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카드채무 판결 이중잣대
경찰서 조사계에 가장 많은 사건이 사기다. 사기꾼이 돈을 뜯어가 안 갚는다고 고소한 것이 대부분이다.
경찰관들은 난감하다고 말한다. 그저 빌려준 돈을 빨리 받아낼 심산으로 공권 력을 '해결사'로 끌어들일 때가 대부분이라는 얘기다.
경찰로선 사건이 접수된 이상 피고소인을 불러야 한다. 이쯤 되면 겁을 먹은 채무자들은 '달러빚'을 얻어서라도 갚는다.
하지만 정작 사기죄로 처벌받을 만한 사람은 매우 적다고 경찰들은 귀띔한다. 카드 채무자들은 카드회사가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대금납부 판결을 받는다. 끝 이 아니다. (혹시 재산을 숨긴 것인지는 몰라도)압류당할 재산조차 없을 때가 많다.
이제 카드사들은 검찰에 고소ㆍ고발한다. 검찰은 채무자들을 사기죄로 기소한다. 검찰의 기소는 채무자를 강하게 압박하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
검찰 조사를 받고 법정에까지 서면 누구라도 위축되게 마련이다. 훔쳐서라도 카드빚을 갚고 싶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경찰서 풍경과 빼닮았다.
문제는 뒤늦게 돈을 갚더라도 처벌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기죄는 간통처 럼 당사자가 취하한다고 국가가 봐주고 말고 하는 친고죄가 아니다. 살인이나 폭행처럼 국가가 나서서 엄히 다루는 중대한 범죄다.
하지만 법원 판결은 오락가락한다. 평균급여 부채 연체기록이 모두 비슷한 두 사람이 각각 유죄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심지어 한 시간을 두고 1심과 2심, 3 심이 각각 다르게 판결되는 사례도 허다하다.
카드연체의 1차적 책임은 사용자 본인에게 있다. 하지만 카드사 책임도 적지 않다.
여신전문금융업법에는 "신용카드사는 자신이 정한 기준에 따라 이용대금을 결 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이 확인된 자에게만 신용카드를 발급하라"고 정하고 있다.
법원도 만날 법리 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이 납득할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
헌법은 "어느 누구도 계약상 의무이행 불능만을 이유로 구금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다.
[매일경제 2005-08-24] 사회부 = 이범준 기자 weiv@mk.co.kr
[민주노동당] <논평> 신용카드 사기죄 대법원 판결 유감
비정상 과다대출 상태 고려 안 해...800만 다중채무자 모두 사기범 만들 우려
361만 신용불량자와 400만 다중채무자가 존재하는 신용대란이 온사회를 경기불황의 늪으로 빠트리고 있는 상황에서 갚을 능력이 없는 데도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대금을 연체한 것은 사기죄에 해당돼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용담 대법관)는 22일 신용카드 대금 5350만여 원을 갚지 못해 사기 혐의로 기소된 장 모씨(33, 여)에 대한 상고심에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이 판결은 대법원 3부가 지난해 11월 변제능력이 없음에도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등을 통해 1500만여 원을 빌린 뒤 갚지 않은 이 모씨에게 사기죄 무죄를 선고한 판례를 뒤엎는 것으로 신용불량등록 원인 중 신용카드대금 연체가 70%라는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원래 현금서비스 한도가 70만원 정도에 지나지 않던 신용카드가 99년 카드사용활성화 정책으로 한도 자체가 사라져 장 모씨의 경우 5350만원이나 되는 한도를 가질 수 있을 정도로 '묻지마' 과다대출을 일삼았던 카드사의 귀책사유와 정부의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결인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신용불량의 늪을 지나 다시금 회생의 길을 걷고 있는 다중채무자들의 회생의지를 송두리째 빼앗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사법부에 전달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 이선근
[민주노동당 논평 2005-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