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신자들의 영적 고향인 명례 성지는 밀양과 김해를 잇는 나루가 있던 낙동강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밀양 명례성당(密陽 明禮聖堂.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경상남도 밀양시 명례안길 44-3 (하남읍))
명례성당은 1897년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1828~1866년)의 출생지 바로 옆에 서 있는 성당으로 경남지역에서 가장 일찍 설립된 천주교회 본당이다. 신석복은 1828년에 명례리에서 출생한 소금과 누룩 장수였는데 1866년 병인박해 때 진해 웅천 장에서 돌아오다가 체포돼 대구 감영으로 끌려가 순교 했다.
순교할 때 “나를 놓아준다 해도 다시 천주교를 봉행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유해는 지금 강 건너 진영 천주교 묘지에 봉안되어 있다.
명례 본당의 초대 주임이었던 강성삼 신부(1866~1903년)는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에 이어 한국의 세 번째 신부이다. 1926년에 명례에 부임한 권영조 신부는 1928년에 기와지붕의 성전을 봉헌하였는데 안타깝게도 그 건물은 1936년 태풍으로 전파되고 주춧돌만 남아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38년에 파괴된 성당의 잔해를 사용하여 축소 복원한 것이다. 본당은 낙동강 하류역의 좌안에 독립구릉 남사면부에 남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당시의 명례성당이 입지한 수산은 낙동강과 인접하여 수운과 육로가 발달한 곳이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이며 홑처마 우진각지붕이다. 정면에 어칸(중앙칸)에 현관을 두고 별도의 박공지붕을 부가하여 전체적인 평면은 T자형이다. 평면구성은 좌측부터 제의실 1칸, 경당 4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좌측에 제대를 두고 내부에는 나무기둥과 인방으로 남녀의 사용공간을 구분하였고 출입구도 남녀 따로 두었다. 공포 양식은 도리만 있는 민도리집이며 상부가구는 도리가 3개 있는 3량가이다. 바닥은 장마루널로 마감되어 있다.(출처 : 문화재청)
정면 5칸, 측면 2칸이며 홑처마 우진각지붕이다. 정면에 어칸(중앙칸)에 현관을 두고 별도의 박공지붕을 부가하여 전체적인 평면은 T자형이다. 평면구성은 좌측부터 제의실 1칸, 경당 4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좌측에 제대를 두고 내부에는 나무기둥과 인방으로 남녀의 사용공간을 구분하였고 출입구도 남녀 따로 두었다. 공포 양식은 도리만 있는 민도리집이며 상부가구는 도리가 3개 있는 3량가이다. 바닥은 장마루널로 마감되어 있다.
명례성지는 복자 신석복이 소금 장수였음을 기억하며 녹는 소금 운동을 펼치고 있다. 소금은 다른 음식이 제 맛을 내도록 자신을 녹이며 사라진다. 교회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과 세상의 평화를 위해 자신을 녹이며 사라지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상징하는 뜻이다.
명례성당이 입지한 수산은 낙동강과 인접하여 수운과 육로가 발달한 곳이었다.
첫댓글 일반적으로 성당은 밀집된 도심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통례인데
밀양시 중심가에서 상당히 떨어진 낮은 산 언덕위에 마을을 뒤로하고 아담하게 오래 전에 지어진 교회는
외국 어느 동화 같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어쩌면 하느님이 주일마다 내려오실것만 같은 성스러운 교회와
낙동강을 바라보는 좋은 위치에서 지나가는 나그네는 새삼스럽게 잠간 머물면서 평화와 사랑의 메세지를 생각해봅니다.
충실한 내용응로 설명해주신 김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