나와야 했을 소리였던 것이다.
케이블카 부근을 어정거리고* 호텔의 커피숍이 문 열기를 기다려 차를 마시고 하면서 그가 여관으로 다시 내려간 것은 그러나 열한시가 가까웠을 때이다. 여관은 텅 비어 있었다.
“그 문화부 사람들요?”
주인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시침을 떼다가 그가 투숙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버럭 화를 냈다.
“원, 그 썩은 작자들이 문화부 사람들이라니 내 참 더러워서…… 함께 내려갔수, 순경이랑.”
“어디루요?”
“경찰서지 어디긴 어듀?”
“의사는 왔습디까?”
“오면 뭘 해…… 여자만 불쌍하지. 왜 그러슈, 당신도 같이 그 짓 했소?”
문화부 뭐라고 여관 주인은 계속 투덜거리고 있었으나 신문산지 방송국인지 어디를 가리키는 말인지 그는 짐작할 수가 없었다. 경찰서라면 속초가 틀림없었다.
시내버스로 속초를 향하다가 생각을 바꾸고 물치에서 그는 몸을 내렸으나, 드르륵 들창을 열고 들어선 예의 가게마저 휑뎅그렁하게 비어 있었다. 내던지듯이 아무 데나 몸을 앉히고 그는 중늙은이가 나오기를 끈질기게 기다렸다. 월산이라면 내설악 끄트머리 어디쯤에 붙어 있는 마을이라고 그는 짐작하고 있다. 언젠가 인제(麟蹄) 부근을 지나다가 월학(月鶴) 월산 하는 그 비슷한 이름을 그는 들은 기억이 있고, 설사 휴전선 저쪽이라 하더라도 찻길 끊긴 거리가 얼마쯤인지는 모르지만, 서두르면 노인을 그 부근까지만이라도 데려다주고, 소양강 배편으로 오늘 중 춘천에 들어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춘천이라면 새벽 일찍 서울까지 대어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샛문 뒤로 소리를 쳐서야 나온 중늙은이는 전혀 생소한 얼굴로 우멍하게* 그를 보고 있었다.
“그 사람들 아직 여기 있습니까, 그 노인 환자분?”
“떠났쇠다.”
“사람을 구했군요.”
“구하긴…… 원통(元通) 가서 기다리겠다구 새벽서껀 나갔수. 택시루 갔지만 거긴 사람 구하기가 더 어려울 텐데…….”
“……”
“돈 있으면 뭘 해. 가지두 못할 땅…… 거기 가서 물어브슈. 왜, 생각이 변했소?”
“서화까진 들 수 있다면서요? 거기 갔다 오늘루 춘천 빠질 수 있어요? 그래야겠는데…….”
“어려울걸? 조사가 좀 심해야지…….”
아무리 검문검색이 심하더라도 그것이 한나절을 잡아먹을 리는 없다. 그는 초조하게 중늙은이를 바라보고, 입술을 축였다.
“안되겠는데…… 내일은 출근을 해야 해요.”
세상없어도…… 하는 말과, 나는 공무원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그것을 누르고, 그는 요기를 시켰다.
2
가게 앞을 지나는 강릉행 버스에 오른 것은 두시, 강릉에서 생각을 고쳐먹고 경포 쪽으로 그가 향한 것은, 네시가 좀 지났을 무렵이다. 호반 앞에 내리자 하릴없이* 그는 바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내의 뼈는 연연해서가 아니라 버릴 곳이 없어 그동안 차일피일 보관해오고 있었다고 할 수밖에는 없다. 장지(화장터)에서거나 아니면 어디 산자락 같은 데에라도 진작 처분해버릴 수 있었을 것을 어쩐지 지겨운 느낌 때문에 그날은 그냥 들고 돌아왔던 것인데, 허섭스레기*와 함께 처박아둔 채 근 삼 년이나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고향이 원산은 아니라요.”
심장판막증인가 하는 병으로 오 년여를 자리보전만 해오고 있던 아내가 어느 때 무심코 중얼거리던 말이 문득 떠올라 비닐봉지를 찾을 생각이 나긴 했지만, 아내가 태어난 곳이 막연히 동해안 어디쯤일 거라는 심증이 갔던 것은 아니다.
원산이 아니라면 그럼 어디냐고 물어보았으나 아내는 대답을 못했다. 출생하자부터 우두망찰* 아무리 이리저리 휘몰리고 곤두박질치는 와중을 흘러왔다고는 해도, 제가 태어난 연고나 그런 마을쯤은 기억이 있을 법했으나, 거짓말처럼 아내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때로는 호남과 영남 사투리가 한꺼번에 튀어나오고 어떤 때는 평안도 사투리를 천연스럽게 쓰던 아내의 말투가 그런 스산한 역정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시장통에서 행상 노릇을 하다 술집 골목에서 처음 알게 되던 때만 하더라도 어딘가 총명한 인상에 끌렸던 아내의 그런 전면적인 무지가 그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가 않았다. 고아원에서 자랐다면 누군가가 풍문으로 들었거나 엉터리로라도 가르쳐주었을 법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한두 군데 지명쯤은 잠재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을 게 아닌가. 아내는 갑자기 말더듬이가 된 것처럼 얼굴을 붉히고 횡설수설 중얼대듯이 애를 쓰다 끝내는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원산이라고 한 것은 이쪽이 개성 사람이라니까 임기응변으로 그렇게 끌어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때는 웃고 말았지만, 아내의 마지막 흔적마저 없애버리려고 하는 지금 유독 그 일이 새삼 무직하게* 상념 속에 떠오르는 것이 그는 이상했다.
경포에는 십여 년 전에 신혼여행 차 딱 한 번 온 일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철 아닌 행락지라는 것은 마냥 을씨년스럽게 마련이어서, 잔 속의 달이 어쩌고 하는 소리를 노상 코에 내거는 이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철수한 바닷가 간이횟집들의 잔해가 찌그러지듯이 슬레이트지붕들을 숙이고 바람을 견디며 있고, 용케 한두 군데 문을 열고 있는 곳의 그런 처마 밑 씨멘트 수족관에서 대낮에 형광 조명을 받으며 움치거나 부유하고 있는 몇 마리 물고기들이 황량한 사막을 그에게 연상시켰다.
주둥이를 싹둑싹둑 잘라놓은 물고기 한 마리를 손으로 가리키고 이층으로 올라가 그는 술을 시켰다. 방바닥은 의외로 따뜻했다. 학꽁치라는 이름의 그 고기는 다른 놈들을 하도 못살게 굴기 때문에 그런 조처를 취하고 있다는 식당 아낙의 해명이었지만, 입을 잘린 채로도 그것은 딴 놈들보다 오히려 활기차게 노닐고 있었다. 못살게 구는 정도가 아니라 뾰족한 입으로 저보다 큰 몸집을 지닌 놈의 급소를 공격해 단번에 마비를 시켜 바닥에 가라앉히는 독이라도 지니고 있었더라면 더 맛있고 비싼 고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 그는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창을 열고, 가방 속에서 그는 비닐봉지를 꺼냈다. 남쪽 지방에서라면 저녁답*에는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바다 쪽으로 향할 법도 했으나, 봉지 아구리를 기울이자 뼈는 일순 회오리쳐 오르면서 지붕을 넘어 반대켠인 호수 쪽으로 흩어졌다. 털어버린 비닐을 바람 속에 던지고, 먹물같이 차올라오는 수평선을 그는 지켜보았다. 제철이었더라면 심란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이런 기미 따위 아랑곳없이, 밖으로 나가 숙소라도 우선 잡아두려고 허둥대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탁자 위에 엎딘 채 술에서 깨었을 때는 밤이 되어 있었다.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과 그러려면 시내로 나가야지 하는 상념이 번갈아 뇌리를 괴롭혔으나, 일어날 생각이 그는 없었다. 이 식당은 여인숙도 겸하고 있는가, 서울행 첫 버스는 새벽 몇 시쯤에 있는가 따위를 묻고 아래층에서 발을 닦고 올라왔을 때, 숙박계는 미처 준비를 못 했어예, 하면서 이부자리를 안고 따라 올라온 아낙이, “색시 있습니더” 했다. 그는 고개를 젓고 잠자리를 펼 준비를 했다.
그쯤 단념했으려니 싶었는데 불을 끄고 누워 있을 때 한구석에 내팽개친 듯이 놓여 있던 전화에서 또 벨이 울렸다.
“손님, 참한 색시가 있어예.”
대답 없이 거칠게 수화기를 놓았으나, 십 분쯤 뒤에 또 그것이 울렸을 때는 부지중 그도 몸을 일으키고 앉았다. 아낙의 장황한 설명을 끊으려고 그는 “잠깐은 얼마요?” 하고 물었다.
“나 좀더 자야겠소. 징징 거리는 것 싫으니까 이따 열시쯤에 전화하고 시간으루 빨리 보내주쇼.”
아내와의 비정상적인 관계가 장기화되면서부터 그는 달에 한두 번쯤 생리적 긴장을 풀어버리는 일에는 이미 익숙해져 있다. 그것은 또 그가 독학으로 5급 을류 시험을 따내던 기간이기도 해서, 필연적인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생계를 꾸려가는 낮일이 끝나 술을 끊고 책상 앞에 앉으면, 눈앞이 가물가물했다. 재수생도 아닌 주제에 싶어 바람을 쐬러 나간 것이 그 계기가 되었으나, 어쩌다가 그런 일탈이 집중력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어찌할 수가 없었다. 자위행위보다 나을 것이 없는 그런 일의 상대란 으레 술집 아이들이거나 골목 여자들이게 마련이어서 나름대로 안전조치를 취해오고는 있었지만, 오늘은 준비가 없었던 터라 꺼림칙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는 없었다. 열시에 벨소리에 깨어나, 새삼 기구 부탁을 하기도 멋쩍어 단념하고 있었는데 여자가 오자, 그래서 그런지 잠깐 새에 그는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돈을 치르고 여자를 내보내자 불을 끄고 그는 다시 잠을 청했다.
꾸무럭한 날씨의 호수 저쪽으로, 그 호수의 어느 한 부분만이 얼어붙듯이 아침 햇빛에 번쩍이고 있다. 운동장처럼 둥근 그 부근을 끼고 돌며 도로가 뻗쳐 있고, 도로 한복판 숴여 미터쯤 전방에 여자 하나가 등과 어깨를 이쪽으로 보인 채 그와 비슷한 보조로 앞으로 걷고 있었다. 그의 의석은 깨어 있었으나, 이것이 꿈속의 일인지 아니면 곯아 떨어졌던 잠에서 이제야 일어나 버스를 타러 시내로 나가는 일인지 쉬이 분간이 가지가 않았다. 길을 걷는 사람은 여자와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만큼 주위의 온갖 배경은 아득한 원경(遠景)으
로 물러나 마치 슬로모션 화면의 그것처럼 무리를 뒤집어쓰고 흐려있었다. 앞뒤의 모든 움직임 모든 소리들이 일순, 일거에 정지하는 듯이 느껴졌다.
“이 추운 때 여긴 왜 오셨어요?”
“글쎄, 왜 왔던가…… 그러고 보니 오늘이 여편네 기일(忌日)인 것 같군…….”
물은 것은 여자고 대답한 것은 자신인데, 앞에서 걷고 있는 여자는 분명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물치 식당 쪽문 안쪽에서 들었던 그 흐린 판소리 가락마저 같이 들리고 있었다. 그는 그제야 이런 일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느끼고, 이 대화가 간밤, 서로 끌어안기 전에 여자와 자기 새에서 오갔던 수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뿐으로 대화는 끊기고 여자는 몹시 이상하다는 얼굴로 어색하게 몸을 눕혔던 것인데, 그것이 따로 떼다 녹음을 한 듯이 지금 들리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시간과 장소가 서로 다른 라디오 소리까지 겹쳐 있는 것을 보면 이건 환청이 분명 했다. 전방에 갑자기 스크린이 펼쳐진 듯이 시야가 좁아지고 불타는 열사(熱砂)의 그것처럼 공기가 농밀해졌다. 여자의 등짝이 뒤로 무섭게 딸려오는 것처럼 확대되는가 싶더니 보조가 바뀌며 그것은 달리는 모습으로 변했다. 여자는 멀리서 이쪽으로 점점 모습이 커지고 있는 한 차량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예감을 묵살하고 몸을 날려 바다 쪽 순환도로로 내디디려는 발걸음을 있는 힘을 다해 다잡아 세우면서, 탈진한 채 그는 언덕바지 한 옆에 있는 가로수 노송 밑에 주저앉아버렸다. 고개를 들지 않더라도, 부르짖는 사람들과 떠들며 그쪽으로 몰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코 밑으로 두 가닥 핏줄기를 매단 채 죽어 넘어진 간밤의 여자와 그 위로 방수포*를 덮는 순경의 커다란 손이 보였다.
“제 발로 뛰어들었다니깐요.”
한옆으로 머리를 처박은 차량 앞에서 초점 잃은 눈으로 운전수가 횡설수설하고 있다. 여자의 얼굴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없을까 망설이면서, 사력을 다해 그는 몸을 일으켰다. 둥근 얼굴, 갈색 체크무늬의 덧옷이라고는 해도, 불을 끄기 전이거나 일을 끝내고 나갈 때는 분명히 드러나 있었던 모습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조건반사적으로 얼버무려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눈앞은 텅 비어 있었다. 발밑에 도로는 그대로 뻗쳐 있었지만 등을 보이던 여자도 그것을 타고 넘은 차량도 보이지 않았고, 멀리 몰려서 웅성거리던 사람들의 모습도 흔적이 없었다. 그는 머리를 흔들었으나 이때서야 비로소, 몇 년 전 아내의 죽음이 환영 같은 실상(實像)으로 좀전 갑자기 자신을 엄습해온 것을 깨닫고, 진땀에 젖은 손으로 담배를 더듬어 찾았다. 사고가 난 하루 뒤에야 연락을 받고 영문을 모른 채 그는 병원 영안실에서 아내의 모습을 보았었고, 도망친 차량을 찾을 수 없어서인지 아내의 죽음은 단순한 교통사고로만 처리되어 있었던 것이다.
강릉 시내로 나오자 잘못 내린 터미널 쪽으로 한 마장가량을 그는 걸었다. 거기서 또 한 번 생각을 바꿔 속초행 표를 다시 끊을까, 이대로 양양에서 갈리는 내설악 쪽 길을 택할까, 그는 주저했다. 속초를 새삼 떠올린 것은 륙쌕의 사내와 그 작부의 일이 아직도 마음에 걸려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들여다볼 수 있으면 경찰서라도 기웃거리고, 진부령을 넘어 원통으로 빠질 심산이었다.
일단 양양까지 표는 끊었으나, 칫솔질을 거른 듯한 개운찮은 심사로 빵과 음료를 아침 대용 삼아 사 들고 그는 무연히*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신혼길에서는 그렇게나 청결해 보이던 시가지가 십여 년 뒤에 보니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동안에 도시가 변모했다는 것보다는 두 개의 그 서로 다른 모습이 순전히 자신의 마음 탓이란 걸 조만간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짧다면 짧다고 할 수밖에 없는 세월 동안에 그토록 깊이 팬 그 마음의 수렁이라는 것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그는 헤아릴 길이 없었다. 아내에 대한 연민이거나 아내가 없어진 세상에 대한 스스로의 감정이 혹은 그 계기였을 수도 있다. 그런 몸을 해가지고도 아내의 생활력이랄까 삶에 대한 집착은 억새풀처럼 끈질기고 강했다. 몇 번이나 유산을 하면서도 아내는 계속 임신하기를 바랐고, 나가떨어지기 직전까지도 두 손에서 들 것을 놓지 않았다. 자리보전밖에 안되는 상태로 해를 넘기기 시작하면서 매사에 신경질이 는 것도 그런 집착의 한 변형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사느니 나가서 콱 결단을 내버리겠어……눈을 흡뜨고* 그런 트집을 부릴 때, 그래, 죽어……라고 옥박지른 적이 없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만약에 단 한 번이라도 그런 말을 진심으로 속에서 뇌까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면, 그따위 폭거를 감행할 심사가 어떻게 아내에게 깃들였을 것인가.
“오늘 차 끝났어요. 약수리까지밖에 못 가요.”
양양 터미널에 내려 들여다본 창구 너머에서 아가씨가 그렇게 말했을 때도, 돈을 들이민 채 넋이 빠져 그는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대설주의보 땜에 못 간다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알겠어요? 곧 시작한대요. 오색 리까지라도 끊어 드려요?”
“서울 표는 있소?”
“강릉 가서 고속버스 타셔 야죠. 거기두 오후부턴 끊어질걸요?”
눈이 온다면 얼마나 오겠다기에 이러는 건가·…… 여기서 길이 끊어지면 사방이 다 막히는 셈이 된다. 제일 안전한 방법은, 서둘러 강릉으로 도로 가서 바로 서울로 빠지는 길뿐이다…… 잘해드릴 테니 택시 타쇼, 라고 따라붙는 사내를 피해 오면서 그는, 벌써 하루를 경우에 따라서는 사나흘을 산통 깨고* 결근해야 할지도 모를 원통행을 왜 강행하려는 것일까 하고 스스로 자문했다. 그 우라질 노인이 두 눈만 부릅뜨고 있지 않았더라면, 목에 감긴 그 호사스런 털목도리와 외투가 구역질을 불러일으키지만 않았더라면, 혹은 그 시건방진 간
호사가 도도한 눈초리로 치사하게 떡밥만 내밀지 않았더라면―하는 그때의 악감정들은 이 경우, 가지 않아도 되는 구실이 되지 않는다. 가서 환자를 어떻게 해주겠다는 것보다도, 꺼림칙한 이런 기분으로는 도저히 그냥 돌아갈 수가 없다…… 그런 심정이었다.
“원통 가서 막힐 각오하구 모셔 다드린다잖아요?”
“버스 안 가겠다는 게 그 때문요? 약수터까진 간대는데?”
“거긴 어림두 없어요. 하산객들이 얼만 줄 아쇼? 떼루 몰려요. 부르는 게 값이지.”
“인제 가면 배는 탈 수 있소?”
“눈 온다고 배 못 떠요?”
생각나는 대로 내지르는구나 싶었으나, 마음을 정하고 그는 따라 붙는 사내가 붙잡는 대로 걸음을 멈췄다.
원통까진 불과 두어 시간을 넘어서지 않는 거리로 그는 알고 있다. 볼 것 보면서라면 또 모르지만 그새 뭐가 어떻게 된다는 것일까 싶어, 대절 요금으로 옥신각신하면서 그는 종내* 믿기지가 않았으나, 오색 약수리에 차가 이르자 과연 하산객들의 모습이 드문드문 창 너며로 보였다.
“저것 보세요, 비 오기 전 머구리 꿇듯 내닫지들 않아요?”
운전수는 택시를 멈추고 창을 내리더니 밖으로 팔을 뻗는다.
“푸짐하게도 쏟는구나.”
사내의 과장을 어이없어하면서도, 이때 그는 왠지 여태껏 맴돌고만 있던 쳇바퀴를 드디어 빠져나오는 듯한 기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휴일이 끝났는데도 태연히 등산을 할 수 있는 사람들, 팔자 좋은 사람들, 그 여유작작한 사람들도 쫓겨 내려오는 길을 뭣이 좋아 나는 넘으려 하고 있단 말인가……피부로도 역력히 느껴지는, 찍어 누루는 듯한 기압의 변화가 그런 심리적 반동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다.
굽이를 몇 번이나 되돌듯하면서 한계령으로 올라서자 회오리쳐오는 갑작스런 바람결 속에 눈발이 비쳤다. 그는 차창을 도로 내리고 담배를 꺼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눈이 오기 시작한 것은, 택시가 원통 입구까지 거진 다 내려와서이다. 그렇게 시작한 눈은 지척을 가릴 수 없는 강풍과 함께 삽시간에 폭설로 변하더니 두어 시간 새에 사방에다 흰 벽을 쌓아올리고, 그와 그가 내린 마을을 옴짝 없이 그 속에 가둬버리고 말았다.
3
전보라도 쳐두려고 우체국을 물었으나 찌개를 날라온 식당 아낙은 대답 없이 그의 아래위를 훑더니 휑하니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무식한 양반 같으니, 이런 판에 우체국을 찾다니, 하는 얼굴 같아서 어안이 벙벙한 채 무안이라도 당한 심사로 그는 입을 다물었다. 인제로 내려가야 해유, 했더라면 더욱 대책이 서지를 않았을 것이다. 폭설로 교통 두절, 사흘 결근…… 하루라면 또 몰라도, 말단직원의 그따위 변명이 어쩐지 구질구질하게까지 느껴져서 그는 따귀를 후려치듯 계속 들창을 때리고 있는 눈바람을 멍청히 내다보았다. 삼거리이자 마을 중심부인 듯한 거기서 보아도 한눈에 들어오는 집들 속에 숙박업소 같은 것이 많아야 네댓도 되지 않을 것 같긴 했지만, 정작 한 집씩 뒤질 생각을 하고 보니 앞이 켕겼다. 설사 노인과 여자를 바로 맞닥뜨린다 하더라도 무어라고 말을 꺼내야 할 것 인가.
식당 맞은편에 보이는 가게로 뛰어들어 비닐로 된 등산용 우비 하나를 사서 뒤집어쓰고 정작 그가 밖으로 나선 것은, 바람의 기세가 약간 누그러지는 기미를 보이던 오후 세시경이다. 여인숙이니 여관이니 하는 쪼박* 간판과는 달리 거개가 보통 가정집인 그런 곳의 방이거나 마당에는 간혹 발이 묶인 하산객들이 보기에도 심란한 얼굴들로 웅성거리거나 눈을 털고 있었고, 비어 있는 방은 동굴같이 캄캄했다.
그것이 마지막인 듯한 여섯번째 집까지 기웃거리며 문의를 해도 여자와 노인은 없었으나, 거기서 그는 같은 짓을 하고 있는 두 사내와 마주쳤다.
“저 사람들두 같은 이들을 찾느만유” 해서 돌아다보니, 흩날리는 눈발 너머로 마루에 걸터앉은 두 사내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미세스 최를 찾습니까?” 하고 호리후리한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
“여기 여관들 모두 찾아보셨어요?”
“……없는데요.”
엉겁결에 어정쩡한 그런 대답을 하긴 했지만, 당혹해서 그는 가까이 오는 사내를 지켜보았다.
“우린 서화에서부터 뒤지고 오는 길예요.”
달아낸 처마 밑까지 다가온 사내는 붙임성 있는 말투로 그를 올려다보고 입맛을 다셨다.
“없어요.”
어째서 그 사람들을 찾는가 하는 의혹은 의당 그쪽에서 먼저 시비조로라도 물어올 법 했으나, 삼거리로 같이 내려오자 그를 권유해 들어간 다방에 앉아서도 그들은 언급이 없었다.
“서흥, 월학리…… 죄 뒤졌어요. 애들이 여간 까다롭게 굴지 않던데요?”
애들이란 것은 검문 장병들을 가리키는 말인 듯했다. 호리호리한 사내는 차를 마시는 짬짬이 목을 빼서 밖을 살피며 입맛을 다셨고 눈을 내리깐 채 움치고 앉은 덩치 큰 사내는 운전기사인 듯 시종 말이 없었다.
“속초에서 환자분을 잠깐 뵙고 뒤따라오는 길입니다, 저는.”
사내가 제풀에 지껄이는 말들로 사정을 대충 짐작한 그는, 기회를 보아 할 수 없이 이쪽의 자초지종도 간단히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호오!” 하고, 감탄한 듯이 사내가 말했다.
“그러셨군요. 고향 가까이 가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죠.”
맞장구치는 말이 요령부득*이어서, 그는 사내를 눈여겨보았다. 미세스 최라는 간호사가 제멋대로 환자를 데리고 나와 빈사 상태의 노인을 끌고 어디론가 도망을 치려 하고 있다, 기어이 잡아서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안된다ㅡ좀 전에 떠든 그런 내용과는 걸맞지 않은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하고 자리에 앉으면서 내놓은 사내의 명함에는 ‘S기업 상무’로 되어 있었다.
“최라는 간호사는 환자 담당이었습니까?”
“회사 병원에서 차출된 애죠. 턱 없이 시건방져서…… 시건방지니까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거예요.”
미세스 최라는 애…… 그는 그 호칭이 기묘하다고 생각됐으나, 물어볼 일도 아니어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어떡허죠?”
덩치 큰 사내가 그제야 한마디 했다.
“어떡헌다? 인제로 가보지…… 틀림없이 거기 있어.”
“거긴 올라오면서 대강 봤잖아요? 백담사로 올라간 거 아네요?”
“이 사람이 농담하구 있어?”
호리호리한 사내가 갑자기 벌컥 화를 냈다.
“회장님 건강이 어떤 상탠데 거기까지 올라가? 길이 엇갈렸어. 우리가 서화가는 새에 아래로 빠진 거야. 나쁜 여자…… 꼭 잡아낸다……”
그들은 아마도 차를 몰고 홍천(洪川) 쪽으로 올라온 모양이었다. 터미널에서 산 간이지도를 펼쳐보지 않더라도, 외가평으로 해서 백담사로 가는 길은 지금 귀신도 부들부들 떨 지경의 나락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나쁜 여자…… 라고 이를 가는 시늉을 하고 있었으나, 사내의 그런 모습이 어쩐지 아이 역을 해내는 배우 같기만 해서 그는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았다.
“선생님도 같이 가시죠? 어차피 서울로 빠지시려면 교통비라도 덜어 드려야지.”
“이 눈길에 어떻게……고맙긴 하지만……
“빠질 수 있을 거예요. 빠질 수 있어요. 내일까지 못 들어가면 회장님께 큰일 나요.”
아까 회장은 노인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지금 것은 그 아들쯤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짐작이 갔다. 이 사내는 그 쌔고 쌘 회장의 조카 상무쯤 되는지도 모른다. 사내의 호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는 난감했다. 일이 이렇게 꼬이고 있는 지금 노인을 쉬이 찾아내더라도 간호사가 제 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하면, 더 난감한 처지에 빠질지도 모른다. 눈치로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간호사와 그들의 관계는 보통의 고용관계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상식적인 관계라면 여자가 제아무리 시건방져도 혼자서 그런 일을 저지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노인과 그 아들 새의 심각한 알력 같은 것이 어렴풋이 느껴져, 그는 인제에서도 허탕 칠 걸 바라면서 두 사내를 따라나섰다.
그들이 몰고 온 벤츠는 전혀 가망이 없어 보이던 길을 과연 용케도 헤쳐 나갔다. 바람이 얼추 잦아들었다고는 해도 허연 소나기 줄기같이 죽죽 계속 내리고 있는 눈발 속을 별 요동 없이 차체는 밀고 나갔고, 그런 안정감이 되레 그를 무거운 기분으로 짓눌렀다. 기사도 사내도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벌써 밖은 어둑어둑해지려 하고 있었으나 그는, 이들이 인제에서 허탕을 치더라도 서울까지 동승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굳혔다. 밤새 눈발이 약해지면 내일쯤은 배가 뜨리라.
“기다리구 있어. 보고 오지…….”
인제 초입으로 들어선 첫번째 여관 앞에서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던 사내가 의외로 가로등을 등진 채 이쪽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찾았어. 여기 있어. 이리 와……”
이때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기사는 차창을 내리고 있었으나 그 말에 따르려 하지 않았다.
“안 내리구 뭘 하는 거야?”
앙분한* 얼굴로 다가온 사내에게 기사는, “우리 그냥 가요” 했다.
“이 새끼가 무슨 소릴 하구 있어?”
사내가 열린 창으로 기사의 따귀를 때렸다. 얻어맞은 뺨에 손바닥을 댄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기사가 순순히 차에서 내렸다. 그들이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어쩔까 하고 한동안 망설였다.
이제 와서는 완전히 국외자의 처지밖에 되지 못했으나, 싸움이 일어날 경우 말리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그는 일단 차에서 내려 여관으로 주춤주춤 들어섰다. 벗어놓은 신발들로 거기라고 짐작이 가는 방 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그것조차 더 계면쩍게 느껴져 한옆 마루에 그는 웅쿠리고 주저앉았다. 주인인 듯한 아낙이 안방문을 열고 내다보다가 일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문을 닫았다.
“이것 받고 계약서 이리 주세요.”
사내의 그런 목소리가 들렸으나 예상과는 달리 낮은 소리였고, 그럼 해결이 되는 건가요? 하는 여자의 목소리도 조용했다. 회장님도 미세스 최한테 감복하고 있어요, 하는 소리와, 이럴 수밖에 없겠군요,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하는 여자 소리가 들렸다. 그는 몸을 피하려고 하는 동안에 방문이 열리고 노인을 업은 기사와 사내가 나왔고, 배웅하는 자세로 여자가 문설주 곁에 서 있었다.
“아, 이 아저씨!” 하고 간호사가 예의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웬 일 이세요?”
노인을 업은 기사가 비틀거리는 듯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는 부축하는 시늉으로 그들을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는데, 환자는 여전히 가슴이 덜컥할 지경으로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노인은 하반신과 그 두 눈 부근만이 마비가 돼 있는 듯싶었다.
“선생님은 안 타세요?”
멀찍이 차에서 떨어져 서 있는 그를 보고 눈치를 챘는지 사내가 차속으로 들어가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는 그렇다는 시늉으로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여남은 걸음 굴러가던 차가 멎고 사내가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사내의 입에서 포효하듯 욕설이 터져나왔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그쪽으로 내디디려 하자 사내의 머리가 들어가고 차가 떠났다.
여관을 나선 여자가 그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우두망찰한 채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사내가 왜 갑자기 그런 짓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안 떠나셨군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그는 난처해서 쫓겨난 아이처럼 입을 우물거렸다. 두번째 받는 질문이다.
환자를 길에 팽개친 게 걸려서·…… 쫓아왔노라고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지금 노인은 여기 없지 않은가.˙ 그새 계산을 끝내고 나온 모양으로 여자는 가방을 챙겨 들고 서 있었다. 흰 모자를 뒤통수에 붙이고 간호사 복장 위론 검은 외투를 깍듯이 받쳐 있고 있었으나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도 무엇에 흠씬 두들겨맞은 듯한, 피로의 기색이 역력했다.
“휴전선 부근까지 데려다달라지 않았소?”
여자가 맥없이 웃었다.
“한발 늦으셨군요. 어제 오셨더라면 사정이 달라졌을 텐데……”
“원통 있겠다고 하지 않았소? 물치 식당 그 늙은이가…….”
“원통 있었어요.”
여자가 말했다. 그는 의아하게 여자를 바라보며,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데서도 숙박한 일이 없다구 하던데?”
“여관이 아니라 방을 얻어 있었어요. 들락거리는 사람들 눈치 보기 싫어서요. 그러다 단념하고 일루 내려왔죠. 어제 오셨더래두 못 만났겠네요. 설마 일반 집 찾을 생각은 못하셨겠죠?”
조롱기 비슷한 묘한 기미가 여자 말투에서 느껴져서,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두 만날 사람은 만나요.”
눈치를 챘는지 여자가 다시 웃었다.
“어디 딴 데루 가요, 우리. 제가 저녁 살게요. 내일 서울 가실 거죠?”
“글쎄, 배가 뜰지 모르겠소…….”
“저는 강릉 가서 정선으로 빠져야 해요. 아버지를 뵙고 와야 해요.”
“고향이 거기요? 모두 강원도 판이군…….”
“선생님도 강원도세요? 정선이 아니고 여량(酬量)…… 아우라지 강이란 이름 못 들어보셨어요?”
내가 아니라 죽은 여편네가…… 하려다가 그는 외면했다.
“아우라지 강?”
눈투성이가 된 여자가 앞장서 간 곳은 식당이 아니라 다른 여관이었다. 어정쩡해서 걸음을 멈추는 그를 돌아보고 여자가 재촉했다.
“제대루 된 식당 하나두 없어요, 여기. 시켜 지어 먹는 밥이 차라리 나아요. 저녁 드시구 선생님은 딴 여관 가서 주무세요.”
들고 나간 외투의 눈을 턴다, 음식을 시킨다 하고 여자가 다시 밖으로 나간 동안에, 방석 두어 개가 깔린 바닥으로 그는 손을 밀어 넣었다. 어제 오늘이 하릴없는 피로의 연속이어서 그런지 눈이 감겼다. 직장에는 뭐라고 변명을 하나……
“아까 그 자식 뭐라 욕하고 달아났아요?”
손이라도 씻고 왔는지 말끔한 얼굴로 들어와 한곁 바람벽에 주저앉은 여자가 그를 바라봤다.
“듣지 못했소?”
“들었지만 분명 치가 않아서요……”
“……”
“뭐라 했어요?”
욕지거리 따위를 왜 따지려는가 싶어 그는 물끄러미 여자의 얼굴을 살폈다.
“그럴 줄 알았다, 이 자식아…… 뭐라 했지, 아마?”
“……그럴 줄 알았다, 그 갈보하고 잘 붙어먹어……그렇죠?”
여자가 또박또박 뇌었다.
“……”
못 볼 것을 본 듯이 힐끗 여자를 노려보다가 그는 딴 데로 고개를 돌려버 렸다.
“저, 그런 소리 들어두 싸요.”
“……”
“그런 짓 했거든요, 서류까지 꾸며서……”
“계약서 운운하던 게 그거요?”
“네.”
여자가 눈을 내리깔았다.
“그 노인 간호를 이 년 동안 맡았어요. 병원으로 호출이 왔더군요. 관두거나 따를 수밖에 없죠. 회사 병원이니까. 목욕시키고 똥오줌 받는 정도가 아닌 특별한 일인데 해낼 수 있겠는가 물어요. 사장 육촌 누인가 갈빗집 하는 사람이 있어요. 내용을 듣고 보니 계약서라도 받아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불현듯 들더군요. 더러운 짓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계약서는 아니지만……”
“팔순 노인이 그 짓 할 기운이 있소?”
노여운 것인지 심술궂은 것인지 그런 기분이 어느덧 들어 그가 물었다.
“더구나 중풍 아뇨?”
“핫빽이란 거 아세요? 왜·…‥ 환자 찜질하는 물주머니…… 유담뽀*라구두 하죠. 일본 애들 것은 핫빽하군 좀 다르긴 하지만…… 유담뽀 노릇을 이 년 동안 했어요. 특별간호라고 계약서엔 그렇게 적혀있죠. 그것도 제가 우겨서 못 박아놓은 말이긴 해도…… 이제 와서 그 계약서가 마음에 걸리기 시작한 거예요, 사장이. 저는 잊고 있었는데 하도 덜떨어진 인간이 돼놔서…….”
“그래서 도망친 거요?”
고개를 끄덕이고, 의아한 얼굴로 여자가 눈길을 들었다.
“여기 오는 줄 모두 알고 있었어요. 여기 말고 노인이 또 어디 갈 데가 있겠어요? 월산리 가구 싶단 소리는 병나기 전부터 하던 노랜데요. 노상 또 그것 땜에 싸웠구…… 서울서 자수성가했으면 서울이 고향인 줄 알아라…… 사장은 그렇게 윽박지르고 노인은 반대 고집을 피우고…… 구실이죠. 아버지한테 당했던 설움 이제 그런 식으로 갚는 것뿐이죠. 그 노인 왕년의 별명이 뭔 줄 아세요? 진도 불독…… 진돗개에다 불독이 보태진 거니까 아실 만하잖아요? 그러다 이번 겨울에 또 쓰러졌죠. 이번엔 해를 못 넘기겠다 싶어 빠져나왔어요. 말은 못해도 노인이 보채기 시작하면…….”
“그 우환중에도 계약서 챙겨 들고?”
“따지시는군요.”
여자가 서글프게 웃었다.
“무슨 일 당할지 어떻게 알아요? 기신*을 못하면서도 욕심 때문에 온갖 방법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 병원서 저 너무 많이 겪었어요. 사장은 이 기회에 해고를 시키려구 빌미를 찾고 있었던 거구…… 아까 그 상무녀석이 좀 봐달라구 자꾸만 그러더군요. 딴 병원 얼마든지 있지 않느냐면서…… 사장 내년에 국회의원 나와요. 까십*거리 모두 없애야죠…….”
저녁상이 들어왔다. 여자가 맥주를 따라주었으나 마실 기분이 아니어서 잔을 도로 놓고 그는 젓가락을 집었다. 미세스 최라는 호칭이 그래서 예사로 불리어졌다면 이 여자도 참을성이 대단한 편이다. 일급 비서 정도의 월급을 받고 있었던 것일까……
“멋도 모르고 따라온 셈이군, 내가……”
“선생님 여기 오실 것도 알고 있었는데요?”
부지런히 음식을 떠 넣고 있던 여자가 고개를 들더니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설악산 가서 며칠 쉴까 했는데 도저히 힘이 부쳐서 안되겠더군요. 옛날 면목동 가서 들은 점쟁이 말이 생각나기도 해서…… 거기서 기다렸죠. 왜 물치…… 서른에 물가에서 관(棺) 셋 짊어진 사람을 반드시 만난다…… 그 사람이 전생의 네 남편이다……”
“……?”
“점쟁이들 말도 어딘가 일리가 있어요.”
“간호사도 그런 소릴 하는 거요?”
여자의 얼굴이 장난스런 그것으로 변했다.
“이것 보세요.”
젓가락을 한쪽에다 치워놓고 여자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이런 손금 보신 적 있어요?”
칼로 회를 친 듯이 난도짙을 당한 듯한 그것을 덤덤히 내려다보고 있다가 짓궂게 그가 물었다.
“거기 내가 들르기 전이나 후에도 십만 원 받겠다고 나선 녀석이 아무도 없었다는 거요? 그렇담 내가 아니잖소. 그 관 셋 짊어진 사나인가 뭔가……”
“누가 선생님이랬어요? 김칫국 마시지 마세요. 오실 줄 알았다는 거지…… 어디, 손금 좀 보여부세요. 혹 모르죠.”
환자를 다루듯이 여자가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어린애 같은 짓거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노골적인 방심 상태를 보여오는 여자를 그는 멀거니 바라보았다.
“당신, 그럼 아직도 처녀란 거요?”
팔을 뒤로 빼며 무심히 그런 소리를 해놓고 그는 아차 했다.
“처녀가 이런 소리 예사로 하나요? 서울 처음 갔을 땐 비빔밥도 먹을 줄 몰랐어요. 나물하고 밥을 따로 먹는 건 줄 알고…… 그땐 처녀였죠.”
여자의 어조가 갑자기 풀이 꺾였다.
“처녀 아녜요.”
불편한 기분에 사로잡혀 아래를 본 채 이때부터 그는 억지로 밥을 밀어 넣기 시작했고, 여자도 입을 다물었다. 내가는 상을 거들고 나갔던 여자가 들어오더니 제 복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냈다.
“퇴직금 받았어요, 아까. 이 수표 어떡하죠?”
영문을 몰라 그가 올려다보고 있자 여자가 선 채 말했다.
“찢어버릴까요?”
“돌았소?”
“그런 짓 하고 번 돈 찢는다고 도는 건가요? 삼백만 원인데…… 아버지 방 한 칸 마련해드릴 수 있긴 하지만…….”
“웃기지 마쇼.”
그가 말했다.
“없앤다고 뭐가 해결돼? 그쪽만 바보 되는 거지. 몇 살요, 당신 도대체?”
“그럼 찢겠어요. 바보가 훨씬 낫죠.”
수표를 쥔 여자의 손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울면서 여자가 말했다.
“못 찢겠어……”
여자의 몸이 허무하게 무너져왔다. 그는 얼결에 여자를 받아 안았으나, 내장 바닥으로 갈앉아가는 신음소리 때문에 커다랗게 눈을 뜨고 있었다. 길에서 이러면 이 여자도 죽어……
어떻게 그 방에서 빠져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그가 등을 쓸기 시작하자 여자는 곧 울음을 그쳤고, 울음 사이사이 “혼자선 더 이상 못버티겠어……” 뭐라고 중얼거리던 여자의 말이 흐릿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여자의 볼에 자신의 볼을 수없이 비벼댄 건 사실이었으나, 낼 아침 데리러 오리다…… 라고 했는지, 같이 서울 가겠소?라고 물었는지도 확실치 않다. 골목 밖으로 나오자 그 경황 중에도 방에서 갖고 나왔는지 맥주병 하나가 손에 들려 있었다.
그는 눈에 띄는 대로 다른 여관을 찾아 들어가 방을 잡았고, 이부자리를 펴자 내복 바람으로 그 위에 앉아 방문 틈을 약간 열어놓고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병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침상을 들여놓고 나갔다 온 여관 아낙이 열 시 반에 배가 뜬다는 전갈을 해왔다. 그는 그 때문에 잠이 깬 듯한 희미한 북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오구굿 아뉴” 하고 여관 아낙이 말했다.
“작년에 아이 하나가 눈길에 미끄러져 물에 빠졌어유. 고개 너머 초시집 아인데…….”
가방을 들어다주겠다는 아낙을 뿌리치고 그가 갔을 때, 준비를 끝내고 있었던지 이내 여자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어색해서 외면한 채 골목을 나서자 그는 뱃머리 쪽으로 재게재게* 걷기 시작했다.
두어 마장이 훨씬 넘어 보이는 그 길을 어떻게 그렇게 한마디 말도 없이 걸었는지 알 수가 없다. 언덕을 돌아들자 물이 누워 있었다.
멀찍이서 이쪽으로 방향을 돌린 무당 배를 보면서, 그는 주소와 직장전화를 적은 쪽지를 여자에게 내밀었다.
“여량 갔다 바로 오겠소?”
“네.”
“당분간 맞벌이할 각오 해얄걸? 집 칸이라두 마련하려면…….”
“벌써부터 그런 소리 하시기예요?”
“배를 타야겠소. 차는 있답디까?”
“있을 거예요. 제설작업하던 데요.”
어제 오후 한 번의 결항인데도 하산객들 때문인지 배 난간은 대부분이 벌써 메워져 있었고, 발을 바꿔 디디며 선객들은 긴장한 새삼스런 얼굴들로 떠들고들 있었다. 굿이 끝나 돌아오는가 했는데 뱃머리 한쪽에 댄 배에서 내린 무당이 바가지의 물을 다시 두덕* 여기저기 다 뿌리기 시작했다. 바가지를 던져버리고 무당은 장구잡이왁 북잡이한테서 부채와 요령*을 받아 들었다. 요령을 흔들자 다시 북이 울렸다.
“조심하세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배로 건너오는 그에게서 눈을떼지 않은 채 우두커니 방파제 위에 서 있던 여자가 갑자기 웃었기 때문에, 부신 듯이 딴 데로 시선을 돌리고 그는 담배를 꺼냈다.
동해 동방 해룡 신님
서해 서방 지장 신님
무간지옥 이 풍진 시상
급어 살피시사 굽어 살피시사 엇쇠!
술술히 내리소서, 술술히……
무당 근처엔 모닥불이 지펴졌고, 객선 전송을 나왔던 사람들과 동네 아이들이 곧 그것을 둘러쌌다.
무슨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하고 그가 번쩍 정신이 들었을 때는, 여자 곁에까지 춤을 추며 다가온 무당이 이미 부채를 내밀고 있을 때였다.
“받아!” 하고 무당이 소리를 질렀다.
……만경창파 수살 영산 다시 볼 줄 몰랐더니
어이구 내 딸아, 불쌍한 내 딸아
황천길이 구만린데 어데 갔다 인제 오노……
“받아!” 하고 넋두리를 외던 무당이 번쩍이는 눈으로 다시 소리를 질렀다. 간호사가 얼굴이 시뻘게졌다. 밀어붙이듯이 무당은 계속 부채를 내밀었고, 거기 따라 허우적대듯이 여자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가방을 떨어뜨리고 두 손으로 부채를 잡은 여자의 몸이 와들와들 떠는 것이 보였다. 여자의 뒤통수에서 모자가 떨어졌다.
“야아, 뭐 하는 거야, 저거·…‥ 신 내리는 거 아냐?”
“저런…… 간호사군…….”
배 난간에 몰렸던 구경꾼들 틈에서 감탄하는 소리와 혀 차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죽은 아내의 것인지 간호사의 것인지 어디선가, 여보! 하는 절규소리가 들려왔다.
배에서 뛰쳐나가려고 그가 마악 한 발을 내디뎠을 때, 여자의 눈빛이 변했다. 여자가 한 손으로 옷을 잡아뜯고, 다른 손으로 부채를 흔들면서 어느덧 춤추는 걸음이 되었다.
기우뚱하더니 물 위로 배가 떴다. 콰르르 하고 배 밑창으로 썰물 빠지는 소리가 들리고, 눈 덮인 맞은편 산봉 위로 거대한 손바닥 하나가 걸렸다.
그것이 꿈인지 환각인지 분간을 못한 채, 여태껏 무심히 보아오던 자신의 손바닥의 금들이 세 개의 방형(方形)⁕을 그리고 어지러이 엇갈리며 달리고 있는 것을 그는 눈을 부릅뜬 채 보고 있었다.
『현대문학』 361 호(1985. 1); 『이제하 소설전집』 5권(문학동네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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