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0년 카라키타이(서요)가 호라즘 왕조에게 패배했을 당시 포로로 사로잡힌 거란 황족들이 있었다. 부라크 하집, 하미드 푸르라는 아랍식 이름으로만 전해지는 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한 후 무함마드 샤의 휘하 장수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1220년, 칭기즈칸의 대침공으로 호라즘 제국이 와해되고 무함마드 샤가 피신지에서 병사하자 그들은 북인도의 델리 술탄 왕조에 의탁할 생각으로 남하하였다. 그러던 중 현재 이란 동남부인 케르만의 총독이 그들을 공격했는데, 부라크는 오히려 케르만을 정복하고 그곳에 정착하였다. (1222년) 부라크는 바그다드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에게 조공하여 그로부터 쿠틀루그 칸이란 칭호를 받았다. 거란 왕실은 본토인 동몽골에서 3000km 가 넘게 떨어진 곳에서 재기에 성공한 것이다. 이들은 후서요, 쿠틀루그 칸국, 키르만(현대 중국어 발음으로 치얼만) 왕조 등으로 불린다. 1226년 부라크는 호라즘의 잘랄 웃 딘에게 반기를 들었으나 이내 다시 복종하였다. 하지만 이후 몽골군이 다가오자 그에 복속하였고 이로써 다른 서아시아 지역들과 달리 케르만 일대는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1235년 부라크가 사망하자 아들 루큰 앗 딘이 계승한다. 1252년 루큰이 사망하자 그의 사촌이자 하미드 푸르의 아들인 쿠투브 앗 딘이 부라크의 딸 쿠틀루그 투르칸과 결혼하고 즉위한다. 1257년에 쿠투브가 어린 아들 핫지를 남기고 요절하자 거란 귀족들은 핫지의 모친 쿠틀루그 투르칸을 공동 통치자이자 나머지 공동 통치자인 핫지의 섭정으로 세웠다. 훌라구 칸에 의해 그녀가 군주임이 확정된 1264년부터 케르만의 쿠트바(금요 예배 선언문)에서 쿠틀루그 투르칸의 이름이 앞섰고, 아바카 칸 덕분에 핫지와의 권력 다툼에 이긴 1267년부터는 단독 통치자가 되었다. 그녀는 딸 파디샤 하툰을 일 칸국의 아바카 칸(훌라구의 아들)과 결혼시키며 양국간의 우호를 다졌다. 하지만 1282년, 쿠틀루그 투르칸을 지지하던 아바카 칸이 사망하고 동생인 테구테르 칸이 즉위하였다. 그리고 몽골 왕녀와 결혼한 쿠투브 앗 딘의 서자 잘랄 웃 딘이 테구테르 칸의 승인을 받아 쿠틀루그 투르칸을 폐위시켰다. 그녀는 일 칸국의 수도인 타브리즈까지 가서 탄원했지만 효과는 없었고 1283년 그곳에서 병사하였다.
한편, 아바카 칸이 사망하자 그의 차남인 게이하투 칸와 결혼한 (중세 몽골에선 남편 사후 부인이 의붓아들과 이어서 혼인) 파디샤 하툰은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1291년에 게이하투 칸이 즉위하자 파디샤 하툰은 그의 도움을 얻어 이복동생 잘랄 웃 딘을 처형하고 케르만의 두번째 여왕이 되었다. (1292년) 마르코 폴로는 그녀를 '경쟁자였지만 동생을 제거할만큼 대담한 군주'로 묘사했다. 그러나 1295년, 동맹이던 게이하투 칸이 사망하고 사촌인 바이두 칸이 즉위하자 그녀의 입지는 불안해졌다. 결국 같은 해 잘랄 웃 딘의 과부 쿠르두진은 바이두 칸의 승인으로 정변을 일으켜 파디샤 하툰을 처형하였다. 이후 5명의 군주가 더 재위했는데, 그 마지막인 쿠투브 앗 딘 2세는 조공을 제대로 안하다가 일 칸국의 올제이투 칸에 의해 폐위되고 말았다. (1306년) 케르만에는 나시르 앗 딘이 몽골 총독으로 부임하였다. 여담으로 폐위된 쿠투브 앗 딘 2세는 이란 중남부 파르스 지방으로 도주했는데, 그의 딸은 추후 무자파르 왕조를 창건하는 무바리즈 앗 딘과 결혼하였다. 1336년 일 칸국이 와해되자 무바리즈는 1340년 케르만을 정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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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