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조용히 기준을 바꾼다. 한때 중년이라 하면 마흔에서 쉰 즈음을 떠올렸는데, 이제는 그 경계가 훌쩍 뒤로 밀렸다.
최근 UN이 발표한 연령 구분(아래)에 따르면 예순여섯에서 일흔아홉까지를 중년이라 부른다 하니,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열여덟에서 예순다섯까지를 청년으로 본다니, 인생의 시간이 통째로 늘어난 느낌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베이비부머의 4,50대는 참으로 바빴다.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며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동시에 부모를 모셔야 하는 이중의 짐을 지고 살아왔다.
이른바 ‘낀세대’라는 이름처럼, 위아래를 받치며 숨 가쁘게 살아온 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자신의 노후를 준비할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어느새 노년의 문턱에 서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졌다. 먹거리는 풍족해지고, 의료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여 예전 같으면 치명적이었을 병도 이제는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것은 단순한 통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삶의 길이가 늘어난 만큼, 삶의 방식 또한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인생칠십고래희’라 하여 일흔을 넘기기조차 드문 일이라 했지만, 이제는 칠십을 넘긴 사람들이 오히려 젊음을 이야기한다. 나 또한 그 흐름 속에 서 있다. 몸은 분명 세월의 흔적을 지니고 있지만, 마음만큼은 여전히 움직이고 싶고, 배우고 싶고, 사랑하고 싶다.
요즘은 자신의 나이에서 스무 살을 빼야 진짜 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만큼 우리는 젊어졌고, 또 젊게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물론 모든 이가 그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일찍 생을 마감하기도 하고, 병약함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7,80을 넘기고도 탄탄한 근육과 활력을 자랑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같은 나이, 전혀 다른 삶의 모습이다.
나는 문득 계산해 본다. 이 기준대로라면 아직도 중년기를 마치기까지 7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그런데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그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모래처럼 순식간에 흘러갈 것이다.
엊그제 새해를 맞이한 듯한데 벌써 가을을 앞두고 있으니, 남은 시간 또한 결코 길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래서일까. 늦어진 중년을 바라보며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된다. 이 시간을 단순히 ‘늙어가는 시기’로 보내고 싶지 않다. 오히려 ‘원로청년’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 비록 겉모습은 세월을 속일 수 없을지라도, 마음과 행동만큼은 청년처럼 살아가고 싶다.
사랑도 하고 싶다. 취미를 즐기며, 때로는 땀을 흘리고, 때로는 웃으며 하루를 채우고 싶다. 지나온 삶을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은 시간을 더욱 빛나게 태워보고 싶다. 어쩌면 그것은 마지막으로 주어진 청춘일지도 모른다.
이런 마음이 지나친 욕심일까.
아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여전히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이가 아니라 태도가 삶을 결정한다면, 늦어진 중년은 결코 쇠퇴의 시간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지금이 가장 젊은 날이다.”
그리고 그 말을 믿으며, 원로청년의 길을 한 걸음씩 뚜벅뚜벅 걸어가려 한다.
첫댓글
UN에서 발표한 연령구분을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79세까지로 중년기를 늘렸습니다.
그만큼 평균수명이 늘어났고 덩달아 건강수명도 늘어난 결과라고 봅니다.
아직도 중년기가 7년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니 괜히 힘이 납니다.
노인이라는 생각을 접고 다시 허리끈을 동여매야겠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