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이후, 그는 유럽의 화가들을 이스탄불로 초빙해 그림을 그리고, 오스만의 화가들과 교류하게 한다. 그의 유명한 초상화 두 점은 이 시기에 그려진것이다.

메흐메트 2세의 초상. 벨리니에 의해 제작. 1480년

메흐메트 2세의 초상. 시난 베이에 의해 제작.
둘은 같은 사람을 그렸으나, 눈에 보이는 대로 과학적으로 그린 이탈리아 화가 벨리니의 그림과, 술탄의 인상과 성격을 보이려했던 투르크 화가 시난 베이의 그림처럼 서로 다른 그림이 나왔다. 이처럼 둘은 같은 대상을 서로 다르게 보았기에 이런 차이가 나게 된 것이다.
서로 다르게 보았으나 상대의 시각에는 항상 흥미가 가게 마련이다. 메흐메트 2세가 데려온 유럽 화가들은 오스만의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터키 왕자. 벨리니? 또는 벨리니를 따르는 터키 화가
얼굴의 묘사와 턱수염의 표현이 매우 서구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풍기는 이슬람적인 모습은 이 그림이 벨리니에 의해 그려졌기보다는 벨리니의 영향을 받은 그림이라고 보게 만든다.
오스만 세밀화에서 이야기책의 삽화는 그리 오래 길지 않다. 냉혹한 사람 셀림 1세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시까지 썼다지만, 곧 오스만의 삽화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삽화보다는 술탄의 위엄과 오스만제국의 승리를 다룬 삽화가 유행하게 된다.

대제독 하이레딘을 영접하는 술레이만. 알리 아미르 벡 시르와니. 1558년 제작. 술레이만나마
이런 삽화들은 오스만 제국이 최절정에 달한 술레이만 대제 시대를 전후로 해서 그려졌으며, 당시 제국의 위세를 널리 알리기 위해 술탄과 정부의 지원 속에서 그려졌다. 오스만 정부는 100여명의 화가에게 월급을 지급했다고 한다. 페르시아 삽화에서 보이는 죽는 놈이나 죽이는 놈이나 다 똑같은 표정을 짓는 정형화 대신 사실성이 살아있고, 구도 배치에서는 '오스만의 위용을 살린다!'가 제1목표로 두었음이 보일 정도이다. 그러나 서구 화풍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무굴 제국의 그림에는 사실성 면에서 못 미치는 부분이 있다.
술레이만나마에는 또한 지금까지는 없었던 독특한 그림들이 보이는데, 마트라키 나쉬의 도시 그림들이다.

이스탄불. 마트라키 나쉬 그림. 1543년 제작. 술레이만나마
이슬람 미술에 보이는 이상적인 측면을 현실적인 그림에 연결시켰다. 귀찮고 정신없게 하는 인간들은 모조리 지워버리고 집과 탑, 평화로운 바다와 배만 그려져 있는 이 그림은 필시 '오스만 제국의 수도는 이런 위용을 지니고 있다!' 란 의도로 그려졌다. 이 그림은 이스탄불 시내의 정확한 묘사보다는 마치 동화속 삽화같은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작가인 마트라키 나쉬가 꿈꾸는 몽상가 스타일이든가, 아니면 지독한 염세주의자거나, 둘 중 하나일것 같다.
또한 삽화를 떠나서 술탄의 초상화를 별도로 그리기 시작한 때도 이 때이다.

술레이만 대제. 나카스 오스만. 1579년 제작

오스만 1세. 나카스 오스만 제작

셀림 2세. 니가리 제작
셀림 2세의 초상화는 그가 왜 '주정뱅이'로 불리웠는지를 알게 해준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가 목이 베이지 않았을지 걱정될 정도로 그의 취한 얼굴, 비틀거리는 몸동작을 있는대로 묘사했다.
후기 오스만 미술에서 중요한 책 가운데 수르나메(sur name)라는 책이 있다. 1582년 술탄 무라드 3세의 아들 메흐메트의 할례를 기념하기 위해 52주야간의 대축제가 열렸는데, 수르나메는 그 광경을 묘사한 책이다. 1582년에 그려진 판본이 있고, 1720년에 그려진 판본이 있다.

거지들의 행렬. 1582년 제작. 수르나메
당시 이스탄불에는 별별 길드가 다 있었다. 소매치기, 도둑, 강도 길드까지. 거지라고 집단으로 모이지 말란 법이 있더냐. 자비로우신 술탄의 축제 때, 거지들이 무리지어 행진함으로써 술탄의 자비를 바라고 있다. 장님, 앉은뱅이, 그냥 거지 등등이 행진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는 잘렸지만 위에서는 술탄이 내려다보고 있다.

골든 홀에서의 축제. 레비니(Levni) 그림. 1720년 제작. 수르나메
이전의 오스만 세밀화들의 경우 배경과 사람이 거의 비슷한 비율을 이루고 있거나, 배경에 사람이 묻히는 경우(물론 사람이 떼로 튀어나와서 배경을 가려버리는 경우는 제외하고)가 대부분이었다면, 레비니 그림의 경우 배경은 말 그대로 배경으로 적당히 뒤로 빼버리고 공연자를 중심으로 두고 있다. 이전의 그림들이 이리저리 배경과 주위기물에 시선이 분산이 되었다면 레비니는 시선을 하나로 묶고 있다.

춤추는 무희. 레비니 그림

군악대 행렬. 레비니 그림
레비니 그림은 움직임이 살아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라 할 것이다. 지속적인 서구의 영향으로 무희의 표정이나 움직임, 고수들의 손놀림은 이전보다 큰 움직임을 보이게 하면서도 이슬람 미술의 특징인 움직이지 않는 모습도 여전히 살아있다.
서예의 경우 술레이만 대제 때 절정을 이루었다.(오스만은 항상 그렇다!) 술레이만의 할아버지인 바예지드 2세, 아버지인 셀림 1세의 영향으로 그 자신도 시를 쓰거나 서예를 즐겼다.

세이흐 함둘라가 쓴 꾸란
세이흐 함둘라는 바예지드 2세가 왕자시절 총독으로 보내던 때 그에게 서예를 가르쳤고, 그가 술탄 위에 오르자 당연히 막대한 주문과 함께 막대한 부가 따라오게 되었다. 그러나 오스만 서예가 중 가장 별난 친구는 아흐메드 카라히사리라는 서예가다.

아흐메드 카라히사리(Ahmet Karahisari) 씀.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흐메드 카라히사리 씀. 위의 네모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를 네 번, 가운데는 하나님을 향한 기원문, 아래는 꾸란 112장 전문
이런 네모칸으로 글씨를 쓰는 것을 샤트란지(shatranji)라고 한다고 한다. 사람이 알아보라고 쓰는 글씨는 아니다. 이런 것을 쓰는 것도 쓰는 사람이지만 해석해내는 사람은 또 뭐냐.
그는 사슬서법의 달인이었다. 원래 붙여쓰는 아랍어를 더더욱 압축을 시키고 붙여서 막나가게 만드는 것이다. 성격이 괴팍한 사람이나 쓸법한 서체지만 재능은 인정받아 술레이마니예 복합단지의 내부 장식을 맡게 되었다.
오스만의 또다른 독창적인(또는 정신나간) 서체라면 투그라(tughra)가 있다.

오스만의 화려한 황제, 술레이만의 투그라
투그라란 서명이다. 술탄의 이름으로 발행되는 공문서의 맨 윗쪽에 이것이 써짐(그려짐이라고 해야하나?)으로써 이 문서가 공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의미는 다음과 같다.
"항상 승리하시는 셀림 칸의 아들, 술레이만"
왼쪽 아래에 갈겨쓴 자그마한 글씨들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높고 고귀하시며 온 세계를 밝히시는 숭배받기에 합당한 카간의 우두머리(신께서 그를 도와 성공하게 하시며 그를 영원히 보호하시길)인 그분의 명령이다."
요란하다, 요란해.

시야흐 깔람(Siyah Qalam) 선집. 춤추는 귀신들

시야흐 깔람 선집. 유목민의 캠프
시야흐 깔람(검은 펜) 선집이라는 게 있다. 이건 꽤나 웃기는 그림이다. 페르시아, 아랍, 인도, 투르크, 중국의 그림 양식 어디와도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이 그림들은 화가가 누구인지, 언제 그렸는지, 왜 그렸는지 등등 모든 점이 명확하지 않은 그림이다.
뭐, 명확하지 않다고 해도 큰일날 건 없다. 때로 우리는 어떤 하나의 개체, 문명, 사람들에 대해 너무나 명확한 생각을 가진 나머지, 재미있고 신기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3~15세기를 살았던 수많은 화가들 중, 선조들의 답답한 양식에서 벗어나 이런 독특한 세상을 펼쳐낸 이름없는 화가(또는 알콜중독자)처럼, 우리도 때로는 다른 면도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이 글을 쓰는데 보고 베낀 글과 책들.
로버트 어원 지음/황의갑 옮김, 『이슬람 미술』, 예경
조너선 블룸·세일라 블룸 공저/강주헌 옮김, 『이슬람 미술』, 한길아트
버나드 루이스 편저/김호동 옮김, 『이슬람 1400년』, 까치
타임라이프북스 지음/고형지 옮김, 『예언자의 땅: 이슬람 AD570~1405』, 타임라이프 세계사, 가람기획
테레스 비타르 지음/변지현 옮김, 『술레이만: 오스만의 화려한 황제』,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시공사
발레리 베린스탱 지음/변지현 옮김, 『무굴제국: 인도 이슬람 왕조』,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시공사
전완경, 「이슬람 예술의 이해」, 한국이슬람학회 논총
오정은, 「인도 무갈 시대 이슬람 성자(聖者) 세밀화(細密畵)의 기원과 발달」
문정아, 「이슬람 사원 양식의 특징과 시대적 변화에 관한 연구」
정미숙, 「이슬람 시대의 터어키 세밀화 연구」
http://www.islamicarchitecture.org/
http://www.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