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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우리의 삶의 변화될 수 있을까요?
모태신자이지만
무늬만 신자이셨던
한 분이
참으로 깊은 영적 경험을 통해서
말씀속에서 주님을 만나고
새롭게 변화된 삶의 실제적인 이야기입니다.
이 간증은
말씀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예증입니다.
씨앗을 심으면
그 씨앗에 알맞는 싹이 돋아나듯이
말씀을 우리 마음에 심으면
그 말씀이 발아하여 삶을 변화시킵니다.
오랜 신앙생활이
저절로 참된 그리스도인을 만들어주지 못함을
느끼게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말씀으로
진정으로 주님께로 나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창조주이시고 누구보다. 저희에 대해 잘 알고 계신 분입니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은 내가 죄인임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잘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면 당신이 왜 하나님을 증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가장 겸손히 할 수 있는 답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찌 보면 가장 교만한 것처럼 보이지만 더 큰 죄인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왜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그분의 뜻에 무릎꿇을 때마다 할 수 있는 답변은 하나님께서 택하셨고 저는 은혜를 입었다.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롬 11:5-6)
제 행위는 단 하나도 거룩하지 않았지만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그 예수님의 말씀에 반응해서 이제는 예수님을 따르겠다. 결심한 것밖에는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저는 목사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예배를 중시하는 가정이었고 엄격한 가정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교회에서 떠들면 아버지가 설교 중이시더라도 저를 데리고 밖에 나가셔서 저를 거꾸로 드신 후에 볼기를 치셨다는 얘기를 교회 원로 집사님들께 나중에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국민학교 6학년 때 교통 사고로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7년간 누워 계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그때부터 의지하는 것은 돈이었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제 인생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저에게 어느새 돈은 신이되어 있었습니다.
저도 신학을 공부했지만 신앙은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교인으로 호탕한 삶을 살았지만 겉은 교인이었지만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습니다.
술 담배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는 항상 몸이 쉽게 아팠습니다. 한 달이면 두 세 번은 고열로 몸이 매우 허약했고 공복에는 저혈당에 와서 손이 떨리는 증세도 있었습니다. 관절도 안 좋아 무릎에 물이 차는 증세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발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가니 통풍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길게는 6개월 절뚝거리며 약을 항상 준비하고 살 정도로 몸은 망가져 있었습니다. 식을 하는 제게 통풍이라니요 발이 퉁퉁 부어서 병원에 가니 의사가 땅콩을 많이 먹었느냐 묻는 것입니다.
필리핀 땅콩은 작고 퓨린이 많아 통풍 걸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의사가 얘기해 주었습니다. 발에 진통 주사를 맞겠냐는 질문에 두 번 빨리 찌르라 할 정도로 너무나 아팠습니다. 식은 땀이 등과 가슴에 줄줄 흐를 정도로 아팠습니다.
차라리 발을 잘랐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땅콩이 제게는 통풍을 시작하게 하는 음식이었던 것입니다. 무의식 중에 땅콩 바를 먹고 통풍이 시작되어 4개월간 거의 걷지 못한 기억도 있습니다. 또한 변두통의 감기 몸살은 항상 있었기에 입의 약을 달고 산 것 같습니다. 하도 병원에 자주 입원하고 몸이 아팠기에 저를 담당하는 의사가 따로 항상 있을 정도였습니다. 제 직원 중에 한 명은 저를 위해 항상 의사와 연락을 주고 받아야 했습니다. 겉은 멀쩡해 보였지만
제 마음과 몸은 죄로 병들고 있었습니다
돈은 벌었지만 다. 소용 없이 허비되었고 항상 돈이 더 필요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는 왜 아직도 하나님께서 저를 만나 주셨는지 그분의 은혜라는 답변밖에는들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 가면 어쩔 수 없이 교과 공부를 가르치기도 하고 똑같이 교회 생활을 밖으로는 했지만 기쁨도 없는 짐을 진 마음으로 할 때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몸이 아프면 교회를 툭하면 빠졌고 교회에 가는 기쁨도 없었습니다. 저희 아이들을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그 아이들이 필요한 것을 채워 주면 된다고 생각하고 영적인 것은 하나도 채워, 주지 못하고 물질로만 아이들을 채웠던 거 같습니다. 부끄럽지만 제처는 동중한 화폐에서 목회를 하였습니다. 자동으로 저는 사부라는 호칭을 받았습니다. 제 집안은 다
교인입니다. 저도 신학을 공부했고 잠시 학생 전도서와 전도사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 예수님은 없었습니다. 코로나가 시작되었고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제가 하나님 안에 없었기 때문에 시작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교회문을 닫지 말아야 한다는 장로님께 아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것이냐 따지며 그런 마음으로 신앙하다가는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책임지실 것인지 따져 물었었습니다.
제가 출석하는 필리핀 가가얀 교회는 민다나오 연회 부지 안에 있는 건물에 속해 있었고 연합회와 그 부지 안에 있던 필리핀 교회 모두 걸어잠그고 외부인의 출입을 금했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다행히 교회가 문을 닫은 것입니다.
많은 교회가 또한 두려움에 교회문을 닫았고 가고 싶은 교회는 아니었기에 저만 잘 살면 된다 생각하고 한국의 마스크 파동이 이미 오기 전에 500만 원 어치나 마스크를 구입해서 컨테이너로 필리핀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시간이 가면서이 코로나가 심상치 않는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처음으로 팬데믹이 시작되었고 필리핀은 거의 움직이지 못하게 봉쇄령을 내렸습니다.
저는 이때 미국에 있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면 제가 건강해 하기에 다시 뛰면서 보통은 세상 음악을 듣고 뛰었지만 코로나가 오고이 사건이 전 세계적인 사건이기에 뭔가 영적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유튜브로 성경을 읽어주는 신학 성경을 다시금 돌아보며 뛰기 시작했습니다.
신학과를 공부하고 20년이 지난 시간 스스로 처음 성경을 다시 듣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도행전을 들었고 교회에서 듣던 목사님 설교 중에 있었던 성경절이지만 뭔가 제가 듣는 말씀이 다 새롭고 신기한 것입니다. 하루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이 말씀을 듣고 어 나 죄인인데 나도 해당되나?
혹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인가 하는 생각을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제가 죄인인 것은 너무도 확실하고 저도 그 은혜를 붙잡아도 될까 하고 잠시 고민하였습니다. 하지만 매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다는 그 말씀에 저도 포함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포함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은혜를 붙잡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것이 회개였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였으니 침례 요한의 첫 외침도 예수님의 첫 외침도 회개하라라는 말씀입니다. 회개하라는 것은 죄를 자복하라는 뜻이 아니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회개는 메타노라는 단어로 마음을 바꾸다. 회개하다. 회심하다라는 뜻이 있음을 알되었습니다. 내 죄를 하나님께 고하는 것은 회개하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자백입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께 내 죄를 고백하는 것 죄송한 마음에 예수님 이러한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자백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 목사님께서 자신의 죄를 A4 용지했으며 병이 치유되셨다는 말씀을 하신 설교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당시 들으면 무조건 했습니다. 경제가 무너질 것이니 집을 팔아야 한다고 하시는 목사님이 계셔서 집도 팔았고 이것 해야한다. 하면 그냥 무조건 순종하였습니다. 저 또한 코로나 격리 기간에 제 죄를 써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은 100개가 넘는 죄를 썼지만 어느 날은 열 가지도 쓰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 죄를 써 놓은 책상을 꼴도 보기가 싫은 경험도 하였습니다.
7일에 격리기간 동안에 450여개가 넘는 죄를 기록하였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40여도 자백하지 못했는데네 시간은 지난 것 같았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나고 국남아 내가 내 모든 죄를 용서했다라는 마음을 강하게 주심을 경험하였습니다. 네! 성경 말씀을 듣기 시작하자 말씀이 자꾸 제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 말씀이 저의 삶을 변화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에 있어 좌위에 날선 어떤 것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이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이 말씀이 정말 제게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처음 말씀을 읽을 때는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침대에서 편하게 설교를 보던 제 자신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긴 바지를 입고 셔츠를 꺼내 입으며, 의자에 앉아 말씀에 집중을 했고 이해하지 못하는 말씀이 있으면 다시 그 부분을 돌려보며 이해하려 했었습니다.
목사님 말씀을 틀어 놓고 말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듣기도 하였습니다. 말씀 앞에서 저는 은혜를 받기에 너무 감사했기에 무릎을 꿇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정말 버리고 싶었던 죄! 그토록 버리고자 했지만 절대 이기지 못했던 죄들이 힘없이 떨어져 나가며 참으로 신기한 경험을 계속해서 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어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은 과거의 죄를 지으시는 것뿐만 아니라 현재의 죄도 이길 수 있게 하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치유되자 이제는 몸이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말씀을 아침에 한시간 저녁에 한시간 읽는 시간을 구별하였고 말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개인과 동영상 등으로 제 머리가 너무나 피폐해져 있었기에 말씀에 단 5분도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성경절을 이해하기 위해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하고 그 말씀의 참뜻을 알기 위해 무릎을 꿇고 또 꿇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는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온 자요 깨닫지 못하면 말씀을 빼앗기는 것이라 말씀하셨기에 그 말씀을 깨닫기 위해 예수님께 계속해서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 세 번 기도 시간을 정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행 중에는 공항에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할 때는 처음에 얼마나 눈물이 많이 흘렸는지 모릅니다. 제가 무릎을 꿇은 이유는 성경에 보니 다들 무릎을 꿇고 기도하길래 그냥 따라한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서야 하나님 앞에 가장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싶기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만 처음에는 다니엘도 무릎을 꿇었다하고 바울도 다른 교인들도 해변가에서 무릎을 꿇었다하기에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무릎을 꿇었다. 하기에 무릎을 꿇기 시작한 것입니다. 누가 뭐라 하건 친구가 뭐라 하건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구원해 줄 사람도 아니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여 하셨느니라
분명 성경은 예수님의 본을 따라가면 된다. 말씀하셨기에 그냥 좋게 얘기하면 타협하지 않고, 정확하게 얘기하면 무식하게 그냥 따른 것입니다. 시간이 되면 차를 세우고 차 밖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도 하고 차 안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인터넷으로 한국의 많은 목사님 설교를 들었고 김대성 목사님 설교도 올라오기가 무섭게 들었습니다. 제가 말씀으로 채워지고 더 이상 공간이 없게 될 정도로 말씀을 보게 되자 말씀이 자동으로 흘러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어떻게 하려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않으려 해서 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은혜를 받는 자가 은혜를 나누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없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족에게 성경 공부를 하자 하고 제가 깨달았던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제 아이들이 하루는 핸드폰을 가지고 오면서 제게 맡기는 것입니다.
자기들에게 핸드폰이 있으면 너무 많이 하니 아빠가 가지고 있으라 하는 것입니다. 그토록 핸드폰을 하지 말라 해도 하던 아이들 말씀이 들어가니 바뀌는 것입니다.
하루는 제 막내 아들은 제게 울면서 아빠 나 구원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며 두렵고 떨린다고 하며 우는 것입니다. 말씀이 들어가고 아이들이 참 많이 변했습니다.
말씀은 분명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이기를 패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예수님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말씀에서 모이라 하셨으니 그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비록 교회 문은 닫았지만 집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가끔은 김대성 목사님께 파워포인트 자료를 부탁하고 또 그 말씀으로 주위에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집은 거의 매일 성경 공부하는 사람들로 가득찼고 코로나 기간 동안에만 수십여명이 예수님을 받아들였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평생 게이로 살다 머리를 자르고 침례를 받은 친구도 있었고 교회를 떠났던 친구 가톨릭 신자들 개신교 심지어 미국인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구 이건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아는 사람 그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코로나가 한창 심할 때 필리핀은 거의 봉쇄를 하고 있었지만, 저는 회사가 봉쇄에 해당되지 않는 직종이었기 때문에 저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고 쌀과 계란 야채 등을 싣고 다니며 코로나에도 걸리고 직장도 잃고 결국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음식이 없는 사람들을 하나 둘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가 걸렸으니 그 친구들은 저보고 그냥 두고 가라는 것입니다. 자기 코로나 걸렸다. 하는 것입니다. 그냥 갈까요?
아닙니다. 만나야지요 만나서 등도 두드려주고 힘내라 하면 제가 코로나 걸릴까 봐 걸린 사람들이 더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때이 성경 말씀을 김대성 목사님께서 자주 하셨고 저는 그냥이 성경 말씀을 믿고 다녔었습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 15:26)
하루는 제 매니저가 코로나에 걸렸고 증세가 아주 심해져 위태한 상황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앰뷸런스를 보내 준다고 분명히 약속을 했는데 코로나가 두려워서 앰뷸런스 기사가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직원 집에 갔더니 집안 사람들이 다 똑같은 증세가 있는데이 직원은 숨도 못쉬고 거의 죽게 생긴 것입니다. 이 친구를 제 차에 태우고 근처 병원은 받아주지 않았기에 한시간 거리에 있는 위생병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하고 한동안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게 하는데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이었냐면 개인적으로 저는 이틀 후면 비행기를 타야 했고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처 자식이 있고 제가 코로나 걸려서 혹 잘못되는 상황에 오면 집안 전체가 아주 큰일 나는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 그런 상황이 하나도 마음에 부담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미 마음엔 예수님께서 주신 평안으로 가득 찾기에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이 이것이구나 하며 그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미친 사람이었지만 저는 그때가 가장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상인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코로나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https://youtu.be/jSizJxtDt7M?list=RDjSizJxtDt7M
https://youtu.be/LbCbG5L_ncw?list=PLghoOxePMNT6_YxaOlyeXi127SLrDAjg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