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당구 6월호의 권두언 '한국 유일의 스포츠당구학과가 사라질 위기'라는 글을 읽고...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국내 당구의 미래에 대한 큰 희망으로 자리매김 했던 성덕대학의 스포츠당구학과가 폐과될 위기상황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당구를 사랑하는 한 동호인으로서 큰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어쩌면 대학의 정규 클래스에 당구학과가 만들어졌다는 사실만으로 당구계에 산적된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져왔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한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시장 경제의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원칙이 학문과 학과에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한 분야가 하나의 학문으로서의 체계를 가지게 되어 학과가 만들어지는 것에는, 그 분야에 인생을 걸겠다는 희망과 각오를 가진 인적 자원과 그 자원이 수련의 과정을 거쳐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욕만으로, 혹은 어떤 의무감만으로 해당 학과가 존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당구학과를 졸업하고 진출할만한 마땅한 사회적 분야가 있습니까? 최초의 스포츠당구학과를 만든 성덕대학의 의욕과 성의에 당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한국 당구의 요람으로서 자리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만, 졸업할 학생들의 미래 진로에 대한 구체적 대안없이 학과를 만들고 신입생을 모집한 것은 다소 성급한 일이 아니었는가 생각합니다.
김기제님의 글에 표현하신 안타까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외람되이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그 글이 독자들로 하여금 성덕대학 스포츠당구학과가 폐과의 위험에 처한 것이 당구계가 성의껏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느낄 수 있게 할 만한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생각되는 까닭입니다. 더구나 성덕대학 관계자들이 그 상황을 서운하게 생각하고 불만을 가지신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뭔가 생각을 잘못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당구계가 성덕대학을, 아니 스포츠당구학과를 도울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입니까? 미래도 확실하지 않은 당구계에 인생을 걸 것을 강요하면서 신입생들을 몰아다 주어야 한다는 것일까요? 당구계의 지도적 인사들은 단순한 의무감의 발로에서 자신들의 자녀를 당구학과에 강제로 입학시키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일까요? 당구인들이 한 마음으로 당구의 발전을 모색하여 노력한 결과에 따라 당구로 사는 것이 가능해진 후라면 그 자체로서 스포츠당구학과에 대한 당구계의 지원은 충분해질 것입니다만, 그렇게 좋은 토양이 마련되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의 스포츠당구학과의 신설은 분명 성급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성덕대학은 당구계의 지원 하나만을 바라보며 막연하게 '좋아질 것'으로 낙관하면서 무책임하게 신입생을 선발하였다는 것입니까?
글을 살펴보면, '성덕대학은 3년 뒤인 2001년에 독립의 당구학과 설치, 운영에 자신감을 가진 해당 학과장의 열의로 레저스포츠학과에서 스포츠당구학과를 분리 독립시키는 엄청난 일을 감행하였다.'라고 서술을 하셨습니다. 독립된 학과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것에 자신감을 가졌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간 성덕대학에서는 스포츠당구학과를 알리기 위해 전국 고교 당구대회를 개최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대학측의 노심초사에 비한다면 당구계의 협조는 미미할 뿐이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성덕대학 관계자들이 상당한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라고도 쓰셨습니다. 그러나 일년에 한 번 있을까 싶은 그 대회가 신입생 유치를 위해 대학측이 노력할 수 있는 전부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분야보다는 학과의 졸업생들이 나아가야 할 진로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했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에의 비전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것으로 비춰졌었다면, 그것은 일회성의 대회를 서너차례 개최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신입생 모집에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단편적인 이벤트를 통하여 오로지 '신입생 모집'이라는 근시안적인 목표에 근접해 가려는 의식은, 더 장기적인 시야를 가지고 재학생들의 미래를 보장하려는 노력에 비교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발전적인 의미에서의 학과의 주된 노력은 신입생 모집에 급급하여 '스포츠당구학과를 알리는 것'에 치중할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당구계가 도와주지 않아서 폐과의 위기가 닥쳤고, 그래서 성덕대학의 관계자들이 당구계의 미흡한 지원을 서운하게 여긴다는 내용은 일견, 흥분하기 좋아하는 저와 같은 이상주의자들에겐 설득력 있는 논리 전개일 수 있으며 그것으로 당구계의 풍토를 한탄하게 할만한 내용일 것입니다만, 단편적인 것 이상의 지원을 하기가 사실상 어려운 당구계의 현실을 볼 때, 이 일이 지금의 상황으로 흘러온 것의 책임을 그 주체인 성덕대학이 아닌 당구계 전체에게 돌리는 것은 그리 어울리는 일이 아닐 듯합니다.
제 생각 역시, 기왕에 만들어진 토대가 어떻게든 위기를 벗어나도록 함께 노력하자는 김기제님의 주장과 별반 다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이 극복되지 못하고 스포츠당구학과가 폐과된다면 또 다시 '학문으로서의 당구'가 재탄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에도 깊이 공감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 그 책임이 당구계에 있는 것이라는 듯한 내용에는 동감하기 어렵습니다.
아직 세상의 사리를 잘 알지 못하는 어린 신입생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가르쳤다면 그것만으로 모든 상황이 종료되는 것입니까? 아직까지 자력으로는 당구학과 졸업생들의 생계를 보장할 수 없는 당구계의 상황을 잘 알면서도 당구학과의 운영에 자신감을 가지고 학과를 만들었다면, 그들의 미래와 진로를 제시해주어야 할 의무가 그 학과와 학교의 담당자들에게는 하나의 분명한 책임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해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안타깝지만 폐과 자체도 당연한 결과로 보아야 합니다. 학과를 통해 공급되어 나오는 자원을 받아들일만한 충분한 수요가 없다면, 오히려 억지로 학과를 유지하면서 더 이상의 졸업생을 무책임하게 내보내는 것이 더욱 불행한 현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학과를 만들어놓고 그 운영과 졸업생들의 미래까지 당구계가 알아서 해줄 것으로 생각했다면 그것은 분명 무책임과 무사안일한 사고의 전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당구계의 상황이 어떻습니까? 이제 막 새로운 당구로의 방향을 모색하고는 있습니다만 전체적인 흐름을 볼 때 아직까지는 발돋움의 단계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사자께서는 이런 글에 본인이 등장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실지 모르기에 언급하기가 조심스럽기는 합니다만 당구선수로서 아시안게임의 금메달을 획득하신 황득희 선수에게도 별다른 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는 당구계입니다.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한 종목의 꽃이라 말할 수 있는 선수가 된다고 해도, 당구클럽이라도 운영하지 않는다면 꾸준한 연습도 하기 힘든 열악한 상황이 당구계의 현실인 것입니다.
물론 앞으로의 상황이 계속 지금과 같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게 방치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도 많은 당구인들이 노력을 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적인 요건들이 하나 하나 충족되어 가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당구계의 지원이 미흡했던 것에 성덕대학 스포츠당구학과 폐과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오해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논조에 대해서는 우려의 뜻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직 우물도 파지 않은 상황에서 물을 주지 않는다고 원망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타깝습니다. 만약 이대로 상황이 계속 악화되어 국내 최초의 스포츠당구학과가 없어지게 된다면, 당사자들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저 역시 무척이나 아쉬워할 것이며 그러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도록 미약한 힘이나마 보탤 곳이 있다면 아무런 아낌을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이 상황은, 졸업생들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갖고 있지 않았었기 때문에 학과가 신설될 때부터 예상되어온 일입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에는 분명, 아무런 대책을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 당구계의 지원 하나만을 믿고(?) 성급하게 학과를 창설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당구 하나만을 보고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크나큰 피해를 끼친 성덕대학과 학과 담당자들의 무책임이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당구 발전을 위해 오랫동안 월간당구를 발행해오신 김기제님의 노고에 깊이 감사하고 있으며 섣부른 글로 그분의 높으신 뜻을 흐리게 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저 역시 당구인들의 힘을 모아 성덕대학 스포츠당구학과의 존속을 위해 힘쓰자는 큰 주제에 대해서는 그분의 뜻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오해가 없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