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꽃이 미친듯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더운 잠에 빠져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쳤거나 지나친 줄도 모르거나 철로의 행선지를 도무지 알 수 없거나 열차를 탄 채 제가 승객이라는 사실을 망각할 때 온몸을 뚫고 들어오는 도고 도고역 그의 혼에 이끌리듯 내려선다 한다. 내려서자마자 주춤 발을 물린다 한다. 전생의 새벽이 회색 바람에 묶여 와글와글 몰려오고 열차 떠난 자리엔 철로만 남아 수억만 년을 요지부동 엎드려 있었다는 완강한 자세로 철로만 남아 내릴 수는 있어도 탈 수는 없는 도고 도고역 회색 바람을 타고 서릿발 툭툭 털어내며 한 남자 걸어와 눈자위 붉게 빛내며 천년만년 같이 살자 말을 건넨다 한다.
그 말 하 심상해서 한 남자 소맷자락을 잡고 따라가 눌러 살고 싶어진다고 한다. 멀리 드문드문 더운 김을 뿜어내는 산야와 뒤돌아보면 긴 꼬리를 땅 속으로 뻗으며 요지부동 엎드려 있는 시간의 무덤들 약속도 없이 저 혼자 덜컹덜컹 문을 열었다 닫는다 한다.
거기 역이 있다 한다. 생의 기척에 무감해 천근만근 무거운 잠 속에서 장기투숙하고 있을 때 그 역에 내릴 수 있다 한다.
첫댓글 장항선 도고역
삶의 심원을 찾아가는
이들의 꿈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