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 못(野池)〉
이황(李滉)
露草夭夭繞碧坡 이슬 머금은 풀 여리고 여리게 푸른 언덕을 둘러싸고 있는데,
로초요요요벽파
小塘淸活淨無沙 조그마한 못은 맑고 활기차며 모래도 없이 깨끗하구나.
소당청활정무사
雲飛鳥過元相管 구름 날고 새 지나가는 것 원래 관련이 있는 일이지만,
운비조과원상관
只恐時時燕蹴波 다만 두렵구나, 때때로 제비 날아와서 물결을 차게 될까봐.
지공시시연축파
* 출전: 《퇴계선생문집》 의 《외집》 권 1. 칠언 절구, 각운은 坡, 沙, 波로 상평성 가(歌: 坡와 波)와 마(麻:沙)의 통운임. 이 시는 작자가 18세 때 지은 것으로 그의 〈연보〉에 나와 있으며, “봄에 놀며 들 연못을 읊었다”는 설명이 있다. 또 이 〈연보〉에서는 ‘벽파’가 ‘수애(水涯)’로 '지공’이 ‘지파(只怕)’로 되어 있다. 이 시에서는 이황 선생이 벌서 도학자로서의 마음가짐을 잘 가다듬어 나타내고 있다고, 그의 생애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자주 이야기하고 있다.
*이황(李滉 1501 -1570):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성리학자.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평생 동안 조정에 나아가서 벼슬을 하기도 하였지만, 자주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경상도 예안으로 물러나서 도산서당을 짓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학문연구에 몰두하였음. 그가 평생 동안 쓴 많은 글과 저서들은 대부분 후세에 잘 보존되어 전하고 있는데, 편지 글이 3 천 통 이상, 시도 2천 2백 여 수나 전한다. 대표작으로는 〈어진 임금이 익혀야 할 공부를 열 장의 그림으로 해설함(聖學十圖)〉, 《주자의 편지 뽑음(朱子書節要)》, 《퇴계선생문집》 등이 있음. - 《한백》 18 – 377
*야지野池: 두보 〈모춘暮春〉: “모레 위의 초가집은 새 버들가지로 어두워지고, 성곽 곁의 들못에는 연 꽃이 붉었구나. 沙上草閣栁新闇, 城邉丨丨蓮欲紅”
*요요夭夭: 《시경》 〈주남(周南) 도요(桃夭)〉: “복숭아나무가 작고 예쁨이여, 곱고 고운 그 꽃이로다. 이 아가씨의 시집감이여, 그 시집 집을 화순하게 하리로다.〔桃之夭夭, 灼灼其華. 之子于歸, 宜其室家.〕”
* 원상관元相管: 原相管. 원나라 유관柳寬 〈혈서불경血書佛經〉: “무엇이 눈에 부딛쳤기에 고통을 자아냈는가? 관절과 혈맥은 본래 상관이 있다고 하는데云何觸目生痛楚, 闗節脉理元相管”
[해설]
이 시는 퇴계선생이 20세 전[18세]에 지으신 것이지만, 이미 조촐한 도학자의 마음씨를 읽어볼 수 있는 작품이 되어,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적어둔 책에서 자주 인용하는 작품이 되고 있다. 다음 이야기는 그의 제자인 이덕홍이라는 분이 전하는 내용이다.
선생께서 일찍이 제비실[鷰谷] - 마을 이름으로, 온계(溫溪) 서쪽 5리에 있다. - 에 놀러 갔다가 작은 못[小塘]의 물이 맑고 깨끗한 것을 보고 심신(心神)이 상쾌하여 유연한 정취를 얻은 듯하였다. 절구 한 수를 남기셨다.
이슬 맺힌 풀 곱게 물가에 둘러 있고 / 露草夭夭繞水涯
작은 못 맑고 깨끗해 티끌 한 점 없네 / 小塘淸活淨無沙
구름 날고 새 지나는 건 원래 있는 일 / 雲飛鳥過元相管
때때로 제비가 물결 찰까 두려울 뿐이네 / 只怕時時燕蹴波
신유년(1561, 명종16) 여름에 덕홍이 “이 시는 언제 지은 것입니까?”라고 하니, 선생께서 “내가 열여덟 살 때 지은 것이다. 그때는 터득한 것이 있다고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마음에 매우 가소롭다. 이후에 다시 한 걸음 더 진보하면 반드시 오늘처럼 전날을 비웃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계당기선록〉, 고전db에서 인용
다음 이야기는 그의 4전 제자인 갈암 이현일선생이, 이 시와 남명 조식선생의 시 1수를 서로 비교하여 하는 이야기다.
퇴계(退溪) 선생이 소년 시절에 절구 한 수를 지었는데, 그 시에,
이슬 젖은 풀 고웁게 물가 두른 곳 / 露草夭夭繞水涯
작은 못물 맑고 싱싱하여 모래 없어라 / 小塘淸活淨無沙
구름 날고 새 지나는 건 원래 있는 일 / 雲飛鳥過元相管
때때로 제비가 물결 찰까 그게 걱정일세 / 只怕時時燕蹴波
하였다. 남명(南冥) 선생이 소년 시절에 역시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병 들어 산재에 누우매 낮꿈이 많노니 / 病臥山齋晝夢煩
몇 겹의 구름 물에 무릉도원은 막혔어라 / 幾重雲水隔桃源
새 물이 푸른 옥 빛깔보다도 더 맑은데 / 新水淨於靑玉面
박차서 물결 일으키는 저 제비가 밉고나 / 爲憎飛燕蹴生痕
하였다. 위 두 시 모두 천연히 자득(自得)한 멋이 있지만 퇴도(退陶)의 시는 고요할 때는 마음을 보존하고 움직일 때는 기미를 관찰하여 사물이 오면 그대로 순응하는 기상이 있고, 남명의 시는 공적(空寂)을 주장하여 마음으로 사물이 없는 곳을 비추려는 의사(意思)가 있다.-〈수주관규록〉, 고전db에서 인용.
이슬 맞은 풀 여리고 여리게 물가를 빙 둘러싸고 있는데, 조그마한 연못은 맑고도 활기차며 너무나 깨끗하여 밑바닥에 모래조차 없구나. 露草夭夭繞水涯, 小塘淸活淨無沙
이 조용하고도 깨끗한 못 위를 흰 구름이 무심하게 날아다니고, 솔개 같은 새가 지나가고, 물고기들이 마음 놓고 튀어 오른 것 같은 일들이야, 원래 작은 못을 무대로 하여 시시로 연출되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다만 두려운 것은 때때로 재비들이 날아와서 이 맑은 물결을 차고 휘저어 놓을까 두렵구나.
여기서 구름과 새는 자연의 본래의 모습을 상징하는 말이요, 재비는 자연 상태를 유지하려는 평정심을 방해하려는 욕심 같은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雲飛鳥過元相管 只恐時時燕蹴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