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게 이발하고 할머니 댁에 간다. 더워진 날씨에 짧게 머리를 자른다.
가는 길에 할머니와 먹을 김밥과 떡볶이, 음료수와 빵을 샀다. 전부 전성훈 씨가 좋아하는 것이다.
드시고 싶은 게 있는지 묻는 물음에 할머니는 언제나 손주 먹고 싶은 걸 사 오라고 하신다.
“자, 성훈이 따.”
물병을 건네받은 손자가 뚜껑을 따 할머니께 건넨다. 밥상 위로 손자가 사온 김밥과 떡볶이를 펼쳐놓는다.
“할머니 집에 왔는데 밥도 안 주고 카겠네. 우리 성훈이가.”
함께 먹을 점심을 사려고 전화 드렸을 때부터, 할머니는 직접 차려주지 못한 것을 마음 쓰여하셨다.
“이거, 밥도 먹어. 밥 많아. 이 밥도 먹어라. 김치도 먹고. 숟가락 갖다 줄까?”
김밥 두 알을 채 먹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난 할머니는 부엌으로 가신다.
냉장고와 밥솥을 열어 밥과 김치를 꺼내오신다.
밥상 위, 빼곡한 음식들 사이로 손수 지은 따뜻한 밥과 김치를 올린다.
수북이 올려진 고봉밥에 잘 먹이고 싶은 할머니 마음이 느껴진다.
김밥 반 줄 정도를 드신 뒤로 할머니는 계속 부엌을 오갔다. 밥도 반찬도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은데
할머니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전성훈 씨가 밥을 다 먹은 뒤로는 과일부터 커피까지 후식을 챙겨주신다.
그렇게 잘 먹는 전성훈 씨도 배가 부른지 점점 먹는 속도도 점점 느려진다. 그래도 챙겨주신 할머니 성의에
부지런히 먹는다.
이제는 더 이상 먹을 수 없는지 전성훈 씨가 방 문턱에 걸터앉아 잔뜩 불러온 배를 두드린다.
전성훈 씨가 사 온 빵은 꺼낼 틈이 없다. 아직 할머니는 부엌에 계신다.
부족하지 않냐고, 손자에게 이것저것 먹을 것을 더 권하지만 배부른 손자는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며 손을
흔든다. 마지막으로 할머니 텃밭에서 자란 호두를 직접 까서 손자에게 건네주신다. 전성훈 씨가 맛있는지
곧잘 받아먹는다.
돌아갈 때는 할머니가 싸주신 호두와 과일 한 봉지를 들고 내려온다.
멀리서 손을 흔드는 할머니 보며 전성훈 씨도 손을 흔든다.
별거 아닌 이 풍경이 참 정겹고 보기 좋다. 오랜만에 온 보람이 있다.
조만간 할머니 댁에 또 들러야겠다.
2023년 9월 21일 목요일, 박효진
지난 정합성 평가에서 박효진 선생님의 전성훈 씨 지원 기록을 보고 ‘클래식’이라 표현한 바 있지요. 과연 그렇습니다. 새로운 주제가 아닌데, 익숙한 장면인데, 어쩜 이렇게 잘 살려 표현하시는지요. ‘아직 할머니는 부엌에 계신다.’ 박효진 선생님의 시선 때문인가요, 아니면 재능? 흐뭇한 미소와 붉어진 눈시울로 읽었습니다. 정진호
사랑받는 손주. 전성훈. 신아름
“아직 할머니는 부엌에 계신다.” 할머니 댁 찾아온 손주를 대하는 할머니를 이보다 명쾌하게 설명하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손자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대문 앞에 서 계시는 할머니 모습, 할머니 댁 찾아온 손주를 보내는 할머니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하기 어려울 겁니다. 월평
전성훈, 가족 23-1, 전성훈아름이아빠
전성훈, 가족 23-2, 동생입니다
전성훈, 가족 23-3, 할머니한테 전화할까요?
전성훈, 가족 23-4, 우리 훈이 잘 부탁합니다
전성훈, 가족 23-5, 어떻게 집으로 돌아올까요?
전성훈, 가족 23-6, 제가 데려다 줄게요
전성훈, 가족 23-7, 나야 좋지
전성훈, 가족 23-8, 잘 부탁합니다
전성훈, 가족 23-9, 둘째 조카 소식
전성훈, 가족 23-10, 축하해
전성훈, 가족 23-11, 할머니랑 고기 먹으러 가요
전성훈, 가족 23-12, 또 오이래이
전성훈, 가족 23-13, 사진
전성훈, 가족 23-14, 할머니 뵈러 갈까요?
전성훈, 가족 23-15, 할머니 보러 와
전성훈, 가족 23-16, 아름이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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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훈, 가족 23-19, 놀러 오면 되지
전성훈, 가족 23-20, 우산보다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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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훈, 가족 23-22, 와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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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훈, 가족 23-24, 6월 19일 저녁 9시
전성훈, 가족 23-25, 사 오면 먹지
전성훈, 가족 23-26, 다행이네
전성훈, 가족 23-27, 오빠, 안녕!
전성훈, 가족 23-28, 잘 먹을게 오빠
전성훈, 가족 23-29, 할머니 걱정
전성훈, 가족 23-30, 성훈이 좋아라 하겠네요
전성훈, 가족 23-31, 그때 보자
첫댓글 할머니 살아계실때 더 자주 찾아뵈어요.
"공방에서 이대수 씨는 사람을 생각한다." 홍채영 선생님 기록에서 봤던 구절인데, 그때의 울림을 박효진 선생님의 표현에서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