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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어머님께 결실된 신령역사 기반 참아버님께서는 ‘김성도씨를 중심한 성주교와 허호빈씨 중심의 복중교가 대모님을 거쳐 어머니에게까지 연결되어 나왔다.’고 말씀하셨다. 특히 홍순애 대모님은 오시는 주님을 맞기 위해 신령교단인 성주교와 복중교에 다니면서 많은 정성을 들이고 헌신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허호빈씨 모친이 참어머님께 ‘하늘의 신부가 되실 분이다.’라고 축복하였는데, 이는 모든 신령역사의 정성 기반이 대모님을 거쳐 참어머님께로 승계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5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아버지 어머니가 참부모님의 이름을 갖게 되기까지 과거 뿌리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환경, 좋은 가족, 좋은 혈통을 어떻게 마지막까지 잘 장식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대모님은 1914년 음력 2월 22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셨고, 일생을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살아오신 분입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살았지만 대모님의 일생은 그것과는 다른 길을 걸으셨습니다. 6 2천년 전에 이스라엘 나라에도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내적인 준비가 많았듯이 해방 전 한국에도 재림주님을 모시기 위해 준비한 단체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복귀섭리역사를 내면적으로 해 나오던 단체들도 많았는데 외할머니와 대모님은 그런 단체들을 찾아다니면서 오로지 뜻만을 위해, 오로지 주님을 만날 그날을 준비하기 위해 살아오셨습니다. 결국 그러한 신앙생활이 나를 이 자리에까지 인도하였습니다. 외할머니와 대모님은 항상 깊은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항상 분별되고 정갈한 생활, 깨끗한 생활을 하셨습니다. 나의 생활은 대개 대모님으로부터 배웠으며 외할머니에게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7 조원모 외할머니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신앙심과 애국심이 뛰어나셨고 모든 일에 열성적이셨습니다.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 만 다섯 살이 된 대모님을 등에 업고 그 대열에 끼어서 만세운동을 하시던 사진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 정도로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대모님도 이러한 외할머니의 열성적 신앙생활의 영향을 받아서 열아홉 살까지 장로교 신앙을 하셨습니다. 철산에서 김성도씨가 교주로 있는 성주교가 활발한 모임을 갖고 있었는데, 외할머니와 대모님은 그곳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8 내가 태어난 이듬해인 1944년쯤 대모님은 조원모 외할머니와 함께 복중교에 들어가서 주님을 모시기 위한 준비를 하셨습니다. 허호빈씨가 하루는 여자들은 모두 옷을 한 벌씩 해봐야 재림주님이 현현하시더라도 부끄럽지 않다고 하면서 대모님에게 오후 1시쯤 되었는데 밤이 되기 전까지 옷 한 벌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보통사람의 옷 같으면 몇 시간 만에도 만들 수 있겠지만 주님의 옷을 짓는 일이었기에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모님은 순종했습니다. 손이 벌벌 떨렸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일을 해냈습니다. 하루는 대모님이 밤낮 영적으로 재림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허호빈씨가 몹시 부러워 ‘몽시에라도 재림주님을 한번 뵈었으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자 몽시가 있었습니다. 몽시에 대모님이 개끗한 초가삼간에서 아래위 흰색 옷을 입고 부엌에서 진지를 준비한 뒤 물 묻은 손을 앞치마에 문지르며 나오는데, 외할머니가 이 방은 누구도 못 들어가는 방이라고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꾸도 안 하고 공손하게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 얌전하게 앉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건장한 분이 동쪽에다 상을 하나 놓고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앉아서 공부하다가 척 돌아앉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그분이 ‘내가 너 하나 찾으려고 이와 같이 공부를 한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얼마나 감사하고 황공한지 눈물이 저절로 나고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었답니다. 그래서 그분의 손을 잡고 울다가 깨었답니다. 깨어나서야 ‘그것 참 이상하다. 그분이 아마 재림주님이신가 보다.’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렇게 대모님은 몽시를 통해 참아버님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9 허호빈씨가 대모님에게 ‘하늘에서 재림주님 내외분이 신으실 갖신과 사모를 안주에서 해 오라고 하시네.’라면서 자기가 받은 계시를 전해 주었습니다. 대모님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안주에서 갖신과 사모를 잘 만들기로 유명한 집을 찾아가서는 ‘정성을 다해서 만들어 주세요. 돈은 달라는 대로 줄 터이니 최고로 만드세요.’라고 하면서 치수를 적어 주고 왔습니다. 일주일 정도 있다가 가서 보니 갖신은 잘 만들었는데 사모가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그 사모를 받아들자마자 팔에서부터 저려 오기 시작하더니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아예 몸이 꼼짝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그 집 방바닥에 발이 붙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하자 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대모님은 눈을 부릅뜨고 사모를 만든 분에게 야단을 쳤더니 벌벌 떨면서 다시 잘 만들어 놓겠다고 하였습니다. 일주일 만에 다시 가 보니 그때는 정말 마음에 들게 잘 만들어 놓았답니다. 돈을 치르고 평양에 가지고 나오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 얘기를 허호빈씨에게 했더니 웃으면서 좋아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달쯤 후에 또 몽시를 보았습니다. 대모님은 몽시를 아주 똑똑히 보시는 편입니다. 그런데 한 달 전에 본 그분이 다시 오시더니 ‘내가 북을 더 들어가서 공부를 해야 될 것이니 네가 제일 아끼는 이불과 요와 양복 한 벌을 배낭에 넣어달라!’고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 집에 들어가니 이상하게도 이불과 요가 깨끗하게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양복도 연한 색이면서 천이 좋은 것으로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감사하고 기가 막힌 일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정성껏 싸서 배낭에 넣어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둘러메시면서 ‘내가 3년 있다가 올 거니까 너는 3년 동안 마음 변치 말고 기다려라!’라고 하시더니 북쪽을 향해 휘파람을 불면서 혼자 외롭게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대모님은 한없이 울었습니다. 혼자 공부하러 가시는 모습이 그렇게 외롭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간에 마음이 변할 리가 업지만 ‘아무것도 아닌 나를 보시고 3년 동안 변치 말고 있으라는 황공한 말씀을 하고 가시는구나.’라며 울다가 꿈에서 깨셨습니다. 그렇게 대모님은 재림주님을 미리 보신 것입니다. 10 1946년 8월 복중교인 가운데 한 사람이 공산당국에 밀고하여 허호빈씨와 복중교 간부들이 경찰에 의해 평양 대동보안서에 구금되었습니다. 내무서원들이 허호빈씨에게 ‘네 복중에 있는 예수가 언제 나오느냐?’라고 물으면 며칠 있다가 나오신다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자꾸 그런 지시가 내렸던 것입니다. 허호빈씨는 재림주님이 감옥에서 나오실 일시를 말했기 때문에 20~30명의 교인들이 흰옷을 입고 매일 감옥 문 밖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무서원들이 그간 지어 놓은 옷을 몽땅 싣고 갔습니다. 하늘에서 다시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 1년여 동안 정성들여 다시 그만큼을 만들었지만 그때까지도 허호빈씨는 출옥하지 못하였습니다. 11 1946년 6월경에 아버님께서는 서울을 떠나 북한 평양으로 가셔서 경창리에서 집회소를 열고 전도를 하셨습니다. 그 무렵 북한 공산당국은 종교단체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습니다. 복중교의 허호빈씨 등이 종교를 사칭한 죄목으로 입건되었을 때 아버님께서도 그와 유사한 단체 지도자요 이승만의 첩자라는 등의 혐의로 대동보안서에 구금되셨습니다. 특히 섭리적 신부격으로 준비된 복중교가 신랑격인 아버님을 스스로 찾아오지 못하자 아버님께서 두 차례 사람을 보내 권고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끝내 거부한 결과 하나님은 옥중에까지 찾아 나선 것입니다. 아버님께서는 8월 11일부터 100일간 옥고를 치르시며 허호빈씨와 접촉하려고 수차례 조치 하셨지만 허호빈씨는 끝내 아버님이 누구인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러한 섭리적 선처를 외면한 채 불신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아버님께서는 11월 21일 가혹한 고문으로 인해 빈사지경의 상태에서 방면되셨습니다. 하늘의 가호가 함께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복중교 간부들은 그 무렵 고문치사를 당하고 그 후 6․25전쟁으로 인해 전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늘의 축복과 은사에 대해 책임을 다하지 못한 섭리적 사명자들의 결말이 얼마나 가혹하고 냉엄한가를 교훈해 주는 산 역사였습니다. 12 대모님과 조원모 외할머니는 재림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신앙생활로 평생을 일관하셨습니다. 세상과 타협하거나 안일한 가정 환경에 안주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늘 앞에 봉사하며 지성을 다하셨습니다. 대모님이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역사적인 수난길을 걸어 나왔기 때문에 나도 거기에 동참한 것입니다. 나도 그런 훈련을 한 것입니다. 뜻을 위해 가는 길이라면 무엇이든지 희생해 나왔기 때문에 우리 가문에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13 대모님의 생애처럼 여러분도 자랑스럽게 살아야 됩니다. 참부모님의 양가 부모 네 분 중에서 대모님이 가장 마지막까지 아버님을 보필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아버님께서 ‘대모님’이라고 칭호를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대모의 칭호를 받기까지 하늘만이 아는 피눈물 나는 정성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아버님을 모시기 전에는 재림주를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고, 아버님을 만나고 나서는 참부모님 가정을 위해서 더욱더 정성을 들이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사탄과의 싸움을 하셨던 것입니다. 대모님은 10년 동안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참부모님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14 앞으로 여러분은 자신을 위해 재물을 쌓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끼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뜻을 위해 아끼라는 것입니다. 자기 일족과 일국가, 남북통일을 위해 여러분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투입할 수 있어야 됩니다. 자기 집을 돌보아서는 안 됩니다. 오로지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붉게 불타오르는 그 한 심정뿐입니다. 그러니까 대모님과 마찬가지로 24시간을 하나님의 뜻과 부모님의 뜻을 성사시키기 위한 생각으로 살아야 됩니다. 대모님에게는 그 생각밖에는 없었습니다. 그 외에는 생각도 안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존경해야 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모라는 이름을 내가 내려 준 것입니다. 15 대모님은 부모님 성혼 이후 노동자의 아내로부터 황족까지 별의별 여자들이 어머니를 치는 판국을 수습하는 데에 수고하였습니다. 어머니 혼자로는 이것을 견디지 못하겠으니 3대에 걸쳐서 맞아야 됩니다. 여기에 계대를 놓는 데 있어서 책임을 한 할머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버님이 대모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여자들이 갈 사랑의 길에서 태산준령처럼 막혀 있는 담을 헐어 버리지 않으면 어머니에게 뒤집어씌우기 때문에 모든 짐은 나에게 지워 달라고 통곡하고 그 일을 해 나왔습니다. 부모님 가정의 모든 걱정을 해원해 달라고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한스러운 희생의 길을 통하고 국가기준을 넘고 세계기준을 넘어서 통일천하를 향하고 해방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는 시대에 온 것입니다. 이 전환시기에 자기 책임을 다하고 갔고 충심으로 모두 모셔야 할 자격을 가졌기 때문에 대모님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분의 일편단심의 심정을 이어받고 자기 후손들 앞에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전통을 올바로 세워야 합니다. 이 할머니는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여러분 가정에 모시는데 있어서 그 이상 일편단심 충정의 도리를 해야 됩니다. 1989년 11월 4일 휘호를 충심봉신(忠心奉身)이라고 했는데, 충성스러운 일편단심의 마음을 가지고 생축의 제물이 되는 길을 다 간 이 할머니처럼 가게 될 때에는 핍박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16 대모님은 일생 동안 오로지 한 곳을 향해서 신앙생활을 해오신 분입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새로운 섭리역사에 있어서 재림주가 사람으로 온다는 것을 선포하고 새로운 교단을 마련한 모든 역사에 처음부터 참여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성주교를 중심삼고 어머니 계통을 이은 것은 김성도씨가 1대조입니다. 또 한 갈래가 복중교의 허호빈씨입니다. 그 계통으로 신앙의 주류적 역사의 전통을 이어받고 오시는 재림주를 모시기 위해 선발주자로 달려오신 분이 대모님입니다. 어머님을 낳아서 3대의 해와적 역사를 거쳤는데, 어머님시대에 와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뜻을 암암리에 알고 준비해 나온 할머니라는 것입니다. 그간에 있었던 그 수고라는 것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주변에 있는 형제라든가 친척이라든가 동지, 모두가 몰이해하는 이 길을 홀로 나오며 생식을 하면서 별의별 역사를 다 거쳐 왔습니다. 끝까지 자기의 중심사상을 굽히지 않고 나옴으로써 어머님이 아버님과 만날 수 있는 기대를 조성했습니다. |
真のお母様に結実した神霊役事の基盤 真のお父様は、「金聖道を中心とした聖主教と、許浩彬を中心とした腹中教が、大母様を経て、お母様にまで連結されてきた」と語られた。特に、洪順愛大母様は、来られる主を迎えるために、神霊教団である聖主教と腹中教に通って多くの精誠を尽くし、献身した。そのような過程で、許浩彬の母親が真のお母様に対して、「天の新婦になられる方」と祝福したのだが、これはあらゆる神霊役事の精誠基盤が、大母様を経て真のお母様に承継されたことを意味するのである。 5 根のない木がないように、お父様とお母様が真の父母様の名前をもつに至るまでの過去の根を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人は誰でも、良い環境、良い家族、良い血統を、どのようにして最後まできちんと整えるかが重要です。 大母様は、一九一四年、陰暦二月二十二日、平安北道の定州(チョンジュ)で出生され、来られる主をお迎えし侍るために、一生の間、渾身の力を尽くして生きてこられた方です。今までのすべてのキリスト教徒たちは、主を迎えるために生きましたが、大母様の一生は、それとは異なる道を歩まれました。主を迎えるために、実践の道を歩まれたのです。 6 二千年前のイスラエルの国においても、主を迎えるための内的な準備が多くあったように、解放前の韓国においても、再臨主を迎えるために準備した団体が数多くありました。そのように、復帰摂理の役事を内面的に果たしてきた団体も数多くあったのですが、母方の祖母と大母様は、そのような団体を訪ね回りながら、ひたすらみ旨のためだけに、ひたすら主に出会うその日を準備するために生きてこられたのです。結局、そのような信仰生活が、私(お母様)をこの場にまで導きました。 母方の祖母と大母様は、絶えず深い信仰生活をされました。常に分別され、清潔な生活、清い生活をされました。私は、生活のほとんどを大母様から学びましたが、母方の祖母からも影響を受けました。 7 趙元模おばあさんは、キリスト教の家庭で生まれました。信仰心と愛国心が篤く、すべてのことに熱心でした。一九一九年、三・一万歳運動が起こった当時、満五歳になった大母様を背中に背負い、その隊列に加わって万歳運動をしている写真を見た覚えがあります。それほど、素晴らしい方でした。大母様も、このような祖母の熱心な信仰生活の影響を受けて、十九歳までは長老派教会の信仰をもっていらっしゃいました。鉄山で、金聖道女史が教主をしている聖主教が活発に集会を行っていましたが、祖母と大母様は、そこで熱心に信仰生活をされたのです。 8 私(お母様)が生まれた翌年の一九四四年頃、大母様は、趙元模おばあさんと共に腹中教に入り、主を迎えるための準備をしました。ある日、許浩彬女史が、「女性はみな、服を一着ずつ作ってこそ、再臨主が顕現されても恥ずかしくない」と言いながら、午後一時くらいになっていたのですが、大母様に向かって、「夜になるまでに服を一着作りなさい」と一言いました。普通の人の服であれば、数時間で作ることができますが、主の服を作るというので、いい加減にはできませんでした。しかし、大母様は従順に従いました。手がぶるぶると震えましたが、感謝の思いでその仕事をやり遂げました。 ある時、大母様は、夜も昼も霊的に再臨主に侍って暮らす許浩彬女史がとても羨ましくなり、「夢の中でも、再臨主に一度お会いできれば、死んでも恨みはない」と思いました。すると、夢のお告げがあったのです。 夢の中で、大母様はきれいな小屋にいました。上下に白い服を着て、台所で食事の準備をしたあと、ぬれた手をエプロンで拭きながら出てくると、祖母が、「この部屋は、誰も入れない部屋だ」と言うのです。しかし、言い返すわけでもなく、丁寧に扉をそっと開けて入り、おとなしく座ったといいます。すると、壮健な方が、東に向かって机を一つ置き、頭に手拭いを巻いて座って勉強していたのですが、さっと向きを変えて座るのです。そして、「私は、あなた一人を探し求めるため、このように勉強しているのだ」と言ったというのです。そのみ言が非常に有り難く、畏れ多くて、涙が自然と流れ、言葉が出なかったといいます。それで、その方の手を握って泣いているうちに、目が覚めたというのです。起きて初めて、「本当に不思議だ。あの方が恐らく、再臨主なのだろう」と思ったといいます。そのように、大母様は夢のお告げを通して、真のお父様に初めて会われたのです。 4 許浩彬女史は、大母様に「再臨主が履かれる革靴と紗帽(サモ)を安州で作ってきなさいと、天がおっしゃっています」と言いながら、自分が受けた啓示を伝えてくれました。大母様はその話を聞くやいなや、安州で革靴と紗帽を上手に作ることで有名な家を訪ねていって、「精誠の限りを尽くして作ってください。お金は欲しいだけあげますから、最高の物を作ってください」と言い、サイズを書いて帰ってきました。一週間ほどしてから行ってみると、革靴は上手に作ってあるのですが、紗帽が気に入らないのです。その紗帽を受け取るやいなや、腕がしびれ始め、目がぐるぐる回り、身動きすることもできなくなりました。挙げ句の果てには、その家の床に足がくっついてしまったのです。そこで、「もう一度作ってほしい」と言ったところ、体が少しずつ動くようになりました。大母様が目をむいて紗帽を作った人を叱ると、(その人は)ぶるぶる震えながら、「きちんと作り直します」と言いました。一週間後にもう一度行ってみると、今度は本当によく作ってあり、気に入ったといいます。お金を払って平壌に持っていくと、心が落ち着きました。その話を許浩彬女史にすると、笑って喜んだといいます。それから約一カ月後に、また夢を見ました。大母様は、夢のお告げを非常にはっきりと受ける方ですが、一カ月前に(夢で)会ったその方がまた出てきて、「私はもっと北に行って勉強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なたが一番大切にしている掛布団と敷布団、それから洋服を一着、背負い袋に入れてほしい!」と言われるのです。それで、「そのようにいたします」と答えて家に入ると、不思議なことに、掛布団と敷布団がきれいに準備されていました。洋服も、淡い色の服でしたが、良い布でできた物が準備されていました。ですから、「本当に有り難く、驚くべきことだなあ!」と思いながら、真心を込めてそれを包み、背負い袋に入れてさしあげました。すると、それを担いで「私は三年したら来るから、あなたは三年間、心変わりせず、待っていなさい!」と言われ、北に向かって、口笛を吹きながら独り寂しく行かれるのです。その後ろ姿を見つめながら、大母様はいつまでも泣きました。独り、勉強しに行かれる姿が、この上なく寂しく見えたのです。もちろん、その間に心変わりすることはあり得ませんが、「取るに足らない私に向かって、三年間、変わらずにいなさいという、畏れ多いみ言を下さって行かれるのだなあ」と言って泣いている途中で、夢から覚めました。そのように、大母様は再臨主と既にお会いしたのです。 10 一九四六年八月、腹中教信徒の中の一人が共産党当局に密告して、許浩彬女史と腹中教の幹部たちが警察に捕まり、大同保安署に拘禁されました。内務署員が許浩彬女史に、「お前の腹中にいるイエスはいつ出てくるのか」と尋ねると、彼女は「数日後に出てこられる」と答えました。天から、しきりにそのような指示が下りたのです。許浩彬女史は、再臨主が監獄において出てこられる日時を話していたため、二、三十人の信徒が白い服を着て、毎日監獄の門の外に立っていました。また、内務署員は、それまで作っておいた服を、一つ残らず持っていってしまいました。 天から「再び作りなさい」という指示が下り、一年間以上、精誠を尽くしてもう一度その分を作りましたが、その時もまだ、許浩彬女史は出獄できずにいました。 11 一九四六年六月頃、お父様はソウルを離れ、北朝鮮の平壌に行き、景昌里(キョンチャンニ)で集会所を開き、伝道をされました。その頃、北朝鮮の共産党当局は、宗教団体に対する弾圧を始めました。腹中教の許浩彬女史などが、宗教の名を語って人をだましたという罪で立件された時、お父様も、それと類似した団体の指導者であり、李承晩(イスンマン)政権のスパイであるなどの容疑で、大同保安署に拘禁されました。特に、摂理的新婦格として準備された腹中教が、新郎格であるお父様のところに自ら訪ねてくることができなくなるや、お父様は二度にわたって人を送り、勧告されました。それでも、最後まで拒否した結果、神様は獄中にまで訪ねていかれたのです。 お父様は、八月十一日から百日間、獄中での苦難に遭いながら、許浩彬女史と接触しようと数度にわたって手を打たれましたが、許浩彬女史は、最後までお父様が誰であるか気づかず、そのような摂理的に適切な(天の)処置に対して、顔を背けたまま不信の道に行ってしまいました。お父様は十一月二十一日、過酷な拷問により瀕死状態に陥ったまま、放免されました。天の加護が共にあったのです。しかし、その頃、腹中教幹部の多くは拷問を受けて死亡し、その後の六・二五動乱でも戦没しました。天の祝福と恩賜に対して、責任を果たせなかった摂理的使命者の結末が、どれほど過酷で厳しいかを教訓として教えてくれる、生きた歴史です。 12 大母様と趙元模おばあさんは、生涯にわたって再臨主を迎えるための準備をする信仰生活を貫かれました。世の中と妥協したり、安逸な家庭環境に安住したりせず、全面的に天のみ前に奉仕しながら、至誠を尽くされました。大母様が主を迎えるために、歴史的な受難の道を歩んできたがゆえに、私(お母様)もそこに同参(一緒に参加すること)したのです。私もそのような訓練をしました。み旨のために行く道であれば、何であれ犠牲にしてきたので、私たちの家門に神様が共にあったのです。 13 大母様の生涯のように、皆さんも誇ることができる一生を送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真の父母様の両家の父母のうち、大母様が最も高齢までお父様に侍られた方でした。それで、お父様は、「大母様」という称号を下さったのです。そのように「大母」の称号を受けるまで、天のみが知る血の涙の精誠祈祷をされました。 お父様に侍る前は、再臨主に会わせてくださいと祈り、お父様にお会いしてからは、真の父母様の家庭のために一層精誠を尽くされたのです。なぜなら、霊的によく御存じだったからです。真の父母様の家庭を守るために、サタンとの闘いをされたのです。大母様は、十年間、闘病生活をしながらも、真の父母様の家庭のために祈られました。 14 今後皆さんは、自分のために財物を積み上げておいてはいけません。節約するのは良いのです。しかし、み旨のために節約しなさいというのです。自分の一族と一国家、南北統一のために、皆さんがもっているものをすべて投入することができなければなりません。自分の家ばかり保護してはいけません。ただもつべきものは、神様の愛によって真っ赤に燃え上がる、その一つの心情だけです。 ですから、大母様のように、二十四時間、神様のみ旨と父母様のみ旨を成就させることを考えて生きなければなりません。大母様には、その考えしかありませんでした。それ以外のことは考えもしなかったのです。私たちが尊敬すべき方です。ですから、「大母」という名前を私が授けたのです。 15 大母様は、父母様の聖婚以降、労働者の妻から皇族まで、ありとあらゆる女性がお母様を打つという局面を収拾するために苦労しました。お母様一人では、これに耐えられないので、三代にわたって打た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の代を受け継ぐために、責任を果たしたおばあさんであることを知っているので、お父様は「大母」という名前を与えたのです。女性たちが行く愛の道で、泰山峻嶺(大きな山と険しい峰)のように立ち塞がっている垣根を崩してしまわなければ、お母様に降りかかってくるので、「あらゆる重荷を私に背負わせてください」と痛哭し、そのことをしてきました。「父母様の家庭のあらゆる心配を解消してください」と言ったのです そうして、今や恨多き犠牲の道を通じて、国家基準を越え、世界基準を越えて、統一天下に向かい、解放に向かって前進できる時代に来たのです。 この転換期に自分の責任を果たして逝き、すべての人が忠心で奉るべき資格をもったので、「大母様」としたのです。皆さんは、この方の一片丹心の心情を引き継ぎ、自分の子孫に対して、神様に侍る伝統を正しく立てなければなりません。このおばあさんは、神様に侍るために生きました。神様を皆さんの家庭に迎えるには、それ以上の一片丹心、忠情の道理を尽く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 一九八九年十一月四日、揮毫を「忠心奉身」としましたが、忠誠に満ちた一片丹心の心をもって、生畜の祭物になる道を歩みきったこのおばあさんのように歩むとき、迫害なく神様から福を受け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 16 大母様は、生涯にわたり、ただ一つの所に向かって信仰生活をしてこられた方です。その中で私たちが特別に記憶すべきことは、新たな摂理歴史において「再臨主が人として来られる」と宣布し、新しい教団を準備したすべての役事に、最初から参加してきたということです。聖主教を中心として母の系統を引き継いだのは金聖道であり、それが一代目です。 そして、もう一つの系統が腹中教の許浩彬です。その系統で信仰の主流的歴史の伝統を引き継ぎ、来られる再臨主を迎えるために、選抜走者として走ってこられた方が大母様です。 お母様を生んで三代のエバの役事を経たのですが、お母様の時代に来て実を結ぶことができるというみ旨を暗々裏に知って、準備してきたおばあさんなのです。その間にあった苦労というものは、とても言い表すことができません。周辺にいる兄弟や親戚、仲間など、誰も理解できないこの道を独りで歩み、生食をしながら、ありとあらゆる役事を経てきたのです。 しかし、最後まで自分の中心思想を曲げずに歩んでくることによって、お母様がお父様と出会える基台を造成しました。 |
Nurturing True Mother True Father said, "The Holy Lord Church led by Rev. Kim Seong-do and the Inside the Womb Church led by Rev. Heo Ho-bin were connected to True Mother through Daemonim." Throughout her life, Hong Soon-ae (Daemonim) made many conditions of devotion to meet the Returning Lord. Also, when she joined the Holy Lord Church and the Inside the Womb Church, she dedicated herself to these churches. During that time, Rev. Heo's mother gave a blessing to True Mother, "You will be Heaven's Bride." This signified that the entire foundation of the conditions of devotion made by all these Spirit-led churches was bequeathed to True Mother through Daemonim. 5 As no tree is without roots, we need to understand the people in the past who constituted the roots of True Father and True Mother before they were inaugurated as the True Parents. It is significant that they created and maintained a good environment, good family and good lineage until the end of their lives. My mother, Daemonim, was born on the 22nd day of the 2nd lunar month in 1914, at Jeongju, North Pyeongan Province. She devoted her life completely to finding the Returning Lord and then lived her whole life in attendance to him. Christians up to that time lived with the hope of welcoming the Lord, but my mother’s path was different. In order to meet the Lord she actively searched for him, rather than just hoping and waiting for him to come. (True Mother, 1989/12/02) 6 Thousands of years before Jesus came, God made many preparations for Israel to receive him that remain unknown to this day. In Korea as well, prior to the liberation He prepared many groups to receive the Lord at his return. Those groups carried out internal work for the providential history of restoration. My maternal grandmother and my mother searched everywhere for those groups. They lived their lives only for the Will, preparing for the day when they could meet the Lord. In the end, their sincere and devout life of faith led me to where I am today. Living a virtuous and pure life, they separated themselves from anything impure or evil. I learned this way of life primarily from my mother, but my maternal grandmother also greatly influenced me. (True Mother, 1999/10/21) 7 Grandmother Jo Won-mo was born in a Christian family. She had deep faith and love for her country, and was passionate about everything she did. With the explosive beginning of the March 1st Movement in 1919, she participated while carrying my mother, who was then five, on her back. I remember one time seeing a picture of her at a rally. Grandmother Jo was truly a remarkable woman, with a fervent life of faith that influenced my mother. They attended a Presbyterian Church until my mother was 19 years old. Later, they attended the Holy Lord Church founded by Rev. Kim Seong-do, even making the long journey to Cheolsan to attend a church there because it was very active. My grandmother and my mother joined that church and continued their life of faith. (True Mother, 2014/10/11) 8 In 1944, one year after I was born, my mother and grandmother Jo Won-mo joined the Inside the Womb Church, where preparations were being made to attend the Returning Lord. Rev. Heo Ho-bin told the members, "Each and every woman in the church should make at least one set of clothes for the Lord. Otherwise, when he comes you will be ashamed." One afternoon, around 1:00 p.m., Rev. Heo asked my mother to make a set of clothes for the Lord and complete them before nightfall. It might be possible to make clothes for an ordinary person within several hours, but making clothes for the Lord required extra special care. Still, my mother obeyed and did her best. With trembling hands, she made the clothes with a heart of gratitude. My mother wanted to be like Rev. Heo, who was living a spiritual life of attendance to the Returning Lord day and night. One day she thought to herself, "If only I could meet the Lord once, even in a dream, 1 could die and have no regrets." That night she had a dream. In her dream, she was wearing a white Korean dress. She was in a clean three-room house with a thatched roof. Having prepared breakfast, she was coming out of the kitchen, drying her hands on her apron, when Grandmother Jo said, "Not just anyone is allowed to come into this room." Still, she opened the door, and without saying anything, quietly entered the room and sat down. There she saw a man, physically well-built and wearing a headband, sitting at the table facing the east and studying. All of a sudden he turned around and looked at her, and said, "I have been studying hard in order to find you." My mother later said that his remark touched her deeply and she was overwhelmed with gratitude, but at the same time she felt inadequate and could only shed tears, unable to utter even one word. She wept while holding his hand. Then she woke up. After waking up, she thought, "What an unusual dream! He must be the Returning Lord." That is how my mother had her first encounter with True Father, in a dream. (True Mother, 2014/10/11) 9 One day, Rev. Heo Ho-bin told my mother about a revelation that she had received. "I was told that you should go to Anju and buy new shoes for the Returning Lord and his Bride, and also a traditional Korean hat for him." My mother departed as soon as she heard this. She went to a well-known craftsman who made those items and asked him sincerely, "Please make them with your utmost devotion. I will pay you as much money as you want. Just make them to the best of your ability." She gave him the sizes for the items and left. One week later, my mother went to pick up the items. She was pleased with the shoes but not with the hat. As soon as the craftsman handed her the hat, she felt her arms starting to get numb and saw the sky turning yellow. Her entire body was paralyzed, she could not move at all, and her feet were stuck to the floor. When she said to the craftsman, "You must make it again," little by little her body returned to its normal state. My mother was very upset, and she scolded him for not making it properly. He was shaken, and he promised to try his best to make it right. A week later, she went back to that craftsman. This time she was well pleased with the hat. She was relieved by this and, after paying for the shoes and hat, brought them back to the church in Pyongyang. Later when she shared her experience about the incident, Rev. Heo laughed with joy. After about a month, my mother had another dream. She used to have very vivid dreams. In this dream the same man whom she had seen in her dream the previous month appeared again and said, "I need to go to the North and study more. So prepare your favorite sleeping pad and blanket; also a suit of clothes. Put them in my backpack for me to carry with me." She answered that she would do so, and returned home. Still in the dream, she entered her house, and amazingly, a clean blanket and sleeping pad were already prepared and waiting for her. There was even a suit of clothes; it was light-colored and the fabric was of excellent quality. Thinking, "How incredible! How can I ever express my gratitude enough?" she packed them in a backpack with wholehearted devotion and offered it to the man. As he put it on his back, he said to her, "I will be back in three years. During that time, do not change your heart. Just wait for me!" He whistled a tune as he departed on his solitary journey. As she watched his back receding into the distance, my mother cried and cried. He looked so lonely as he departed to study in the North. She thought to herself, "Of course, my heart will not change. Although I am just an ordinary woman, this distinguished man sincerely requested that I not change my heart for three years." She was so overwhelmed by his loving heart toward her that she could not stop crying. Then she woke up. In this way my mother, Daemonim, met the Returning Lord ahead of time, in her dreams. (True Mother, 2014/10/11) 10 In August 1946, one of the Inside the Womb Church members defected to the communist authorities. Rev. Heo Ho-bin and other Inside the Womb Church leaders were arrested by the police and imprisoned at the Daedong Detention Center. During the interrogation, whenever they asked Rev. Heo, "When will the baby Jesus be born?" she kept on saying, "In a few days." That was what the messages from heaven had told her to say. She had told the members of her church that the Lord of the Second Advent would be released from the prison, so every day about 20 to 30 members of her church clad in white clothes waited for the Lord outside the jail. In the meantime, internal security officers confiscated all the clothes that had been made for the Returning Lord over many years. Hence, heaven gave a message to the church members that they had to make them all again. It took them an entire year to make the clothes, yet even by then, Rev. Heo had not yet been released. (True Mother, 2014/10/11) 11 Sometime in June of 1946, Father left Seoul and went to Pyongyang in the North. He evangelized there and found a lecture room in Gyeongchang-ri where he could meet his followers. Around that time the communist authorities began to persecute religious groups. Rev. Heo Ho-bin and her main church leaders were incarcerated at the Daedong Detention Center, charged with operating a pseudo-religion. Father was incarcerated at the same facility. He was charged with two counts: leading a pseudo-religion, similar to the charge against Rev. Heo, and being a spy for South Korean President Syngman Rhee. The Inside the Womb Church was prepared in the position of the providential Bride, but it failed to come to True Father, who was in the position of the Bridegroom. From inside the prison Father twice sent messengers to Rev. Heo to let her know who he was, but she rejected those messages. Yet even in the prison God continued to work to bring her to Father. Father was imprisoned for 100 days, beginning on August 11. During that time he attempted to contact Rev. Heo Ho-bin several times, but she never recognized who Father was, even to the very end of her life. She rejected God's providential efforts to approach her and His loving heart to spare her life and ended up going the way of faithlessness and death. On November 21, Father was thrown out of the prison, on the verge of death due to the severe torture he had undergone in the prison, and he survived thanks to God's grace. The other leaders of the Inside the Womb Church were also tortured at that time. All of them were later executed, some time after the Korean War began. This is a living lesson given to us from history: how severe and tragic the fate that befalls those who are called to a providential mission should they fail to fulfill the responsibility for which heaven has blessed them and showered them with grace. (True Mother, 2014/10/11) 12 My mother, Daemonim, and my maternal grandmother, Jo Won-mo, lived their entire lives with faith in order to receive the Returning Lord. They never compromised; they never settled into a comfortable family life. Instead, they totally immersed themselves in serving God with their utmost devotion. Since my mother walked a path of trials and tribulations in order to receive the Returning Lord, I naturally participated in doing so along with her. My grandmother, mother and I would sacrifice anything for the way of the Will. That is why God was continually with our family. (True Mother, 2014/10/11) 13 As we see from the life of my mother, Hong Soon-ae, we should live a life of which we can be proud. Out of the four persons who are parents of the True Parents, my mother is the only one who attended True Father until the end. For this reason True Father bestowed on her the title Daemonim. Before she received this title, she offered endless prayers, shedding tears of anguish. Her sincere devotion was a devotion that heaven alone could understand. Before she met True Father, she prayed that God would guide her to meet the Returning Lord. After she met True Father, she prayed even more deeply for the entire True Family, because she was well aware how hard Satan was trying to invade the True Family spiritually. She fought with Satan to protect the True Family; in fact, she kept on praying for them even during the ten years when she was suffering from failing health. (True Mother, 1989/12/02) 14 From now on none of you should accumulate wealth for yourself. It is good to be frugal, but I suggest that you be frugal so that you can make a greater offering for the Will. You should be able to invest all your savings for your clan, for your nation, and for the reunification of Korea. Do not think only of your own family. The only thing you need is a heart burning with love for God. Like Daemonim, you should live 24 hours a day thinking only of how you will fulfill the Will of God and True Parents. She had nothing else in her heart but that; she did not think of anything else. Because of this she deserves our utmost respect. That is why I bestowed on her the title Daemo, "Great Mother." (208-346, 1990/11/21) 15 After True Parents' Holy Wedding, Daemonim and True Mother had to work hard to deal with criticism from all kinds of women, ranging from the wife of the laborer to a lady from the line of the royal family. Mother could not endure this all by herself; three generations—grandmother Jo Won-mo, Daemonim and True Mother—had to face it together. Knowing Daemonim had fulfilled her responsibility in this, I gave her the title Daemo, which means "Great Mother." The way of love that all women have to walk has high walls to overcome. Unless True Mother could take those walls down, women would come to blame her. Daemonim appealed to God, crying out that she could take all True Mother's burdens on her behalf, and she actually did so. She also ardently prayed that she could dissolve all the worries, bitterness and sorrows of the True Family. Now, having passed through the painful path of sacrifices, we have come to the era when we can go over the national level and even the world level and proceed toward the world of unity and liberation. Hong Soon-ae truly accomplished all her responsibilities; hence, she deserves to be attended by all. That is why I named her Daemonim. As an example to your families and descendants, all of you should inherit Daemonim's heart of single-minded loyalty and establish a proper tradition of attending God. This grandmother lived only to attend God. In attending God in your families you should fulfill the way of a loyal heart with single-mindedness even greater than hers. On November 4, 1989, in honor of Daemonim, I created a calligraphic tribute, Chungshim Bong-shin (195-152, 1989/11/07) which means "with a loyal heart she dedicated herself" to God and True Parents. Anyone, like her, who goes to the spirit world after a life of sacrifice lived with single-minded devotion will open the gate to receive blessings from God free from any accusation. 16 Daemonim's entire life of faith and devotion had only one objective. We must especially remember that from the beginning she was part of the new providential work that included proclaiming that the Returning Lord would be born on earth as a human being. She participated in the new churches that God created for that purpose. Rev. Kim Seong-do, founder of the Holy Lord Church, was the first generation; another line was represented by Rev. Heo Ho-bin of the Inside the Womb Church. Their work laid the foundation that was bequeathed to True Mother. They formed the mainstream history from which Daemonim inherited the tradition of faith; but she was the first of these forerunners to actually attend the Returning Lord. By giving birth to True Mother, she completed the work of these women who had labored through three generations to carry out the role of Eve. She made preparations discreetly, knowing that the Will would bear fruit in True Mother’s generation. Words cannot describe all the hardships she endured. The many ordeals she had to bear throughout her life are beyond description. No one, not her siblings, her relatives or her friends, was ever able to understand her. As she walked her lonely path of faith, she even subsisted on raw pine needles. Yet her belief never changed and her faith never wavered as she established the foundation for True Mother to meet me. (265-009, 1994/1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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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