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철 지음 《동아시아 대승불교 중흥조 승랑》
1. 기억과 회귀의 사이
승랑(僧朗, 450~530년경)!
동아시아 대승불교 중흥조 승랑
김성철 지음 / 지식산업사
근현대 한국의 불교인들 사이에 숱하게 회자되었던 이름. 그래서 한국 불교인들의 기억 속에 강렬한 인상으로 각인되었던 이름. 그러나 미지의 영역 속에 갇혀, 그 실체를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었던 이름이기도 하다.
굳이 찬사를 보내고 싶은 인물이기도 했지만, 왜 찬사를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미지(未知)인지 여부조차도 아리송했던 인물. 하지만 지금은, 찬사를 보내기에 족하다는 것을 안다. 왜 찬사를 보내야 하는지도 안다. 미지의 영역에 서 있던 그가 우리에게 스스로 걸어서 다가왔기 때문이다. 찾아가서 보기에는 너무나 힘들었던 그가, 스스로 걸어서 우리에게 다가와 그의 형색을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다. 그는 형색만이 아니라 그가 걸었던 길의 향기까지도 드러내어 보였다. 그것을 우리는 가피라 칭한다. 그것을 우리는 인연이라 칭한다. 그것을 만났을 때 우리는 ‘비로소’라고 탄성을 토해내게 된다.
그가 이 땅에 자신의 형색을 나툰 지 1,500여 년, 그리고 우리의 눈길에서 그의 형색을 발견할 수 없었던 1,500여 년. 그 1,50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서 우리는 그를 만난다. 그를 만날 수 있는 카페는 ‘동아시아 대승불교 중흥조 승랑-그 생애와 사상의 분석적 탐구’라는 긴 제목을 지니고 있다. 거기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그와 만남을 시작할 수 있다.
너무 흥분했나 보다. 그러나 1,500여 년의 세월을 건너서 망각되었던 수수께끼를 만난다는 것은 그만한 흥분의 가치를 제공하는 법이다. 그 흥분의 가치는 관심 없는 자들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알고 싶어 하는 자들만이 만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알고 싶어 하는 자들에게조차도 알려지는 것은 지도일 뿐이다. 긴 시간 동안 그 지도를 만날 수 없었다. 오늘 우리는 그 지도를 만난다. 그 지도를 만나는 자는 언젠가는 신대륙에 다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신대륙은 지도를 만나 지도를 읽어낸 후에도, 다시 노를 젓는 자에게만 알려지는 幻와 같은 것이다.
승랑은 우리에게 오랫동안 잊힌 기억이었다. 잊힌 기억일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은둔자였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서 기억한 이들은 소수였다. 그리고 그 소수만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었던 기억이었기에 오히려 그 소수를 제외한 이들에게는 기억되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를 둘러싼, 잊힌 기억을 되살린다는 것은 그 소수에게 각인되었던 기억의 미로 같은 흔적을 더듬는 작업일 수밖에 없었다. 그 희미한 흔적을 더듬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인연이 착착 맞아떨어졌을 때라야 가능했을 일. 우리는 그 기적 같은 일을 만날 수 있다. 그 기적 같은 일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동아시아 대승불교 중흥조 승랑−그 생애와 사상의 분석적 탐구》이다. 우리는 거기에서 승랑(僧朗) 그리고 노련한 탐구자 김성철을 만난다.
대학원 박사과정, 고(故) 김인덕 선생님의 삼론학 관련 수업을 듣는 것은 고역이었다. 막 공부를 시작해서 불교학의 기본 개념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이에게, 주제의 제시와 제시된 주제에 대한 논파가 거듭되는 길장의 저술들은 미궁이었다. 4학기를 연속해서 듣고도 결론은 단순했다. 피해 가고 싶다는 것. 그러나 피해 가지 못했다. 연구의 중심 주제로 삼았던 원효(元曉)가 끊임없이 추궁해 들어가는 귀일(歸一)의 논리가 그 삼론에서 연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억지로 억지로 우겨서 한편에 밀어 넣었는데, 어느 날 그것이 눈앞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중국에서 활동했던 한국 승려들에 대한 조사연구를 한창 진행하고 있던 참이었으니 2005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만난 이 책의 저자 김성철 교수께서 불쑥 승랑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날부터였을 것이다. 그 후부터 10여 편을 계속해서 발표한 김 교수의 승랑 연구 논문들을 읽을 기회가 계속해서 주어졌다. 행복 혹은 몰라서 고통스러운…….
2. 승랑의 생애 그리고 고유사상의 복원
지식산업사에서 간행한 김성철 교수의 《동아시아 대승불교 중흥조 승랑―그 생애와 사상의 분석적 탐구》는 여러모로 고민스러운 책이다.
우선 인도적 사유와 중국적 사유가 만나서 어떠한 변용을 거쳤는가, 그리고 그 변용의 와중에서도 사유의 기본적 틀은 어떻게 전승되었는가가 고민되어야 한다.
둘째, 관하의 구-삼론을 계승한 신삼론이 독자적인 사유의 계보를 형성할 때까지 어떻게 변용되어 갔는가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단순히 사상적 변용과 계보의 문제만이 아니라, 당시의 다양한 정치·사회적 변동까지 함께 고려의 대상으로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셋째, 100여 년 동안 4대를 전승하면서 형성된 사상의 계보 곧 신-삼론종의 계보에서 승랑과 승랑 이후 새롭게 형성된 사유전통 간의 구분 문제 역시 고려의 대상이 된다.
넷째, 이러한 다양한 고려의 대상들을 검토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료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저자가 이렇게 다양한 고민을 하나의 틀 속에서 이해해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독자 역시 여러모로 고민을 안고서 읽어야 한다는 한계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 한계는 저자나 독자에게나 모두 고민으로 다가온다. 잊힌 기억을 되새겨낸다는 것은 그만큼 고초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여기에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 발견된다. 그러한 여러 미로를 저자가 먼저 헤매고, 그 헤맨 결과를 아주 찾기 쉬운 지도로 제작하여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는 그 지도의 안내 표지판을 따라가기만 하면, 적어도 승랑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리고 승랑이 제창한 사상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한 개략적이고 명쾌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그 개략적이고 간명하며 확연한 이해를 위해서 저자가 선택한 방법은 기존의 연구 성과를 일단 배제하고, 승랑에 대한 저자의 연구를 먼저 제시하는 방법이었다. 물론 저자의 연구 과정마저 그러했던 것은 아니지만, 저자는 독자의 이해를 위해서 내용을 재배열했다. ‘Ⅱ. 승랑의 생애와 사상’은 그러한 저자의 연구를 정리한 것이다.
이 장에서 첫 번째 과제는 승랑의 호칭이다. 승랑의 생애와 사상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우선되어야 할 작업이지만, 그 문제 역시 간단한 것은 아니다. 사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지만, 중국과 일본의 연구자들은 승랑의 역할을 축소하고 싶어 했고, 반면 한국의 연구자들은 승랑의 역할을 확대하고 싶어 했다. 저자는 승랑에게 고유한 칭호를 한정하고 싶어 한다. ‘섭령대사(攝嶺大師)’ ‘섭산대사(攝山大師)’ ‘대랑법사(大朗法師)’ ‘낭대사(朗大師)’ ‘도랑(道朗)’ 등 승랑에게만 한정되는 호칭을 구분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섭령흥황(攝嶺興皇)’ ‘산가(山家)’ ‘산문(山門)’ ‘섭령상승(攝嶺相承)’ ‘섭령상전(攝嶺相傳)’ 등 삼론 사상의 전통을 통칭하는 용어이면서, 기존의 연구에서는 승랑에게 귀속시켰던 많은 호칭에 대한 배제를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배제의 이유를 근거를 들어 제시함으로써 저자는 좀 더 객관적으로 승랑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확보한다. 그리고 승랑에 대한 호칭의 확보는 삼론전통에 포함된 다양한 저술에서 승랑의 고유한 사상을 구분하는 통로로 기능하게 된다.
간단해 보이는 듯한 과정이지만, 저자가 머리말에서 언급한 것처럼, 실은 호칭과 고유사상을 구분 짓는 과정에서만 2004년부터 2009년까지 8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평자는 앞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운이 좋게도 이 8편의 논문이 발표되는 과정에서 하나하나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기회에서 느낀 것 한 가지는,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당연히 느껴지리라 기대되는 부분이다. 바로 교감(校勘)의 문제이다.
저자가 활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자료는 사본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자가 활용하고 있는 삼론의 사본 대부분은 삼론종의 조사들이 사유의 기본적 틀로 구사하는 논리적 방법론의 난해함과 필사 과정의 적지 않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삼론종 특유의 논리적 방법론에서 오는 난해함은 저자의 전공과 관련이 있는 분야이니만큼 백분 양보하여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필사 과정에서 생긴 적지 않은 오류들은 그보다 더한 난제와 혼란을 생산해낸 상태였다.
더구나 삼론종 전적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유포되었던 길장의 저술에서도 많은 오류가 존재하는데, 길장의 기억에 의존한 강의가 많은 오류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저자는 그러한 부분들을 일일이 지적해내고 있다. 물론 승랑의 생애 및 고유사상을 분류해내기 위한 과정에서 찾아낸 것들로, 하나의 저술 안에서 기억의 오류 혹은 필사의 오류를 지적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책을 읽어가는 독자의 눈에는 쉽게 드러날 것이라 기대하지만, 그러한 오류는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우리는 저자의 눈을 빌려 그 오류를 배제하고 지름길을 얻은 것이다.
저자의 노고가 너무 확연히 드러나는 부분이기에 사족의 역할밖에 못 하는 언급이겠지만, 이것이 잊힌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선행되어야 했던 작업이었고, 그 작업에 현장 답사까지 포함하여 8년여에 가까운 산고가 소요되었다는 점을 독자들이 감안해주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그 오랜 산고를 통해서 되살려진 기억을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되밟아가고 있는 것이다. 승랑의 고유사상 역시 동일한 과정을 통해서 복원된 산물인 것은 다름이 없다.
3. 승랑의 재발견
승랑의 생애와 고유사상을 복원했다는 가장 중요한 공헌 외에, 이 책의 또 다른 성과는 동아시아 불교사상사에서 승랑이 점하는 사상사적 위치와 그 의미를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승랑은 삼론종 전통 내에서는 관하(關河)의 구삼론의 전통을 계승하여 명맥을 이은 존재이자 신삼론의 새로운 전통을 형성한 조사로서 자리매김된다. 곧 승랑은 구마라습에게서 시작된 관하(關河) 구삼론을 북지(北地)에서 수학하여 남지(南地)에 전한 존재이면서, 흐트러진 삼론의 종지를 새롭게 재구성해낸 존재임을 밝힌다. 곧 격의불교의 한계를 극복해냈던 관하(關河) 구삼론의 전통이 쇠하고 연기와 공에 대한 몰이해가 다시 횡행하기 시작했을 때, 그 오류의 힐난점을 명확히 하는 것은 물론 그 오류를 지양하는 방법론으로서 ‘중가체용론(中假體用論)’과 ‘이제시교론(二諦是敎論)’을 제창하여 동아시아 대승불교의 기초를 제공했던 인물임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승랑 특유의 유무론이 성립되고 전승되는 과정을 밝히면서, 승랑에게서 비롯되는 신삼론의 사상적 전통이 멀리는 인도의 용수로부터 가깝게는 구마라습과 그를 중심으로 한 관하 구삼론의 전통으로부터 연원하는 것임을 밝힌다.
승랑이 제공한 사상적 기초는 신삼론의 새로운 전통을 성립시키는데, 승랑 이후의 삼론가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스스로 ‘무의무득(無依無得)’으로 표방한다. “‘무의’란 ‘어디에도 의지하지(依) 않는 주체의 태도’를 뜻하고, ‘무득’이란 ‘어떤 자성도 성립하지(得) 않는 객체의 성격’을 뜻”한다(p.245).
저자는 승랑에 의해 형성된 이 신삼론 전통의 핵심어인 ‘무의무득’이 화엄과 반야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면서, “무득의 조망도 궁극적인 것이 아니다. 무득에 집착하면 다시 유소득이 될 뿐이다. 무소득에 대해 철저히 자각할 경우, 무소득이랄 것도 없음을 알게 된다. 진정한 무득은 무득에 대해서도 무득한다. 무득의 중도를 정관(正觀)할 때까지 유소득의 분별을 변증적으로 파기한다. 승랑에게서 유래한 이러한 가르침은 ‘말을 떠나고 생각에서 벗어난 무득정관[忘言忘念無得正觀]’을 표방하는 달마계 선종으로 그대로 계승되었고 육조 혜능의 남종선(南宗禪)을 탄생시킨 뒤, 한국 불교계의 전통적 수행법인 간화선에까지 이어져서, 화두참구와 법거량의 지침이 되고 있다.”(p.247)고 평한다.
저자가 언급하지만, 사실 이 평가는 화엄이나 천태에도 역시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천태가 승랑에게서 유래된 중가체용의 사상을 재구성하여 사상적 조망의 기초로 삼고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며, 승랑 이후에 전래된 유식사상에 적극 반응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화엄사상 역시, 승랑이 제시하였던 무의무득의 틀 위에서 사상의 전개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효가 개합자재(開合自在), 입파무애(立破無碍)에서 일심을 조망하였던 것이 그렇고, 의상이 무주(無住)에서 화엄의 본연을 보았던 것이 또한 그러하다.
달리 말하면, 용수의 공(空)에 대한 논리적 규명을 인도 대승불교의 사상적 출발점으로 삼는 것처럼, 승랑이 제시한 무득의 중도는 동아시아 대승불교의 사상적 출발점으로서의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책 제목에서 ‘동아시아 대승불교 중흥조’로서 ‘승랑’을 지목한 저자의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
이전의 연구 성과들은 부록으로 제시되어 있다. 일반적인 연구서라면, 이전의 연구 성과들은 책의 앞머리에 놓였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뒤에 놓음으로써 저자는 독자 우선의 편의를 제공한다. 또 다른 부록, 승랑의 생애와 고유사상의 복원을 위해 저자가 교감하고 고민해야 했던 자료들은, 저자가 만났던 고민들을 새삼 확인하게 한다. 그리고 뒤를 쫓는 연구자들에게는 일종의 팁이기도 하다.
4. 출발점에서
우리는 저자의 산고 덕분에 동아시아 대승불교사상의 출발점을 손쉽게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출발점은 친절하게도 부록에서 더욱 꼼꼼히 주어진다는 점을 발견한다면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더욱 다행일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독자이자 뒤를 쫓는 사람으로서 불만이 남는다는 사실을 사족 삼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불만의 첫째는 독자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을 읽는 동안 시종일관 조바심을 쳐야 한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근래에 보기 드물게 보여주는 학술서의 완결성이 만들어내는 결과라고 수긍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불만은 불만인 셈이다. 불만의 둘째는 첫 번째 불만으로부터 기인한다. 그 완결성이 다른 연구자들에게는 곧장 새로운 출발점으로 제안되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출발점과 그 출발점의 모양새가 새롭게 제시되었으니, 처음부터 다시 읽고 고민해야 할 과제가 주어진 형국이다. 하지만 그 출발점이 이전의 출발점과 달리 좀 더 분명한 모양새가 되었기에 고민의 부담은 한결 덜어진 셈이다. 그래도 새롭게 제안된 표지판 앞에서 우리는 출발점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
석길암 /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HK교수.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