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보름만에 두번째 의료대란이 현실화된 11일 오전 병원에서는 애타게
의사를 부르는 환자들의 신음소리로 가득했다. 환자를 보살피고 생명을 구
해내는 병원이 아니라 환자를 길거리로 내쫓는 데 대한 분노의 목소리도 높
아지고 있다.
전공의·전임의에 이어 대학교수들이 파업에 동참하고 동네 병·의원이 또
다시 대거 집단폐업에 돌입한 이날 오전 각 병원 응급실은 밀려드는 환자로
북새통을 이뤘다. 대부분 대형·종합병원의 응급실은 일찌감치 병상이 모
두 찼으며 환자들은 복도와 보호자 대기실에 누워 애타게 의사를 불렀다.
특히 중증 환자들의 수술연기 사태가 속출,의료사고에 대한 위험도 높아지
면서 생사의 갈림길이 된 병원은 긴장감마저 감돌기 시작했다.
내과·신경외과·산부인과 등 5개 과의 외래진료가 중단된 서울대병원에는
응급실로 환자가 몰려들고 있으며 58개 병상이 일찌감치 마감됐다.병원측
은 초진 진료실과 응급실 입구에 임시병상을 마련했으며 대기실에도 6명의
환자가 누워 진료를 받았다.일반병실에는 전체 1500여개의 병상중 700여개
가 비어있는 상태며 하루평균 80여건이었던 수술은 10일 9건으로 줄어든 데
이어 11일에는 4건만 예약돼 있는 상태다.
대부분 예약환자는 진료가 연기됐으며 미처 예약연기를 통보받지 못한 20
여명의 환자도 이날 오전 병원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렸다.
시립 보라매병원 응급실도 사정은 마찬가지.30개 병상이 모자라 복도에 10
여개 임시 병상을 설치했지만 환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당뇨를 앓고 있는
김모(63)씨는 “14일로 일단 예약을 받았는데 그때도 치료를 받을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며 “문을 연 동네의원을 찾아봐야겠다”고 말했다.응급실에
누워 있던 하모(여.35)씨는 “갑잡스러운 가슴 통증 때문에 응급실로 왔는
데 이렇게 복도에 누워있다”며 “빨리 정상을 되찾아 정상 진료를 받고 싶
다”고 말했다.
서울 중앙병원은 이날 오전 8시30분 대강당에서 의대교수 263명이 참가한
가운데 회의를 갖고 오는 14일부터 외래환자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이날
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도 “14일부터는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탄식했다. 지난달 26일 장수술을 받았
다는 신모(여.83·서울 서초구 서초동)씨는 “다행히 수술경과가 좋아지고
있는데 의사들이 또 폐업을 한다고 해서 걱정”이라며 “누가 옳은지는 모
르겠지만 일단 죽어가는 사람은 살려놓고 봐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삼성의료원 교수들도 이날 오전 긴급회의를 갖고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결정에 따라 이날부터 긴급 투약이 필요한 환자를 제외하고는 진료를 거부
키로 결정했다.응급실을 찾은 한모(여.43·서울 송파구 송파동)씨는 “어머
니(70)가 간암을 앓고 있지만 입원은커녕 침대조차 구하지 못한 채 차가운
응급실 바닥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며 “의사들도 부모 있는 사람들일 텐
테 이래도 되는 거냐”고 반문했다.
또 한씨는 “내가 어머니께 큰 불효를 저지르는 것같아 마음이 너무 답답
해 어제는 인터넷에 이런 실상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환자들은 한방병원과 보건소,국립병원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했
다.서울 마포구 합정동 혜당한방병원에는 75개 병상이 모두 찬 상태지만 “
종합병원에서 퇴원하면 병실이 있느냐”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서울 마포
구 보건소에는 평소보다 환자수가 크게 늘었다.손병옥(74)씨는 “병원이 파
업한다고 해서 보건소에 왔다”며 “동네에 아는 사람들도 병원보다 더 친
절하고 좋다고 얘기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