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을 매만져보았다
며칠 만에 매끄럽게 변했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의 손이 아니다.
시골에서는 손가락, 특히 엄지손가락의 마디는 골 깊게 갈라지고 터져서 피가 나고, 살짝 건드려도 깜짝 놀랄 만큼 아팠다. 손등과 손바닥의 피부 전체도 까칠까칠해서 쓰다듬기에도 꺼끌거렸다. 살갗을 손톱으로 잡아당겨서 찢어내기도 했던 피부였다.
서울 올라 온 뒤로 예전처럼 매끄럽게 변모하기 시작했다. 날마다 따뜻한 물로 사워하고, 뜨뜻한 물에 푹 담가놓은 결과이다. 서울의 공기는 사방이 아파트 단지로 가려져서 거친 바람이 순해져서 사람의 피부를 보드랍게 해 주는 이유일 게다.
서울에 비하여 내가 사는 산촌은 해변이 가까운 곳이다. 사방이 산으로 빙 둘러쳐진 곳이라서 바람이 차고, 드세고, 거칠었다. 또 밭일하면서 흙을 매만지고 투박한 연장을 손에 들고 일을 심하게 한 탓으로 피부가 바람과 햇볕에 노출되고, 굳은살이 박힌다. 또 차가운 물로 작업하고, 손 씻으면서 손의 피부에 전혀 관심과 배려를 갖지 않는 원인일 게다.
산적한 일거리들. 무릎 아프고, 등허리가 휘어지도록 숨을 헉헉거리면서 일을 해도 터가 나지 않는다. 맨 땅을 갈지 않고 삽과 쇠스랑으로 흙을 파 뒤엎고, 화학비료 없이, 농약 치지 않고 농사 지으려면 힘 깨나 들게 마련이다. 제철 농사, 맨땅에서 지은 농산물의 소출은 극히 보잘것없게 마련이고 상품 가치도 없다.
시장에 나온 잘난 식품류, 비성수기인데도 때깔이 좋은 식재료가 산더미처럼 식품 마트에 쌓인다. 이들은 자연환경을 거슬러서 재배했고 제철이 아닌데도 우수한 농작물로 생산된다. 지나치게 잘 키워서 때깔이 너무나 좋아서 오히려 의아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렇게 잘 키우려면 특수한 영농기술도 있어야 한다.
촌 태생이었으나 오랜 세월 동안 객지에서 살다가 늘그막에서야 직장에서 벗어난 뒤에 귀향했기에 나는 전문적인 지식과 영농기술이 일천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영농지식과 정보에 뒤떨어지게 마련이다.
'나대로의 농법'인 엉터리 농법으로 농사짓게 마련이다. 남들보다는 힘이 훨씬 더 들이는데도 작물의 소출은 턱없이 보잘것없고, 상품가치가 전혀 없다. 남한테 거저 주기에도 민망할 수준이 허다했다. 자급하는 수준으로 재배한다.
나한테는 자급자족의 농사라도 힘에 부친다. 수십 년 간 방치한 텃밭이기에 밭흙에는 식물이 요구하는 영양소가 별로 없어서 척박하다. 토질개량 차원에서 거름과 퇴비, 화학비료를 살포해야 되는데 나는 그냥 맨땅인 채로 농사를 짓는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 가운데 가장 애를 먹이는 것은 잡초다. 오랫동안 방임한 땅이라서 온갖 잡초 씨앗은 흙속에 숨어 있다가 발아가 가능한 여건이 되면 꾸준히 고개를 들었다. 남들네 밭보다 훨씬 더 많이, 끈질기게 나는 잡초들이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호미로만 풀을 잡다가는 결국 잡초에 치이게 마련이다. 낫으로 베어내다가 지치면 결국 잡초가 작물의 키를 넘어서게 마련이다.
나는 게으른 농사꾼이라도 늘 일해야 했다. 일할수록 손가락의 피부는 갈라지고, 손등이 트게 마련이다. 특히 봄철에는 더욱 심했다. 봄바람도 피부를 건성으로 만든다. 무척이나 건조하며, 드세게 피부를 자극했다.
내 손이 투박하게 된 자연환경적이고 직접적인 요인도 있지만 내가 먹은 음식물(푸성귀 위주)에도 간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직장에서 벗어난 뒤 몇 년 간 시골에서 살다 보니 홀로서기에 조금은 성공했기에 혼자서도 밥만은 너끈히 짓는다. 국 끓이고, 반찬 만들기에는 아직 서툴고, 어떤 것은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내가 먹는 국과 반찬류는 푸성귀, 채소류에 국한된다. 육류와 생선류는 기름기와 비린내가 있어서 이들을 이용한 국과 반찬 만들기를 꺼려하기에 기름기가 없거나 적은 식물류의 식단으로 섭생하게 마련이다. 이런 식물류의 영양섭취로는 단백질 부족으로 건성피부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요즘 씨앗 뿌리고 모종을 심어야 할 바쁜 영농철인데도 서울 올라와 쉬었다. 며칠 간이라도 전신의 살갗은 조금은 매끄러워졌다. 도시에서 직장 생활할 때의 피부, 예전의 상태로 환원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오늘까지이다. 내일 아침에 시골로 내려가면 또 투박한 농사꾼의 거친 손으로 변모할 것이다. 모레부터는 밭일을 시작해야 한다.
거칠고 투박한 농기구와 연장을 다루면서 봄철 씨앗을 뿌리고, 채소의 모종을 사다가 정식해야 한다. 과수목이나 화목도 사다가 심어야 한다. 밭일하다 보면 피부는 자연스럽게 거친 바람과 자외선이 강렬한 봄볕 햇볕에 노출되고, 또 찬물로 씻다보면 특히나 손등과 손가락은 다시 거칠어지게 마련이다.
서울 수돗물이 시골 지하수보다 더 좋다는 사실을 수십 년간 몸으로 체득한 나.
나는 건달 농사꾼이며 엉터리 농사꾼이다. 그런데도 봄철에는 남들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척한다. 읍내 5일장(2, 7일) 장터에서 사 온 씨알고구마를 밭 두둑 묻어서 새 순을 길게 키워내야 하고, 오이, 가지, 토마도 등의 어린 모종도 사다가 심어야 하고, 채종해 둔 재래종 호박 씨앗을 봄서리가 가실 쯤이면 흙에 묻어야 하고, 봄의 풀도 잡아야 하고, 고구마 순을 심을 두둑을 미리미리 형성해 두어야 한다.
이처럼 일하면 손톱마저도 뒤틀리고 변형되고, 손톱 때가 새까맣게 끼어도 관심조차 둘 시간적 여유가 없게 마련이다. 일할수록 손가락의 굵기는 더 굵고 경직되어가며, 심지어는 손톱도 변형되었다. 길이가 짧아지면서, 둥그스런했던 모양도 평퍼짐하게 변모하여 옆으로 퍼졌다. 손가락에 힘을 주다보면 손톱도 못나게스리 펑퍼짐하게 변형되었다.
일전. 보령농업기술센터가 운영하는 농업대학 귀농귀촌학과의 학생이 되어서 옆 자리의 여학생과 악수했다.
'어머, 최 선생님. 손이 왜 이렇게 꺼치런해요? 일 많이 하시나 봐요'
하고 안타까워 했다.
귀농귀촌의 연력이 그들보다 조금 더 긴 탓일까? 부끄러운 피부인데도 나는 오히려 투박해진 손을 남한테 곧잘 펼쳐 내보인다.
'나, 이렇게 변했소. 그러니 농업교육에 나를 최우선 선정해서 교육시켜 주세요.'
교육과 직원한테 은근슬쩍 떼를 썼고, 그 덕분에 충남농업기술원에서 실시하는 야생화/허브 교육을 미리 신청해 두었다.
어쩌다가 서울로 나들이 나와서 서울 동문을 보면 그들의 피부는 때깔이 참으로 좋아 보인다. 나잇살은 속일 수 없어도 피부가 중후하고 곱게,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들에 비하여 나는 영락없이 추접한 촌 늙은이의 꼬라지를 그대로 내보였다. 특히나 꺼끌하고 살갗이 툭툭 터지고, 피가 살짝 배기도 하는 손으로 악수를 청하면 그들은 눈을 똥그랗게 뜨게 마련. 내 손을 내려다보고는 '너, 촌에서 고생하는구나' 하는 안타까운 인사말을 듣게 된다.
아무려면 어떠랴. 거친 산촌에서 내려가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에 투박한 촌 늙은이로 몰락해 가는 과정을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은 시골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더라도 그곳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 산촌 생활에 적응할수록 점차로 거칠고 투박한 농투산이로 변신하는 나. 변신의 끝자락은 어디까지일까? 조금은 궁금해하면서 늙고 추레해진 내 손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일 많이 한 늙은이의 손은 그저 투박하다. 부끄럽지 않은 손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2013. 4. 17.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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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국보문학 사무실에 들러서 제25호 내 마음의 숲 동인지 발간 모임에 참가했다.
귀가하면서 오순옥 님한테 나는 '글은 발로 써라, 손으로 쓰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한테는 글은 발로 쓰는 거다.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고, 먹어 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쓰는 것이다는 게 내 체질에 밴 탓이다.
월간지 4월 원고가 수집 중이기에 나는 예전에 써 둔 글이 있는가를 컴으로 검색했더니만 2011년 이전 글이 많이도 사라졌다.
컴 교체할 때마다 자식한테 부탁한 내 탓일까?
거의 다 사라졌다.
다행인 것은 종이로 프린트해서 시골집에 저장하고 있다는 뜻.
월간지 4월호에 무엇을 올릴까 궁리하면서 몇 해 전에 쓴 일기를 살펴보았다.
이런 글은 생활글이기에.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내용이다.
잘 쓰려고 일부러 꾸미지 않아도 된다.
삶이 들어 있기에.
프린트 안 된 이런 글은 1,000개도 훨씬 더 있을 게다.
일기 수준이기에.
나이가 들수록 글이 허약해진다.
글은 50대가 가장 필력이 세고, 60대는 힘이 줄어들고, 70살을 넘긴 지금에는 힘이 거의 없다.
예전에 쓴 글이라서 지금보다 글맛이 훨씬 나았다.
위 글도 그 가운데 하나.
그냥 여기에 올린다. 글 다듬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은 새벽 두 시가 가까워지는 시각이기에.
나도 잠 좀 자자.
첫댓글 저도 60년 이상을 살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직장에서 손으로
많은 일을 했지만
정작 내 입으로 들어가는 농축산물 생산에는
손을 별로 쓰지 않아서인지
최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왠지 부끄러워집니다.
땅 한 평, 텃밭 하나 없는 저(재산이라고는 내가 사는 24평짜리 아파트)이기에
더욱 부끄럽습니다.
예... 저는 늦가을철부터는 서울 아파트에서 화분농사 짓습니다.
건달농사꾼이기에 화분농사, 때로는 컵농사라고 말하지요.
컵에다가 화초 키우다니... 때로는 쪽파도 심고...
3월 시골 내려갈 때 가져가려고 호박씨도 잔뜩 모았지요.
마음만 농사꾼입니다.
제 친구는 성남시에서 분양하는 실버농장 /3평.. 당첨되면 농사 짓대요.
3평이라...
@최윤환 3평이라도
채소 심으면 2식구는
먹을 수 있을 겁니다.
@박민순 예...
성남시 실버농장은 4월 초순 ~11. 초까지만 임대해 주기에 텃밭지기들은 채소 위주로만 농사 짓대요.
불과 7개월 농사기간... 3평이라도 실버(노인)들은 대단히 열심히 짓대요.
시골에서는 맨 천지가 땅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