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막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오늘도 중복을 지나 말복을 향해
또 하루가 갔다. 연중 제일 덥다는 삼복더위다. 초복은 하지에서 세 번째 경(庚)자가 든 일진(日辰)이 초복 날이다. 올해는 월복이란다.
월복(越伏)이란 본디 초‧중‧말복, 그 간격이 10일간인데 건너뛴다는 뜻이니 20일이란 뜻이다. 쉽게 말하면 다른 해보다 더위가 10일 더
길다는 뜻이다.
더위라야 이제 막바지라지만
견딜만한 세상이다. 지구 온난화 경향으로 뚜렷한 4계절의 기후라기보다 아열대기후로 변해가고 있다. 메뚜기도 제철이라더니 해수욕장과 풀장이 즐거운
비명이란다. 가는 곳 공간마다 냉방시설에 문명의 이기인 냉장고, 선풍기, 수영장, 각 가정의 샤워시설이 말해 준다. 올해는 탈원(脫原)갈등에
전력소비 이슈가 없는 게 그 탓일까?
아무리 더워도 샤워 한 번
하고나면 한두 시간은 거뜬히 견딜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설상가상 빙과류 세상에 냉장고는 시원한 음식과 음료를 간직하고 있다. 조심조심
오히려 냉방병에 시달리려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은 ‘허리
막’이 무슨 말인지도 모른다. 이 말은 ‘목물’이란 표준어, 전라도 사투리다. 사전에는 ‘바닥에 엎드려서 허리에서부터 목까지를 물로 씻는
일’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문명의 이기(利器)들의 발전에 주거환경 변화가 가져다준 결과다. 열악한 환경에서는 최고의 피서법이었다. 수영장과
목욕탕이 없고, 샤워시설 없었던 그 옛날, 오늘날의 샤워에 해당된다고나 할까?
‘허리 막’은 어디서나 고된 일을
하고난 뒤 환경에 얽매임 없는 피서법이다. 남녀와 노소가 끼리끼리 즐겼고, 장소의 구애 없이 활용했다. 물 한두 바가지로 더위를 날려버리는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그 상쾌함! 탈의실이 필요 없어 좋다. 그런데 혼자 못하는 게 흠이다.
옛 사람들은 피서라야 그늘과
바람이 잘 통하는 계곡을 찾았다. 대개 땡볕에 밀짚모자, 삼베옷 차림으로 평상에 앉아 부채질로 더위를 날리는 일이 보통이었다. 가끔 마을
당산나들이나 천렵(川獵) 그리고 강 수욕에 만족했고, 탁족(濯足)과 ‘허리 막’이 최고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어느 날 별이
총총한 무더운 여름밤이었다. 모깃불에 잠들지 못하던 밤, ‘허리 막’을 해 주시던 어머니! 그리고 교대로 ‘허리 막’ 해 드리면 내 마음은
어느새 단잠에 빠져 들었다.
한낮 일꾼들도 구슬땀 흘리며 고된
일을 하다 시원한 물 한 모금으로 몸을 식혔다. 틈을 타 허리 막을 해주고 받기도 했다. 마을 고샅길을 걷다보면 ‘허리 막’에 ○○! 즐거운
비명소리. 그리 많은 양의 물이 아니어도 더위를 쫓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철없는 어린이들은 한낮은 ‘허리
막’보다 냇가에서 물장구 치고 마을 당산 돌팍 위에 누워 단잠을 청하던 어린 시절이 지금도 선하다. 꿈을 꾸다보면 이글대던 태양도 어느새
석양노을에 산들바람이 일었다.
시골농촌의 삼희성(三喜聲)이
사라진 지 오래다. ‘허리 막’을 하면서 터뜨리는 즐거운 비명과 괴성도 사라져 간다. 세상과 인생은 신진대사(新陳代謝)의 반복이다. 이제 샤워에
수온까지 알맞게 맞출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혼자 할 수 없는 ‘허리 막’, 정겨운 우리 사투리 하나가 또 사라져 간다. 외래어인
‘샤워’가 좋기는 하지만 어쩐지 아쉽기만 하다
(2017. 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