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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현은 인터뷰 내내 마음의 빚을 토로했다. 자신에 대한 기대가 많았던 만큼 그 몫을 해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젠 부담을 털고 야구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말한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선수 이전에 인간적으로 많은 매력을 지닌 김병현이다. 그러나 김병현은 선수이기 때문에 선수로 더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병현과의 인터뷰는 스프링캠프에서 진행되었다.
스프링캠프 동안 김병현 선수가 달라졌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네요. 왜 그런 얘기가 나오는 걸까요? “이전과 크게 다른 건 없지만, 마음을 비우고 준비하는 게 조금 차이가 있을 것 같네요. 깊이 들어가 보니까 멘탈적으로 생각을 바꾸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무엇보다 캠프 동안 몸의 아픈 곳이 느껴졌어요.”그게 어떤 의미인가요?
“아픈 데 아픈 곳을 느끼지 못할 때가 더 힘들었거든요. 그래도 어떻게든 공을 던져야하니까 변칙적인 방법을 쓰기도 했어요. 본능적으로 던져야하는데 자꾸 만들어서 던지려다 보니까 좋았던 피칭의 감, 순간을 잊어버리고, 아프지 않게 던지는 방법을 연구하게 됐었죠. 그래서 이전 좋았을 때의 매커니즘이 안 나오는 것 같았고요. 지금은 아픈 부위가 느껴져서 좋아요. 그걸 피하지 않고 느끼면서 제 몸을 단련시켜 나가는 거죠. 피하고 도망가는 것보다 지금처럼 부딪히는 게 훨씬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한국 프로야구에 복귀했지만, 지난 2년 동안은 정답을 찾는 대신 고민과 번민의 시간들로 보낸 것 같아요. 제가 잘 본 건가요?
“정확히 보셨네요(웃음). 제가 느끼기엔 2년이 아니라 한 7년은 된 것 같아요. 자꾸 뭔가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좀 더 잘해보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었고요. 지금은 그런 부자연스러운 것을 버리고 야구 처음 시작할 때처럼 자연스럽게 절 맞춰가고 있습니다. 그게 맞는 것 같아요.”지난 시즌에는 김병현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는 경기들이 있었어요. 2이닝 동안 9실점을 한 적도 있었고, 시즌 중에 2군으로 내려가기도 했었죠. 염경엽 감독도 이런 김병현 선수에 대해 쓴소리를 한 적도 있었고요.
“구단이나 감독님께서 편의를 봐주신 부분이 많았어요. 다른 선수였다면 일찌감치 2군으로 내려갔을 텐데, 계속 기회를 주시면서 올라오기만을 기다려주셨죠. 그래서 전혀 섭섭하지 않았습니다. 저한테는 1, 2군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저보다 더 잘 던지는 젊은 선수들이 등판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제가 그 친구들에 비해 경쟁력이 있다면 감독님께서 알아서 올려 보내주실 거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저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거죠.”
야구에 대한 고민은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숙제인가 보네요.
“사실 훈련량은 후배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예요. 그런데 그런 노력들이 결과물로 나타나지 않으니까 자꾸 생각이 많아지는 거예요.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에 대한 고민들. ‘이렇게까지 했는데, 앞으로 뭘 더 해야 하나’하는 갈등들. 이런 원론적인 고민들이 절 자꾸 늪으로 빠지게 했습니다.”
염경엽 감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피칭을 하고 있는 김병현.(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염경엽 감독은 이런 김병현 선수의 모습을 보고, 메이저리그 마인드를 버려야 한다고 충고했었습니다.
“저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저한테 그런 게 없다는 거 잘 아실 겁니다. 원래부터 메이저리그 마인드는 없었어요. 대신 정답이 아닌 걸 갖고 뭔가를 만들어 내려다보니깐, 그 틀을 깨지 못하고 계속 미궁 속에서 헤매었던 거죠. 곧 좋아지겠죠(웃음).”일부 야구 전문가들은 김병현 선수의 직구는 좋지만, 변화구가 매력적이지 않다고 보던데요.
“2년 전까지만 해도 145~148km까지 던졌었는데, 얼마 전 스프링캠프에서 136km가 나왔어요. 남들이 볼 때는 그것 밖에 스피드가 안 나오냐고 하겠지만, 전 이 공(느리지만 내가 제어할 수 있는)이 더 만족스러워요. 차라리 어깨가 부러졌으면 붙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마음 편하게 재활했을 텐데 그것도 아니고 계속 아프니깐 던지면서 그 무너진 매커니즘을 찾아가려고 했던 것이 무리수였어요. 이제 구속은 좀 떨어졌지만 투구시 아픈 부위를 정확하게 느낄 수 있어 오히려 제 몸을 알아가는 느낌이 듭니다. 애리조나 시절, 부러진 방망이에 발목 부상을 당한 이후 상체, 특히 어깨를 비정상적으로 쓰느라 투구 밸런스에 불균형을 초래했었거든요. 그 영향이 꽤 오랫동안 절 괴롭혔던 셈이죠.”
145~148km의 직구보다 136km 직구가 더 만족스럽다는 얘기에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을 것 같아요.
“송진우 선배님이나 메이저리그의 제이미 모이어( 1986년부터 2012년까지 빅리그 통산 269승(209패)을 기록한 베테랑 투수. 2012년 콜로라도 소속일 당시, 빅리그 역대 최고령(49세150일) 승리투수 기록을 세운 바 있다)등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까지 활약했던 베테랑 선배들은 150km를 던지는 젊은 선수들만큼의 구속은 나오지 않지만, 그들의 투구 안에는 퀄리티가 존재합니다. 정대현 선수나 유희관 선수의 느린 변화구가 인정을 받는 건 투구의 질과 움직임이 뛰어나기 때문이죠. 이젠 제가 그걸 깨닫게 됐고 인정하게 된 거예요. 투구 후 몸이 빨리 식고, 회복하는데 이전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상황에서 스피드보다는 투구의 질과 움직임의 중요성을 받아들인 셈입니다.”위의 얘기들은 이미 선배나 코치들이 자주 강조했던 부분이 아니었나요?
“그랬었죠. 그런데 제가 그런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전 제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난 아니야, 난 특별해’라고 오기부리며 애써 외면했던 부분도 있었어요. 빨리 받아들였으면 오히려 마음이라도 편했을 텐데 말이죠. 이번 캠프에서는 그걸 받아들였고, 그 안에서 정답을 찾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청백전 동안 사인 미스도 있었고, 포볼도 내줬지만, 오히려 ‘한 번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과 기대가 커졌어요.”
올시즌 연봉이 6억 원에서 4억 원이나 대폭 삭감이 됐어요. 그런데 오히려 홀가분해 했다는 얘기도 들리더라고요.
“어떤 분들은 2억 원도 많이 받는 거라고 생각하세요(웃음). 야구에 대한 자존심을 내세우기 보다는 팀에 대한 미안함이 커서 저도 편하게 받아들였어요. 사실 지난 시즌 6억 원이라는 숫자에 대한 부담이 만만치 않았거든요. 연봉 삭감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젠 부담을 벗고 제 존재감을 드러낼 일만 남았어요.”
2011년 라쿠텐 골든 이글스에서 활약했을 때. 경기를 마치고 나오는 김병현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라쿠텐 팬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앞으로 야구할 날이 많이 남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야구하는 게 김병현 선수에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요?
“한국에서 세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 때보다 가장 재미있게 야구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돈도 많이 받아봤고, 스프트라이트 속에서 생활한 적도 있지만, 전 한국의 선후배, 코칭스태프와 함께 야구하며 사는 게 가장 기쁘고 행복합니다. 왜냐고요? 그냥 사람 사는 것 같아서요.”넥센의 매력적인 팀 컬러는 무엇인가요?
“자주색이 매력적이죠(웃음). 이전에는 제 자신에 대한 고민이 많았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충고나 조언을 할 수 없었어요. 제 코가 석 자였으니까요. 어느 정도 제 자신을 찾아가면서 주위를 둘러 보니 후배들이 정말 잘해주고 있더라고요. 제가 조언할 일이 없을 정도로. 넥센은 감독님을 비롯해 모두가 열심히 한다는 특징이 있어요. 누가 뭐라고 하기 전에 알아서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 있기에 지난해 좋은 성적을 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 좋은 팀이에요. 올시즌에도 잘할 수 있는 팀이고요.”올시즌 염경엽 감독의 구상 중에 김병현 선수의 보직은 선발이 아닌 중간계투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선발 보직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나요?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에요. 올라가서 잘 던지는 게 중요하죠. 제가 이전에 선발을 고집했던 건, 오랜 시간동안 불펜에서 기다리는 게 힘들었어요. 말도 통하지 않고, 경기 종료 직전까지 입도 떼지 않고 경기보면서 순서를 기다렸던 경험은 다시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지금은 불펜에서 기다린다고 해도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선수들이 옆에 있으니까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요.”이전 일본 라쿠텐 시절, 지금은 양키스 소속인 다나카 마사히로 선수를 본 적이 있나요?
“스프링캠프 때 봤었죠. 이후 전 2군에서, 그 친구는 1군에서 뛰었으니까 만날 일은 없었고요. 캠프 때 본 다나카는 ‘괴물’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훌륭한 투수였어요. 정말 공이 좋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거액을 받고 양키스로 갈 줄은 솔직히 몰랐어요.”
김병현은 윤석민에 대한 질문에서 시애틀 이와쿠마의 예를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다나카 마사히로가 양키스와 7년 총액 1억 55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은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메이저리그에서는 한국 야구보다 일본 야구가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점이 작용됐을 것 같아요. 야구 역사, 두터운 선수층 등이 훨씬 앞서 있으니까요. 하지만 전 일본에 비해 한국 야구가 뒤떨어진다고 보진 않아요. 오히려 일본과는 비교도 안 되는 환경에서 더욱 뛰어난 선수들이 나오는 게 한국 야구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정말 야구 잘하는 나라예요.”윤석민 선수가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했어요. 오리올스의 벅 쇼월터 감독과는 애리조나 시절 남다른 인연을 맺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벅 쇼월터 감독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죠.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따로 부르신 후 ‘좋은 공을 갖고 있으니 자신있게 던지라’고 격려도 해주셨습니다. 그때 감독님 아들이랑 친하게 지냈어요. 감독님이 야구장 출근할 때 아들을 데려오셨거든요. 그때 자주 놀아주곤 했는데…. 지금은 그 아들도 많이 컸겠네요. 마음이 따뜻한 분이세요. 석민이에게 잘 해주실 겁니다.”윤석민 선수에게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글쎄요, 사진 보니까 얼굴은 정말 좋아 보이더라고요. 석민이는 부와 명예 대신 메이저리그로 향하는 그 ‘길’을 선택했어요. 자신이 없었다면 그런 선택을 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석민이가 메이저리그의 훈련 방법과 먼 이동 거리, 그리고 벽에 부딪혔을 때 정면 돌파를 할 건지 아니면 피해갈 건지를 구분해 행동한다면 충분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리라 믿어요. 시애틀의 이와쿠마도 미국에 처음 갈 때 1년에 150만 불 받고 가서는 실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해 보였잖아요. 전 석민이가 이와쿠마의 예를 가슴에 새겼으면 해요.”메이저리그 경기는 자주 보나요?
“아니요. 잘 안 봐요. 일부러는 아니지만 전 한국 야구가 더 재미있어요. 제 것도 잘 알지 못하는데 남의 게 눈에 들어오겠어요?(웃음)”야구 인생의 마지막엔 해태(KIA)의 빨간 유니폼을 입고 싶다고 말했어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나요?
“처음에는 광주에 계신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길이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그런 얘길 꺼내면 KIA 팬들에게 비난만 들을 거예요. 넥센에서 잘하는 게 중요하죠. 지난 해처럼 하면 언제 그만둘 지도 모르고요. 저와 같은 나이의 선수들에게 미래가 있나요? 지금 잘 하는 게 중요해요.”김병현 선수 팬들이라면 이전 메이저리그 전성기 때처럼 김병현 선수가 마운드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거예요.
“마운드에 올라갈 때마다 완벽한 모습을 보이려고 저를 무던히 괴롭혔습니다. 이전의 좋았던 장면들을 떠올리며 지금은 왜 그때처럼 하지 못하는 지에 대해 숱한 고민도 했었죠. 생각이 많다 보니 흐름을 잡기가 어려웠어요. 심플해지지 못했던 부분이 계속 제 발목을 잡았던 거죠. 이젠 그런 번민들은 모두 버렸어요. 가끔 (김)선우 형이랑 이런 얘길 주고 받아요. ‘형은 LG에서 난 넥센에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보자’고요. 넥센 유니폼을 입고 한국에서 야구하는 시간들이 무척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행복이 결과로 나타나지 않으면서 종종 괴로운 시간들로 다가왔었죠. 지난 2년 동안 미안한 마음뿐이었어요. 팬들에게, 구단에, 선수들에게…. 이젠 그런 생각 대신 다시 처음의 출발선으로 돌아가 성실하게 던지고 싶어요. 제 야구인생에도 봄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요(웃음).”김병현과의 인터뷰 내내 그의 꿈틀거리는 ‘마음’이 느껴졌다. 야구에 대한 희로애락을 통해 그가 안고 살았을 무게들이 올곧이 와 닿았다. 이제 그는 야구를 통해 ‘봄’을 맞이하고 싶어 한다. 올시즌 김병현의 바람대로 그 봄날이 찾아올 수 있을까. 관심있게 지켜봐야 할 일이다.
애리조나 캠프에서 추신수와 만난 김병현. 전현직 메이저리거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는 선후배이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