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Parents
“초1 교실은 동물의 왕국, 담임되면 사리함 준비한다” ①
중앙일보 2023.08.07.
에디터전민희이송원
2023.08.07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에서 2년 차 교사 A씨(23)가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한 뒤, 교사와 학부모의 반응입니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가 지난달 24~26일 교사‧학부모 13만2359명을 조사한 결과도 그렇습니다. “서이초 사건과 유사한 사례가 다른 학교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97.6%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교육부·서울시교육청 합동조사단이 지난 4일 발표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사건의 전모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서이초 1학년 담임을 맡은 2년 차 교사 A씨는 문제 행동을 보이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특히 ‘연필사건’을 계기로 해당 학부모의 민원에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호소했죠. 연필사건은 A씨가 사망하기 약 1주일 전 벌어진 사건입니다. 한 학생이 연필로 다른 학생의 가방을 찌르자 이 학생이 그만하라며 연필을 빼앗으려다 이마에 상처가 생겼습니다. 사건 이후 수차례 상담을 받기도 했지만, A씨는 법과 제도로부터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교사라면 누구나 비슷한 사건에 휘말려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학부모는 내 아이에게도 ‘연필사건’ 같은 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하고요. 서이초 사건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얘깁니다.
서이초 사건을 집중 해부하는 hello! Parents 리포트는 바로 이 부분에 집중했습니다. 현재 초등학교 교실의 현실은 어떤지, 그 민낯이 궁금했습니다. 교사에 대한 학부모들의 요구는 어떤 수준인지, 교사는 어디까지 아이를 도와줘야 하는지, 그리고 교실에서 분쟁이 일어났을 때 학교와 시스템으로부터 어떤 식의 도움을 받고 있는지도요. 나아가 내 아이가 문제 상황에 휘말렸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짚어봤습니다. 총 3편에 걸쳐 집중 보도합니다.
목차
[1화] 서이초 사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
1 지금 초등 1학년 교실에선 무슨 일이?
① 초등 1학년 교실은 ‘동물의 왕국’
② 교사에겐 통제 수단이 없다
③ 기피 1순위 ‘극한직업’ 초1 담임
박정민 디자이너
1 지금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선 무슨 일이?
“사망한 서이초 교사는 ‘연필 사건’에 연관된 학생 2명 외에도 또 다른 학생 2명의 문제 행동으로 학기 초부터 힘들어 했다. 한 학생은 가위질을 하다가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리거나 울부짖는 소리를 내며 불안해 했다. 연필 사건은 교사가 사망하기 약 일주일 전, 오전수업 중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가방을 연필로 찌르자 이 학생이 그만하라며 연필을 빼앗으려다 이마에 상처가 난 사건이다.”
-지난 4일 교육부 서이초 사건 브리핑 중-
① 초등 1학년 교실은 ‘동물의 왕국’
초등 1학년 교실은 ‘동물의 왕국’이에요. 대화가 안 통하고 통제가 불가능하거든요.
충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14년 차 이지혜(가명) 교사는 초등 1학년 교실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수업 중 이해를 돕기 위해 이씨가 “선생님이 제주도에 갔는데…”라고 얘기를 꺼내면 반은 순식간에 제주도를 주제로 한 토크쇼 현장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신들의 경험을 얘기하기 때문이죠. “선생님, 저 작년에 제주도 가서 말 탔어요.” “저는 제주도에서 동생이랑 싸워서 엄마한테 혼났어요.” “저희 할머니 제주도 살아요.”
이씨가 “조용히 하고 선생님 설명부터 듣자”고 아무리 말해도 자기 얘기에 심취한 아이들에게 들릴 리 없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다니는 학생도 부지기수입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11년 차 박소정(가명) 교사는 “수업 중에 학생 한 명이 교과서를 보고 ‘하하하, 이 그림 웃기다’고 하면 5~6명의 학생이 우르르 그 아이 자리로 모여든다”며 “교실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일은 수업시간마다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합니다.
쉬는 시간에 갑자기 말도 안 하고 집에 가버리는 학생도 있습니다. 이지혜 교사는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가 많아서 그런지 친구랑 놀다 싸우거나 살짝 다쳤다고 중간에 집에 가는 애가 많다”며 “그러면 그 학생을 찾으러 다니느라 수업은 중단되고 학교는 발칵 뒤집힌다”고 전했습니다. 화장실이나 학교 외진 곳에 숨어버리는 아이도 있습니다. 어렵게 학생을 찾아냈는데, 학부모에게 이런 말을 듣기도 합니다.
애가 없어진 걸 왜 모르셨나요? 선생님은 뭐하고 계셨던 거죠?
대소변 실수, 초등학교 1학년에게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학생이 먼저 교사에게 “실수했다”고 하면 차라리 다행입니다. 수업 중 누군가가 “선생님, 어디서 똥냄새 나요” 하면 교사는 비상이 걸립니다. 다른 학생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해당 학생이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대변 처리를 도와줘야 합니다. 집에서 준비해 준 여벌 옷이 없을 경우 여기저기 알아봐서 입힐 만한 옷도 찾아내야 하죠.
평온해 보이는 초등학교, 교사들은 "교실은 동물의 왕국"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② 교사에겐 통제 수단이 없다
아이들이 교실을 뛰어다니며 수업을 방해할 때, 가위를 휘두르고 다닐 때 교사가 할 수 있는 건 뭘까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만하고 자리에 앉으세요”라고 말하는 것, 이것 외엔 별 수가 없습니다.
현재 휴직 중인 경력 15년의 성미정(가명) 초등 교사는 “과거엔 아이 물건을 억지로 뺏기도 했지만, 요즘엔 아이들이 거세게 반발하기도 하고 그러다 아이 몸에 상처가 나거나 뒤탈이 생기면 부모들이 크게 항의하기 때문에 조심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조용히 하라”고 언성을 높이거나 출석부로 교탁을 탁 쳐서 학생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아동 학대로 학부모에게 고소당할 수 있기 때문이죠.
교사들이 “손발이 묶여 있다”고 하소연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친구를 때리는 아이를 교실 뒤에 세워 놓거나, 선생님 옆자리로 자리를 옮기게 하는 것, 반성문을 쓰게 하거나 친구한테 사과시키는 것, 선생님이 무섭게 쳐다보는 것조차 모두 정서 학대에 해당하기 때문이죠.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김민정(가명) 교사는 “아이나 학부모의 기분을 나쁘게 한 게 잘못이라는 ‘기분상해죄’로 교사가 고소·고발당하는 일이 너무 잦다”며 “교육청 교사 연수에서도 아동학대 신고 사례를 알려주고 조심하라고 안내한다”고 전했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지난해 9월 전국 유·초·중·고·특수학교 교사 62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2.9%가 “아이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아동학대로 의심받아 신고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교사가 학생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건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뿐입니다. 초등학교는 사실상 정규시험이 없고, 벌점제도도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학생부에 부정적인 내용을 적으면 학부모가 ‘성적 이의신청 기간’에 “우리 애가 그랬다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민원을 제기하고 법정 소송까지도 불사하기 때문이죠.
김민정 교사는 “아이가 졸업한 후에도 고소가 가능하기 때문에 교육청에서도 부정적인 내용은 쓰지 말라고 안내한다”며 “다른 애들을 때리고 괴롭히는 아이의 학생부를 번지르르하게 포장해 쓸 때마다 ‘거짓말하려고 교사 됐나’ 싶어 자괴감이 든다”고 털어놨습니다. 박소정 교사도 “초등학교는 평가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며 “학생부는 평가가 아니라 ‘아이 칭찬 파티’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울 서이초 앞에 마련된 교사 추모 공간.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는 2년 차 신규 교사였다. 뉴스1
③ 기피 1순위… ‘극한 직업’ 초1 담임
교사들 사이에는 “1학년을 맡으면 ‘사리함’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1학년 담임은 몸에서 ‘사리(舍利·불교에서 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긴다는 구슬 모양의 유골)’가 나올 정도로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라는 의미죠.
특히나 ‘금쪽이’(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나 악성 민원을 넣는 학부모를 경험한 선배 교사들은 더더욱 1학년 담임을 기피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신규 교사나 경력이 짧은 교사가 1학년 담임을 하는 경우가 많죠. 고인이 된 서이초 교사도 교단에 선 지 1년 만에 1학년 담임을 맡았습니다. “본인 희망대로 학년 담임을 배정했다”는 학교 측 입장문에 “1학년 담임은 4지망이었다”는 의혹도 제기됐어요. 교육부‧서울시교육청 합동조사단 조사 결과 1학년 담임을 1순위로 희망한 것은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임용한 지 얼마 안 된 초임교사가 진짜 희망을 밝히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죠.
교사들이 1학년 담임을 두려워하는 건 예측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신입생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파악이 안 돼 있어 한 반에 금쪽이가 몰릴 수 있거든요. 이지혜 교사는 “금쪽이가 없는 반에 걸리면 수업도 일찍 끝나고 편안한 한 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금쪽이가 4, 5명 몰려 있으면 애들 싸움 말리느라, 학부모 민원 응대하느라 지옥 같은 한 해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보통 2학년 때부터는 문제 학생을 각 반으로 골고루 배정하기 때문에 한 반에 여러 명이 몰리는 일은 적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초등학교 교실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교사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여다봤어요. 2화에서는 이번 사건의 한복판에서 대립하고 있는 교사와 학부모에 대해 들여다보겠습니다.
2년차 신규 교사가 교내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뉴시스
[2화] 교사 vs 학부모, 그들의 속사정
1 교사의 역할, 어디까지인가
① 교사의 최대 스트레스:학부모 그리고 생활지도
② 돌봄과 교육 그 어딘가
③ 교사 편은 아무도 없다
2 요즘 학부모, 어떻길래
① 80년대생 학부모의 등장
② 밀착 보육에 길들여진 탓?
[인터뷰] “이런 것까지 요구받아 봤다” 교사 10인의 목소리
[3화] 아이의 사건, 어떻게 대처할까
1 아이 사건, 이렇게 전개된다
① 사건 터지면 돌변하는 학부모
②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
[인터뷰] “대부분 사소한 언행에서 시작” 학교폭력 전담 교사의 조언
2 누구를 위한 민원인가
① 과도한 민원, 피해는 아이 몫
원본 링크 “초1 교실은 동물의 왕국, 담임되면 사리함 준비한다” ① | 중앙일보 (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