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덜미에 머리카락이 들러붙던 끈적한 더위는 온데간데 없이, 책장과 종이들을 날리는 바람이 온통 가득하다. 낮게 깔린 하늘, 음험한 바람, 왠지 스무살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다. 하루종일, 잊고 있었던 도어스나 레드 제플린의 음악이 못견디게 듣고 싶다.
중 1때 스콜피언스와 할로윈, 비틀즈를 들으면서 시작했으니, 스물 다섯해를 사는 동안 날 가장 오래 사로잡았던 것들, 비오는 밤에 듣던 도어스의 "폭풍속의 항해자" -라고 번역해서 쓰니 느낌이 왠지 아삼삼하군- 그레이트풀 데드와 너바나, 아름다운 스웨이드..
검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창백한 얼굴에 마릴린 맨슨처럼 화장을 짙게 하고, 깡마른 몸에 찢어진 청바지와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은으로 된 커다란 목걸이랑 반지를 잔뜩 하고 다니고 싶었던 20대 초반이었다. Born to be wild 같은 노래제목들이 얼마나 근사하게 느껴졌었는지 모른다. 가장 좋아했던 배우는 물론 리버 피닉스.
물론 안타깝게도, 내 얼굴은 창백함과는 거리가 멀뿐 아니라, 깡마른 몸은 더더욱 상당히 멀고 험한 길이었으니 할 수 있는 건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시디나 사모으는 것 뿐이었지만..
지지난 달에 인터넷으로 너바나의 언플러그드 앨범과 루리드를 주문한 것을 마지막으로 난 새로 산 시디 두장을 거의 듣지도 않았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폭풍처럼 내 생활을 온통 뒤흔들어 버린 살사라니, 앞일은 정말이지 결단코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하드락을 틀어주는 곳에 가서 맥주를 마시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