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과 전체 1~2장
서문
• 과학은 사람이 만든다. 이런 사실을 기억한다면 두 문화, 즉 정신과학-예술적 문화와 기술-과 자연과학 사이의 간극을 약간이나마 줄일수 있지 않을까. 자연과학은 실험을 토대로 한다. 자연과학자들은 실험이 갖는 의미에 대해 서로 논의하며 대화를 통해 결과를 도출해 낸다. 자연과학자들이 나눈 대화가 바로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 이 책에 나오는 대화는 원자물리학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인간적, 철학적, 정치적 주제들도 종종 도마 위에 오른다. 자연과학은 이런 일반적인 문제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기를 바란다. 현대 물리학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에게도 과학의 탄생 과정에 수반하는 사고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필자의 의도. 현대 물리학은 기본적인 철학, 윤리, 정치 문제들에 관해 새로운 토론거리를 던져줌.
1장. 원자 이론과의 첫 만남(1919~1920)
• 1920년 봄, 1차 대전이 종결되었을 때 독일의 젊은이들은 혼란스럽고 불안했다. 나는 이 당시 처음으로 원자의 세계에 대해 대화를 하게 되었고 이 대화는 나중에 나의 과학 활동에 깊은 영향을 미침. 가정과 학교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맞아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었으며 대신 젊은이들에게 독립적인 사고가 싹터서 점점 더 자신들의 판단에 의지하게 됨.
• 대화 1) 탄소와 산소가 만나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지는 등의 두 물질이 만나 새로운 물질을 이루는 화학 결함에 대하여. 상대방-쿠르트-엔지니어를 꿈꾸는 개신교도 장교 집안 출신. 이산화탄소 분자는 탄소 원자 하나와 산소 원자 두개로 구성. 갈고리단추 넌센스 (쿠르트) 화학자들은 처음에 화학결합에서 기본 원소*들이 늘 특정한 중량비를 이룬다는 것을 확인함. 원소들이 특정한 중량비를 이룬다는 것은 신기한 일임. 원소의 성질을 잃지 않는 최소 단위인 원자..탄소 원자와 산소 원자 사이에 끌어당기는 힘이 존재한다면 어째서 가끔은 탄소 원자가 산소 원자 세개와 결합하지 않는 걸까? (저자) 네 말은 원자가 자연법칙을 토대로 적절한 화학결합을 유도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 ‘화학적 원자가’**라는 개념을 고안.
• * 원소(element) : 한 종류의 원자(atom)로만 구성된 순물질
• ** 원자가(valence) : 원자의 고유한 성질을 가리키는 값 중 하나로 이웃한 동일한 원자 또는 다른 원자와 화학 결합을 형성할 때 가질 수 있는 화학 결합의 수를 나타낸다. 물 분자(H2O) 내 산소 원자의 원자가는 2이고 수소 원자의 원자가는 1이다.
• 대화 2) 경험, 사물, 표상*에 대하여. 상대방-로베르트-독일문학과 철학에 대해 정통. (로베르트) 자연과학도들은 경험에서 진실을 손에 넣었다고 믿음. 하지만 의심스러움. 과학은 생각을 통해서 이루어짐. 하지만 생각은 사물에 있는 게 아님. 우리는 사물을 직접적으로 지각하지 못함. 우리는 지각 대상을 우선 표상으로 변화시키고 그로부터 개념들을 만들어 냄. 우리는 표상을 통해 감각적 인상을 무의식적으로 정리하게 됨. 전체의 인상을 표상, 즉 서로 연관된 ‘의미 있는’ 상으로 바꾸게 됨. ‘지각’활동이란 개별적인 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는 것을 말함. 그러므로 경험에 대해 확실한 판단을 내리기 전에 표상들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그것들이 개념적으로 어떻게 이해되며 사물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점검해 봐야 함.
• * 표상(representation) : 표상은 지각에 입각하여 형성되지만 지각의 대상이 지금 거기에 있을 때에는 지각 표상이라고 말하며 과거에 지각된 대상이 기억에 의해 재생될 때에는 기억 표상, 과거의 지각의 여러 요소가 주관에 의해 조합되어 나온 것은 상상 표상이라고 한다. 관념이라는 말도 표상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사고에 의한 논리적, 추상적인 개념과 구별된다.
• (로베르트) 철학자 말브랑슈의 표상이 만들어지는 가능성 세가지. 1. 대상들의 감각적 인상을 통해 직접적으로 인간의 정신 속에 표상을 만든다. 그러나 감각적 인상들은 사물이나 표상과는 질적으로 다름. 2. 인간의 정신 속에 처음부터 표상들이 들어 있거나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이경우 인간의 정신이 감각적 인상을 통해 이미 존재하는 표상들을 기억해 냄. 3. 인간의 정신이 신의 이성에 참여하고 있다. 인간의 정신이 신과 연결되어 있기에 신으로부터 표상을 만드는 능력이 주어짐. 정신에 상이나 표상들이 주어지고 정신은 이를 이용해 무수한 감각적 인상들을 정리하고 개념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
• (쿠르트) 나는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그런 표상에 이르는지를 알고 싶음. 네가 표상이 경험으로부터 저절로 나온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면 표상이 어떻게 인간 정신에 처음부터 주어질 수 있는지를 설명해야 함. 그런 주장은 표상들이 조상들로부터 대대로 이어진 경험에 기초한 것이라는 생각에 가까운 것 같음. (로베르트) 학습된 것, 즉 경험이 과연 유전될 수 있을까. 세계 질서, 자연법칙, 화학 원소의 생성과 그 성질, 결정의 형성, 생명의 탄생 등에 작용하는 질서가 인간 정신의 탄생에도 관여하고 인간 정신 안에서도 활동함. 그런 질서가 사물과 표상을 연결시키고 개념 구분을 가능케 함. 말브량슈의 이런 명제와 표상이 경험에 근거한다는 자연과학의 견해는 표상이 형성하는 능력이 외부세계와 유기체의 관계를 통해 발달해왔다고 본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으나 경험이 표상보다 앞선 것인가 하는 질문은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과 비슷함. 결론은 원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단순히 경험만을 논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임. 직접적으로 관찰할 수 없는 원자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좀더 기본적인 구조라 생각됨.
• 대화 3) 물질의 가장 작은 입자에 대해 논하고 있는 플라톤의 대화편 <티마이오스> 물질의 가장 작은 부분은 직각삼각형으로 이루어지며 이것들이 정삼각형이나 정사각형으로 합쳐진 뒤 입체기하학의 정다면체, 즉 정육면체, 정사면체, 정팔면체, 정이십면체를 이룸. 이런 네 개의 정다면체들이 각각 흙, 불, 공기, 물이라는 네 원소의 기본단위가 됨. 물질을 쪼개고 쪼개다 보면 결국 수학적 형태에 이른다는 생각. 이 책을 읽고 나니 물질적 세계를 이해하려면 그 세계를 이루는 가장 작은 부분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확신이 듬. 이것이 이책이 가져다준 가장 중요한 성과.
• 대화 4) 질서라는 개념에 대하여. 발언자들의 의견이 분분한 걸 보면서 참된 질서끼리도 서로 상충할 수 있으며 이런 갈등을 통해 질서에 반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실감. 질서들이 부분적 질서일 때 즉 중심 질서로부터 떨어져 나온 파편일 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 같음. 그런 부분적 질서는 형상화하는 힘은 여전하지만 중심, 즉 지향점을 잃어버린 것.
• 로베르트가 해준 말브랑슈 이야기를 듣고 나니 원자에 대한 경험은 간접적인 방식으로밖에 이루어질 수 없으며 원자는 사물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듬. 이런 구조는 결코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없는데 무엇보다 그런 구조가 객관적 사물의 세계에 속하지 않기 때문. 하지만 수학적 고찰은 가능할 것으로 보임
2장. 물리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다(1920)
• 수학자 헤므만 바일의 <시간, 공간, 물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원리를 수학적으로 서술한 것. 반밖에 이해되지 않지만 내용이 매력적임. 뮌헨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해야겠다는 기존 결심을 더욱 굳히는 계기가 됨.
• 뮌헨대학의 린데만 교수-그 책을 읽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자네는 이미 수학을 하기에는 글러버렸구만” 마음씨 좋은 조머벨트 교수-현대 물리학은 철학의 기본 입장들을 뒤흔드는 쪽으로 가고 있음. 몇 년간 조머벨드 아래에서 공부하는 것으로 결정
• 대화 1) 우리 시대 문화적 발전에 현대 물리학이 갖는 위치에 대하여. 상대방-첼리스트인 발터와 그의 어머니-(발터 어머니) 네 연주와 너의 음악 이야기를 듣노라면 자연과학이나 기술보다 예술 쪽이 네게 맞을 거라는 생각 (저자) 진로를 정할 때는 오늘날 어떤 분야가 유망한가 하는 것도 따져봐야 함. 정해진 길을 확실하게 밟아나가는 것보다 이론적인 숙고가 더 중요한 역할. 음악은 17~19세기 전성기였지만 최근 음악은 뭔가 불안하고 빈약한 실험기로 접어듬. 하지만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은 다름. 물리학에서는 정해진 길을 따르다 보니 저절로 철학의 기본 입장, 즉 시간과 공간의 구조와 인과율의 유효성이 흔들려 버리는 지경에 이름.
• (발터) 내가 보기에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과 표현 수단의 제약 간의 상호 작용 내지 투쟁은 진정한 예술의 탄생을 위한 불가피한 전제임. 네가 말한 물리학의 상황은 18세기 중반 음악의 상황과 비슷함. 당시에 느린 역사적 과정을 통해 개개인의 감정의 세계가 시대의 의식 속으로 들어오게 됨. 우리가 루소 또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알게 된 그런 감정들. 그러자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같은 위대한 고전주의 음악가들이 표현 수단을 확장시킴으로써 이런 감정 세계를 적절히 표현해 냄. 하지만 현대 음악에는 새로운 내용이 보이지 않음. 현대 자연과학에서는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고 이제 과제는 그 질문의 답을 찾아내는 것. 그러나 현대 예술은 문제 제기 자체가 불분명함.
• (저자) 상대성이론에서 아인슈타인은 동시성에 대한 기존의 개념을 포기함. 시간과 공간이 관찰자의 운동상태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이제 가장 흥미로운 분야는 원자 이론임. 어째서 물질세계에서는 특정 형태와 성질이 계속해서 나타나는가 하는 것이 원자 이론의 기본 질문임. 학교에서 배웠던 뉴턴역학의 운동 법칙으로는 물질의 최소단위가 그런 안정성을 지니고 있다는게 설명되지 않음. 아주 다른 자연법칙이 원자들이 계속하여 동일한 방식으로 배열되고 운동하게끔 해서 계속해서 동일한 안정된 성질을 가진 물질이 탄생하게끔 한다는 것. 약 20년 전에 플랑크는 양자론으로 이런 새로운 자연법칙에 대한 최초의 암시를 발견함.
• (발터 어머니) 바흐나 모차르트 같은 이들이 음악의 거장인 것은 그들이 2백년 동안 많은 무명의 연주자들에게 세심하고 성실하게 자신들의 생각을 따라오고 재해석하게 만들어 청중들의 이해를 도모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임. 이 시대의 음악의 산물을 클래식 음악의 위대한 시대들의 결과와 비교하는 건 공정치 못함. 자, 이제 슈베르트의 피아노 3중주 B장조의 느린 악장으로 이 저녁 모임을 마무리 합시다
• 대화 2) 1. 이론물리학 전공자에게 실험 기술은 얼마나 배우나 2. 오늘날 물리학에서 원자이론과 비교해 상대성이론이 지니는 비중. 상대방-볼프강 바울리-일생동안의 친구이자 동료 과학자. (볼프강) 오늘날의 물리학이 실험물리학적 기술과 일상의 개념으로는 더 이상 적절히 서술할 수가 없는 자연의 영역으로 들어 갔기 때문에 우리는 추상적인 수학적 언어에 의존함. 나는 추상적인 수학 언어가 쉬운 사람이고 이 장점을 활용해 물리학에서 뭔가를 할수 있음. 그러러면 실험적인 면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함. 순수 수학자는 아무리 수학을 잘해도 물리학은 이해하지 못함.
• (볼프강) 특수상대성이론은 완결된 이론임. 일반상대성이론 또는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님. 일반상대성이론은 어려운 수식과 더불어 백 페이지에 걸쳐 서술됨. 일반상대성이론은 새로운 사고의 가능성을 열러주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비중을 두어야 함. 지금은 원자 이론을 기본적으론 훨씬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음. 원자물리학에는 아직 이해되지 못한 실험 결과들이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