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3375]익재(益齋)이제현(李齊賢)-登峨眉山[등아미산]
登峨眉山 등아미산
李齊賢 이제현
蒼雲浮地面 창운부지면
白日轉山腰 백일전산요
萬像歸無極 만상귀무극
長空自寂寥 장공자적요
아미산에 오르다
- 익재 이제현 -
검푸른 구름은 땅과 마주하여 떠 있고
밝은 해는 산허리로 둘러간다
모든 만상은 무극으로 돌아가니
먼 허공은 스스로 고요하기만 하구나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년(충렬왕14년)~1367년(공민왕16년)
자 중사(仲思), 호 익재(益齋), 역옹(櫟翁), 시호 문충(文忠)
본관 경주(慶州), 시조 알평(謁平)의 52세(世),
중시조 거명(居明)의 17세(世)
익재는 이색의 스승이며, 정몽주와 정도전 등
조선을 건국한 성리학자들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저술로 현존하는 책은 『익재난고(益齋亂藁)』 10권과
『역옹패설(櫟翁稗說)』 2권이다.
이색은 이제현의 묘지명(墓誌銘)에서
“도덕의 으뜸이요, 문장의 마루(道德之首 文章之宗)라 하였다.
익재(益齋) 선생의 시(詩) 등아미산(登峨眉山)의
시대적 배경은 원나라의 속박에 있었던 때이다.
익재가 지금의 중국 연경(북경,베이징)에 처음 간 것은
충숙왕 원년(1314년) 정월로 그의 나이 29세였다.
2년 뒤 충숙왕 3년(1316년) 4월에 서촉(西蜀)에 사신으로 갔다.
충선왕(충숙왕의 父)이 명산인 아미산에서 제사를 올리기로 했으나,
원나라(몽고)에 저항하는 개혁을 단행한 죄(?)로 가지 못하게 되었다.
익재는 충선왕을 대신하여 아미산에 가게 된다.
사천성 성도에서 배를 타고 7일을 더 가야 하는
왕복 5천100km, 3개월 동안의 긴 여정이었다.
아미산(峨眉山)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아미'와는 다른 이름이다.
그 산의 지세가 사람의 이마처럼 높고 가파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미산은 해발 3099m로 그 당시에도 불교의 명산 중 하나였다.
아미산은 절경으로 유명하다.
익재는 그 아미산을 풍치를 보며
힘없는 나라와 여러 생각을 했을 것이다.
시의 내용을 보면,
태극(太極)의 이치를 시로 읊었다.
검 푸른 구름은 땅에 면(面)해 있었다.
(구름은 흘러가는 것이고 땅에 접하여 변화한다.)
밝은 해가 산허리를 비추어 구름을 없앤다.
(음양의 원리에 따라 세상은 변화한다.)
모든 만물은 결국 무극으로 돌아간다.
(무극은 태극을 낳는 원천이다.)
먼 허공은 스스로 고요하다.
(고요함에서 시작된다.)
진공묘유(眞空妙有)
새로운 시작의 근원은 공(空)이다.
참으로 텅 빈 곳에 오묘한 깨달음이 있다.
익재는 고려가 저물고 다른 시대가 옴을
이 시에서 읊고 있는 것을 아닐까?
[출처] 登峨眉山 등아미산 - 李齊賢 이제현 ([인위인] 인문학을 위한 인문학 ㅣ 한자,삶,COREA ㅣ 긍정의 힘) | 작성자 한마음 C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