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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놀과 정수 제 71차 정기 답사(안) : 4/19(토) (전북 완주-정갈한 절집 순례)
(사진: 완주 화암사)
1. 답사일시 : 2008년 4월19일 (토) 오전 7시 00분 출발 2. 출발장소: 압구정역 공영주차장 (7시 정각 출발: 지하철 3호선 6번 출구) 3. 여행장소: 송광사-점심-위봉산성-위봉사-위봉폭포- 대아수목원-화암사-이치재 4. 여행일정
1. 답사인원 버스 : 45명 / 개별차량 20명 (총 65명) 2. 회 비 가.버스: 회원 성인 37,000원/ 초중고 32,000원/비회원 40,000원 (점심, 전세버스비, 자료집비, 사전답사비, 주차비, 여행자보험, 식대, 주류, 음료, 간식) 나. 개별차량: 성인 20,000원/ 초중고 18,000원 3. 입금은행 : 신한은행 (366-02-366884) 이종원 국민은행(058101-04-151654)이종원
4. 답사 신청방법 가. 아래의 답사신청양식에
의해 '71차 완주답사'게시판에 신청한다. (답사신청만 하고 입금하지 않는 분은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닉네임/이름/e-메일주소/ 성별/주민등록번호(멜요망)/주소/연락처(핸드폰)/ 개별차량 출발지(예 서울 OR 광주)/버스/자가차량/차량제공여부/답사에 임하는 글/답사 한번이라도 참가했던 장소 (예 영월답사) - 실명과 주민번호를 게시판에 올리지 말고 메일로 보내주세요. (여행자보험 가입 위해 반드시 필요) -이번에는 아이들을 받겠습니다. 대신 부모님은 아이들이 답사에 방해되지 않도록 신경 써주셔야 합니다. - 1인당 동행인 1명까지만 신청할 수 있습니다. 3명 이상은 받지 않습니다. (다양한 모놀가족의 참가를 위해) - 한 번이라도 답사 참가하신
분은 신청양식을 생략해도 좋습니다. 대신 꼭 참가했던
답사지를 게시판에 올려주세요. 인원이 많다보니 찾기 무척 힘드네요.
- 이메일 주소
ljhkhs44@hanmail.net 다. 우선 '71차 완주답사' 게시판에 답사 신청을 먼저 하고, 그리고나서 답사명단이 올라오면 입금하십시요. 제발 답사 신청 전에 먼저 입금 하지 마십시요. 답사 신청자로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모놀답사가 워낙 빨리 마감되어 혼선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라. 입금은 신청자 실명으로 해야 합니다. 입금자가 상이할 경우 반드시 게시판에 글을 올려 주셔야 합니다. 계좌번호 잘 확인해 주세요. 국민은행 계좌를 넣었습니다. 신한은행 (366-02-366884) 이종원 국민은행(058101-04-151654)이종원
마. 입금 후 답사신청게시판에 "입금완료"라는 머리말을 표시하여 게시판에 올려야 합니다. 10시 개별차량 집결지는 완주 화암사입니다. 약도는 추후에 올리겠습니다. 바. 답사 신청일은 4월 9일(수) 오전 10시부터 선착순으로 받겠습니다. 10시 이전에는 글쓰기 권한을 드리지 않습니다.(모놀답사가 하도 빨리 마감이 되어
항의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똑같은 기회를 골고루 드리고자 이 같은 방식을 취했으니 양해바랍니다. ) 사. 회원과 비회원의 차등을 두었습니다. 저렴하게 가실려면 회원에 가입하십시요. 5. 환불 4월 13일 까지 취소자:
전액 환불 -취소벌금은 퀴즈 선물대금으로
사용하거나, 기타 행사비용으로 충당합니다.
6. 이번 답사여행의 특징 -완주 송광사 벚꽃이 유명한데 12일쯤 피크를 이룹니다. 벚꽃은 화려한데 그 인파에 녹초가 되어 버린답니다. 아마 19일에는 꽃이 다 떨어져 낙화를 보게 될겁니다. 낙화를 즐길 자가 진정한 꽃여행자랍니다. 대신 대아수목원에서는 화려한 야생화를 감상하게 될겁니다. 호수 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는 코스가 좋지요. 우리나라 최대의 금낭화 군락지가 있는 곳이지요. -전북 내륙지방의 조용한 절집을 순례하게 될겁니다. 보물이 가득 보유하고 있는 송광사는 대웅전, 일주문,십자각, 금강문등 볼거리가 가득합니다. 국내 최대의 소조삼불좌상이 특이한데 국가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땀과 눈물이 흘린다고 합니다. 티없이 깨끗한 비구니사찰인 위봉사도 좋습니다. -이번 답사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뭐니뭐해도 완주 화암사랍니다. 화려함 없이 정갈한 분위기가 일품이구요. 우리나라 전무후무한 하앙식건물을 볼 수 있답니다. 특히 절집까지 오르는 20분 오솔길에 야생화가 가득피어 있답니다. 걷기많 해도 세파의 때까 씻겨나갑니다. -완주에는 워낙 맛집이 많아 어디를 소개해야 할지 난감할 따름입니다. 화심순두부, 화산 붕어찜...그외 여러곳이 있는데 전주에 사는 꽃님이님과 상의해서 좋은 곳을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알찬 답사 준비하겠습니다. 문의: 모놀대장 이종원 (016-219-6001)
송광사 벚꽃.
송광사 일주문. 하늘을 떠받치고 있어요.
송광사 범종루. 우리나라 건물중 보기 드물게 십자형 건물입니다. 빼곡한 공포가 볼만하지요.
나라가 위급할 때 땀을 흘린다는 국내 최대의 소조삼존불상 (보물 제1274호)
귀여운 금강역사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시기에 세운 산성인 위봉산성
정갈한 비구니 절집, 위봉산성
위봉사 대웅전
위봉폭포. 60m 절벽에서 숮ㄱ으로 떠러지는 위봉폭포
산책하기 좋은 대아수목원
대아수목원 수생식물원
4월 5월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금낭화랍니다.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답니다. 긴 꽃줄기에 한쪽으로 치우쳐 꽃이 여러개 달려 있답니다. 옛날 여인들의 치마 속에 달고 다니던 주머니같가도 하여 며느리 주머니라고 합니다.
이치재에서 바라본 대둔산
우리나라 최고의 두부집-화심순두부
대장이 무척이나 좋아하는 절집-화암사 여행에 관한 글을 쓰니까 자주 이런 질문을 받는다. "어디가 제일 좋아요?, 어느 절이 제일 맘에 들어요?' 우리나라 절집이야 거의다 좋은 풍경을 자랑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고 더구나 고명한 선승의 주석처인지라 어느 한 곳을 집어 추천하기엔 무척 곤욕스럽다. 그러나 얼마전 완주 화암사를 다녀오고 생각이 바뀌었다. 또다시 그런 질문을 받으면 감히 완주 화암사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화암사는 큰 절집도 아니다. 화려한 문화재도 있는 것도 아니다. 절집을 거니는 것만으로 순수한 예술영화 한편을 본 것같은 감동을 받는다.. "정령 마음의 때를 씻고 싶은 사람은 화암사를 가보라. "
논산에서 대둔산쪽으로 가다보면 양촌이라는 시골마을이 나온다. 이 곳에서 작은 고개 하나 넘으면 바로 전라도 땅 운주가 나온다. 고개 하나 넘었지만 행정구역이 이렇게 다르다. 하긴 논산땅이나 완주땅 모두 백제땅이 아닌가? 그걸 말해주듯 운주장터에는 양촌에서 시장 보러가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 선량한 농민들에게는 행정구역의 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할머니는 산에서 캐온 풋풋한 봄나물을 장터에 가져왔다. 팔리든 안팔리든 상관이 없다. 지인을 만나 수다를 떠는 것만으로 만족스럽다. 강아지를 가져온 아저씨, 겨우내 말린 곶감을 가져온 아줌마도 보인다. 벌써 막걸리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한 할아버지의 시뻘건 얼굴도 정겹게 보인다. 어쩌면 이 모습들은 칠판의 분필글씨일 수도 있다. 바람이 불고 시간이 지나가면 지워질 수밖에 없는 글씨이기 때문이다. 봄볕만큼이나 따사로운 그들의 모습 하나하나에 감사를 드린다.
운주에서 17번국도를 타고 전주쪽으로 달리다보면 '경천'이란 마을이 나온다. 초입에서 화암사까지는 좁은 길이 이어져 있어 버스는 가기엔 쉽지가 않을 것이다. 산속 깊은 속내로 들어간다. 문명과 멀어질수록 산은 맑아지는 가보다. 사람의 손을 덜 타서 그런지 지나치는 풍경마다 생동감이 넘친다. 봄내음이 물씬 묻어나는 파밭을 지나쳤다. 초록이 만들어낸 눈맛에 감탄하면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10여분쯤을 차로 올라가면 막다른 길이 나온다. 화암사 입구다. 더 이상 차로 올라갈 수 없다. 이곳에 오면 누구나 20분의 발품을 팔아야한다. 보통 관람객은 걸어올라가게 하고 절관계자들만 차로 올라가는 샛길이 있는데 화암사는 그것마져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솔길이야말로 누구에게나 평등한 길이다. 조금 걷다보면 긴 오솔길이왜 그렇게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땅의 촉감을 느끼며 조금 걷다 보면 나무 터널이 나오고 냇가를 만나게 된다. 졸졸 물소리가 봄의 대지를 깨우고 있다. 큰 입석은 일주문을 대신 하고 있다. 그 앞에 시멘트 전봇대 2개를 뉘여 다리를 만들어 놓았지만 전혀 어색하게 보이지 않는다. 문명의 인공물도 자연에 스스로 동화된 것이다.
작은 협곡이 나온다. 아기자기한 바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수가 때묻는 때를 씻어낸다. 세례자 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푼다면 바로 저 맑은 물을 사용했을거야..절집을 향하면서 불교와 천주교가 왔다갔다한다. 아무렴 어떤가 ? 좋으면 그만이지. 왠지 누군가 만나면 와락 안아주고 싶었다. 아쉽게도 절에서 내려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산은 철저히 혼자 살라고 나를 내 버려두나보다. 오르다 보니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울창한 나무가 있었고, 개울의 수다소리도 들었고 고석의 한숨소리도 들었다. 자연이 나의 도반인 셈이다. 그것처럼 멋진 친구가 어디 있을까?
ㅅ 좁은 협곡에서 갑자기 이렇게 너른 협곡이 나온다. 시원스런 폭포가 나타났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나태함도 폭포속에 던저 버렸다. 지금이야 편안한 철계단이 있었지만 예전엔 벼랑에 몸을 붙이고 절벽길로 오르내렸을 것이다.
뒤를 바라보는 여유를 가져본다. 몇 개의 산이 겹겹이 쌓여 잇다. "참 깊은 곳이구먼.... "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이 약수다. 물을 가두어두고 찔끔찔금 내보내는 것이 아니다. 폭포수처럼 시원스레 떨어진다.발품을 팔며서 땀을 쏟았으니 물맛이 좋지 않을 수 있을까?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나서야 산세를 둘러본다. 佛明山(불명산) 자락이 너울 너울 춤을 추는 듯하다. '부처님이 밝게 빛나고 있는 산'...참 좋다
화암사에는 일주문도 없다. 오로지 우화루 옆의 대문이 절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다. 대체로 누각아래를 통해 주 건물로 들어가는데 이곳을 성벽처럼 돌로 단단히 막아놓았다. 위층도 널벽으로 덮혀 있어 일체의 빈틍도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나무로 굳게 만든 창문마져 작아보인다. 완전한 성채처럼 보인다. 절을 보여줄려고 하는 것인지...숨겨둘려고 하는지...
막돌을 쌓여진 계단을 오르면 문칸채가 나온다. 마치 대갓집의 대문의 모습과 다를바 없다. 문턱은 아래쪽으로 휘어져 있고 문미는 위쪽으로 휘여져 있다. 마치 거울안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하긴 문화유산을 찾는 자체가 과거로의 여행이 아닌가? 나를 문에서 맞이해주는 친구가 목만 빼곰히 내밀고 있다.
대문에 작은 대문 시자주의 이름이 적혀있다. 인두로 지져 쓴 한글 이름은 삐뚤삐뚤하다. 큰 동종에 새겨진 번 듯한 이름보다 훨씬 정감이 어려 있다. 가난한 신도들은 대문을 만들고자 푼돈을 모았을 것이다. 이 대문이 세워졌을 때 얼마나 보람을 느꼈을까?
문턱과 문미가 둥굴게 보인다. 3칸건물인데 오른쪽은 행랑칸처럼 방으로 쓰이고 있다.
문턱을 넘으면 공간이 잇는 오른쪽으로 동선이 형성된다. 폐쇄적인 우화루만큼이나 지붕도 여유가 없다. 적묵당의 지붕이 우화루의 풍판을 뚫고 있다.
화암사의 마당은 아주 좁다. 우화루의 마루바닥과 안마당의 지면은 거의 같은 높이였기에 마당은 그다지 좁아 보이지 않는다. 즉 마루는 마당의 연장선상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것은 적묵당이나 불명당에도 적용된다. 극락전의 기단이 매우 낮아 우화루의 마루면과 일치하고 있다. 화암사의 전각들간 수직적 위계는 존재하지 않고, 모든 공간이 수평적으로 만나고 있다. 백제의 평지가람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바깥에서 본 폐쇄적인 분위기와는 영 딴판이다. 우화루는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 1611년에 중창을 했으니 거의 400여년이 넘은 건물이다.(보물 662호) 붕괴의 위험 때문에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줄이 쳐 있어 가슴이 아프다. 화암사는 임란의 참화를 뼈져리게 겪었나보다. 그렇기에 자기방어의 모습이 건축에 배어 있었다.
우화루엔 세월의 때가 잔뜩 묻어 있는 목어가 보인다. 장식도 별로 없는데다 색깔마져 바랬지만 이웃집 아저씨처럼 정겹게 느껴진다. 퇴역군인이 지난날을 회상하며 서 있는 듯한 모습이다.
신기한 종 극락전안에는 동종이 모셔져 있다. 높이는 107cm이고 용모양의 고리를 가지고 있고 연꽃문양과 꽃잎띠가 새겨져 있다. 평범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이 동종은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다.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광해군때 다시 만든 것이다. 전쟁의 참화를 겪어서인지 종도 수많은 이적을 많이 보여주었다. 밤이면 종이 저절로 울려 스님과 신도를 깨웠다고 한다.일제 강점기때는 일본 헌병이 무기로 쓸 쇠붙이를 얻기 위해 몰려오자 종 스스로 울려 스님들에게 미리 알린 것이다. 다급한 스님은 종을 땅에 묻었다. 그 후 해방이 된 후에야 다시 꺼내 오늘날까지 온 것이다.
극락전 (보물663호) 극락전의 기단은 퍽 자연스럽다. 잡석을 3개층으로 쌓아놓았다.그 위에 덤범주초를 놓고 민홀림기등을 세웠으며, 다포양식의 맞배지붕형식이다. 소박한 외형만큼이나 내부도 단아하다. 1714년에 단청을 했다고하니 지금 보고 있는 색깔은 300년전의 색깔인 것이다. 극락전 좌측에 적묵당이 자리답고 있고 우측에 불명암 그 뒤에 철영재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하게도 명부전은 북향을 하고 있다.
극락전-우리나라 유일한 하앙구조 1976년 우리 건축사에 길이 남을 발견을 하나 했다. 국내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하앙을 가진 건물이 화암사에서 발견된 것이다. 중국에서 일본으로 직수입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본은 큰 충격에 빠지게 된 것이다. 하앙(下昻)이라는 부재는 기둥위에 배열된 포작과 서까레 사이에 끼워진 막대기 모양의 긴 부재를 지칭한다. 이 부재위에 도리를 걸고 서까래를 얹으면 그만큼 처마를 길 게 뺄 수 있는 것이다. 하앙구조는 중국과 일본의 건물에 흔희 쓰이는 형식이지만 이전에는 발견되지 않았다. 단지 백제 금동탑모형에서 확인되었을 뿐이다. 하앙구조는 신라보다 백제에서 일반화 되었다고 한다. 백제장인들이 만들어진 일본 호류우지 금당과 5층탑이 유력한 물중이 될뿐아니라. 하앙으로 인해 만들어지니는 깊은 처마는 강수량 많은 평야지대인 백제지방에 적합한 평지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면 유독 이 건물만 1000년 넘게 백제계의 구조법을 지켜온 이유가 무엇일까? 이 건물은 잦은 중창에도 앞시대의 형식을 그대로 따랐고, 임진란 이후 중건때도 타고 남은 부분을 근거로 삼아 앞 시대의 구조를 재현시켰던 것으로 주장되고 있다. (김봉렬-시대를 닮는 그릇 171p)
앞면은 연꽃모양으로 장식되었고, 그 위의 하앙은 용머리 모양으로 투각하여 장식하였다.
앞면의 첨자는 연꽃문양으로 다듬었다.
뒷면의 공포는 직선적으로 자른 첨자를 사용하고 있으며 하앙은 펜촉처럼 뾰족하게 다듬어 놓았다. 임진왜란 이전의 하앙구조는 바로 이런 모습이라고 한다.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강아지가 낮잠을 자고 있다. 세상
모르고 잠자는 강아지가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봄날은 온다."
철영재의 측면이다. 앞쪽은 툇마루를 놓았고 뒤쪽은 벽장을 만든 모양이다. 아주 인상 깊은 모습을 하고 있다.
철영재 바로 뒷편에 작은 부도가 하나 놓여있다. 공기돌을 세워놓은 것처럼 아기자기 하다.
극락전 왼쪽에는 적묵당이 자리잡고 있다. 두 날개채를 가진 ㄷ자 평면의 승방이다.
안쪽의 생활공간이다. 집구조가 무척 짜임새가 있다. 나무절구도 보인다.
적묵당 지붕
적묵당 뒷켠 마당에는 큼직한 바위가 솟아 있으며 그 위에 장독대를 만들어 놓았다. 바로 옆에는 산신각이 놓여 있다. 그 경계를 위해 숫기와를 일렬로 늘어놓았다. 기둥 4개를 세워놓고 지붕만 얹인 산신각은 참외밭 원두막집처럼 생겼다.
화암사는 작은 절집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보여주고 있다. 절집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자연에 거슬리지 않고 잘 적응하면서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앙으로 승화된 민초들의 정성이 건물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백제는 비록 멸망했어도 핏줄로 이어진 예술혼은 어쩔 수 없나보다. 산지 가람임에도 불구하고 백제의 평지가람의 건축 방식이 곳곳에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 천년동안 이 땅을 터전으로 살아왔고, 수많은 전쟁의 참화를 견디어 온 것이다. 극락보전의 빛바랜 기둥을 어루만져 본다.손끝으로 느껴진 나무결은 세월에 짓눌린 주름만큼이나 깊이 패어져 있다. 그곳에서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온다. 분명 강아지의 숨소리는 아닐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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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벌써 송광사, 화엄사 다녀 온 것같네요. 정성과 사랑과 체력에 감사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일이 쉬는 날인지도 모르고....답사 신청을 받기로 했네요. 달력에 빨간 글씨가 새겨있지 않아서요. ...이런....전체멜을 보냈으니 어쩔 수 없네요.
아~아~,인내심 갖고,끝까지 읽었습니다,(무슨 소린지도 잘 모르면서,,,),수고 하셨습니다.
지난 가을에도 화암사에 다녀왔지요...새순나는 봄철도 이쁘고 알록달록한 가을도 깊은 감동을 주는 계곡입니다..화암사에서 주워온 은행알이 아직 남아있네요..구워먹어야지...^^*
이제나 저제나 4월 답사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쩜 너무 가고 싶었던 완주네요! 꼭 데려가 주세요 대장님~ ^^*
평소에 가기 쉬운 코스가 아니지요. 새악시처럼 예쁘고 조용한 한 사찰입니다. 대장이 이런 분위기를 참 좋아해요.강추지요. ^^ 투표날 신청받은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대구 취재 이틀 다녀오고 답사공지 간신히 만들어 놓고 달력을 보고 신청 받아야지...하다가 정했는데...글쎄 투표날인 것 이찌요. 어떻합니까..벌써 전체멜 날렸는데... 어째튼 뒤늦게라도 신청 하지 않으면 쪼금 후회할겁니다 워낙 황금코스니까..^^
사진도 좋지만 어쩌면 글도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게 쓰시는게 마치 산속에서 시원한 약수를 마시는 느낌입니다. 정말 글솜씨 좋아서 책내셔도 좋겠어요. 담백하고 ㅅ시원한 약수같은 글과사진 정말 좋아요.같이 여행길에 나서고 싶은데 한발늦는군요.
덕분에, 오늘(4월 9일) 송광사,위봉사,화암사 다녀왔습니다.봄비 단비 속에 단아한 절집 순례가 운치가 있어 더욱 좋았습니다.송광사 벚꽃은 한창이었구요, 위봉사의 벚꽃은 핀 것도 있고, 막 봉오리를 맺고 있는 나무들이 많았습니다. 화암사 가는 그 숲길은, 절로 마음이 낮아지고 비워지는 고운 길이었습니다. 그렇게 낮아지고 비워지는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 절집을 찾아가는 그 길이 참 좋았습니다.고요함 속에 마음이 맑아지는 깊은 행복감이 스며드는 여행길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벌써 답사 다녀오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